지적 질문과 개인적 상황

세상에 악이 이렇게 있는데, 신이 있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기독교의 신이 유일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소위 기독교변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여러 내용들을 다루는 교회 소그룹이 어제 끝났다.
봄학기 동안 했던 것인데…

내가 마지막에 했던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나름대로 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고, 그 사람들이 하는 까다로운 지적(intellectual) 질문들을 많이 접해 보았다.
똑똑한 사람들이니 그 사람들이 하는 질문들도 당연히 매우 날카롭다.

그렇지만 그렇게 날카로운 지적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80% 이상의 사람들은) 그 지적질문이 단순히 지적 호기심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은 아니다.
대개는 개인적인 상황으로부터 파생되어나온 질문들이다.

가령,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선하고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던가,
자신의 꿈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신이 자신을 돌본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건가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날카로운 지적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믿을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에대한 적개심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만의 echo chamber안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을 들으며 즐거워하는 것만큼이나 비겁하다.
하나님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그 거부감을 ‘지적 질문’뒤에 숨겨둔채 지적인 질문만을 던질 것이 아니라,
그 신에 대한 거부감 자체를 꺼내놓고 다루어야 한다.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에 대한 정직한 자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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