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Real

주초에,
카톡으로 미국의 다른 지방에서 청년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한 평신도와 대화를 짧게 나누었다.

그분은,
얼마나 청년사역자들이 심한 낙심에 빠져 있는지,
얼마나 심하게 미국 내의 한인교회들이 무너져 있는지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도 격하게 공감하면서, 적어도 내가 만나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 청년들은 사실상 거의 다 초토화된 것 같고,
대형교회에 다니고 있는 청년들도 거의 몰살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일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몇달에 한두번정도 열어볼까 하는 facebook에 들어가서, 목회자들의 포스팅들을 보면… 다 좋댄다. ㅠㅠ
자기는 나름 열심히 하고 있고, 그 열매들이 있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아, 물론 그분들이 열심히 안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분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실제 자신들이 섬기는 사람들이 처해있는 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나름대로 이곳 bay area에서 오래 살면서,
이곳 bay area의 문화속에서 독주를 마시며 죽어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참 많이 보았다.
내가 그렇게 되지 않기위해 나도 많이 몸부림쳤고, 정말 아주 간절하면서도 결사적으로 꿈틀거려가며 지내왔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어떤 분들에게, 심지어는 이 지역에 있는 어떤 그리스도인 리더들과 나누었을때…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공감하지도 못하는 것을 맞닥드린적이 있었다.

심지어 어떤 분들에게는,
내가 거의 얼굴을 붉혀가며,
여기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정말 죽어라고 꿈틀거려가며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몸부림쳐야 겨우 쓸려내려가지 않는 수준이 가능할 뿐이라고 이야기한적도 있었는데….
그때 그분들은…
그냥 인자한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주초에 청년들을 그렇게 바닥에서 섬기는 사람이 맞닥드리고 있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절박함은, 그분이 ‘실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반면,
자기가 하는 목회나 사역이 그래도 괜찮게 되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지도자나 목회자들의 인자함은,
그분들이 ‘실제의 삶’과 괴리되어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동시대에 살고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을 함께 겪으며 공감하며 걸어가는 것은,
특권이자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