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 않기 (3)

그런데 그렇게 살면서 내게 여러 문제가 생겼다.

우선, 좀 시간을 내어서 묵상/사색을 할 시간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내가 나름대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또 나는 어쨌든 여러가지 형태로 사람들과 성경말씀을 놓고 이야기하고 나누는 일을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30대와 40대 초반에는 그냥 잠을 줄여서 그 부족한 시간을 해결하곤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체력이 부족해서 그게 쉽지 않게 되었다. 대충 50대가 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또 바쁘게 열심히 살다보니 나는 계속해서 ‘쫓기는’ 삶을 살고 있게 되었다.
끊임없이 시간을 쪼개 쓰는 것에 많은 관심을 두고, 삶의 모든 일에 효율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John Ortberg가 Dallas Willard에게 질문했다.
“영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랬더니 Dallas Willard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너의 삶속에서 분주함을 무자비하도록 없애야 한다” (You need to eliminate hurry from your life)

나는 내 삶 속에서 hurry를 없애긴 커녕 끊임없이 나 자신과 내 주변의 사람들의 삶 속에도 hurry를 강요하고 주입하고 있었다. 음… 이건 아닌데.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 않기 (2)

내가 열심히 일하기로 결심했던 또 다른 큰 이유는, 내가 창출해내는 가치에 비해 내가 너무 많이 월급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이곳 bay area에서 받았던 돈은 사실 아주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학원생 월급에 비하면 6배정도 되는 돈이었고,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그 정도의 가치를 이 사회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걸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사실 두번째 직장때부터 나는 월급이 많이 뛰었다.
내가 예전에 나중에 박사를 받고 나면 이 정도 받으며 살겠거니… 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받게 되었고,
나는 정말 그런 고민을 더 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이렇게 돈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내가 하는 일이, 열심히 일하는 소방관이나 학교 선생님이나 경찰관들보다 2배이상 그렇게 가치있는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내가 받는 돈의 가치만큼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엄청 일을 열심히 했다.

회사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많이 했고, 더 잘 하려고 노력했고, 더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하루에 12~15시간씩 일을 하는 날도 꽤 있었다.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 않기 (1)

작년 중반 이후,
나는 정말 가능하면 하루에 8시간 정도 일하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렇게 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나는 늘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말하자면 ‘꾀돌이’여서 학생때도 노력형의 학생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보다 적은 노력으로 더 빨리 하는 재주가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후다닥 빨리 숙제를 하고 나름대로 내가 하고 싶은 공상등을 하는 것을 재미있어 했었다.

그런데 직장을 잡고 일을 하면서 나는 무지막지하게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게 되었다.

그랬던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가장 커다란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정직하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것을 계속 훈련했다.
그리고 정말 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겐 꽤 꾸준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했다.)

그때 나는 아침 말씀 묵상을 할때도 계속 하나님 앞에서의 성실함이라는 주제로 많이 씨름 했었고, 그것이 내게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Aurora

Boston에서도 지난주에 Aurora가 보였다고한다.

허어 참.
이렇게 낮은 위도에서 Aurora를 보게되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라고 하던데.

왜 오로라가 생기게 되느냐 하는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아주 합당하고 정당하고 매우 명쾌한 설명이다.

그런데,
그 오로라의 아름다움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Technical difficulty

지난 한주정도, 전화에 문제가 있어서 전화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며칠 동안은 아예 전화가 전혀 안되기도 했다.

게다가 또 며칠 동안은 이 블로그의 database 쪽에 문제가 생겨서 블로그도 잘 되지 않았다.

그것도 모라자, 또 지난주 며칠은 동부에 다녀와야 했다.

전화에 문제가 있는데 비행기를 타고 렌트카를 빌리고 하는건 좀 어려운 일이긴 했다. ㅠㅠ

그래도 이제는 almost back to normal.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잠깐씩 있는 이런 technical difficulty에 오바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살아가는 것도 일종의 지혜에서 나오는 선물이 아닐까 한데,
아직 내겐 그런 지혜가 충분하지 않은 듯 하다.

자크 엘룰의 잊혀진 소망

내 책상 옆에 몇년째 읽히지 않은 채 그냥 놓여있던 책이 있다.
자크 엘룰의 ‘잊혀진 소망’이라는 책이다.
몇년 전 KOSTA에서 ‘소망’이라는 주제로 한해를 보냈을때, 나름 조금 더 고민해보겠다고 사 놓고는 읽지 않았다.

지난 주말, 그 책을 펴서 어떤 내용인지 살펴 보았다.

‘현대사회'(자크엘룰이 이 책을 썼을 때는 1970년대였다)에는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침묵하실때 가지는 소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 이거 완전 지금 큰 도움이 될 만한 책이겠다!
어쩌면 지금 뭔가 딱 막혀있는 것 같은 내 생각이 이 책으로 인해 좀 뻥 뚤릴 수 있을 것 같은 ‘소망’이 생겼다.


내가 자크엘룰을 처음 접한건, 대학생때였던가… ‘뒤틀려진 기독교’라는 책을 통해서 였다.
그게 아마도 불어원어를 영어로 번역한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 같았다.
여러가지로 번역이 좀 부자연스러워서 읽는데 매우 애를 먹기도 했지만, 워낙 깊으면서도 혁명적인 내용들이 매우 고밀도로 담겨 있어서 소화해내는데도 꽤 애를 먹었다.

그렇게 만난 자크엘룰의 사상은 사실상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신앙에 매우 중요한 한 기둥을 만들어내었다. 자크엘룰의 책이라고 해야 겨우 그책 한 권 읽었고, 그 후에 조금씩 여기저기서 책과 짧은 아티글들을 읽는 수준이었으니 내가 자크엘룰의 사상을 다 이해했다고 이야기할만한 수준은 당연히 아니다.

그렇지만 매번 조금씩 자크엘룰의 생각들을 더 접해가면서, 나는 무릎을 치며 공감했었고, 그분의 생각이 내 생각을 만드는데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발견해나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자크엘룰을 다시 좀 파보고 싶다.


Bryan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시리즈

나는 보스턴에서 Grace Chapel이라는 교회에 꽤 오래 다녔다.
내가 Grace Chapel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에는 Gordon MacDonald라는 매우 유명한 설교가가 은퇴하고 Bryan Wilkerson이라는 젊은 목사님이 새 senior pastor로 왔을 때였다.

그 후 여러가지로 나는 Grace Chapel과 Grace Chapel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그후 나는 그 동네에서 새로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involve 되게 되었고, 그렇게 Grace Chapel을 떠났지만 내 생각엔 그럼에도 그 후에 Grace Chapel의 설교를, 특히 Bryan 목사님의 설교를 거의 매주 들었다. 내 생각엔 Bryan 목사님이 Grace Chapel에서 한 설교를 아마 내가 한주도 빼지 않고, 여태껏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이제 은퇴를 하신다고.
마지막 설교시리즈로 “Why I still believe” 라는 시리즈를 하고 있다.

아, 참 좋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처음 내가 Grace Chapel에 나갔을때는 Grace Chapel과 Bryan목사님의 신학적 입장이 지금과는 살짝 다른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목사님과 교회가 더 많은 고민을 하면서 신학도 evolve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Grace Chapel에 처음 다녔을때 내가 가지고 있던 신학적 입장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입장 사이에는 꽤 차이가 있다.

그런데,
Bryan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시리즈를 들으면서…
아, 그래… 정말 내가 정말 동의한다… 나도 바로 그렇게 생각해…
라고 격하게 공감했다.

Grace Chapel에 다녔던 시간보다 그 교회를 떠나있던 시간이 훨씬 더 길다.
Bryan 목사님이 ‘우리교회 목사님’이었던 시간보다, 멀리서 그분의 설교를 한주씩 들었던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그럼에도,
아마 나는 그렇게 Bryan 목사님의 Grace Chapel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Bryan목사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알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정말 언제 만나면 격하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한번 드리고 싶다.

이번 설교 시리즈 소개 짧은 cl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