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정의라는 가치에 대해 잘 정리해서 이야기할만큼 아는 것이 많지도 않고,
정치는 더더군다나 잘 모른다. - 어제 Trump 할아버지의 재판에서 배심원전원이 Trump의 34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라고 판단했다. 이곳 미국에서는 뉴스가 난리였다.
- Trump의 정책을 지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떠나서, 적어도 내가 미디어등을 통해서 듣는 것으로는, Trump가 이 시건에서 잘못을 했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그런의미에서 이번 재판은 공정하게, 정의롭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한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도 만만치 않다.
현 대통령과 그 가족이 법을 어겼을 가능성에대한 여러 기사들이 막 쏟아져나오는 것이, 박근혜 탄핵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한다.
누구를 지지하느냐와 관계 없이, 한국에서 혹시 앞으로 벌어지게될 일련의 과정이 공정하고 정의로울까 하는 것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이겠다. - 그런데,
적어도 최근 내가 많이 하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정치 지도자들의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걸까 하는 것이다.
내가 20-30대에는 당연히 정치 지도자의 도덕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뭐 사실 지금도 엄밀히 말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내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그 도덕적 기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 나는 Trump를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만일 Trump를 지지한다면,
이 사람의 이런 도덕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지지할 것인가?
예전 같으면 당연히 그럴 수 없지 라고 대답했겠지만, 요즘은 조금 더 고민하게 될 것 같다. - 그것은, 결국 정치 지도자들을 내가 따르는 리더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소비하는 도구라고 여기게 된 것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이 사회 속에서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를 누가 더 잘 해결할 것인가 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나는 미국에서 Trump나 한국에서 윤석열 같은 사람들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하는 막되먹은 말과 행동,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문제들이… 예전과 같이 그렇게 심하게 bother되지 않는다.
Trump가 소수인종이나 약자를 조롱하는 언어를 쓰는것, 한국의 현 대통령 윤석열이 쌍욕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 사람들을 판단하는 일차 잣대가 되지는 않게 된 것 같다.
그냥 결국 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힘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좀 더 세상에서 힘을 내어서 살 수 있게 되느냐 하는 것이 훨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그것은 그 정치 지도자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 어떤 정치적 구호를 하느냐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말로는 약자를 보호해야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막상 그 사람과 그 정치세력의 어떤 정책 때문에 약자가 훨씬 더 어려워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적어도 요즘 같은 세상 속에서는,
정치 지도자에게 도덕성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저 그 사람들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만….
그나마 좀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Month: May 2024
예레미야 9:23-24
“나 주가 말한다. 지혜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 용사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라. 부자는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지 말아라.
오직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이것을 자랑하여라. 나를 아는 것과, 나 주가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하나님인 것과, 내가 이런 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 만한 지혜를 가지게 되었음을, 자랑하여라. 나 주의 말이다.”
그런데 내가 살면서 요구받는 것은,
내 능력과 지식과 경험을 자랑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인 것 같아 보인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분의 성품을 자랑하는 삶을 살기란 참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지 않으면 정말 숨이 막혀버릴것만 같다.
아직 내가 하나님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깨달아 알았다고 이야기할 수준은 못되는것 같다. 그러니 나는 그것을 자랑할 수준은 안되는 것.
그러니 나는 정말…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인거다.
그렇게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내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은 정말 내게 꼭 반복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Professional’ Christian
보통 사람들에게 야구공을 던지라고 하면 빠른 공을 던지기는 커녕 마운드에서 포수까지 한번에 던지는 것을 못하는 사람도 많다.
투수 마운드에서 포수까지의 거리는 20m 가량 되니, 야구공 20m 던지지 못하는 사람은 꽤 많다.
그런데…
야구선수들은 그 거리에서 야구공을 던지는데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던진다.
심지어 더 잘하는 선수들은 시속 140-150km가 넘는 속도의 공을 뿌려댈 수 있다.
그게 ‘프로’와 ‘일반인’의 차이다.
계속된 관심, 훈련, 노력, 경험을 통해서 그렇게 전혀 급이 다른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에 ‘프로’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적절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평생을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더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런 것에 관심도 두지 않고 사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겨우 자기 욕심 다 챙기고 쬐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데 자신을 내어줄때,
비교도 안되는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해가며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게 자주 답답하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는데, 아직도 겨우 마운드에서 포수까지 겨우 공을 던져내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Long Weekend
지난주는 동부에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이라는건… 가면…
일하는 시간에는 그 현지의 일 때문에 정신없고,
밤에 호텔에 와서는 또 밀린 일들 후다닥 하느라 또 정신없고…
그래서 출장을 가면 정말 하루 15시간 이상 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목요일 밤 늦게 집에 돌아와서는 뻗었다. ㅠㅠ
금요일에는 출장 다녀온 것 정리하느라 우다다.. 일하고, 금요일 저녁 6시에 드디어 shut down
다행히 어제 월요일이 휴일이어서, 토-일-월 참 잘 쉬었다.
정말 잘 쉬었다.
그런데,
도대체 잘 쉰다고 느끼게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그냥 잠을 잘자고, 육체적으로 쉬는것?
아니면 바쁜 일 없이 보내는것?
어떤땐 긴 시간 그냥 육체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쉬더라도 잘 쉬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도 하지만,
지난 주말에는 나름 해야할 일들 다 하면서, 조금 시간내서 운동도 하면서 보냈는데… 잘 쉬었다는 느낌이 확~ 드는 주말이었다.
덕분에 이번주는 하루 짧은 4일이니,
그것도 보너스!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 않기 (8)
그래서 내가 정말 하루 8시간씩만 일하면서 살고 있느냐…
음… 뭐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사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도 많다.
특히 요즘은 회사에서 하는 어떤 프로젝트에 꽤 많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아침 7시에 눈을 뜨자마자 기도고 말씀묵상이고 그런거 하나 없이, 세수도 하기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우다다다 동부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을 하면서 달려들곤 한다.
그리고 저녁 식사 전까지는 대개 바짝 달라붙어서 일을 하게 되니까…. 중간에 office 오가는 운전하는 시간등을 빼고 어쩌고 하더라도 하루 8시간을 지키지 못할때가 꽤 많다.
그렇지만 어쨌든 지난 1~2년 꽤 노력한 덕에, 내 삶에서 hurry가 많이 줄어들긴 한 것 같다.
그건 결국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해진것 같다.
살면서 사랑할 여유를 두지 않고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많이 하게 된다.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 않기 (7)
최근 민우와 이야기를 조금 깊게 나눈 적이 있었다.
민우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대학원을 어떤 분야로 가고 싶은지 그런 종류의 이야기였는데,
(요즘 민우는 계속 진로로 고민이 많다)
내가, 어떤 종류의 일을 하면서 살고 싶느냐고 물었는데…
민우가 이야기한 것들중 꽤 상위 랭킹에 있는 것이…
자기가 하는 일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빠처럼 계속 집에서도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이야기했다.
민우가 보기에는 아빠는 저녁에 집에 와서도 매일 컴퓨터 앞에서 자기 전까지 일을 하다가 자는 사람으로 그냥 보였던 것 같다.
아…
어쩌면, 내가 민우에게 충분히 available한 아빠가 아니었겠구나.
민우가 언제든 필요할때 내게 말을 걸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interruption에 열려있는 모습이 아니었겠구나…
참 마음이 아팠다.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 않기 (6)
John Mark Comer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정확한 quote는 아니지만 의미를 전달하자면…)
내가 interruption (중단, 방해, 저지, 가로막음)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때,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중 누가 내게 말을 걸어올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한참 바쁘게 미팅에 늦지 않게 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카톡을 보내며 도움을 요청하면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런 interruption에 대한 반응을 보면 정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내가 지금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있는 어떤 분의 모습이 있다.
10년전, KOSTA에는 Marva Dawn이 강사로 오셨다.
매일 아침 불편한 몸으로 꼿꼿하게 서서 한시간씩 설교를 하셨다. (그때 이미 한쪽 다리를 절단하신 상태였다.) 뭐 나름대로 그분도 KOSTA에서 전체집회 강사이셨으니, 사람들이 만나자고도 했을 테고, 또 빡빡한 KOSTA 일정 속에서 왔다갔다 하는 거리도 만만치 않아서 휠체어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그렇게 바쁜 일정을 하시던 중,
휘튼 컬리지의 한쪽 구석에서 한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멀리서 보았으니 어떤 내용을 나누고 있는지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 그 와중에, 그 여성은 Marva Dawn을 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야기하고 있었고, Marva Dawn은 마치 그 순간에 그 사람 한 사람만 우주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자세로 그 여성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고 있었다.
바쁘게 오가는중, 설교의 어떤 면에 감동을 받은 그 분은, 어떻게든 자신의 이야기를 Marva Dawn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고, 그렇게 바쁘게 가는 Marva Dawn을 붙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Marva Dawn은 그 interruption을 기쁘게 받아들여 그 사람에게 모든 관심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아… 나도 Marva Dawn같이 되고 싶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lifestyle은 그런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것이었다.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 않기 (5)
그리고 어쩌면 계속 일을 하면서,
working harder (더 열심히 일하기)를 배우기도 했지만
working smarter (더 지혜롭게 일하기)를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 더 효율적으로 적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는 여러가지 내 나름대로의 knowhow등이 생겼다.
그리고 예전과 같이 내가 직접 시간을 들여서 실험을 하고 data를 내는 것과 같이, 일정한 시간을 보야만 결과가 나오는 것과는 달리, 지금 하는 일은 더 깊은 통찰과 판단으로 지혜롭게 결정하는 일들이 더 중요하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결심한 것은 그렇게 해서 남은 시간을 가지고 더 커리어에 투자해서 높아지거나 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남는 에너지로 따로 공부하고, 사색하고, 묵상하고, 그리고 다른 이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COVID-19 기간을 지내면서 나는 내가 하는 공부 양을 더 늘릴 수 있었고, 온라인에서 많으면 한주에 3그룹씩 성경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 않기 (4)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성실함을 추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일하기 시작한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람들의 눈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에도 성실함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을 훈련한 것은 내게 참 좋은 습관으로 자리잡았고 나를 더 정직하고 투명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정직과 투명.
그게 어쩌면 내 20대와 30대에 내가 싸우며 얻어내어야 했던 가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리고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투쟁하면서 얻어야 하는 가치는 어쩌면 쫓겨서 사는 삶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적어도 이곳 silicon valley에서는 정말 그렇다.
아, 물론 이곳 silicon valley에서도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나도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은 좀 더 열심히 정직하게 투명하게 일하는 것에 훈련을 해야할것이겠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사는 것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정서적으로 끊임없이 쫓기며 살아가고 있다.
바쁨(busyness)과 분주함(hurry)는 꽤 다른 개념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바쁨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쫓기며 사는 분주함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평생의 삶의 모토로 삼고 살고 있는 “Contra Mundum” (세상에 대항하여)를 따라…
지금 내가 더 집중적으로 싸우며 다루어내야하는 것은, 적어도 지금 내게 있어서는, 마음의 분주함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된 것이다.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 않기 (3)
그런데 그렇게 살면서 내게 여러 문제가 생겼다.
우선, 좀 시간을 내어서 묵상/사색을 할 시간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내가 나름대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또 나는 어쨌든 여러가지 형태로 사람들과 성경말씀을 놓고 이야기하고 나누는 일을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30대와 40대 초반에는 그냥 잠을 줄여서 그 부족한 시간을 해결하곤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체력이 부족해서 그게 쉽지 않게 되었다. 대충 50대가 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또 바쁘게 열심히 살다보니 나는 계속해서 ‘쫓기는’ 삶을 살고 있게 되었다.
끊임없이 시간을 쪼개 쓰는 것에 많은 관심을 두고, 삶의 모든 일에 효율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John Ortberg가 Dallas Willard에게 질문했다.
“영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랬더니 Dallas Willard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너의 삶속에서 분주함을 무자비하도록 없애야 한다” (You need to eliminate hurry from your life)
나는 내 삶 속에서 hurry를 없애긴 커녕 끊임없이 나 자신과 내 주변의 사람들의 삶 속에도 hurry를 강요하고 주입하고 있었다. 음… 이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