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교회 (4)

‘강소교회’ (강하고 작은 교회)의 모습을 여러가지 상상력을 발휘해서 한번 생각해보려고 한다.

강소교회는 그 교회의 크기가 크지 않기 때문에 한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scope이 그렇게 넓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교회는 그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혹은 상황적으로 감당해야하는 일들을 좁게 감당하는 시도를 해야할 것 이다.

첫번째 생각해볼 수 있는 교회는 마지막까지 퍼주는 교회이다.
post-Chrsitendom 침체기를 지나고 있는 교회는 여러가지 resource가 제한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반면에 기독교적 문화와 정신을 잃어버린 세상을 행해서는 더 해야할 일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속에서 어떤 교회들은 그나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resource들을 사용해서 마냥 퍼주기를 하는 일들을 할수 있을 것이다.
듣지 않는 대중을 향한 복음전도도 퍼주기이고,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계속된 관심도 퍼주기이다.
그야말로 어쩌면 교회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resource를 밖을 향해 소진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그 속에서 새롭게 다른 resource를 공급해주시고 섬기는 세상의 변화가 일어날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막을 걷다가 그저 물통에 남은 마지막 남은 물 한방울을 쓰러진 나그네에게 주는 것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2019년, 교회 (3)

나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교회중 아주 상당수가 앞으로 10년, 20년뒤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계속 존재하게되는 교회들은 양분될 것이다.

한쪽은 대형교회들이다. 이런 대형교회들은 망하는 중소교회에서 교인들을 흡수하며 생존해나갈 것이다. 이 대형 교회들은 어찌보면 허약하고 문제가 많던 중소교회들의 문제점들을 흡수하는 교인들과 함께 흡수하게 될 것이고, 크기에 비해서 그야말로 거의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힘없고 큰 교회의 모습이 될 것 같다.

다른 한쪽은 강하고 작은 교회들이다. 이 교회들은 한편으로는 병든 공룡과 같은 대형교회들이 해내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해석해내는 힘을 가지는 교회들이다.
이 강하고 작은 교회들은 어떤 한가지의 모습으로 존재할것 같지는 않다.
아마 다양한 강소교회의 모습들이 있을 것이고 그런 여러 모습들이 함께 하모니를 이루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2019년, 교회 (2)

제목을 ” 2019년, 교회”라고 한 이유는 2019년이라는 context에서 교회를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1세기 초반이라는 시기에,
기독교는 지난 1700년이상 지속되었던 Christendom의 마지막을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문명을 주도해온 서구사회 내에서 기독교적 가치가 더이상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 않고,
세계 문명의 중심이 서구사회로부터 다원화되어가고 있으며,
전 세계 기독교의 중심 역시 서구사회로부터 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쪽으로 다변화 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교회, 미국 교회, 미국내 한인교회 모두 침체기로 급속히 들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분석에 동의한다.

나는 교회가 지녀야하는, 그리고 선포하고 드러내어야하는 통시적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믿지만,
또한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그 시대에 특별히 강조되어야 하는 어떤 가치나 모습등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적어도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 있는 교회에서는,
이런 post-christendom 침체기에 대한 고려가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9년, 교회 (1)

뭣도 모르는 사람이 뭣도 모르는 주제에 대해 뭣도 아닌 소리를 해대는 것은 참 꼴불견이다.
나는 교회에 대해 뭣도 모른다. -.-;

나는 지금 50이 되도록, 교회에서 꾸준히 서리집사라도 하며 섬긴적이 없다.
30대 초반에 딱 1년동안 집사가 되었었다.
그것도 일년 후에 목사님께 ‘저는 계속 집사로 교회에서 섬기는 일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린후 집사를 그만 두었다. (그걸로 목사님께 완전 찍혔다. ㅎㅎ)

그래서 다른 크리스천 모임등에 갔을때 어떤 분들은 나를 부르는 호칭이 없어서 불편해하시기도 하신다. ^^
집사님이라고 부르시면, 저 집사 아닌데요… 라고 이야기하고…
아, 그럼 장로님이세요? 물으시면 아아뇨 그건 더더욱 아닌데요 하고…
그냥 형제라고 부르시거나, 그냥 누구누구 씨 라고 부르시라고 하시면 많이 난감해하고 부담스러워하신다.

그런데 나는 늘 모임을 시작해서 처음 setup 하는 일들에는 많이 관여를 했던 것 같다.
대학교/대학원때는 개척교회에서 청년부를 처음 만들어서 setup 하는 일을 했었다.
그리고 어른들이 끼워주셔서 교회의 몇가지 decision making을 하는데 살짝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미국에서 교회개척에 두번 involve 되었었고,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 개척에 아주 remotely 살짝 연관이 좀 된적이 있었다.

한인 이민교회에도 좀 다녔고,
그냥 영어를 쓰는 대부분이 백인 교인으로 이루어진 ‘미국교회’들도 두개 경험했다.

교회 밖에서 여러가지 모임들을 시도하는 일은 꽤 많이 계속 했다.
그렇지만 그 모임들을 ‘지역교회’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내가 교회에대해 뭘 알겠는가.

그런데 이제, 몇번의 글을 통해서 지금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지역교회에 대한 난잡한 생각들을 써보려고 한다.
아주 난잡한 글들이 된 예정이다.

포기와 지혜

포기하는 것은 대개 비겁함이나 용기없음, 혹은 능력없음의 sign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때로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지혜없음의 sign이 되기도 한다.

나는 대개 쉽게 포기하기보다는 늦게 포기하는 우를 범할때가 많다.
그것은 내가 용기있거나 능력이 넘쳐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지혜가 많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인 듯.

좀처럼 포기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성품때문에,
포기했더라면 이루지 못할 것들을 이루며 살아온것 같다.

아주 숭고한 가치라 하더라도 그게 안되는 거구나… 하며 포기하는데서 오는 평화를 누리는 법을 더 배워야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디에 가고싶다고 이야기하지 말고 무엇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해보라

나는 이메일과 linkedin으로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 거기 일하는거 어떠냐는 식의 inquiry를 많이 받는 편이다.
예전에는 그런 이메일에 가능하면 잘 대답을 해주고 안내도 해주려고 노력을 했는데, 일년쯤 전 부터는 그냥 그런 이메일들을 대강 무시하고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다짜고짜 자기 resume를 보내면서 거기 job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것도 있고, 예전에 알던 사람들이 부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이 거기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식의 질문을 해오는 경우도 있다.

나는 가능하면 학생들의 질문에는 대답을 해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대개 어린 학생들의 질문은 이렇다.

나는 이런걸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너희 회사에서 꼭 일하고 싶다. 그 회사에서 일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달라. (사실 놀라운건, 몇년사이에 우리 회사가 꽤 유명해졌다는 거다.)

그러면 나는 그 학생들에게 꼭 이렇게 이야기를 해준다.
어느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거나, 어디 가고 싶다거나 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을 먼저 잘 생각해보라.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그 회사에서 하고 있는 지를 살펴보라.
그냥 그 회사가 cool 해보여서 그 회사에 가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건 별로 지혜로운 것 같지 않다.

좀 시간이 되어서 그런 학생들을 만나서 한 10분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며 조언이나 충고를 해줄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금 더 잘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California Drought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일년에 8~9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다.
겨울에 오는 비로 일년을 사는 거다.
캘리포니아에 여러 저수지가 있고, 특히 캘리포니아 동쪽의 높은 산에는 겨울에 눈이 내린다. 그 눈은 6-7월이 되어서야 녹는다. 그러면 그 눈이 녹으면서 계속 물을 흘려보내게 된다. 높은 산에 쌓이는 눈은 자연적인 저수지가 되는 것이다.

3년전에 우리 회사가 지금의 South San Francisco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그때는 California 가뭄이 극에 달해있을 때였다.
City에서는 회사에 dish washer를 설치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을 아껴야 한다고.
그래서 우리 회사 cafe에는 dish washer가 없다. 그래서 모두 일회용품을 매일 쓰고 있다. -.-; (이 무슨…)

그런데 이번 겨울에 California에는 비와 눈이 꽤 많이 왔다.
그래서, California 가뭄은 7년만에 해갈이 되었다.
세상에 7년…

회사에서도 이제는 dish washer를 설치를 준비한단다.

가뭄이 해갈되는 것은 참 반갑고 기쁜 일이다.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내 영혼의 깊은 목마름과 외로움은 그러나 계속되고 있다.

사순절에 하는 랜덤 생각

덧셈뺄셈을 하지 못하면서 수학전공자라고 하지 마라.
100m 달리기를 25초에 뛰면서 마라톤 뛴다고 하자 마라.
악보 읽을 줄 모르면서 오케스트라 지휘하려 하지 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풀어 설명할 수 없으면서
예수님을 따라 사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 하지 마라.

휴~가~

휴가 잘~ 다녀 왔다. ^^
일상의 루틴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내게 늘 쉽지 않다.
그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인것 같다.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들을 그냥 ‘루틴’으로 만들어서 단순화시킨다.
옷 입는 것, 밥 먹는것, 자고 일어나는 것 같은 것들은 그날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고 산다.
다른거 생각하고 살일도 많은데, 오늘 뭐 입을까 이런걸로 에너지는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이상하다고 여길만큼 나는 그 루틴 안에 살려고 노력한다.
잘때 전화기를 충전하면서 전화기를 놓는 위치도 늘 똑같이 맞춘다. 아침에 일어나서 안경없이 전화기 알람을 쉽게 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매일 아침 아침식사를 회사의 어느 식당에서 먹는 것도 늘 정해져있다. ^^
(회사 Mountain View campus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회사 셔틀을 타고 회사에 가는데 아침식사를 Mountain view campus에서 먹는다.)
아침 출근 셔틀에 타는 자리도 늘 똑같다. 그래야 늘 하던대로 같은 자세로 노트북을 펴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휴가에서는 그런게 되지 않는다.
늘 하던 것을 할 수 없다.

휴가는 내가 늘 우선순위를 두고 생각하는 것을 잠깐 잊고,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있던 것을 끄집어 내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이번 휴가에서 그렇게 잘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꽤 많은 생각을 하게되긴 했다.

Good to be back home!

휴가!

다음주에는 민우 봄방학을 맞이하여,
그리고 일년 지난 결혼 20주년을 맞이하여,
가족 휴가를 가기로 했다.

원래 작년에 결혼 20주년때 둘이 가까운데 여행한번 다녀오자고 했는데,
둘다 시간내는것이 어려워서 작년에 그냥 지났었다.

그러나 금년에는 민우가 대학에서 맞는 첫 봄방학이고 우리까리 멋진 여행을 한번 간일도 별로 없고 해서 마일리지 30만마일 넘게 있는걸 톨톨 털고, credit card benefit 모인거 다 털어서 여행을 간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쉴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현대에서 이야기하지만,
나는 한번도 쉴 자격이 있을 만큼 열심히 일한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내가 일하는 게 맘에 안든다. -.-;
다만 열심히 공부한 민우와, 열심히 일한 아내는 좀 쉬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놀기 위해서 한참 바쁜 와중에 한 주 회사를 빼고 이렇게 가는건… 언제 그랬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달만에 민우를 본다는 생각에 설레고,
회사일을 끊고 휴가를 간다는 생각에 살짝 걱정이 된다.

(다음주는 내내 블로그 update가 없을 예정입니다.
휴가 갔다와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