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start up 을 한다고 어쩌구 저쩌구 했을때….
결국 맨 마지막에 우리는 $1M (백만불)이 없어서 하던 일을 접게 되었다.
그 $1M이 모여졌더라도 그 다음 고비가 더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때 $1M이 더 있었으면 우리는 더 갈 수 있었다.

그 후 재정이 빡빡한 회사에 다녀보기도 했고,
재정이 넘쳐나는 회사에 다녀보기도 했는데…
실제로 연관되어서 일했던 어떤 회사는 한주에 평균 $5M 정도를 쓴다고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허걱…

그렇게 거기는 돈이 넘쳐나고…
내가 다니는 회사도 한번 fund를 받으면 뭐 거의 billion dollars 레벨이니…
최근 실리콘 밸리의 한 회사는 총 $6.6B 의 funding을 받았다고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허걱.

반면…
내가 생각하기에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 돈이 부족하다.

내가 나름 이리저리 모아서 헌금을 하고 나면 그쪽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헌금 잘 받았다고.

심지어 어떤 분은 너무 과하게 감사하다고 하셔서… 아니…그렇게 얼마 안되는 작은 액수인데…. 그렇게 까지 과하게 감사할 일인가 싶어 너무 민망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저 100불, 200불 정도 용기를 내어서 헌금을 하면,
하고 있는 일에 뭔가가 딱 완결이 된다던가 하는 일들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아니 겨우 그 정도 돈인데.

물론 내 개인적으로도,
내가 사고 싶은 것들 몇년째 사지 못하고 있는 것들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것에 돈을 쓰지 못하면서 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은…
아… 돈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꽤 진지(?)하게…

부끄러운 좌절감?

요즘 성경공부를 주중에 세 그룹하고 있기도 하고,
지난 주말에는 뉴욕까지 가서 뭔가를 하고 와야 하기도 했다.

나는 그래도 나름 열심히 준비를 한다.
머리에서 몇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꼭 해야하는 말이 빠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없는 말을 괜히 하지 않도록 정말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

그리고,
매우 높은 확률로…
내가 계획한대로 그래도 그럭저럭 잘 하곤 한다.

그러고나면,
뭐 일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은 그 내용이 좋았다,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깊은 부끄러움과 일종의 좌절감이랄까… 그런 기분까지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 하는게 정말 그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 많이 노력을 하긴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잠깐 그때 좋아하고 마는 것 같고,
정말 내가 마음으로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것 같아 그렇다.

심한 좌절감, 부끄러움이 몰려오곤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정말 잘 모르겠다.
한주에 세 그룹 성경공부를 하고 있으니, 성경공부 90분을 열나게 하고 나면 그 밤에 내게 그런 좌절감이랄까 그런 것이 폭풍처럼 밀려오곤 하고,
지난주말같이 조금 더 시간을 떼어서 정성을 들이고 나면 그런 좌절감의 폭풍이 조금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냥 그저 다 부끄럽다. 너무 형편없다.

계속되는 불편함

많은 회사들이 그렇겠지만,
이곳 실리콘 밸리의 회사들에서는 더 그런 것 같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고,
다 함께 일하는것이 기쁘고,
서로 잘하는 것을 무진장 칭찬해주고,
뭐 하나 하면 세상을 바꿀만한 일이라고 치켜 세우고…

나는 그런것이 정말 몹시 불편하다.
그냥 좀 불편한 것을 넘어서, 거의 역겹기까지 하다.

absolutely, tremendous, beautiful, wonderful, extremely 등등의 부사를 써가며 이야기하는 많은 것들이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져 정말 듣고 있기 힘들때가 많다.

이메일로 누가 뭐 잘했느니, 어쩌니 하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그 밑에 쭈루룩…. 잘했다. 축하한다… 그렇게 쓰는 것도 그렇다.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가장 강하게 느낄때는,
그런 회사의 문화들이 내게 몹시 불편하게 느껴질때이다.

뭐 그래도 어쩌겠나. 그 불편함 속에서 살아가야지.
심지어는 나도 그 역겨운 행동들에 동참도 해 가면서…

So True!

지난 주말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youtube clip 하나를 보았다.
(얼마전부터 youtube premium을 쓰고 있다. 그래서 youtube를 download 받아두었다가 비행기를 탈때 보곤 한다.)

MIT에서 5.0의 GPA를 받은 사람이,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다고 느끼는지 하는 이야기를 했다.
(MIT는 A가 5점이다. 그래서 5.0이면 모두 다 A 를 받은 것)

이 사람이 한 내용의 거의 90%는 동의하는 편.

그래서 나는
MIT에서 top 10%에 들지 못할 사람이라면 MIT에 가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건 MIT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잘나가는 학교, 잘 나가는 직장, 잘 나가는 전공, 잘나가는 지역 등등…
많은 경우 그렇다.

MIT는 특별히 더 심한 것 같긴 하다.
그래서 나는 MIT는 top 10%를 위한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학교는 top 50%를 위한 교육을 하기도 하고,
어떤 학교는 어떻게든 모든 학생을 끌고 가려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회사도 그렇다.
어떤 회사에서는 모두가 잘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노력하기도 하고,
어떤 회사에서는 그저 제일 일 잘하는 top 몇 퍼센트가 최상의 효율을 내도록 회사를 운영하기도 한다.

I’ve got miles to go before I sleep

작년부터…
과연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 많이 하고 있다.
자살충동이라던가 그런건 전혀 아니다. 다만, 정말 내 삶이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서 바람직하고 아름답게 열매맺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꽤 열심히 하긴 하는데,
과연 내가 뭘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던중 지난 주 비행기 안에서,
download 해놓고 못보도 있던 짧은 video clip 하나를 보았다.
2017년 영상이니, Tony Campolo 가 82세일때 찍은 것이다.
이게 원본 영상인지는 모르겠으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내가 받은 선물, 내가 주지 못하고 있는 선물

내가 믿음을 가지게 된건, 결국 우리 어머니 덕분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남편과 결혼하셨지만 어머니는 계속 믿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믿음을 키워 오셨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성경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눈을 뜨게된 기독교 믿음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어머니의 믿음과 어머니의 기도가 내게 등대와 등불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민우는 내가 보기에 그렇게 믿음에 대해 진지하지 않다.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하나님의 존재도 믿고, 예수님도 믿는 것 같지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민우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머니는 내게 그 소중한 선물을 전달해 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선물을 민우에게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머니를 통해서 받게된 그 선물에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하고,
그러나 아직 민우에게 전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마음에… 많이 마음이 먹먹하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점 하나

예전엔 열심히 하면 무리할 수 있었다.
바쁜 일이 있을때, 하루에 1~2시간씩 자면서 한주 정도 보내는 것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무리하는게 아예 안된다.
잠을 줄여서 무리하게 일을 하는 것이 잘 안되기도 할 뿐더러,
하는 일을 대부분은 잠을 줄여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지혜로움이 요구되는 일들이다.

그러니,
오히려 바쁠땐 일을 적당히 줄여가며 충분히 휴식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더 집중하고 더 지혜를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무리할 수 없다는 것이,
참 좋다.

기도를 하는 사람

  1. 멀리 떨어져 있고, 몇년씩 만나지도 못하지만,
    가끔 한번씩 생각이 나고,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나름대로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냥… 시간이 지나서 이젠 관계가 멀어졌다고 생각할거다. 뭐 가깝게 자주 만나지 못하니 관계가 그렇게 가깝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지만.
  2. 얼마전, 내가 참 좋아하는 선배님 한분이 내 동생의 건강을 물어보셨다.
    그분은 내 동생을 그냥 얼굴정도 아는 수준으로 알고 계실텐데…
    형수님과 함께 매일 내 동생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분은 허투루 말을 하는 분이 아니시고,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정말 그렇게 하고 계신거다.
    아… 그렇게 기도하는 분들이 계시구나. 참 감사했다.
  3. 나는 한편, 교회를 다니면서 실망을 한적이 많았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 가면, 목사님을 비롯해서 교회 지도자들이나 사람들이 나를 ‘resoure’로만 생각을 하고,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정말 진정으로 나를 위해주고, 나를 걱정하고, 나를 위해서 기도했던 우리교회 목사님을 가졌던 것은… 아마 보스턴에서 개척교회를 했을때니까… 아주 오래전이다.
    그 목사님의 생각에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이 많이 있었지만, 적어도 그분이 나를 위해서 깊이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분명히 알고 있었다.그나마 이제 그 목사님과의 연락도 끊어진지 좀 되었고, 그 목사님도 이제는 나를 거의 잊지 않으셨을까 싶다.
    나를 활용할 resouce로 생각하지 않고, 돌보아야 할 사람, 서로 그렇게 돌보면서 살아야할 사람으로 바라본다고 여겼던 기독교 공동체는… 역시 보스턴에서 학생일때 했던 성경공부 모임이었다. 거기 나보다 약간 더 나이가 위이신 분들이 나와 우리 가족을 그야말로 ‘care’하셨던 것이 정말 기억난다.
    그나마 그분들과도 이제는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
  4. 가끔은…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의 기도가 나를 지켜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 그래도 정기적/부정기적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 처럼,
    이제는 연락도 잘 닿지 않는 어떤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정기적/부정기적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건 그런 기도 덕이 아니겠나.
  5. 기도해야겠다.

장로는 아마 못될 듯

내가 집사가 되었을때가 29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회에서 갑자기 집사가 되라고 하셨는데…
음… 나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고, 뭐 딱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았다. ㅠㅠ

1년동안 제직회도 가고 뭐 집사가 해야하는 아주 최소한의 것들을 했고,
대신 나는 교회에서 시키지 않은 일들을 열심히 했다.
괜히 성경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고…

1년 후,
나처럼 이렇게 교회 system에서 성실하게 섬기지 못하는 사람이 집사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노력은 했지만 집사로서 교회의 system에 봉사하는 것은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목사님께 말씀드리고 집사직을 반납(?)했다.

집사로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집사 안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목사님께는 엄청 미움받았다. ㅠㅠ

그 이후 나는 내가 다니던 교회 어디서도 그 교회의 집사로 정식으로 다시 임명되어 일한적이 없다.

내 생각엔…
웬만해선 다시 집사가 될 것 같지도 않고,
장로는 더더군다나 평생 못될 것 같다. ^^

교회에서 성실하게 집사와 장로로 섬기는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한’ 환대 (6)

나는 환대가 참 좋다.
내가 환대를 받으면 정말 따뜻하다고 느낀다.
나도 그렇게 환대를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나같이 마음이 폭력적이고 배타적이고 전투적인 사람에게 환대는 매우 필요한 가치와 자세일 것 같다.

그렇지만
때로 환대라는 말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의 공동체라는 말이 환대의 공동체라는 말로 치환되고,
서로를 사랑하라는 말이 서로를 환대하라는 말로 치환되고,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환대의 하나님이라는 말로 치환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때도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어떤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여된 것은
환대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