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USA-2010 conference를 마치고 (5)

땅끝

땅끝에 대한 내용을…
영역주권론적 차원에서 다루고자 했던 시도는 사실상 거의 실패했던 것 같다.
땅끝을 그렇게 이해하는 시도를 해보려고 주제문도 그렇게 많이 강조를 했고, QT 본문등도 그렇게 짜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어쩌면 땅끝을, 영역주권론적 차원에서 다루고자 했던 시도 자체가 무리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땅끝을 지리적인, 복음전도의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너무 좁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적어도 복음전도의 의미에서의 땅끝은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생각이 갈린다.

이론적인 탄탄한 기초를 제공하기에는 부족했다고 보여지지만,
집회에서 그런 이론적 기초를 제공할 필요가 반드시 있겠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만일 복음과, 디아스포라로서의 민족의 개념을 건강하게 제대로 다루었다면 복음전도로서의 땅끝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모멘텀을 얻어 연결되어갈 수 있었을 텐데… 특히 민족의 개념을 다룰 때 이 흐름을 끊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결국 땅끝 이라는 개념이 제시되는 때에는,
conference가 절정에 이르러, 복음과 민족의 개념이 결국 땅끝으로 수렴되는 형태가 되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4 thoughts on “KOSTA/USA-2010 conference를 마치고 (5)

  1. 저 개인적으로도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상명하달식 주제가 그나마 현재 미국의 학생들에게 의미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잘 못한 부분도 있었고 어쩌면 판단미스였던 것 같기도 하구요.

    그나마 조장수양회에서 김도현 교수님의 강의는 이부분을 아주 잘 터치해 주셨다는 생각은 들어 다행인데요. 전체 집회에선 목요일 저녁 시간에 헌신자들이 그렇게 많이 일어났음에도 말씀 후 기도시간이 (기도의 밤 말구요) 기대 이상으로 차분하게 느껴진 건 저만의 생각인지, 아니면 땅끝이라는 주제 구현의 실패를 보여주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2. 생뚱맞은 소리일 수도 있고 또 너무 당연한 이야기 일수도 있는데… 저는 ‘땅끝’을 ‘영역주권’과 함께 이야기할 때, 그것이 개혁주의적 접근이 아닌 평화주의적 접근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극단적으로 단순화 시켰습니다. 안 목사님께서 야단치실 것 같습니다^^)

    세상에 무관심해까지 보이는 ‘평화주의’와 세상의 논리에 타협한 듯이 보이는 ‘개혁주의’의 타협점을 찾아서 제시하는 거지요. Yoder나 Hauerwas의 접근 방식이 되려나요?

    근데, 고전적 복음과 디아스포라로서의 민족에 대한 이해가 잘 되면, 정말로 자연스럽게 ‘땅끝’의 개념으로 연결될까요? 전 힘들 것 같은데요.^^

    • 에이, 미운 사람이 글도 밉게 썼네. ^^
      쉽게 답할 수 없도록 무진장 어렵게… ^^

      저도 말씀하신 부분에 많이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함축해서 쓰셔서 쓰고 싶은 것을 다 풀어서 쓰시지 못하셨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저도 개인적으로 ‘영역주권’의 개념에 대한 회의랄까 그런게 꽤 큽니다. 다만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엔 제가 알고 있는 대로의 ‘평화주의’가 기존의 영역주권론적 개혁주의가 cover하고 있던 부분을 다 cover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때문에 평화주의에 투항하는 형태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제게 평화주의의 convincing한 부분을 더 가르쳐 주시지요. 저도 그럼 투항할지도 모릅니다. ^^)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가 대학생이던 20세기에비해 지금은 평화주의적 접근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이건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뭐 연결된 얘기일수도 있지만요)
      이전에 에베소서나 골로새서 같은 것이 더 제 마음을 흔들어 놓는 성경본문들이었다면,
      요즘은 요한계시록이나 베드로전후서 같은 본문들이 제 마음을 더 많이 흔들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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