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절망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성경공부도,
정말 열띤 모임이었다.

역시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긴 했지만… -.-;
(말을 다소 공격적으로 하는 내가 말을 많이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쓸데없이 뜨거워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공동체,
공동체적 구원,
구원의 확신,
미래적 구원과 현재적 구원,
penal substitution에 근거한 구원과 다른 견해의 대비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내용은 그런 것이 되었다.)
거룩한 절망,
성화 등등의 이슈를 나누었다.
다들 이 heavy한 문제들을 개인의 영역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다.

그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과 자신의 현재 모습의 괴리로 인한 절망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주신 분이 있었다.
다들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경청했는데,
나는 그 분에게 물었다.
“무엇이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그 거룩하고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하느냐”고.
그분은 답을 하지 않으셨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게 아내가 물었다.
“당신은 거룩한 절망을 해본적이 있느냐”고.
한참의 침묵 속에 내가 할 수 밖에 없는 대답은….
그런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거룩한 절망조차도 하지 못하는 천박함이 내 모습인 것을…

일석이조?

요즈음,
Encounter with God 을 따라서 하는 내 성경본문이 ‘베드로후서’이다.
그런데 역시 매주말 베드로후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어서…
본문이 겹친다!

처음엔,
뭔가 더 깊이 있는 묵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했었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다.

성경공부를 할때의 mode와 QT를 할때의 mode가 다른데,
그 mode 전환이 잘 안되어서 그런 것일까…

참… 많이 생각하게 하는 설교

김동호 목사님은,
내게 참 영향을 많이 준 분이시다.

내가 개인적으로 그분과 다른 생각을 가진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참 여러가지로 존경하는 분이신데…
문득 이분이 예전에 하셨던 이 설교가 기억나서 youtube에서 찾아보니 축약본으로 있었다.

나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하셨던 이분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것 같아…
참 마음이 아프다.

커피

아침에 스타벅스 커피기준으로 Venti size로 한잔 (대충… 한 1000 ml정도는 마시는 것 같다. -.-;)
그리고 나서 점심먹고 나서 tripple espresso 또 한잔,
저녁에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이면 정신 차리기 위해 오후 늦게 또 한잔. (이건 small coffee 수준으로)

아무래도 커피를 요즘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 -.-;
주님보다 커피를 더 의지하고 사는 것 같아…

흐름…

1. 번영신학, 기복신앙, 바알신앙
2. 경건주의, 근본주의, 회심주의
3. 개혁주의 / 캘빈주의, 근본주의, 회심주의
4. 청교도신학, 경건주의, 개혁주의, 회심주의
5. 무교회주의, 청교도신학, 경건주의, 회심주의
6. 무교회주의, 크리스천 아나키즘, 평화주의
7. 평화주의, 새관점(New Perspective)
8. 청교도신학, 경건주의, 회심주의, 평화주의, 새관점, 신정통주의, 개혁주의

무슨 흐름일까요? 알아맞춰 보세요~ ^^

베드로전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토요일 베드로전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것 몇가지를 정리하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1. 흩어진 나그네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그 당시 유대그리스도인들의 상황 (다른 세계관과 신관을 가진 이방 세상으로 흩어지게 되었다는)을 생각해보면서…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그 상황과 대비시켜서 바라보는 것.
그리고, 한국인 디아스포라에 대하여 황간사님이 정리해 주셨던 내용들을 생각하면서… 결국은, 지금 미국내의 그리고 전 세계의 한인 디아스포라의 흩어짐이 그 당시 유대그리스도인들의 흩어짐과 비슷한 것인지 하는 것에 대한 생각. (자민족중심주의적인 고찰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객관적이고 정직한 고찰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2. 여러가지 시험에 대한 이슈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며 사는 백성의 삶은, 필연적으로 고난과 시험을 수반하게 되는데…
지금 내게 있어서 그 고난과 시험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고난과 시험이 아닌 것을 고난과 시험인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와… 고난과 시험인것을 고난과 시험이 아니라고 착각하는 오류 두가지 모두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

3.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
자칫 주변 세상의 흐름을 섞여버릴 수 있었던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구별됨을 강조하는 베드로 사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microscopic한 level에서의 개인적 거룩함과 성숙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향 자체를 세상과는 다르게 사는 macroscopic level에서의 구별됨에 대한 고민.
복음의 사유화가 극으로 치닫다 못해 기독교의 범위를 벗어나기까지한 현대교회 속에서…
복음이 이야기하는 세상과 구별되는 삶(거룩함)을 내 개인적으로 열심히 추구하며 사는 것이 과연 충분한 것인가 하는 고민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은 별개의 이슈이지만.)

4. 공동체
베드로 사도가 고난받는 흩어진 유대그리스도인들에게 ‘합당한 삶’으로 제시한 중요한 덕목인 ‘서로 사랑함’
공동체성이 중요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데…
애나뱁티스트의 전통이라던가… 나찌 치하에서 본회퍼가 추구했던 공동체 들의 특징은,
세상과의 구별이어다는 생각. (배타적이라던가 폐쇄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타락한 세상 –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 의 context에서는 늘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등장하곤 하는데…
과연 이것은 정말 그렇게 organically integrate 되어 있는 개념인것인가.

5. 오염된 복음도 복음인가.
이것에 대해선… 적어도 지금은 말을 많이 아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도무지 내 마음을 진정시키지 않는 그런 이슈이다.

베드로전서 1장이 끝났는데…
제대로 하려면 거의 4-5개월 정도 해야할 분량을 후다닥 끝내고 나니…
진도 못따라가는 학생이 허덕거리는 것 같은 부담감이 화악~ 다가오고 있다. -.-;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벌써 한달정도 지난 일이지만,
HP의 senior executive중 한 사람이 우리가 만든 sample을 가지고 뭔가 show-off를 한 모양이다.

http://www.gadgetell.com/tech/comment/webos-on-a-flexible-display-maybe-says-phil-mckinney/

사실 나도 그 이야기를,
한국에 있는 어떤 사람으로 부터 전해들었다. -.-;

가끔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건가 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서 알게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

Technology review에 최근에 나온 기사가 우리가 하는 일을 가장 최근에 취재해서 쓴 내용인데, 이 기사는 모든 사람들이 공짜로 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하지만 혹시 볼 수 있는 분들을 위해 링크는 아래와 같다.
http://www.technologyreview.com/computing/25561/

흩어진 나그네

지난 주말에 했던,
베드로후서 1장의 전반부의 내용이 계속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흩어진 나그네됨에 대한 여러 생각들.

좀 더 정리가 되면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점차 이 블로그에서도 나눌 수 있겠지만…
5년전 KOSTA 주제가 바로 이 내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KOSTA를 10년이 훨씬 넘게 섬겼던 한 사람으로서,
참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아니,
이런 내용을 그때 좀 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단 말인가.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기

할일이 많아지거나, 바빠지면….
만나는 사람들이 자꾸만 “case”가 되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할일이 많이 쌓여 있어도…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말 진실하게… 그 순간에는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것 같이 그렇게 대하는 마음을 언제쯤 가지게 될까.

바쁜 일정과 시간 속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인정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