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하는가 vs.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성숙한 사람일수록,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보다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간난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생각해보자.
엄마는 간난아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아, 지금 나는 젖먹이는 일을 하고 싶은데 기저귀를 갈고 있다니… 하는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엄마로서의 identity가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에 있지 않고,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가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섬기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보다,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하는 것을 많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내가 만일 아빠로서,
아… 나는 내 아내가 지금 기저귀를 가는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내 아내는 기저귀를 가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고, 게다가 기저귀 갈때 가장 행복해 하는 것 같은데…
라고 하면서 젖먹이고 있는 아내를 안타깝게 바라본다면…
나는 어쩌면 아빠로서, 그리고 간난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남편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밤에 아이가 울면…
아빠가 되었건 엄마가 되었건… 졸린몸을 일으켜 세워 젖병을 찾아 물리고, 기저귀를 봐주고, 토닥거리며 재워야 한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기저귀를 가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거나, 젖을 먹이는 사람으로 세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해, 지금 기저귀를 갈아야 할때인지, 젖병을 물려야 할 때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리고 여러가지 기저귀에 대해서 연구도 하고, 젖꼭지 모양을 유심히 살피는 일들도 해야하지만…
그것은 젖을 잘 먹이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이다.

스스로를
‘사역자’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특히 리더들에게…
요즘… 많이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이겨도 이긴게 아니야

지난주말,
우리 그룹에서 어떤 사람이 내가 하는 어떤 실험에 대하여 아이디어를 내어 놓았다.
그러면서 실제 구체적인 experimental design을 해서 내게 excel file로 보내왔다.
그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분이 많이 상했다.
아니 내 실험인데… 지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어제 아침 process meeting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의 experimental design이 잘못되어 있음을 하나씩 지적하며 그 사람의 논리를 반박했다.
그 meeting이 끝난 이후에도 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의 논리가 부족함을 조목조목 따졌다.
process parameter들을 펼쳐가며… 이미 내가 한 실험 결과를 설명하며… 그 사람의 실험에 대한 제안이 ‘시간낭비’가 됨을 역설했다. 솔직히 나중에 가서는 그 사람이 약간 억지를 부리기도 하였다.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논리가 부족함을 인정했고, 나는 그 토론에서 ‘이겼다.’

그.러.나…

내가 이긴 것은 이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렇게 내가 그 사람과 논리 싸움을 해서 이긴게 어떤 유익이 있는데?
결국은 내 실험에 그 사람이 관여했던 것이 기분나쁜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아니었지 않은가!

지난 달이었던가…
우리 lab director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 논쟁을 벌였던 그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사실 매우 어려운 위치에 있다는 것이 우리가 함께 나눈 말이었다. 그 사람은 말하자면 별로 훌륭한 학문적 훈련을 받지 못했다.
최고의 학벌과 실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잡는데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 우리 lab director가 함께 동의했었는데…

불과 몇주가 못되어,
나는 그 사람을 자근자근 짓누르고자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의 방법(The way of Jesus)이 아니야…
이겨도 이긴게 아니야…

회사일을 하면서…

Business deal을 위한 meeting을 할 때,
특히 한국의 culture에서는 소위 ‘기선제압’을 하는 것이 중요한 듯 하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많이 보긴 하지만…)

많은 경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자신의 경력이 얼마나 좋은가,
업적이 어떤가 등등을 이야기해서 기선을 제압하거나…

목소리를 높이거나 다짜고짜 상대의 아이디어를 깔아 뭉게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거나…

하다못해
교묘하게 대화 상대보다 상석에 앉는다던지,
아주 바쁜척 하면서 지금 임하는 business meeting이 자신에게는 덜 중요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던가 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럴때,
어떻게 반응을 하면 좋을까?

적어도 내가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렇게 하는 일을 통해서 나와 내 회사 뿐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함께 유익을 얻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회사 관련된 협상이나 meeting을 할때에도…
그런 우리의 spirit을 나눌 수는 없을까?

그렇게 미리부터 우리 기선제압하려 할 필요 없다고…
우리는 당신을 take advantage 하려는 것이 아니고, 당신과 함께 잘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고…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기

최근 회사에서,
여러 사람의 일을 좀 도와주고 있다.

그중 하나가, process를 해서 defect analysis를 하는 것인데…
비교적 새로 들어온 사람 한 사람이 defect analysis를 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다른 사람의 credit을 빼앗아오지 말자…
내가 하는 일로 다른 사람이 benefit을 얻도록 하자… 는 등의 원칙을 지키려고 가능하면 노력하고 있는데,

최근 이 사람이…
마치 나를 자기 전속 technician인양 대하는 것을 몇번 접했다.

이런 것을 좀 해달라고 sample을 틱 던져주기도 하고…
이만하면 되었으려니… 하고 열심해 해서 주니까 더 요구해오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 이야기하면서는 자신의 일인 것으로 present 하곤 하고.

우씨…
그런 생각이 들다가…

그러면 어떤가.
그 사람이 나를 정말로… 막 부릴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떤까.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을 부려먹는 것을 원한단 말인가.

다른 이들을 exploit 하지 않겠다고…
복음적 삶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다른이들의 종이 되고 밥이 되고… 다른 이들에 의해서 이용당하는 한이 있어도 그것을 보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께 의탁하고…
그런 것이라고 몇번씩 곱씹고 다른 곳에서 메시지도 하고 글도 쓰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
나는 이 작은 해프닝 하나에도 이렇게 쉽게 내 안의 평안을 빼앗기다니.

함께 일하는 그 사람은,
그저 말하는 스타일이 그렇수도 있고,
당연히 내가 해주던 일이었느니 더 부탁하는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순전히 내가 그 순간 잠깐 다른 일로 기분이 나빠있었는데 그 사람이 약간 급하게 이야기하느라 퉁명스럽게 이야기한 것을 내가 과장해서 기분나쁘게 들었을 수도 있다.

내가 해야하는 일은…
그런 상황 속에서 나를 높이려는 이 추잡한 내 사고방식을 가슴아프게 여기고…
어떠한 상황에도 다른 이들을 exploit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다시 되새기고…
부지불식간에 내가 다른 이들에게 막대한 것은 없는지 반성하는 일이 아닐까.

지난 주일 설교를 들으며,
counter-cultural Christian way의 중요한 핵심이… 나를 드러내고 높이려는, 출세하고 더 많이 올라가려는 세상의 가치에 대항하는 것이라고 다시 되새겼었는데…
빌립보서 2장을 다시 묵상해본다.

과한 친절

어제 밤이었다.

이메일이 하나 왔다. credit card 회사에서 온 이메일인데 내 최근 transaction중 suspicious한 것이 있다고 credit card 회사로 전화를 걸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credit card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그 이메일에서 준 전화번호는 뭔가 찜찜해서, credit card 뒷면에 써있는 전화번호로 걸었다.)
그랬더니 service representative가 정말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가 많이 바쁠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서 전화를 해줘서 고맙다…
잠시만 기다려달라… 오래 기다리게해서 미안하다. (사실 오래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이 모든 것이 사실, 내 credit card fraud를 막기 위한 것이므로, 나를 위한 것임에도 그 사람은 마치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전화를 한 것인양 그렇게 전화를 받았다.
강한 인도 억양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service department 자체가 모두 인도에 있고, 그 사람도 인도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 전화를 끊고 나서 허…참… 그 사람 정말 엄청 친절하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작년 휘튼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50대 정도 되어보이는 어떤 아주머니이신데,
등록을 한참 하고 있던 첫날 오후, 다짜고짜 내게 다가와서 몹시 불쾌하다며 따지셨었다.
아니 코스타라고 소문듣고 와서 봤더니 이렇게 어디가 등록처라는 안내도 잘 안되어있고, 와서 보니 어디 학생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이렇게 앉아서 일처리를 하고 있고…
이렇게 엉터리가 어디 있냐고. 첫날부터 몹시 실망이라고.
나는,
그냥…. 아 불편하게 되어서 정말 죄송하다고…
최선을 다하는데 코스타는 원래 모든 사람이 다 자원봉사로 운영되기 때문에 엉성한 부분이 많다고…  학생 같아 보이는 저 사람들이 실제 다 학생들이라고…
하지만 기대를 가지고 오셨는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원봉사자의 한사람으로서 정말 죄송하다고…
몇번이고 고개를 굽신거리며 해명을 했었다.
그분은 내게 한참 언성을 높이시다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셨는지 씩씩 거리며 숙소쪽으로 가셨다.
나는 집회 기간중 계속 그분의 표정을 유심히 보았다.
정말 계속 그렇게 불만이 가득하신지…
계속 기대를 가지고온 코스타에서 실망을 보고 계신 것인지.
혹시 코스타는 이렇게 엉성한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헌신해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조금 알아차리게 되셨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고 계신지.
그분이 집회 장소에서 감격에 젖어 기도하던 모습들…
같은 조로 보이는 비슷한 또래의 어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밝은 모습들.. 로 미루어 보아,
첫날의 불편함과 불만이… 곧..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바뀌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코스타는 돈을 내고 service를 구입하는 commercial transaction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임을 하루 이틀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이런 맛에 코스타 섬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베푸는 억울한 친절… 과한 친절로 인해 다른이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바로 그 맛!

사람을 세우는 것

사람을 세우고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일만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 또 있을까.
사람은… 참 잘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틀을 깨고 그 이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정말 사람의 힘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사람을 세우고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이외에 다른 무엇에서 소망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리 그 일이 나를 지치게 하더라도… 결코 그것을 포기할 수 없다.
그것 이외에,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게하는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른을 섬기는 일

가끔은, 나보다 나이많은 ‘어른’을 내가 섬겨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어른이 물론 존경받을만 하거나, 나를 잘 이끌고 인도해줄 수 있는 경우라면 내가 기꺼이 그 관계를 누리며 지낼 수 있으나…
그 어른을 내가 ‘이끌어야’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어른을 이끌어야 하는 경우에도 크게 두가지의 경우가 있다.
첫번째는 그 어른이 나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있을 경우. 이럴 경우에는 내가 그분을 존중하고 겸손하게 섬기면서 무례하지 않게, 그러나 때로는 단호하면서도 직설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두번째 더 어려운 경우에는 그 어른이 나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없거나, 자신이 나이가 많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혹은 나이어린 사람으로로부터 인도함을 받는 것을 ‘위협’으로 느끼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엔 참 여러가지로 힘들다.

많지는 않지만 내가 이런 두번째 경우에 빠졌을 경우에는, 나는 그냥 손을 들어버렸던 것 같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며 포기했다.

최근,
내가 존경하는 어느 선배님이 이런 상황에서 어른을 겸손히 섬기면서, 지혜롭게 대화를 하면서, 결국은 그 어른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어른에 대한 존경/존중과, 지키려는 진리에 대한 확신, 그것을 겸손하게 present 하는 자세,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모습, 그리고 결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고 매달리고 품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자세…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열정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도,
테그닉으로 이루어 지는 것도,
연륜으로만 만들어 지는 것도,
지식으로 세워지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를 부끄럽게 한 만남

내게 처음 성경공부 인도를 해보라고 격려해 주었던 형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제한된 어떤 나라에서 선교사로 살고 있다.

그 형이 지난 몇개월간 LA에 안식년으로 나와 있었는데,
다시 선교지로 복귀하기 전에 그 형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복음이 제한되어 있는데다,
관계 당국이 도청등을 할 위험이 늘 있어서,
전화도 조심해서 하고,
internet으로 기독교 계열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 조차 screen 당할 위험이 있어 자제해야 하는 환경에서 사역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교보고편지에 조차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하고… 암호로 되어 있는 이름을 사용하고,
보안을 위해 자신의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등도 다른 이들에게 별로 알리지 못하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 형이 내 이메일 주소를 찾기 위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지금 이 블로그를 비롯해서 관련 자료들이 많이 나오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야… 네가 뭐낙 유명해서…’ 하면서 그 형이 웃었다.
나도 그저 겸연쩍게 웃고 말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형은 그렇게 섬기면서 자신의 모든 것들을 감추면서 살고 있고,
나는 여기 저기 내 이름이 떠 돌아다니게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대비가 되었다.

정말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