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T. Wright의 유머

Tom Wright이, 언젠가는 job interview를 하게 되었다.
그 사람의 연구내용을 살펴보더니, interviewer가 이렇게 물었다.

“왜 당신은 공관복음만을 연구합니까? 왜 요한복음에 대한 연구를 없습니까?”
(Historical Jesus의 perspective에서 연구를 했으니 요한복음을 전략적으로 빠뜨리고 연구한것은 어떤 의미에서 너무나도 당연할텐데 말이다.)

Tom Wright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요한복음에 대해 느끼는 바와, 내 아내에 대해 느끼는 바가 같습니다; 나는 내 아내를 무척 사랑합니다만, 그녀를 다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it’s still true, that I feel about John like I feel about my wife; I love her very much, but I wouldn’t claim to understand her.”)

9 thoughts on “N. T. Wright의 유머

  1. mnrji님의 말에 저도 위안이 되네요… 왜 유머가 되는지 의아했는데…
    그래도 그런 말을 진지하게 하고 있을 wright는 웬지 상상이 잘 갑니다 ㅋ

  2. 이건 Tom Wright가 실제로 이 episode를 이야기하는 걸 들어봐야 더 잘 이해가 되려나요.
    하여간 전 이거 들으면서 정말 배꼽을 잡고 웃었었는데… ^^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대해 뭔가 ‘걸고 넘어지는’ 사람들에 대해, 그 사람에 대해 직접 반격하지 않으면서도 말싸움 같이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아주 brilliant한 화술이기도 하고요.)

  3. 웃은 오승이가 이상한거 아니야? ㅋㅋ

    음.. 이건 다른 주제인데.. 오승이 의견을 듣고 싶다…
    최근 서울에서 교인들이 봉은사에서 ‘땅밟기’를 했다는데….
    너의 생각은 ? ((구약과 신약의 관점에서 나는 다른 답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요즘 혼탁해 졌나봐 -.-; ))

    • 내가 생각하기엔,
      어쩌면 초대교회 이후, 기독교회는 역사상 최초로 ‘다원주의 사회’를 맞이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
      교회가 정말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교회로 서는 일이 어떤것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거지.

      그래서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교회/그리스도인의 자세와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찰해보려면,
      콘스탄틴 대제 이전의 초대교회가 어떻게 그 다원주의 사회를 대했는지 하는 것을 보는게 중요할 것 같은데…

      그 자세는 결코 공격적이거나 전투적이거나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passive하고, 당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포용하며 섬기고, 종이 되고, 핍박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그런 것이었지.

      그리고 또 사도바울의 아테네 전도의 행적을 가만히 보면, 매우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고 보일만큼 audience의 pluralism을 acknowledge 하는 것을 볼 수 있지. 그렇다고 본질을 희석하거나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하여간,
      뭐 결론부터 말하면,
      봉은사 땅 밟기는…
      매우 잘못한 것이라는게 내 생각이야.

      복음의 본질은, 온 세상을 바꾸는 능력인데,
      그 변화의 능력은 전투적 공격을 통해서가 아니라,
      낮아지는 섬김과 겸손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어.

      그나저나… 넌 잘 지내냐? ^^

  4. 음 역시 오승이 이야기 하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다…..

    나…. Back to Industry 한다… 두산 전략실로 -.-
    지금보단 나아지겠지 work-and-life balance 측면에선

  5. 나도 미국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ㅋㅋ 근데 오히려 중국이나 중동쪽 출장기회가 많을 것 같다…. 중동이라…. 희진인 가족들 보내준다면 같이 가고 싶다네..ㅋㅋ

  6. 그래서 목수의 졸개님은 초대교회가 다원주의를 어떻게 대처했다고 보시는지요?

    • 결국은….
      그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진리를 드러내는데 신실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그들이 해야하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한 것이지요.

      최근,
      아브라함의 일생을 공부하면서,
      아브라함이 살았던 ‘다원주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하였던가 하는 관점에서 창세기를 공부해보았었는데,
      정말 impressive 했었습니다.

      성경에는,
      의외로(?)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것에 대한 힌트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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