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적 세계관 (6)

“종교를 민중의 아편” 이라는 말은,

기독교에 대해 대단히 모욕적이다.

자끄엘루가 이야기했던 것 같이,

기독교는 세상을 뒤집는 가치이다. 

그 기독교가 민중의 아편으로 전락해 버린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또 한편,

이 땅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악, 죄의 속박 아래에서 대단히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

개인적인 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구조화 되어 있는 사회적인 죄악, 어그러진 피조세계의 질서, 악한 이들의 악한 행동으로부터 나오는 폭압 등을 다 이야기하는 것이다.

심각한 depression, 각종 사회적 injustice, 질병, 마음의 상처, 생계의 압박, 인간 관계의 어려움, 경제적 어려움, 억울한 사고, 깨어지는 가정/관계, 범죄, 자연재해….

실제로 이런 거대한 문제들을,

거대담론의 차원에서 다루고 그것을 풀어나가고자 노력하는 일은 대단히 소중하고,

어떤 이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부르심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부르심은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그런 많은 악의 문제, 고통의 문제 등을 다루어 내면서,

그저 그 속에서 견디어 내고,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지켜내는 것으로 부름받았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는,

‘초월성’ 이다.

초월적인 하나님을 경험하기에 세상을 trivialize해내는 초월성 말이다.

사회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악의 문제가 더 크면 클수록,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요구는 더 커지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모든 삶을 던져, 신앙적 양심으로 그것을 해결하고자 투신하게 되지만,

또 깊은 초월성을 추구하면서 상황을 극복해가는 요구 역시 더 커지게 되는 것 같다.

악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해내려는 시도는 매우 소중하고, 그것인 대단히 복음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특별히 그럴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초월성을 통해 주님과 동행하도록 하는 것 역시 대단히 복음적이라고 생각한다.

복음은,

일차적으로 약자의 복음 (Godspel of the poor)이고,

이차적으로 약자를 위한 복음 (Gospel for the poor)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초월성을 추구하는 요소가 있고,

이차적으로는 악의 문제에 대항하는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약자에게…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저 보통 사람들, 약자들에게…

복음은 세상이 제공해 줄 수 없는 ‘초월성’을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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