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그 고난 속에서의 ‘소망’에 대해 거대담론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현재의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지로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이다.
그 왜곡 때문에 인간을 비롯한 전 피조세계는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왜곡과 고통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그 피조세계를 회복/구원시키신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이땅에 보내셨고, 예수의 선포와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제는 회복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지금 비록 고통과 왜곡 속에 살지만, 그것은 이제 회복의 역사 속에서 해결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주어졌다.
음…
그런데,
이거 좋은데…
깨어진 세계, 그 속에서 회복에의 소망…
그렇다면, 현재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냥 이 피조세계의 회복이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에…
그냥 이 고통/왜곡을 견디어내며 살도록 던져진 것인가?
…
흔히 타락을 회복시키시는 것으로만 복음을 설명할때의 missing link는 ‘현재’이다.
과거(타락)과 미래(회복)은 설명을 해 주는데,
현재가 어중간하게 잘 설명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복음이 이야기하는 ‘현재’에 대한 스토리는 이것이다.
임마누엘. God with us.
하나님께서 그 고통속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동행, 그 안에서 그 백성 다운 모습으로 만들어짐,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남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표현이 이럴땐 더 좋은 것 같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 눈물 속에 함께 하고 계신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