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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ergence

개미는,

한마리 한마리를 두고 보면 그야말로 매우 ‘멍청’하지만,

개미가 떼를 이루어 사는 개미의 집단을 보면 매우 놀라운 일을 해낸다.

놀라운 건축물을 만들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질서있는 전투를 하고, 번식을 해 내가고, social order도 만들어 낸다. 

인간의 뇌를 보면,

뉴론이라고 불리우는 unit으로 되어 있다.

각각의 뉴론은 일종의 전기 신호를 주고 받으면서 머리 속에서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내는데,

각각의 뉴론 하나 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그야말로 전류 signal을 매개하는 작은 unit일 뿐인데, 

이 ‘멍청한’ 뉴론들이 모여서, 인간의 Brain을 만든다. 그리고 인간의 Brian  매우 복잡하고 위대한 생각을 해 낼 수 있다.

인간사회에도 이것은 적용될 수 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주, 인간 개인보다 함께 만들어내는 인간의 사회/집단은 개인보다 더 현명하다.

또 재미있는 것은,

어떤 한 개인에게 소 100마리의 무게를 추측해봐라 라고 하면 대단히 늘쭉날쭉이라도 한다.

그런데, 100명쯤 되는 사람에게 소 100마리의 무게를 추측해모라고 한 후, 그 추측값의 평균을 구하면, 실제 값과 대단히 비슷하게 나온다고 한다.

이와 같이 능력이 없는 작은 unit이 많이 모여서,

매우 능력있는 큰 unit (집단, 모임)을 만들어 내는 것을 Emergence라고 한다.

나는 일반적으로,

일반은총 속에 나타난 법칙 같은 것을 무리하게 ‘영적 원리’로 삼아 여기 저기 apply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Emergence 라고 불리우는 이런 현상은,

혹시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관련해서 어떤 것을 시사해주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요즘 많이 하고 있다.

살아있네! – 하나님을 신뢰하기

내가 대단히 오래 산 사람도 아니고,

또 내가 하나님을 잘 신뢰하면서 한평생 살아온 뭐 그런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 내 삶을 돌이켜보며 다른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는 그런 사람은 더더욱 아니지만…

내가 주님과 동행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살아 있었’던 때는,

주님을 깊이 신뢰했을 때였던 것 같다.

내가 뭐 대단한 security를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그나마 그 security보다도 주님을 더 신뢰했을때,

내가 뭐 대단한 명예를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그나마 그 명예보다도 주님을 더 추구했을때,

내가 뭐 대단한 성공을 거둔 적은 없었지만, 그나마 그 성공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했을때…

그리고,

때로는 매우 의도적으로 security, 명예, 성공등을 포기하는 결정을 했을때,

‘살아있구나’ 하는 것을 경험했던 것 같다.

주말에 쉬면서,

‘런닝맨’을 보다가 잠깐 든 생각. ^^

Matrix애서 Agent Smith가 생각나는 사진

대구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자 사진이라는데…

Matrix에서 Agent Smith가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걸 보고,

같은 병원에서 성형을 했네… 뭐 그러는데,

나는 잘 모르지만 혹시 화장을 똑같이 해도 그렇게 되지는 않나? ^^

그리고,

나는 이걸 보고…

사람들이 성형을 많이 한다는게 가슴이 아프기 보다는,

‘개성없는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추구한다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

결국은 이런 대회 출전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꾸미기 (and/or 고치기?) 마련인데…

나는 그런 의미에서,

성형하는 사람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기준을 획일적으로 삼고 있는 흐름을 보며 안타까워해야하지 않을까 뭐 그런생각을 해 보았다.

자신을 Over-estimate 하기

예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었다.


예전엔,

사자가 되고 싶어하는 고양이 후배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쓴 글이었는데,


요즘은,

왜 내 선배들은 내게 ‘저는 사자가 아니야’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이 들기도 한다.


=====


어쩌다가,
고양이 새끼 한마리가 사자와 친구가 되었다.

사자의 용맹스러운 모습에 고양이는 매료되었고, 금새 그 사자와 같이 되고 싶어했다.
사자는 친절하게 그 고양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주었다.

사자와 함께 하면서 고양이는, 늘 사자가 사냥해오는 짐승의 고기 살점을 조금씩 뜯어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양이는 자신이 사자가 아닌 고양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다.
사자가 물어온 짐승의 고기를, 잔뜩 폼을 잡고 물어 뜯으며 마치 자신이 그 사냥을 한 것같이 행동했다.

사자가 사냥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마치 그렇게 사냥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
사자에게, 자주.. 함께 힘을 합쳐 사냥 계획을 짜자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사냥에 관한한, 고양이는 그저 고양이었다. 겨우 다람쥐 정도를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고양이는 자신이 사자인양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나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자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사자는 일찍, 고양이에게… “너는 사자가 아니야”라고 일러주었어야 했다.

리더쉽은 때로,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자신과 같이 되지 말도록 권유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도의 흐름이 끊기고… (3)

내가 downcast 되어 있을때,

‘너는 그러니까 그모양이야’ 는 식으로 이야기해주지 않고,

흔들리는 나로부터 시선을 돌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예전엔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기도의 흐름이 끊기더라도, 그로인해 급격히 ‘영적침체’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섬긴다’ 혹은… 내가 ‘도와준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키워주고 있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결국 내 영혼을 support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단절된 것이 아닌가…

내가 기도하지 않은 것을, 

그저 주변에 사람 없음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비겁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기도가 외롭게 느껴지는 것과… 기도의 흐름이 끊겼을때 내 영혼이 메마르는 것이 함께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도의 흐름이 끊기고… (2)

한편으론,

기도가 내 영혼을 살아있도록 지켜준다는 일종의 confirmation이 되었다고 볼수도 있다.

그러니까 기도를 열심히 해야지…

뭐 그렇게 결심하고나면 마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더라도,

어떤 때에는 그렇게 치열한 기도 없이도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경험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럴때,

‘아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기도를 해야지’ 라는 식으로 결심을 하고 나면…

그럼 이런 과정에서 ‘은혜’는 어디에 있는가?

결국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때,

하나님께서 견인하시는 것이 은혜의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영혼이 메말라서, 기도할 기운마저 차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촉촉한 은혜의 단비가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아직도 나 같이 그래도 힘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그러니까 기도하자’라고 결심하는 것이 valid 한 것일 것 같다.

그러지만… 그럴 기운 조차 없는 사람들은 어쩌지?

기도의 흐름이 끊기고… (1)

그래도 새해들어서 꽤 기도의 흐름을 잘 지켜오고 있었다.

출장가기 며칠전부터 약간 좀 흔들리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출장가서,

그 기도의 흐름이 완전히 끊겼다 -.-;

물론 뭐,

많이 바빴고, 시간이 부족했고… 등등의 핑계를 댈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다 핑계다.

지난 두주 정도 기도가 끊기면서 내게 일어난 변화들을 보면,

1. 많이 restless 해졌다.

안절부절하다고 해야할까. 약간 급한일만 생겨도 마음이 바빠지고… 불안해지고.

2. 너그러움이 사라졌다.

내게 조금만 실수하는 사람들을 향해 분노의 마음이 쉽게 생겼다. 그리고 그것이 잘 풀어지질 않았다.

3. 하나님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특히 더 주관적인 것이어서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야말로 하나님이 친밀하게 느껴지는 것이 훨씬 약화되었다.

4. Judgmental 해졌다.

은혜에 대한 감각이 삶에서 사라지면서, 금방 judgmental한 모습이 고개를 들었다.

음…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기도가 끊기니 내 영혼의 생기가 없어진 것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는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보면… 

스승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다면…

어느분이 쓰신 글에 이런 것이 있었다.

두루 구했는데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 찾지 않았으니 만나지 못한 것다에 한표

– 찾고 찾으면 언젠가 만날거다에 한표

– 그렇게 찾고 찾아도 만나지 못하면 그대가 스승이 되리라에 몰표!

음…

그런데,

솔직히 내가 이걸 좀 modify하자면 이렇게 될 것 같다.

두루 구했는데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 찾지 않았으니 만나지 못한 것다에 한표

– 찾고 찾으면 언젠가 만날거다에 한표

– 그렇게 찾고 찾아도 만나지 못하면 그대가 스승이 되리라에 한표,

– 그렇지만, 훨씬 더 많은 경우는, 스승을 이미 만났지만 그대가 교만하여 그를 스승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에 몰표!

사실 이제 40대 중반이 되어 있는 나로서는,

내 교만함으로 인해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여태껏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두려울때가 요즘은 꽤 있다.

You May Leave Boston, but Boston Never Leaves You

보스턴에서 일어난 폭발물 테러 사건을 접하면서,

정말 마치 고향에서 일이 벌어진것과 같이 마음이 아팠다.

보스턴에서,

Patriots day면… 

긴 겨울이 끝나고 막 봄이 오는 시기,

학교가 다 쉬고,

오전 Red Sox 경기, 보스턴 마라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기사를 누가 share했기에,

나도 여기에 share 한다.

(아마 내 아내나 민우에게 보스턴은 더 특별한 곳일텐데..)

You May Leave Boston, but Boston Never Leaves You

http://www.theatlantic.com/national/archive/2013/04/you-may-leave-boston-but-boston-never-leaves-you/275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