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자유

Grace + anything else = Not Grace

지난주 설교시간에 들은 말이다.

요즘 복잡하게 하고 있는 생각 가운데 몇가지.

– ‘자유’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자유는, ‘죄악으로 어그러진 자아’로부터의 자유이다.

(혹은 자신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할 수 있을 수도)

– 자유를 가져다주는 일차적 핵심 개념은, 사랑, 승리, 심판 등등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은혜’ 이다.

– psdudo-freedom이 세상에는, 그리고 기독교 써클 내에도 무척이나 많은데, 진정한 자유가 되지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에 ‘은혜’라는 개념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 은혜는, intuitive 하지 못한 개념이다. 논리적이거나 상식적이지 않다. 오히려 대단히 직관적이고 일방적이다. 은혜를 논리화하려는 순간, 은혜는 그 본질을 잃어버린다.

함께 꾸었던 꿈

밴쿠버 학회에 가서,
15년만인가… 20년만인가…

참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후배를 만났다.

 

나와는 한살차이니까,
뭐 이제 이 나이에 선후배라기 보다는 그냥 친구이자 동지인데,
고등학교, 대학, 대학원을 함께 다니고, 교회를 함께 다녔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을 비롯해서 모든 일정이 꽉 잡혀 있어서,
이 친구와 이야기할 여유를 제대로 갖기 어려웠는데,
다행히도 하루 아침식사 시간을 함께 맞추어 그나마 한시간 남짓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함께 많이 웃고, 울고, 땀흘리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꿈꾸며 섬겼던 친구인데…

우리가 20대에 함께 꾸었던 꿈, 복음, 하나님 나라, 직장생활, 중년, 교회, 궁극적 소망, 은혜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정신 없이 나누었다. 아침에 맥도날드 breakfast를 먹으며 그래도 이렇게 이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나저나,
이 친구와 나는, 스타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참 다른 점이 많은데,
이렇게 사진을 함께 찍고 보니, 뭔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 떨어져서 20년을 보냈어도, 같은 소망을 함께 품고 있어,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게 된걸까. ㅎㅎ

마누라 자랑 ^^

요즘,
아내가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다.
자기 블로그에 올려가며 조금씩 update을 하고 있는데,

이게.. 도대체 어디까지가 fact이고 어디가 소설인지 매우 애매한 형식으로 써나가고 있다.

음…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게 소설이야, 다큐멘터리야, 수필이야, 그렇지 않으면 자서전이야…?
뭐 그런 생각이 마구 들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사람들이 좀 있을 것 같아…
어제에 이어 또 다시 한번 자랑질을… ㅎㅎ

http://mnrji.tistory.com

(당분간 자랑 안하렵니다. 이틀연속 자랑을 했더니만, 제 자랑 battery 용량이 다 소모되었습니다. ㅋㅋ)

딸 자랑… ^^

민우가 졸업을 했다.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졸업식장에 허겁지겁 도착해서는, 뭐 중학교 졸업인데… 뭐 대단한 거라고… 하는 생각으로 식장에 들어갔다.


무심코 졸업식 순서가 나와있는 순서지를 보는데…

허걱…. 

민우가 Valedictorian에다가 Principal’s list에 올라 있었다! 

GPA 4.0 만점에 4.0

아니,

왜 얘는 이런 얘기를 우리들에게 하지도 않았던 거지?

깜짝 놀라면서도 참 기분이 좋았다.

민우가 나중에 설명해 주기로는, 자기도 잘 몰랐단다. -.-;

이 학교 특이하다. 졸업식 직전까지 valedictorian에게 그걸 알려주지 않다니.

그런데, 또 민우가 이야기하기로,

만일 미리 알았더라도 아빠 엄마에게 미리 얘기하지 않았을 거란다. ^^

이렇게 자랑하기 좋아하는, shallow한 아빠와는 달리, ^^

너무 쉽게 떠벌이고 자랑하지 않는 듯한 아이의 모습이 참 대견하고 기특했다.

내 의도가 의심 받을때

나는 내 의도가 의심받는 것을 참 잘 참지 못한다.

내 의도가 잘 이해되지 못해 의심을 받으면, 그것을 차분이 설명해주거나 하면 좋을 때에도,

버럭 화를 내거나 이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내 아내가 이건 잘 안다. ^^)

시간이 지나면서,

내 의도가 의심받거나 오해받는 일들을 좀 더 견딜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아직도 나는 참 이게 힘들다.

도대체 왜 그런걸까?

무슨 생각의 흐름으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아버지, 어머니 생각에…

지난 토요일,

Mother’s day를 맞이하여,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갈비집’ 이라는데에 외식을 갔다. ^^

갈비를 구워먹고 게장 먹고, 디저트 사먹고, 참 좋은 시간이었는데…

나는 갈비 고기를 열심히 민우에게 넘겨주며 먹게 하고 싶었다.

민우가 배부르다고 할때까지 고기 먹는것도 자제해가며…

뼈에 붙은 것만 뜯어가며…

그리고 밥이랑 국 함께 나온거 먹어가며…

내가 어릴때, 

우리 가족의 ‘유일한’ 외식 장소는 갈비집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는 외식을 했다하면 갈비집을 갔다.

가면 늘 아버지 어머니는, 

갈비를 별로 드시지도 않고,

뼈에 붙은 질긴 고기만 좀 드시고, 된장국에 밥만 드시고는… 

우리 삼남매 많이 먹는것을 보는 것을 좋아하셨다.

외식을 하면서,

예전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서 민우 나이였던 나와 내 동생들에게 하셨던 모습이 생각났고,

이제는 내가 우리 부모님과 같이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참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보고싶어졌다.

사람이 우상된 교회 (7)

뭐 대단히 거창하게 지난주에 글을 시작했는데,

막상 써놓고 나니 꽤 아직 생각이 빈약하다.

그럼에도 3번 정도 쓰겠다고 한걸 6회에 나누어서 쓰게 되었네. -.-;

그렇지만,

최근 몇달동안,

나는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깊이 회개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전에…

내가 ‘독성이 있는 사람’ 같다는 식의 표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사람을 우상만드는 내 성향과 행동이 그 ‘독성’의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였음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우상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

또 다른 누구를 우상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

여전히,  많이 내 안에서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제는 그 결판이 조금씩 나고 있지 않나 싶다…

사람이 우상된 교회 (6)

몇가지 사례들

1.

K 집회를 하다보면,

유명한 설교가들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아이돌’ 가수를 향해 열광하는 사람들과 같아 보일때가 있다.

신앙과 인생의 선배로서 그분의 삶과 신앙과 인격을 바라보며 존경을 표하기 보다는,

유명 연예인과 인증샷 찍는 것과 같은 상기된 얼굴로 사진 찍고, facebook에 올리고…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그 유명한 아이돌 설교자들과 사진을 찍었다는 것에 묘한 영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까지도 심심치않게 보게 된다.

2.

유명한, 존경을 많이 받는 A선배와 오래동안 성경공부를 배웠던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중,

A 선배의 생각에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점들을 풀어놓았다.

그러자 그 친구는, 버럭 화를 내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핏대를 올렸다.

나도 그 A선배를 존경하지만, 그 선배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말했을 뿐인데, 그 친구는 그 A 선배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3.

B 목사님의 연락처가 알고 싶어서, 어느 후배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만… 엄청 오바를 해가며…

B 목사님의 연락처는 이러이러하고, 지금쯤 어디 계실 거고, 연락이 안되면 자신에게 다시 이야기를 하면 연락이 닿도록 해보겠다고… 

B 목사님의 ‘일정’을 꿰고 있다는 것이, 마치 어떤 영적 계급의 상징이라도 되는냥 행세하는 모습을 보았다.

B 목사님은 나도 존경하는 분이고, 존경받을 만한 분이긴 하지만… 그분의 연락처를 아는게 뭐 그렇게 유세를 부릴 일일까.

사람이 우상된 교회 (5)

사람은, 기본적으로 신뢰의 근거로 삼을만한 존재가 아니다.

(신뢰의 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의미가 아니다. 죄로 인해 어그러진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우상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 우상은 언젠가는 실망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유명한 목회자, 설교가, 저술가의 facebook, blog 등등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며 무서워질때가 있다.

아… 

이렇게 사람을 높여 놓으면….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자리가 없어지는데…

혹시라도 이 사람이 무너지고 실패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무너지게 될까.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퍼맨을 만들어 넣고,

그 수펴맨이 제대로 못하면 그 수퍼맨을 비난하는 악한(그리고 연약한) 대중.

그리고 그 악한 대중의 그 flattering에 취해서 기뻐하는 영적 지도자들.

대단히 위험한 구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