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이 나는 것과 짜증을 내는 것

살다보면 짜증나는 일들이 없을 수 없다.

뭐 하루에도 몇번씩 그런 일들이 있다.

특히 나처럼 ‘까다로운’ 종류의 사람은 별의별일에 다 짜증이 난다.

나는 그렇게 쉽게 짜증을 느끼는 내가 참 불만족스럽다.

예수님을 믿으면 좀 뭐가 나아져야하는거 아닌가.

뭐 솔직히 말하면… 사실 많이 나아진게 이 모양이긴 하다.

내가 대학교 1,2학년때의 내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많이 사람된거다.

그런데,

짜증을 느끼는것과 짜증을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짜증을 내는 것은, 자신이 짜증스럽게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왜 짜증을 내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짜증을 내는 행동은, 대단히 자기 중심적인 것이다.

나의 감정 표현이, 나를 둘러싼 다른 이들의 감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직접적인 선언인 셈이기 때문이다.

남들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내 감정을 일단 쏟아붓고 표현해야겠다는…

나는 짜증을 잘 내는 사람일까?

음…. 아주 그런 사람인 것 같지는 않은데, 사실 예전에는 아주 짜증을 잘 내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짜증을 내는 행동을 하거나 기분나쁜 것을 숨기는 일을 잘 못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짜증이라는 형태로 표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짜증을 내는 행동을 보는 것을 참 잘 참지 못하는 것 같다.

누구든 주변에서 짜증을 내면, 나는 그 모습에 심하게 upset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이유 때문이다.

“어쭈… 이거 봐라…. 아니, 그래서… 너는 네 감정 표현을 위해서 내 감정이 상하는 것도 괜찮다 그거냐?”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서, 대단히 당황하고, 마음 속으로는 많이 upset하고, 그리고는 아주 격렬하게 그것에 대항하던가 아니면 그것을 완전히 피해버리곤 한다.

(누구든 내게 한번 시험해보라. 내게 짜증을 내면, 나는 쟤가 왜 저러나 싶게 화를 내거나, 아니면 확 말이 없어지고 당신을 피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조금 더 내 생각의 흐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아니 나는 뭐 짜증 낼줄 몰라서 이러는 줄 알아? 나도 짜증 내고 싶은데, 말 막하고 씩씩거리고 싶은데, 정말 이를 악물고 참고 있는 거야. 너는 뭐가 잘났다고 내가 이렇게 힘들게 참고있는걸 맘대로 터뜨리는건데?”

결국,

내가 짜증 내는 것 보는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짜증이 많은 사람이고, 내가 그 짜증을 아주 힘들게 억누르면서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하고 싶은 것을 참고,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과 같은 훈련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야하는 것을 하고 싶게 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하고싶지 않게 되는 근원적 변화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겉보기의 행동이 더 상냥해지는 것과 같은 superficial한 transformation이 아니라,

사람의 근원 자체가 변하는 일들이, 복음이 내게 있기 때문에 일어나게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견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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