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사로잡히기 (6)

미숙함은 왜곡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성숙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할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숙함을 정죄할수는 없다. 미숙함을 지적하고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도록 권면하고 도와줄수는 있으나 미숙함을 정죄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사람의 교만의 문제일 수 있다.

기복주의적 희망이나 인본주의적 희망은 모두 추구할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미숙함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그렇게 정죄하지 말아야할지도 모른다.

나는 ‘옳은’ 신학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진리’를 이야기하지만 ‘사랑’이 없기 때문에,
때로 그 ‘옳은’ 기준을 가지고 미숙함을 사랑없이 정죄하는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렇게 미숙한 사람이 나이가 많은, 오래 교회를 다닌 어른일수도 있다.
때로는 미숙한 어떤 ‘시대’가 있을 수도 있다.
때로는 특별히 어떤 생각이나 가치의 흐름의 어떤 부분이 유난히도 미숙한 어떤 그룹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미숙함은 물론 벗어나야할 모습이지만,
그 미숙함을 지나치게 정죄하면,
그 미숙한 사람은 ‘진리’에 대해서 적개심을 갖게 되거나, 아니면 아예 모든 의지를 잃어버린채 무기력해져버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으로 미숙함을 견뎌주고, 그 미숙함에 머물러 있는 것을 그저 용납하여주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미숙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윽박지름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개인, 집단, 시대에 자연스럽게 하시는 ‘일하심’에 반응해서 organic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

나는 다시 희망을 찾는 일을 생각하면서,
어쩌면 미숙함에서 오는 미숙한 희망을 지나치게 공격하여,
가라지와 함께 알곡을 함께 죽여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미숙한 거짓 희망을 조금 더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그저 꾸준히 참된 희망을 이야기하되,
거짓 희망에 대한 정죄를 좀 자제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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