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말걸…

민우가 가끔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자기가 중학교때 필요이상으로 열심히 공부했다는 거다.
중학교때 그렇게까지 스트레스 많이 받으며 공부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자기는 그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고.

나는 민우가 중학교때 그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지 몰랐다.
그냥 학교 재미있게 다니고, 잘 지내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민우는 나름대로 그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고등학교때도 물론 그랬던 것 같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민우는 아주 어린시절을 MIT 기숙사에서 보냈다.
MIT 부설 유치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다닐때는 엄마를 따라서 Harvard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빠 친구들은 다 MIT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이었고, 엄마 친구들도 그랬다.

그야말로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학교가 MIT와 Harvard였던 셈이다. 그냥 동네 학교.

적어도 우리는 민우에게 소위 좋은 학교 들어가는게 인생의 최대 목표인것으로 교육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공부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고 많이 이야기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민우는 딱 그렇게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해서 민우가 고등학교때 화학을 B를 받아왔을때 나는 의아해했다. 아니 왜 얘가 화학같은 과목을 B를 받을 수가 있지? 진심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얘가 뭐 다른 이유가 있나… 많이 고민을 했었다.
민우는 그냥 화학을 재미있어 하지도 않았고, 화학에 재능도 없었던 거다. 그런데 나는 그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되었었다.

대신 민우는 자유롭게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고, 손을 꼼지락 꼼지락 해서 조그만 물건들을 만들고 하는 것들을 참 즐겨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자기 전공과 관계도 없는데 뜬금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창의적으로 소설이나 시를 쓰는 것도 즐긴다.

나는 나 같은 사람보다는 민우 같은 사람이 훨씬 더 골고루 잘 갖추어진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민우에게 있어 나 같은 아빠가 있었다는건 일종의 핸디캡이 되어왔던 셈이다.

어제 민우가 보고 싶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런 깨달음을 얻고는 참 감사했다. 민우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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