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졸업한 학교의 website에 들어가서 뒤져보았더니 박사논문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종이로 프린트 한것을 아마 학교 도서관에서 스캔해서 올려놓은 것 같았다.
(나때만 해도 박사논문을 종이로 프린트해서 내도록 되어 있었다. ^^)

내가 박사논문을 쓴건 반도체 소자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플라즈마와 고체 표면사이에 일어나는 현상을 수학적 모델로 설명하고 그 수학적 모델을 실험을 통해서 다시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실험을 한 경우도 있었고, 이미 발표된 다른 논문에서 얻을 수 있었던 실험결과들도 있었는데…
수학적 모델을 세워놓고 그걸 컴퓨터를 이용해서 풀어서 실험결과와 잘 맞아들어가는 것을 보았을때의 그 짜릿함이란!!!

박사학위를 받은지 이제는 아주 긴 시간이 지났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그때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종류의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박사공부를 할때 꽤 고집스럽게 hot한 것을 해서 뻔지르르한 뭔가를 만들어내는 종류의 일 보다는, 뭔가 일어나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잘 설명해내는 종류의 내용으로 논문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고지식하게 그렇게 했다.

그런데 요즘은…
박사를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적어도 공학분야에선 그렇다.
공학분야에서 좋은 박사논문은 보기에 아주 hot한 혹은 sexy한 것을 해내는 것들이다.

내가 hot하거나 sexy한 것을 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원리에대해 더 해보고 싶어서 그렇게 고집스럽게 했던 것은 어쩌면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나는 말하자면 비교적 hot하거나 sexy한 것들을 하면서 밥먹고 살고 있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근본적인 원리를 파고 싶었던 내 박사과정때의 고집은…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그 후로 다시 또 그런 종류의 연구를 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내가 아카데미아로 갔더라도 그런 연구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요즘 그런 연구에 누가 돈을 대주겠는가…

같은 실험실에 있었던 사람들 몇명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더니,
그렇게 똑똑하게 아주 재미있는 논문들을 썼던 친구들이 지금은 다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고지식하게 그렇게 공부하고 원리들을 탐구하는 일을 좋아하는 내게,
그나마 박사과정때라도 그걸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감사한 일인거다.

여러개의 비선형 미분방정식을 컴퓨터로 풀어가며 계산을 했었지만…
지금 나는 간단한 미적분도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ㅋㅋ

나이가 많이 들어서 배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을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예전에 보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젠 그런 마음이 이해가 잘 된다.
주말엔 가끔씩 내가 더 공부해보고 싶었던 양자역학 같은거라도 조금씩 공부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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