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place like home?!

출장을 떠나기 전,

정말 많이 바빴다.

음… physically 바쁘기도 했지만, 직장일 관련한 stress가 대단히 높은 상태였다.

차라리 비행기를 타고, 좀 쉬고 싶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중에는 다른 일 하지 않고 좀 쉴 수 있으므로.

출장을 가서는, 생각보다 일이 바쁘지 않았다.

정말 내가 출장을 가서 이렇게 여유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중 하루는 오후 3시에 일이 끝나 ‘자유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자유시간’에는 나는 호텔에 들어가서 잤다. .-;

내가 가 있는 동안 날씨도 좋았고, 일도 비교적 잘 되었는데… 

그래서 원한다면 좀 ‘관광’을 해볼수도 있었을 텐데…

사실 그럴만큼 힘이 없었다.

그저 좀 누워서 자고 싶었다.

덕분에 한주 동안, 독일에서 잘 쉬었다.

하루에 8-9시간씩 자며 지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오는 비행편이었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 샌프란시스코오는 비행편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루 더 지내야 했고, 어제(주일) 오후 늦게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오니, 

아내와 민우와 하이디가 나를 반겨준다.

내가 없는 동안 아내는 혼자서 이런 저런 일을 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테고,

민우는 감기에 걸렸다.

집에 와서 가족을 보니 좋다.

그러나…

이번에 실험해온 sample들을 evaluate하기 위해서, 앞으로 두주 정도는 또 완전히 바쁘게 지내게 될텐데…

Still, it;s great to be home.

이번주는 독일 출장중

제가 ‘공지’로 글을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안올라갔었네요. 

이번주는 독일에 출장중이어서, 매일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지금 Lufthansa가 파업중이어서 과연 제때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상적으로 집에 돌아가게 된다면, 월요일부터 다시 블로그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꾸벅~ ^^

기독교와 foundationalism

Foundationalism의 성격을 갖지 않는, ‘복음주의적’ 기독교 신앙이 가능할까?

요즘 내가 많이 물어보고 있는 질문 가운데 하나이다.

사실,

내 생각의 성향으로는, 소위 foundationalism이 참 편하다.

그리고, 매우 자주… 그런 성향의 생각이 나를 가두는 것과 같은 것을 경험하곤 한다.

얼마전 이 블로그에서 쓰기도 했지만,

겸손한 신앙,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열린 마음 등등을 embrace하려고 많이 노력중인데….

그러려면 혹시 내 신앙안에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foundationalism을 타파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나는 철학도, 신학도, 역사도…  잘 모르니…

이런 고민을 혼자서 많이 한다고 해서 뭐 해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누가 이런거 잘 공부해서 내게 좀 가르쳐 주면 참 좋겠다. ^^

몸이 잘 못따라주네…

몇주전 덴버에 가서,

밤새워 이야기하고나서는 감기에 걸렸었다.

그리곤 그 후유증이 두주 정도 갔다.

지난 월요일,

LA에서 있었던 미국 코스타 공동대표 모임에 갔었다.

주일 밤에 5시간 남짓 자고, 월요일 밤에 2시간 남짓 자고… 화요일 출근을 했더니만…

허억… 몸이 잘 움직이질 않는다.

마치 테트리스를 하는 것 같이,

해야할 일들이 떨어지는데 몸이 잘 안바쳐주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한참 체력이 좋던 시절,

하루에 한시간씩 자며 일주일을 버티는 것도 가능했었고….

조금 무리를 해도 하루 밤 잘 자면 해결이 되었는데.

이제는 생각은 저 만큼 가 있는데, 몸이 잘 따라주질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 익숙해져 가야 할텐데,

아직 나는 이런 상황이 자연스럽질 않다. -.-;

K 목사님

내가 K 목사님과 가깝다고 이야기할만한 사이는 물론 아니지만,

그래도 그분을 만나면 개인적인 인사도 나누고, 할 정도의 사이는 되니…

그리고 지난 10년 넘게 함께 섬겼던 사역도 있었으니,

나도 그분에게, 그분도 내게 ‘동역자’라고 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

K 목사님의 설교나 책의 내용은,

내가 참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 만나보아도, 그분 생각의 어떤 framework은 내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분에 대해 비판도 많이 했고, 사실 그분을 별로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분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참 내가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이 있다.

소위 ‘옳은 소리’를 남발하는 젊고 혈기 왕성한 사람들에게서 찾기 어려운 모습을 만난다.

나와 생각의 큰 흐름을 달리하는 사람을 보며,

존경심을 갖을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신 K 목사님께 참 감사하다.

따뜻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받는 위로

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아니다.

뭐 대단히 냉정한 사람도 아니지만, 대단히 compassion이 넘치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소위 ‘공감 능력’도 많이 떨어지고, 쉽게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한다.

이번주 어느날 새벽 4시가 좀 넘었을 때였다.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는데, 내 전화기가 울렸다.

아니 이 시간에 무슨… 하면서 그냥 무시하고 잠을 청했는데, 또 다시 전화가 울리는 거다.

주섬주섬 전화를 받았더니,

옛~날~에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친구로부터 전화였다.

지금은 한국에서 꽤 ‘잘 나가고’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다들 부러워할만한 자리에 올라가 있고, 뭐 아마 돈도 잘 벌겠지.

그런데,

전화 반대편에서는 그 친구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힘들다고… 사는게 너무 힘들다고… 그러면서 내가 보고 싶다고 전화를 얘기하고 있었다.

이 친구도 내가 그 전화를 자다가 받아야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터인데,

그렇게 내 잠을 깨워서라도 그 순간에 나와 전화를 하고 싶어… 자기 cell phone으로 국제전화를 한 것이다.

15분 남짓 전화했을까.

전화를 끊고나서 나는 다시 잠들 수 없었다. 

나도 그 친구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우리 함께 밥 사먹으면서 신앙과 학문과 삶과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것도 생각났고.

그러면서도… 또 한편 이런생각도 들었다.

아니, 얘도 내가 별로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라는거 알텐데…

이 시간에, 나 같은 사람에게 전화해서 흐느끼며 이야기를 할만큼 절박했던 것이었던 것이네…

나처럼 공감능력 떨어지고, judgmental하고 . 이런 사람에게도…

전화하고, 이메일하고, text 보내고, 그리고 찾아오고…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

도무지 이해가 잘 되질 않는다.

나는 따뜻한 위로 그런것도 잘 못해주고, 맨날 아픈 얘기 잘하고… 그러는데.

아… 정말…. 

세상에서 살아가는게 힘들어서,

심지어는 나 같은 사람에게서라도 위로를 받아야 할만큼 내 fellow Christian들이 절박한 것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모래수렁과 같은 믿음

믿음이란 때로,

모래수렁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어리버리하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쏟으시며 그 사람에게 당신을 확인시키신다.

고통과 아픔과 좌절 등등의 시련을 통해 그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배우게 하시고,

그 속에서 소망과 믿음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게 하신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한단계 더 믿음의 결단을 해서 헌신하게 되면,

이제는… 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들도록 그 사람을 더 잡아끄시는 것 같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사는 삶은 참 복되고 좋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께서 점점… 나로 하여금 그분을 더 깊이 신뢰하지 않고는…

아주 작은 일상 까지도 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까지 나를 이끌어가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런의미에서,

믿음으로 사는 삶은,

모래수렁에 빠져가는 것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면,

모든 백성의 눈에서 눈물을 다 씻어주신다고 하셨다.

예전에는,

그때가 되면, 내가 바라던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때가 될때 가장 좋은 것 가운데 하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 될 것 같다는 기대이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여전히 하나님께서 control을 놓지 않고 계시고,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이 이 땅에 부어지고 있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신다는 것을…

제대로 인정하며 살기가 참 쉽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통치를 온전히 회복하시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 같이 주님을 보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가지고 살게 되는 때가 되는 것이겠지,

더 이상 주님을 믿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겠지.

혼전순결에 대하여

지난 덴버 모임에서 나눈 여러가지 이야기 가운데,
‘요새 젊은 사람들’의 성에 대한 이슈가 있었다.

그 전에도 좀 생각했던 이슈이긴 하지만,
덕분에, 소위 그리스도인의 ‘혼전 순결’에 대한 이슈를 다시 좀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사실 나 정도때만 하더라도,
‘혼전순결’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덕’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아, 물론 뭐 말은 그렇게 하고 실제로는 ‘딴짓’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는걸 알고 있긴 하다.)

교회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라’는 식의…
뭐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교식의 혼전순결 애기와 별로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결혼 전에 성관계를 갖는 것을 성경이 지지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장래 자기 배우자를 위해 ‘기다리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혼전 성관계’라는 것을 접근 할때,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순결하게 지키라고 이야기하는 방식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거짓말을 하는 것은 죄이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거짓말을 함으로써 네 입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라…. 깨끗한 입을 잘 지켜라… 뭐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죄이고, 잘못하는 것이지만…
그래서 피해야하고, 교회에서 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하지만,
거짓말을 했을 경우, 그것을 회개하고 다시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번 입이 더러워 졌으니… 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나는,
혼전성관계에 대해서도,
교회가 좀 더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깨끗하게 몸을 지켜라’ 라는 접근이나,
‘더럽혀진 몸’을 주님 앞에 가지고 와서 회개해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고,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주님께서 용서해주실 수 있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욕정을 잘못 사용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뭐 이런 식의 접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지금 교회에 있는 젊은이들 역시,
거의 대부분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테고,
거기에다 대고…
성관계 맺으면 몸이 더러워 진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죄의식만을 일으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결국 ‘은혜’의 종교가 아닌가.

잔치를 여는 사람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매년 즐거운 잔치를 열어주는 유치원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위해서 몇달전 부터 잔치 계획을 짜고, 잔치에서 공연할 사람들을 섭외하고,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일을 즐겁게 했다.

아이들은 그 잔치를 즐거워했고, 그 선생님은 그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겼다.

시간이 지나,

그 선생님은 유치원 선생님에서 ‘은퇴’를 하였다.

이제는 다른 유치원 선생님들이 그 잔치를 준비는 것을 그냥 멀리서 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날,

그 후배 유치원 선생님들이,

‘선배님, 선배님께서 옛날에 하시던 동화구연을 아이들이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잔치에 와서 동화구연을 한번 해주시면 어떨가요?’

라고 물었다.

그 유치원 선생님에게는 만감이 교차했다.

아, 이제는 내가 그렇게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 잔치를 꾸미는 사람이 아닌 것이구나.

이제는 잔치를 꾸미는 후배 선생님들을 도와줘야 하는 거구나.

아니,

내가 아이들 잔치를 할때는, 동화구연도, 인형극도 정말 잘 하는, 그리고 아이들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했었는데…

나는 그런 전문가는 아닌데…

나는 아이들을 위해 잔치를 꾸며주는 쪽에 더 열정을 쏟았었는데…

그 선생님은,

후배 선생님들에게, 

동화구연을 한번 해보겠노라고 언질을 주긴 했는데,

영 마지막 확답을 줄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