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이유와 동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몹시 괴로워하고,
그것이 주어지면 정신없이 그 가치에 몰두하곤 한다.

그런데,
바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 갖게되는 큰 약점이 있다.
그것은, 그 명분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업신여기거나 미워한다는 것이다.

내가 매일 힘들게 싸우고 있는 싸움이고,
그 싸움을 싸워온지 20년이 가까워 오도록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싸움이다.

Used Car Salesman

내가 박사과정을 할 때,
내 지도교수는 늘 학회 발표는 used car salesman 처럼 하라고 이야기했었다.

스스로 motivate 되어서,
자신이 이야기하는 내용에 자신을 가지고,
장점을 부각시키고,
전달할 내용을 핵심을 잡아서 각인시키고…

나는 used car salesman과 같은 성향이 워낙 있는 지라,
지도교수의 그러한 ‘가르침’을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어제 학회에서의 발표도…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잘한걸까.
글쎄…

최고를 추구하지 말아라?

요즘,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최고를 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좀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내 능력이 100만큼 있는데, 만일 내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서 살아가야하는, 내가 취할 수 있는 최고를 추구하여 그것을 얻으면 내 직업의 영역에서 나는 내 능력의 거의 대부분을 사용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다른 이들의 성취를 갈취하고싶은 그릇된 옥망도 생기고, 내가 섬기고 사랑해야하는 사람들에 신경을 쓰지도 못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내 능력의 70만이 필요한 선택을 하면,
남는 30의 능력으로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여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섬길수도 있고,
필요하면 내 성취를 다른이들과 공유하여 다른이들에게 유익을 끼칠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란,
지적인 능력, 정서적인 능력, 신체적인 능력, 체력 등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자신의 능력에 조금 부친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처할 경우 능력 자체가 성장하게 되는 발전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목표를 낮게 잡는 것 역시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핑게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고 있는데… 글쎄… 얼마나 잘 정리가 된 생각인지는….

약자가 되는 것

약자가 되는 것은 참 마음이 무겁고 힘든 일이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고, 분노가 솟아오르게 되기도 한다.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감내해야하기도 하고, 불안감과 싸워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약자가 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사람은,
이미 너무 강자여서…
그저 강자로 사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어쩌다 내가 약자로서 노출되게 되거나…
내가 약자가 되어야 하는 것을 유난히 더 힘들어 하는 듯 하다.

회사에서 사람들과의 사소한 대화 속에서 쉽게 자존심 상해 한다던가,
작은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불평한다던가…

가난한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저희의 것이다.

예수께서하신 이 선언은,
이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복이 있는 세상이 왔다는…
이제는 이전의 세계관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세상이 왔다는…
엄청난 것임에도,

오히려 내가 강하기에 그 선언의 깊이를 인식하고 살지 못하는게 아닐까 싶다.

Thanksgiving을 보내면서,
내게 감사가 사라진 메마름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불성실한 사람을 말씀 사역자로?

학교나 직장이나 가정에서는 매우 게으르거나 성실하지 못하거나 부정직한 사람인데,
교회나 성경공부 모임 등에서는 많이 나서는 사람들을 가끔 접한다.

나도 물론 얼마나 내가 직장과 가정에서 성실한 사람인가 하는 반성을 스스로 지금도 많이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할때, 나는 정말 성경공부가 좋았다.
그래서 학교 생활을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서 성경공부에 몰입한 기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번 빠지고 나니, 학교 생활을 다시 성실하게 하는 리듬을 되찾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그 이후 계속 허덕허덕 하다가…
그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야 비로소 겨우 회복을 할 수 있었다.

학교 생활이나 직장생활, 혹은 가정 생활에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씀사역을 강조하는 것은 그 사람을 망치는 독인 것 같다.
한번 그렇게 빠지면 회복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내 모습을 자주 점검해 보곤 하는데,
늘 그 균형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균형이 깨어진 사람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프다.

나를 부끄럽게 한 우리 그룹 manager

지난 금요일 이었다.
아침에 우리 그룹 manager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제가 있는 장비를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내가 나름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것 저것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했고,
우리 그룹의 manager는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내게 이런 저런 것을 물어보았다.

그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나는 그냥 퍼져서…
내 자리에 앉아서 data 좀 정리하고…
12월 첫째주에 있을 학회 invited talk 준비하고… 그러고 있었다.
(솔직히 가끔은 이렇게 몸을 움직여서 실험하고 하는 게 귀찮을 때가 있다. ^^)

그날… 저녁 7시쯤이 되었을때,
그 manager가 땀을 뻘뻘 흘리며 내 자리로 왔다.
내가 이야기한대로 장비를 손봤더니 문제있던 장비가 안정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게 고맙다고…

어휴…
정말 부끄럽고 미안했다.
나보다 나이도 훨씬 더 많고, 경험도 많고… 내가 하라고 지시하더라도 내가 뭐라도 할말이 없는 그런 입장인데,
이 사람은 자기가 금요일 저녁 7시가 되도록 저렇게 땀을 흘려가며…
내가 한마디 틱~ 던진 말을 가지고 그렇게 장비와 씨름을 했던 것이다.

정말… 정말…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우리그룹 manager가 존경스러웠다.

경제침체와 관련된 짧은 생각

내가 개똥철학을 펴는 것일수도 있으나…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본다.

사회의 체제, 사상의 흐름의 폭력성이 극에 달했을때,
바로 그때 교회가 복음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자주 그 빈자리를 다른 사상들이 채우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 기독교가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 같다.

자유방임주의의 폭력성에 노동자들이 짓눌리던 시절,
서구 교회가 그것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을 주는데 실패한 자리를 공산주의가 차지했고…

좀 더 가까이에는…
한국의 소위 IMF 사태가 터졌던 90년대 후반,
한국 교회가 그 경제적 위기 속에서 외쳐야 했던 선포를 포기하자…
그 자리를 세속화와 물질주의가 차지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만일,
지금 이 경제침체/경제위기의 시기에…
교회가 특히 한국 교회가…
또다시… 기도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잘 풀어주실 것이다,
기도해서 위기를 성공으로 극복해라…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라… 는 식의 천박한 이야기만을 한다면,
한국교회는 좀 더 주변으로 밀려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많이 암울하다.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있을까

누가복음 2:29-30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늘 가슴 속 한곳에 채워지지않는 갈증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
처음 신앙의 세계를 접했을때, 그동안 채우지 못했던 갈증을 채우는 생수와 같은 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아직 채워지지 않는 그 영혼 깊은 곳의 갈증이 있음이…
소망을 갖게 한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무엇을,
다시 되새기게 하신다.

Actor or Director?

예전에는, actor가 되고 싶었다.
실제 대학때 연극에 빠지기도 했었지만…

실제 삶에서도, 내가 무대위에 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director가 되고 싶어졌다.

내가 무엇을 하기 보다,
다른이들이 무엇을 하도록 가이드를 해주고 바운더리를 만들어 주는 사람,
방향을 제시하고 무대 뒤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최근,
다시 actor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나는 KOSTA에 무엇인가

지난주에 있었던 공동대표 모임에서,
내가 총무간사를 마친 후에도 계속 실무간사로 남도록 하는 안을 내가 제출했었는데,
공동대표들에의해 거부당했다.
내년 9월 1일 부터는 실무간사의 역할을 벗고, 공동대표에 합류하게 된다.

사실 내가 KOSTA 실무를 떠난다는 생각을 해보질 않았기 때문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지난 몇달간 자꾸만 던져보았던 질문,
나는 KOSTA에 무엇인가…

답이 보이질 않는다.
하나님의 어떤 인도하심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