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 예수를 막 믿게되었던 시절

나는 모태출석 교인이다.
어머니께서 나를 태중에 가지고 계실때부터 교회 출석을 했다.

내가 그 신앙을 내 개인의 것으로 받아들인것은 대학교 3학년때의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그 신앙을 깊이 곱씹어볼만큼 내가 넉넉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아직 신앙을 갖고 있지 못하던 시절,
신앙이 없으면서 신앙이 있는 척 했던 시절,
진리에 대하여 목말라 했던 시절,
그리고…
그 진리를 막 발견한 직후 내 생각과 감정과 마음이 급속히 바뀌어 가던 신앙의 초기 단계…

이것들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희미해진다.

그래서,
내가 그 당시에는 매우 어렵게 받아들였던 개념이나 깨달음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거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버려 내가 섬기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싶다.

기회가 되면,
내가 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에 했던 고민들,
또 내가 막 예수를 믿은 직후에 했던 고민들만을 다시 깊이 곱씹어보는 시간을 좀 갖을 수 있으면 한다.

이 블로그에도 간단하게 그것들을 좀 올리고.

동기와 열정이 없는 사람 vs. 동기와 열정이 잘못된 사람

동기와 열정이 없는 사람과 동기와 열정이 잘못된 사람…
이 두 부류의 사람중 어떤 부류가 더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까?

만일 그 사람을 쉽게 쳐낼 수 있는 회사라던가… 사회 조직의 경우에는 잘못된 동기와 열정을 가진 사람의 해악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잘라낸다 하더라도 그 ‘열정’에 악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므로.

그러나…
그 사람을 포기할 수 없는 공동체라면,
그리고 사랑과 신뢰에 기반을 둔 공동체라면…
동기와 열정이 없는 사람을 보고 있는것이 훨씬 더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냥 요즘 내 머리를 채우는 생각중에… 한조각.

열정에 이끌려?

가끔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보며,
내가 섬기는 사람들을 보며,
나와 함께 성경을 공부하는 지체들을 보며…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정말 정신없이 마음과 머리 속에 쏟아질때가 있다.
이럴땐, 10편짜리 설교 시리즈의 개요가 10여분 정도의 묵상동안 그야말로 쏟아지듯 정리가 된다. 성경 말씀, 예화, 내 경험, 성경해석 등이 너무 정신없이 떠올라 주체할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런 내용이 마음을 흥분시켜 잠을 못이루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이끌려 질때, 많은 경우에는 내가 그 ‘설교’들을 쏟아 놓는 일을 자제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내 ‘열정’에 이끌려 만들어진 것들은 반드시 예기치 못한 큰 부작용을 만들기 때문이다.

내 message를 듣는 사람들에게 해가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엔, 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을 경험한다.

열정적인 사역자,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도 좋지만,
성숙한 사역자, 성숙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고 싶다.

어제 생각에 이어서…

사실 어제 내가 쓰려고 했던 말이 더 많았는데,
하루에 blog에 글 쓰는 시간을 10분으로 제한한 내 자신의 ‘규칙’때문에…
그냥 어제 글은 Red Sox – Yankees 에 관한 것이 되고 말았다.

어떤 대상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것의 반대쪽을 선호하게 되는 것.
사람들은… 아니 적어도 나는… 그런 성향이 매우 심한 것 같다.

나는, 특히 한국 상황에서, “보수”세력들을 참 싫어한다.
그들의 background가 싫고, 그들의 history가 싫고, 그들의 논리가 싫다.
조중동의 글을 읽고나면, 그것을 읽는 것 만으로도 내가 마치 목욕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는 진심으로 조선일보가 시민의 힘으로 없어질 수 있는 사회가 되면 한국 사회가 크게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 사회의 보수 세력들이 지켜내고자하는 것 가운데 많은 부분은,
사실은 지켜지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본다.
“지켜야할 무엇”이 없는 보수를 보며 가슴이 터지도록 안타깝고 답답하다.

나는 늘 ‘진보세력’을 지지해왔다. (내가 진보세력을 지지한다고 해서 뭐 세상에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서도…)
그러나 그것은 진보세력에게 희망을 걸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보수세력’을 보면 끔찍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진리(truth)라고 붙들고 있는 것들, 내가 가치(value)로 가지고 있는 것들 가운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가만히 앉아서 곰곰히 내 생각을 조망해볼 일이다.

Red Sox가 이기는 것보다 Yankees가 지는게 더 좋다?

나는 야구 시즌이 되면 매일 저녁 결과를 꼭 챙겨본다.
누구든 Boston에서 10년 정도 산 사람이면 Red Sox Fan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민우는,
야구의 rule 도 잘 모르는데도…
열렬한 Red Sox Fan이다.

Red Sox 선수들 이름도 많이 알고, 자기 나름대로 favorite player도 있다.

2004년 Red Sox가 “Curse of Bambino”를 깨고 86년만에 World Series 우승을 하기 전까지,
Red Sox는 Yankees에 계속 눌려 지냈다.

가령 Nike에서 2004년 World Series때 사용했던 아래의 광고는 Red Sox Fan들의 ‘목마름’을 잘 보여준다.

골수 Red Sox Fan은 Yankees를 참 많이 미워한다.
Yankees에 막혀서 오랜 기간동안 World Series 우승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보스턴-뉴욕이라는 ‘이웃도시’의 라이벌 의식도 작용하고.

나 역시…
나름대로 Red Sox 의 Fan으로서…
요즈음 mlb의 점수를 매일 확인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우선 Red Sox가 이겼는지를 보고…
그 다음에 Yankees가 졌는지를 확인한다.

내가 기뻐하는 순서를 적자면 다음과 같다.

1. 제일 좋은 경우 (Red Sox 승, Yankees 패)
2. 두번째 경우 (Red Sox 패, Yankees 패)
3. 세번째 경우 (Red Sox 승, Yankees 승)
4. 네번째 경우 (Red Sox 패, Yankees 승)

특히 2번째와 3번째를 가만히 보면,
나는 Red Sox의 승리보다 Yankees의 패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
그 이유는 오랫동안 돈 많은 Yankees 구단이 star player들을 다 사버리는 방식으로 우승을 하는 것이 참 오래 미웠기 때문이었다.
(사실 요즘은 Red Sox도… 그런 비난을 받는다. Yankees가 돈을 쓰는 것에 비하면.. 택도 없지만.)

작년에,
만년 꼴찌 Rays가 American league에서 우승을 했을때,
그래서 나는 그렇게 섭섭하지 않았다. Red Sox가 이기지 못했지만, Yankees가 졌기 때문이었다.

이게 과연 건강한 것일까.
글쎄…

실무간사로서의 마지막 간사 모임

지난 주말에 DC에서 있었던 간사모임은,
내가 실무간사로서 참석한 마지막 간사모임이었다.

지난 10여년동안 간사로 섬기면서…
정말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이루 다 말할수 없다.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땀흘릴 수 있었던 것은 이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선물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이것보다 더 풍성한 많은 것들을 더 많은 우리 후배 간사님들이 누릴 수 있기를…
내가 선배들로부터 받은 이 소중한 spirit이 후배들로 인해 더 잘 살아나기를…

KOSTA/USA-2010

이번 주말에는
KOSTA 2010의 주제를 정하기 위한 meeting을 한다.

현재 Korean Student Diaspora를 섬기는 현장 사역자인 간사들,
KOSTA의 선배님들이 모여 주제 선정을 위한 brain storming을 한다.

이 모임이 끝난 후 다시 여러번의 논의를 통해 이번 여름이 되기 이전에 2010년의 주제안을 확정해서 공동대표들께 상정하게 된다.

2010년은, 이제 KOSTA/USA가 25주년을 맞는 해이다.
25주년을 맞는 KOSTA를 향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일까.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배, 동료, 후배들과 이 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이번 주말의 meeting에 큰 기대를 가져본다!

블로깅

최근들어 갑자기 내 블로그 방문자가 확 늘어서…
무지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지난주 화요일에는 거의 800명에 육박하는 방문자가 있었는데…

뭔가 search engine에서 클릭될만한 keyword가 있어서… 그래서 많은 이들이 들어오게 된걸까..
뭐 contents가 확 좋아졌다거나 그런건 아닌데.

대충 작년 4월 초에 처음으로…
매일 블로그에 하나씩 생각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김교신 선생의 ‘공개 일기’에 영향을 받은바가 컸다.

지난 1년간, 휴일, 휴가, 학회, 수양회 등 특별한 일들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하나씩 생각을 올릴 수 있긴 했는데…

‘내 자랑’ 혹은 ‘내 자신을 표현’하는 블로그가 아닌,
다른이들에게 묻고 싶은 것을 쓰고,
다른이들에게 질책들을 것들을 나누고,
다른이들을 통해 배우는 것을 기록하는 블로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었다.

그런데…
부담이 화악~ 밀려오면서… 오… 이러다 이거 문 닫아야 겠네… 하는 생각이…
뭐 방문자 수는 이러다 좀 잦아들겠지… 하는 소박한 ‘소망’을 가져본다. ^^

Appreciation과 Criticism

아주 초급의 단계에서는, appreciation도 criticism도 하지 못한다.
막 초급의 단계를 지나면 criticism을 하는 법을 배우고, 이것에 익숙해지게 된다.

그러나, 정말 더 성장하게 되면, 무엇을 appreciate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흔히 ‘교육’을 받는 대부분의 내용은 criticism을 잘 하는 시각을 기르고 그것을 잘 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좀 더 깊어지면, 쓰레기 더미에서도 보배를 찾아내는 시각이 길러지는 것이 아닐까.

신앙생활을 하며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 다른 시각에 대한 비판을 건강하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에 머물러서는 유아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주 형편없는 설교를 통해서도 보배를 발견하고,
나와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의 엉뚱한 주장 속에서도 빛나는 진리의 파편들을 찾아내는 일…

나는 언제나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부활절, 2009

한국에서 나는 아주 작은 개척교회에 다녔었다.
“대학 청년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교회 전체의 절반이 되는 그런 교회였다.

매년 부활절이면 나같은 사람도 함께, 온 교인이 부활절 칸타타를 부르는… 그런 작은 교회였다.
주일학교 어린아이들은 egg hunting을 했다.
매일 허름하게 청바지만 입고 가다가 그날은 한번 넥타이를 메고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부활의 기쁨을 함께 지체된 사람들과 나누는 기쁨이 있었다.
정말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가족이 됨을 기뻐했다.

이번이 미국에서 보낸 14번째 부활절이다.

미국에서,
특히 ‘건강한’ 미국 교회들의 부활절 message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복음전도’ message 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선 일년내내 부활절하고 성탄절 두번 나오는 날라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이번 부활절 Grace Chapel 설교를 들으면서는…
설교자가 어떻게든 이 사람들을 다음주에도 오게 하고 싶다는 그 순수한 간절함이 내 가슴에도 느껴졌다.
어떻게 들으면 거의 begging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다음주에 또 와봐라. 오늘 했던 이 message와 연관시켜서 다음 시리즈를 들어봐라…

기독교가 삶과 가치관이아닌,
종교가 되어버린 후…
다시 그 종교가 이제는 문화로 전락해 버린 모습
그나마 그 문화 마저도 이제는 희미해져가는 모습…

그 속에서 일년에 한두번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을 믿는 그 소중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합당하고 바람직한 일인가.

그러나…
한편…
함께 그리스도의 몸된 성도들끼리…
우리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은 영 아쉽다.

어둠이 더 이상 주님을 묶어 둘 수 없었다…
이제는 그 부활의 주님을 우리가 함께 주로 고백하는 것이다.
부활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그런 공동체적 고백이 이루어는 부활절의 모습이 그립고.. 아쉽다.

내 평생에…
또 다시 그런 부활절을 만나볼 수 있을까.

민우 세대에게는…
우리 세대가 그런 부활절을 물려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