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자유

Grace + anything else = Not Grace

지난주 설교시간에 들은 말이다.

요즘 복잡하게 하고 있는 생각 가운데 몇가지.

– ‘자유’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자유는, ‘죄악으로 어그러진 자아’로부터의 자유이다.

(혹은 자신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할 수 있을 수도)

– 자유를 가져다주는 일차적 핵심 개념은, 사랑, 승리, 심판 등등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은혜’ 이다.

– psdudo-freedom이 세상에는, 그리고 기독교 써클 내에도 무척이나 많은데, 진정한 자유가 되지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에 ‘은혜’라는 개념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 은혜는, intuitive 하지 못한 개념이다. 논리적이거나 상식적이지 않다. 오히려 대단히 직관적이고 일방적이다. 은혜를 논리화하려는 순간, 은혜는 그 본질을 잃어버린다.

마누라 자랑 ^^

요즘,
아내가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다.
자기 블로그에 올려가며 조금씩 update을 하고 있는데,

이게.. 도대체 어디까지가 fact이고 어디가 소설인지 매우 애매한 형식으로 써나가고 있다.

음…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게 소설이야, 다큐멘터리야, 수필이야, 그렇지 않으면 자서전이야…?
뭐 그런 생각이 마구 들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사람들이 좀 있을 것 같아…
어제에 이어 또 다시 한번 자랑질을… ㅎㅎ

http://mnrji.tistory.com

(당분간 자랑 안하렵니다. 이틀연속 자랑을 했더니만, 제 자랑 battery 용량이 다 소모되었습니다. ㅋㅋ)

내 의도가 의심 받을때

나는 내 의도가 의심받는 것을 참 잘 참지 못한다.

내 의도가 잘 이해되지 못해 의심을 받으면, 그것을 차분이 설명해주거나 하면 좋을 때에도,

버럭 화를 내거나 이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내 아내가 이건 잘 안다. ^^)

시간이 지나면서,

내 의도가 의심받거나 오해받는 일들을 좀 더 견딜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아직도 나는 참 이게 힘들다.

도대체 왜 그런걸까?

무슨 생각의 흐름으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아버지, 어머니 생각에…

지난 토요일,

Mother’s day를 맞이하여,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갈비집’ 이라는데에 외식을 갔다. ^^

갈비를 구워먹고 게장 먹고, 디저트 사먹고, 참 좋은 시간이었는데…

나는 갈비 고기를 열심히 민우에게 넘겨주며 먹게 하고 싶었다.

민우가 배부르다고 할때까지 고기 먹는것도 자제해가며…

뼈에 붙은 것만 뜯어가며…

그리고 밥이랑 국 함께 나온거 먹어가며…

내가 어릴때, 

우리 가족의 ‘유일한’ 외식 장소는 갈비집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는 외식을 했다하면 갈비집을 갔다.

가면 늘 아버지 어머니는, 

갈비를 별로 드시지도 않고,

뼈에 붙은 질긴 고기만 좀 드시고, 된장국에 밥만 드시고는… 

우리 삼남매 많이 먹는것을 보는 것을 좋아하셨다.

외식을 하면서,

예전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서 민우 나이였던 나와 내 동생들에게 하셨던 모습이 생각났고,

이제는 내가 우리 부모님과 같이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참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보고싶어졌다.

내 탓이오

Daum에서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받았다.

고객님의 Daum 서비스 이용에 대하여 안내말씀 드립니다.

고객님께서 작성하신 게시물에 대해 권리침해신고가 접수되어 아래와 같이 조치되었습니다. 조치내용을 확인하시어 서비스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  신고대상 : 
[http://woodykos.tistory.com/859] [내 탓이오]

•  신고자  : 피해주장자의 대리단체(한국인터넷 선교네트워크) 

•  신고내용 : 명예훼손 게시물 삭제 요청 

•  조치일자 : 2013/05/05 

•  조치내용 : 해당 게시물 임시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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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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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원글은 다음과 같다.

도대체 이 글의 어디가 그분들의 심기를 거슬렀을까?

문제를 제기한 한국인터넷 선교네트워크 라는 단체(?)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ㅋㅋ

(그 분들이 불편하게 생각하시는걸 보면… 써야할 내용을 쓴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ㅎㅎ)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내용이 명확하게 잘 드러나도록 글을 잘 쓰질 못했는데… 



한국에서 내가 대학때, (대학원 때였던가?)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라는 스티커를 배포했던 적이 있었다.

내 생각이 어린 때여서,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스티커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한 것들을 많이 본다.
정치가 답답하고, 교육이 답답하고, 청소년이 답답하고, 무엇보다 교회가 답답하다.

(나를 포함해서)
그것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상당히 cool 해 보인다.

가령, 무상급식의 예를 들어보자.
가난한 어린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야한다는 논리,
무상급식이 사람을 spoil 시키는 복지를 만들어낸다는 논리 등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것이 이렇게 큰 이슈가 되었는가?
이제는 ‘선진국’ 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에서 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것이 이토록 뜨거운 이슈가 되어야 하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리가… 내가…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양육강식을 정당하게 여기고, 약자를 배려할줄 모르고, 다른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정당화 하며.. 심지어는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 논리와 생각이 모두 고스란히… ‘내 안에’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청소년들이 자살을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청소년들을 그렇게 키웠다. 공부만 잘해, 친구들 배려할 필요 없어, 좋은대학만 가… 라고 우리가, 내가, 우리 사회가, 심지어는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가르쳤으니… 우리가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 논리와 생각이 모두 고스란히… ‘내 안에’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사회의 리더로 여겨지는 이들의 integrity 문제,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어쩌면, 바로 내 안에 있는 그 논리와 생각을 발견해내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웃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이웃의 문제가 아니고,
그 이웃과 엮여져 있는 우리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이다.
그 이웃을 고통으로 밀어넣고 있는 그 논리와 생각이 고스란히 내 안에 있다.

이웃, 또 다른 우리.

시편이 그래도 조금 읽혀진다!

예전에… 내가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시편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별로 논리적이지도 않고,

어떻게 분석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올해들어서 계속 성경통독을 하고 있는데, (새해 결심중 하나. ^^)

원래는 올해 한해동안 2독을 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으나…

요즘 시편을 읽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1독하고 약간 시간어 더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 쩝..)

그런데,

물론 대단한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문득, 아… 시편이 읽혀진다… 이런 느낌을 갖는다. ^^

그래도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이제는 시편이 읽혀질정도의 깊이는 된 것일까.

뭐 아직 갈길이 까마득하게 멀긴 하겠지만서두…

사치

나는,

내가 가진 많은 것들을 ‘사치’라고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인류 역사상 많은 사람들에 비해,

사실 정말 그렇다.

내가 대단히 부자는 아니지만,

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현재 이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 비하면 여전히 대단히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셈이고…

모든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교육의 기회를 얻었고,

모든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문화적 혜택, 사회적 자유 등등을 다 누리고 있으므로.

그런 시각으로 보면,

나를 포함해서 소위 ‘서구사회’ 혹은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이기적이고 몰인정한 사람들이 된다.

(그리고 그런 시각은 사실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미 인권, 자유, 문화 등등에 노출된 어떤 사람들에게는,

실존적으로…

그것이 사치가 아니라 필수요소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가령,

어려서부터 부유한 환경 속에서 늘 자라오면서 경제적으로 절약하며 때로는 마음 졸이며 사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자라온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꽤 풍족한 환경 속에서, 여러 문화적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도…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같이 살 수 없다는 것이 큰 어려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런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느끼는 각박함과 빈곤함 때문에 힘들어 한다면,

그 사람을 그저 비난할 것은 아니다.

동생과의 대화

최근,
내 동생과 나눈 대화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그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하는 결정 자체를 그렇게 많이 신뢰하지 못하는 편이다.
아니, 좀 더 좁혀서 이야기하면, 나 자신에 데헤서 내가 내리는 결정에 대해서 신뢰를 잘 못하는 편이다.
그것은 내 죄성, 비뚤어진 동기가 얼마나 내개 뿌리깊게 들어와 있는지 하는 것을 어느정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때는, ‘circumstantial evidence’를 내 마음 속의 확신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내가 어떤 직장으로 갈까 하는 것을 고민하며 기도할때,
내가 가고 싶은 직장, 내게 끌리는 직장 을 선택하기 보다는,
여러 환경을 보니… 이렇게 인도가 되는 것 같다 고 느끼는 선택을 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자…내 동생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빠는 민우가 어떤 삶을 살길 원하나.
creative하고, 자신이 가진 성품과 재능을 마음껏 누리고 그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섬기며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느냐.
하나님께서도 그렇지 않으시겠느냐.
예수를 그만큼 믿어 왔으면, ‘마음의 음성’을 좀 신뢰하고 결정해볼수도 있지 않겠느냐…

나는 내 동생에게,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내 안의 성령께서 계신것을 알지만, 내 꼬여있는 죄성에 의해 지배당하는 가리워진 agenda를 피해나갈 자신이 없다.

라고 말했다.

동생과 그 대화를 나눈지 열흘이 더 되어 가는데,
아직도 마음 속에서 참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맴돈다.

동생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게 참 감사하다.

살아있네! – 하나님을 신뢰하기

내가 대단히 오래 산 사람도 아니고,

또 내가 하나님을 잘 신뢰하면서 한평생 살아온 뭐 그런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 내 삶을 돌이켜보며 다른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는 그런 사람은 더더욱 아니지만…

내가 주님과 동행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살아 있었’던 때는,

주님을 깊이 신뢰했을 때였던 것 같다.

내가 뭐 대단한 security를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그나마 그 security보다도 주님을 더 신뢰했을때,

내가 뭐 대단한 명예를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그나마 그 명예보다도 주님을 더 추구했을때,

내가 뭐 대단한 성공을 거둔 적은 없었지만, 그나마 그 성공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했을때…

그리고,

때로는 매우 의도적으로 security, 명예, 성공등을 포기하는 결정을 했을때,

‘살아있구나’ 하는 것을 경험했던 것 같다.

주말에 쉬면서,

‘런닝맨’을 보다가 잠깐 든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