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잘떼기 없는 물건 사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릴때 어머니 무릎에 누워서 어머니가 귀를 파주시는걸 좋아했었다.
내가 귀지가 유난히 많거나 그랬던 것 같지는 않고, 어머니가 그렇다고 내 귀지를 파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던 것도 아닌데…
그냥 가끔 한번씩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서 그러고 있는게 참 좋았다.

아마 내가 거의 중학교 다닐때도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아주 어릴때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머니에게 귀지를 파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게 필요하지도 않고, 아마 어머니도 이젠 그렇게 하시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가끔 내가 인터넷에서 아주 쓸데없는 걸 살때가 있다.
대개는 10불정도 하는 물건을 신기해서 사는 것들이다.

내가 몇달전에 산건, 작은 귀지파는 도구 끝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귀지를 내가 파면서 귀 속을 볼 수 있는 도구였다. 10불정도에 샀다.

실제로 해보니 귀 안쪽이 잘 보였다. 말하자면 아주 작은 내시경(?)이라고 할 수 있는 건데…

그런데,
나는 사실 별로 귀지를 파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고,
막상 해보니 귀 안쪽에 뭐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귀 안쪽을 ‘청소’해도 그렇게 뭐 개운하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다만,
10불짜리 그 물건을 사서 가지고 노는 동안,
언제 따뜻한 오후,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어머니가 귀지를 파주실때 나는 솔솔 잠이 오는 것을 즐기며 있었던 기억이 났다.

10불짜리 귀지청소 도구는 사실 별로 쓸데 없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안쓸 것 같다.
그렇지만 그 10불 덕에 나는 내 어린시절 어머니가 귀지를 파주시는 그 기억을 잠시 떠올리며 마음 따뜻해졌다.

쓰잘떼기없는 10불짜리, 살짝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값을 했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되는 공상

한참 공부할때, 나는 내 머리가 더 좋지 못하다는 것을 답답하게 여기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가령, 아인쉬타인같이 대단히 뛰어난 지능을 가진 사람의 재능을, 그 사람이 죽을때 그냥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지식까지도 모두 다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었다.

뭐 지극히 공돌이스러운 말도 안되는 상상이었지만 그때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가 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요즘은….
정말 평생 예수님을 따라 살면서 훌륭한 인격을 가진 분이 돌아가시면서 그분의 모든 인격과 지혜를 그대로 누군가에게 전수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도 그렇게 좀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web hosting 고민 / 블로그 고민

나름 블로그를 하면서 이 woodykos.com 라는 주소를 가지고 해왔는데,
이게… 생각보다 귀찮기도 하고 돈이 들기도 한다.
현재 한달에 30불 정도 매달 web hosting과 기타 서비스에 쓰고 있는데,
정말 웬만하면 subscription service를 쓰지 않고 있는 내 lifestyle에서 휴대전화 data service를 제외하고 두번째로 많이 나가는 지출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매일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그나마 요즘은 매일 글쓰는 것도 못할 때가 많이 있었다)
조금 더 정리된 생각 글쓰기가 조금더 유용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하고 있는 중이다.
말하자면 글쓰기를 하면서 자료도 좀 찾고, 생각의 흐름도 여러번 점검해서 쓰는… 그야말로 제대로된 글쓰기. – 사실 내 매일의 삶 속에서 그걸 시도하는게 만만치 않기는 하다.

그리고 몇년째…
한주에 한번씩 나름 ‘설교’를 써보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나 같은 비전문가가 설교를 대중을 상대로 하려고 하는건 아니고…
그저 나 자신에게 꼭 일러주고 싶은 어떤 이야기들을 설교 형식으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는 중이다.
I need to learn to preach to myself.

음… 이제 월요일 아침.
아마 이런 생각을 해보지만, 정신없는 생활의 cycle에 뛰어들어가면 이런 저런 생각도 그냥 미루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두어주 제대로 글을 못쓴건,
태국 출장을 다녀왔고, 이번에는 다녀온 이후 유난히 시차적응에 좀 힘이 들었다.
계속 하는 말이지만 이전 정말 몸으로 무리해가며 살아갈때는 확실이 아니다. ㅎㅎ

새 iPhone에 대한 짦은 생각

우리집에 있는 냉장고를 3년쯤 전에 바꾸었다.
그때 나름 큰 마음을 먹고 그렇게 싸지 않은 냉장고를 샀었다.
원하는 기능을 잘 따져가며 (주로 아내가 따져보았지만) 여러 고민을 하다가 삼성 냉장고를 샀다.
내 기억으로는 가격이 대충 1700불 정도 했던 것 같다.

새로 나온 iPhone중 상위 모델은 2000불이 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 옵션을 많이 넣으면 3000불이 넘게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환율을 아주 고약하게 적용을 해서, 500만원이 넘는 모양이다.

휴대전화가 집에 있는 냉장고보다 훨씬 비싸다!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집에서 새로 나온 iPhone보다 비싼건 자동차밖에 없는 듯 하다.
TV,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각종 가구 등등 다 따져 보아도 우리 집에서 2000-3000불 넘는 건 아마 없는 듯.

나는 몇달전 새 전화기를 200불 조금 넘는 가격에 바꾸었다.
새 iPhone의 10분의 1 가격이다.

음… 비싸도 너무 비싸다.
참 마음에 안든다.
내가 뭐 iPhone을 살건 아니지만서두.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신앙 (4)

그렇지만 물론 다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당연히 있다.
그저 여러 이유로 경로를 이탈한 경우, 있어야 할 자리로부터 벗어난 경우, 소중한 것을 한동안 잊고 살았던 경우 등등…
다시 돌아가는 일이 필요할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소중한 가치를 지금 새롭게 맞닥드리는 상황에서 새롭게 해석해가며 살아가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해서도 안된다.
우리의 나이가, 성숙함이, 상황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의 방향은 늘 한 방향이다. 돌아가지 않는다.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신앙 (3)

대충 30-40대의 사람들에게 내가 자주 해주는 말이 있다.

당신들이 대학생때 열심히 교회다니면서 즐겁게 신앙생활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지금 여기서 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교회도 잘 support 안해주고, 사람들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다시 대학생때의 그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40대인 당신이 20대의 신앙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건 당신에게 재앙일 것이다.
40대에는 40대에 맞는 수준의 성숙함이 필요하다.
20대의 단순한 삶을 더 이상 살고 있지 않고 있고, 지금 당신에게는 20대의 순수함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40대에 걸맞는 성숙함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내가 예전에 교회에서 들었던 이 말을 꼭 덧붙여 준다.

If your faith doesn’t grow with you, you will grow out of it.
당신의 믿음이 당신과 함께 성장해가지 않는다면, 당신을 결국 그 믿음으로부터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람의 여정에서도 다시 돌아갈 황금시대는 매우 자주 그저 환상일 뿐이다.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신앙 (2)

그런의미에서 소위 ‘다시’라는 말을 사용해가며 다시 기본으로, 다시 로마서로, 다시 하나님 앞에 등등의 구호도 대부분 내겐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렇게 주장하시는 분들의 ‘다시’라는 구호는 그저 자신의 여정 속에서 아름답게 남아있는 (어쩌면 각색되어있을) 추억을 회상하는 것 같아 보이곤 한다.

가령, 20대 초반의 청년이 ‘다시’라는 구호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이건 꼭 최소한 40-50대 이상, 혹은 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구호다.

그런의미에서, 나이많은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시’ 어디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하는 건 너무 자주 그저 꼰대질같아 보인다.

지금 젊은이들의 삶의 정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채, 자신이 경험한 그리고 많이 아름답게 채색되고 각색된 그래서 왜곡된 기억을 강요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구호를 20대때부터 좋아했었다. 아마 나는 그런 의미에서 젊은 시절부터 꼰대였던 것 같기도 하다. 부끄럽다.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신앙 (1)

나는 소위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식의 구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초대교회는 우리가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상황에, 1세기 로마제국의 상황은 적용대상이 아니다.

초대교회가 지금 우리보다 더 순수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람의 사건이 사도행전에 기술되어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본성 자체가 그렇게 한꺼번에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소위 ‘부흥’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회의적이기도 하다.
물론 부흥을 바라고, 그것을 보고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지만,
그런 부흥이 마치 지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평양대부흥을 다시 기대하자는 식의 구호가 그렇게 내겐 설득력있게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대충 보면… 그분들의 동기와 저의가 의심되는 경우도 대단히 많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나이가 들면서 젊을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여러가지 경험들을 하게된다.
확실히 노화의 과정 때문에 내가 생각을 하는 능력도, 몸을 사용하는 능력도, 체력도, 상처나 부상으로부터 회복되는 속도도, 젊을때와는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인간의 노화는 선형적으로 계속 진행되기 보다는, 34살, 60살, 78살에 급격하게 노화가 진행된다고 한다.
이제 60이 되어가며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예전과같이 생각이 빠릿빠릿하지도 못하고, 기억력도 많이 떨어졌고, 몰입하여 생각하는 기간도 예전같지 못하다.

내가 너무 나이가 들기 전에, 배워야 할 것을 더 배우고, 생각할 것을 더 치열하게 생각할 기회가 내게 충분히 주어지게 될까?

그냥 이렇게 죽어라 일하면서 나이가 들어가고,
여전히 시간의 대부분을 그 일하는데 쓰면서,
막상 깊게 사색하고 더 깊어지는 것에 충분히 에너지를 쓰지 못한채,
내 모든 능력들이 저하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명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니..
내 앞의 삶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내가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나는 과연 충분히 깊어질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너무 늦기 전에 갖게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