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1)

평신도에 대한 긴(?) 글을 써보려고 한다.
꼭 한번은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워낙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이어서 어줍잖게 쓰고 싶지 않았다.
조금더 생각이 정리되면 시간 한번 잘 잡아서 써야겠다고 생각한지 벌써 한 2년은 된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뭐 생각이 2년전보다 훨씬 더 준비된것도 아니고,
시간이 요즘 왕창 남아돌아서 이제는 맘잡고 이걸 써볼 여건이 된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강의,성경공부,설교등의 기회가 주어지면 이미 꽤 이 내용을 조금씩 이야기해왔고,
그러니 부족하더라도 한번은 이 블로그에서도 한번 정리를 해보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목회자들이 ‘목회’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걸 자꾸만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그냥 자기최면, 혹은 자뻑인것 같이 느껴질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나 같은 평신도가 평신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걸 이야기하는것도 그럴 위험이 분명히 있다.

그러니 이렇게 제한적이나마 생각을 열어놓는 것이 혹시 내 생각의 한계와 문제를 드러내는 작업이 될수도 있을 테고, 혹시라도 좋은 comment와 feedback을 받을 수 있다면 내겐 큰 유익이 될 것 같다.

What’s wrong? (9)

내가 생각하기에 진짜 이상한건 이거다.

나 같은 비전문가가 조금 더 용기와 힘을 내어서 어느정도 채워줄 수 있는 이런 평신도들의 need를 왜 도대체 system 이 채워주지 못하는냐는 거다.

지난 여름에 미국, 캐나다, 한국에 있는 10명 조금 넘는 20~50대의 평신도들과 아주 얕은 레벨의 신학공부와 성경본문 공부를 조금 한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늘 하듯이 그분들이 성경공부를 마치고 평가를 하도록 부탁을 했는데…
그 평가서에 나온 이야기들은 다소 놀라운 것들이 많았다.

아니… 그냥 좀 성경공부 좋았다, 감사하다는 이야기 정도는 나올만도 한데…
(예의상이라도 그렇게 할만도 하지…)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런얘기 교회에서는 전혀 들을수 없는 얘긴데 생각이 180도 뒤집어 졌다, 인생이 바뀌었다, 뭐 이런 이야기들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

왜? 왜 나 같은 사람도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교회에서는 들을 수 없는 거지?
내가 한건 그냥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다니엘서 본문 성경공부좀 한것 정도인데… 이런 얘기를 왜 교회에서 못듣는 거지?
(내가 그렇게 이단스러운 이상한 얘기한것도 아닌데…..)

이 글타래를 쓰면서…
어떤 것은 내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살짝 더 깊은 생각이나… 어설픈 내 나름대로의 진단등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자칫 지나치게 비판적이 되는 것도 피하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이 시리즈의 글이 너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버린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한다. 나도 이렇게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건가.

What’s wrong? (8)

가설: 교회의 문화, 교회의 상황이 문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평신도 치고는 여러 목회자들을 많이 만난 편이라고 할 수 있고,
그분들과 함께 일했던 경험들이 그래도 조금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목회자들과 대화할때는 정말 그분들과 이야기할때만 사용하게되는 독특한 단어들, 어투, 무슨 이야기는 한번쯤 꼭 끼워넣어서 하고, 무슨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이런것들이 정말 많다. – 다시 말하면 목회자들만의 정말 독특한 subculture가 있다.

이게 어떤 것은 좋고, 존중받을만한 것이지만… 어떤 것은 그냥… 외부인이 보기엔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게 목회자들도 그렇지만, 그냥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 – 교회 장로님들이나 여자 권사님들-과 대화할때도 역시 그렇다.

그냥…. 나 같은 사람은 그게 다 그냥 이상하고 불편하다.ㅠㅠ
그런데 그분들에게는 아주 견고한 subculture로 자리잡고 있어서 결국 그분들과 대화할때는 내가 약간 다른 사람이 되어버려야만 하는 것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때가 있었다.

내가 보기에 교회 리더십이 가지는 어떤 문화들은…
그냥 좀 이상하고 어색하고 너무 경직되어 있다.
그래서 이 문화는 새롭고, 역동적이고, 실험적인 무엇인가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게 구성되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What’s wrong? (7)

가설: 기독교 신학의 문제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기독교는 매우 unique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것은 이것이다. 기독교 주류가, 초대교회 이후 최초로 non-Christendom의 세계속에 처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주류는 초대교회 이후 최초로 다원주의를 맞닥드리고 있다.

기독교 주류가 다원주를 만나게된 것은 이미 세계선교가 시작된 이후 계속되었지만, 꽤 오랫동안 기독교는 그것을 제국주의적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냥 저 사람들의 문화가 우리 문화보다 못한 것이니… 우리가 들어가서 선교하고 개화시키지는 식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방식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 2000년간 지속되었던 Christendom은 이제 무너졌고 기독교는 non-Christendom에서 어떻게 세상과 소통해야하는지 하는 것을 잃어버렸다.

처음 초대교회가 헬레니즘을 만났을때 분명 초대교회가 했던 것이고,
그래서 신약성경 구석구석에 그 파편들이 남아 있는데….
너무 오랫동안 교회가 그걸 잃어버리고 지내온 것이다.

그 속에서 기독교 신학은 더 이상 세상을 해석해 내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소위 생각을 좀 하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그저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물론 기독교 내에 이것을 인식하고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여러 시도들을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기독교 주류는 세상을 해석해낼 힘을 잃어버렸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신학으로 세상을 충분히 해석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ㅠㅠ
그러니 기독교는 더더욱 조롱거리가 되어버리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런 상황속에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학이 세상을 제대로 해석하고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는 것 자체를 잘 모른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기독교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조금더 근본적인 레벨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우리는 신학 자체가 너무 좁은 틀에 가두어져 있고,
너무 고루한 상태에만 머물러 있고,
스스로 부족한 것 자체도 모르는 상태인것일수 있는 거다…

What’s wrong? (6)

가설: 목회자의 자질의 문제이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그룹의 영적 리더십을 감당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그룹이건간에 리더가 되는 것은 리더가되는 기본적인 자질이 있어야 한다. 지적, 정서적, 육체적, 그리고 목회자의 경우에는 영적 자질까지도.
그러나 지적 능력이 되지 않거나 정서적으로 준비되지 않는 사람들이 목회자가되면 그 사람들을 교육시킴으로써 리더로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게 흐름이 목회자를 디스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 보이는데…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그래도 참 존경할만한 목회자들을 많이 만나보았고,
여전히 내가 존중하고 존경하고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이 계시다.
싸잡아서 목회자들이 다 문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생각해볼 수 있는 또 한가지 가설은 목회자가 되는 사람들의 자질의 문제이다.
이건 바로 앞에서 지적한대로 신학교육의 문제인지, 그 신학교육를 받은 사람들의 자질의 문제인지를 내가 제대로 진단할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대충 목회자가 되기위해서는 신학교에서 M.Div 과정을 마쳐야 한다.
M. Div는 대개 3년과정이고 이것을 목회학 석사라고 대개 부른다.

분야가 다르지만 석사학위를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해보자면…
석사과정을 마치면 그 전문 분야의 1차자료들을 읽고 그것을 해석할 능력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새롭게 발표되는 자료들을 읽고 이해, 해석, 그리고 비판할 능력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내가 한것과 같이 반도체 공정으로 석사학위를 받으면, 그쪽의 논문을 읽고 이해할수 있고, 그쪽에서 새롭게 나오는 논문등을 읽으며 나름대로의 판단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M.Div.를 석사학위라고 부를수 있으려면…
최소한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을 읽고 해석할 정도가 되고,
다양한 신학적 관점을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되고,
새롭게 발표되는 신학적 연구결과들을 이해하고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조직신학, 성서신학등의 분야뿐 아니라, 실천신학등의 분야도 물론 포함한다.

그런데…
나는 강해설교라는 것을 준비하면서 헬라어 히브리어로 최소한 본문을 한번씩 읽어보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다.
자신이 배운 신학적 관점 이외에 다른 관점이 가지는 장단점에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새롭게 나오는 신학적 연구결과들을 이해하는건 둘째치고라도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 조차 알고 있는 목회자들이얼마나 될까.

그 외에도….
리더십이라는 것은 정말 일종의 ‘종합 예술’이다.
지적 능력, 감정적 안정성,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 재빠른 판단 능력, 자신과 주변에 대한 자세… 등등을 모두 갖추어야하고 이중 무엇이 부족하면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의 리더십은 그 부족한 수준에 머무르게 되어버린다.

나름대로 세상에서 좋은 리더와 나쁜 리더들을 어느정도 만나본 나로서는….
정말 목회자들이 이런 리더로서의 자질이 되는 사람들일까….
모두가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리더십을 가지는 것을 기대하는건 당연히 비현실적이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목회자로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그 회중을 리드할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게될때가 참 많다.

What’s wrong? (5)

가설: 사실상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적절하게 훈련받지 못했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접하는 이런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 줄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목회자들과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리더들이 받게되는 신학교육과 신앙교육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

이건 어느정도의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신학교는 문턱에도 가보지 않았고, 그래서 신학교육이 신학교들에게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아주 허접한 신학교야 기대도 하지 않지만, 그래도 건강하다고 잘 알려진 신학교에서조차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는지 사실 잘 알지 못한다.

나는 보통 평신도들이 만나고 알고 대화하게되는 목회자와 기타 다른 리더들의 숫자와 비교했을때 훨씬 더 많은 목회자나 교회 리더들을 접해왔다고 생각한다.
그중에는 한국에서 아주 잘 알려진 어른들도 계시고, 아주 작은 시골교회의 목회자나 교회 리더들도 계신다. 교단에서 일을 하시거나 선교단체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많이 만났고, 심지어는 목회를 하다가 그만두신 분들도 좀 알고 있다.

내가 만나본 경험이 얼마나 일반적이냐 하는 것에 대해 당연히 여러가지 평가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만나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내가 만나본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들이 받아왔던 신학과 신앙 교육 자체에 한계기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지나치게 편행되고 치우친 신학을 가진 사람들
자신의 신학과점 이외에다른 관점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새롭게 devleop된 다양한 신학적 관점과 개념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성장해가는가 하는 것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그저 ‘권위’가 주어지고 ‘리더’로 세워진 경우가 정말 많다고 느낀다.

What’s wrong? (4)

가설: 목회자와 교회 system이 해야하는 역할은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접하는 이런 필요들을 모두 system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럴수도 있다.
결국 자신의 신앙에 대한 책임을 대부분 자신이 져야한다는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내가 이 사람들을 돕는건 뭐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냥 성경공부를 하는거다.
성경 말씀을 펴놓고 한구절 한구절 함께 보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작업이다. 그러면서 내가 했던 생각들과 경험들을 나누기도 하고, 제안을 하기도 한다.
아니, 이렇게 성경공부하는게 뭐 그렇게 독특한 필요인가?
이건 오히려 이런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독려를 해서 함께 하자고 해야하는것 아닌가?

그리고, 앞글에서 이야기한것과 같이,
이런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이로 소수라 하더라도 전략적으로 이런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더 잘 독려해서 건강하고 튼튼한 신앙을 갖도록 해야 system이 건강하고 튼튼해지는 것이 아닐까.



What’s wrong? (3)

가설: 내가 접하는 사람들이 좀 독특한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교회 system이 채워주지 못하는 need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렇게 별나게 무언가를 더 추구하지 않는다. – 그건 사실은 비극이다.
대형교회에 아무 생각없이 다니는 대중을 생각해보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접하기에는 그렇게 생각없는 대중으로 교인들을 대하는 교회의 system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신앙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떠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는 사람들은 어떤의미에서 제대로된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리더십을 support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잘못된 교회의 system과 비뚤어진 목회자들이 있는 교회가 건강하게 바로잡히고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개선될수 있는 resource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이렇게 system 안에서 resource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결국 이들은 system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고 system에 대해 비관적이거나 무관심한 사람들로 남게 된다.

그러면 결국 system은 자정능력이나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리더가 manipulate하기에 좋은 대중만 남게 되어버린다.
사실 지금 많은 교회에서 발견하게 되는 현상이다.

What’s wrong? (2)

스스로를 성경의 수퍼 전문가인냥 이야기하는 목회자들은 이 사람들에게 왜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건가? 목회자가 남아돈다고 다들 난리인데.

  • 몇가지 가능성내가 접하는 평신도들의 이런 필요가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다. 실제로 내가 접하는 사람들은 아주 독특한 그룹의 사람들일 뿐이다.
  • 목회자와 교회 system이 해야하는 역할은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접하는 이런 필요들을 모두 system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사실상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적절하게 훈련받지 못했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접하는 이런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 줄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목회자들과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리더들이 받게되는 신학교육과 신앙교육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
  • 목회자의 자질의 문제이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그룹의 영적 리더십을 감당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그룹이건간에 리더가 되는 것은 리더가되는 기본적인 자질이 있어야 한다. 지적, 정서적, 육체적, 그리고 목회자의 경우에는 영적 자질까지도.
    그러나 지적 능력이 되지 않거나 정서적으로 준비되지 않는 사람들이 목회자가되면 그 사람들을 교육시킴으로써 리더로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 기독교 신학의 문제이다.
    현대 사회가 급격히 변해가면서 복잡하게 변하개는데 현대 기독교의 신학은 복잡한 세상을 제대로 해석해낼 능력을 갖지 못했다.
    현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패러다임 자체가 복잡한 세속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평신도의 상황을 해석할 방법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 속에서 아무리 뛰어난 목회자라도 평신도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 대부분의 교회와 상황의 문제다. 현재 교회라는 상황,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어떤 독특한 문화가 있고 그 안에 있는 목회자를 포함한 교회 리더들이 그 속에 갖혀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그 밖을 바라보기 어렵게 되어버렸거나, 혹시 그 밖을 바라볼 수 있더라도 그것으로부터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렸다.
  • 기타 다른 문제들…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문제들이 있을텐데…
    혹시 글을 더 써나가면서 생각이 날지도…독자들도 좋은 생각들을 나누어주시길….

다음 몇번의 글에서 이 내용들을 조금씩 생각해보려고 한다.
문제의 근원을 딱 한가지로 규정하는 것은 어려울수도 있을테고, 부정확한 진단이 될수도 있겠다. 그리고 여러 원인들은 서로 그 내에서 다시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엮여 있을 수도 있겠고.

그냥 성경공부를 하면서 한편 이렇게 성경공부를 참여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이 너무 짠하고, 그래서 열심히 내가 준비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답답함과 분노가 올라와서, 정말 정리가 충분히 잘 되지 않은 글들을 더 써보려 한다.

What’s wrong? (1)

작년 초에 온라인으로 성경공부나 다른 강의들을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하고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교회 사람들, 코스타 간사들, 이렇게 저렇게 만난 사람들 해서 또 다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현재는 두개를 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하나를 더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놀라운건, 작년 말에 빌립보서를 교회와 코스타 간사그룹과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그 주변의 사람들이 나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서…
이번에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우리는 큰 교회가 아니니까, 교회 그룹에서 잘하면 3~4명과 함께 하게 되겠다고 생각했고…
작년에 빌립보서를 마치면서 함께 공부했던 코스타 간사 그룹에 아쉬워하는 분들이 좀 있어서 어떻게든 필요하면 뭐든 하겠다고 offer를 했었다.

3~4명짜리 그룹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교회 그룹은 13명짜리 큰 그룹이 되어버렸다.
교회 소그룹인데 교회 밖에서 신청해서 하겠다는 분들이 더 많다.
내가 아는 아무개가 있는데 그 사람도 함께 해도 되느냐..는 식으로 문의가 좀 있어서 계속 더해지다보니 큰 그룹이 되어버렸다.

느끼는건….
이렇게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들의 필요가 각자 속한 교회나 그룹에서 채워지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나 같이 비전문가가 하는 성경공부에서라도 뭔가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전혀 한번도 만난적도 없는 내게 연락을 해와서 함께 해도 되느냐고 하는 것이겠지.

작년 연말에는 교회에서 ‘목장 모임’을 인도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좀 도움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다른 교회 다니는 몇분이 내게 물어봐서 zoom으로 소그룹 인도와 소그룹 dynamics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편 화가 나기도 하고 도무지 이해가 안되기도 한다.
나는 나름대로 꽤 바쁜 직장에서 죽어라고 일하면서 짜투리 시간에 조금 혼자서 성경공부하는 완전 비전문가이다.

왜 사람들의 필요가 나 같은 비전문가를 통해서 채워져야 하는 걸까?
왜 system은 작동되지 않는걸까?

단순히 요즘에 겪은 일들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지난 20여년동안 늘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