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13 새해 바람 (1)

1.

내가 어릴때,

어른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네 새해 결심이 뭐니’ 라고 묻는 것이 정말 싫었다. ^^

왜냐하면, 나는 새해 결심이 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해가 무슨 big deal이라고… 뭐 그런 생각이 늘 있었던 것 같다.

2.

내 유학 시절,

참 일이 잘 안풀려서 힘들어 하던중에, 나는 일종의 게임중독 증상을 보였었다.

몇년 동안은 계속 해서, ‘게임을 줄이자’, ‘게임을 하지 말자’는 것이 내 새해 결심이었다.

물론 그 새해 결심을 ‘몇년간’ 해야 했다. 한번의 결심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몇년에 걸친 그 결심은 결국 내가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3.

‘결심’이라는 말이 사실 좀 마음에 걸린다.

이 시리즈의 글에서 좀 언급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나는 요즘 하나님께 더 많이 의지하고 passive해지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런의미에서 내가 결심을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시는대로 내가 가고자 하는 마음이 큰데… 이 ‘결심’이라는 단어가 그런의미에서 영 불편한 것이다.

어차피 내 의지적 ‘결단’의 부분이 분명 있는 것이니까 ‘결심’ 이라는 표현을 써 볼수도 있겠지만, 올해는 ‘바람’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4.

1월 한달중, 많으면 3주간, 적어도 2주간은 ‘해외’에 있게 될 것 같다.

예전에는, 출장중에 블로깅을 좀 쉬었지만, 그렇게 하다간 너무 많이 글쓰기를 멈추게 될 것 같아,

가능하면 출장중에도 시간이 나는대로 글쓰기를 계속해보려고한다.

자, 이제 새해다!

올해의 마지막 포스팅

지난 한해,

이제 이거 그만 써야겠다… 생각했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제가 뭐 대단한 통찰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글을 맛갈나게 쓰는 글쟁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작은 웃음을 주는 contents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뭐하자고 이걸 매일 쓰고 있나 싶어서 말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이렇게 쓰는게 쓰지 않는것 보다…

무엇보다 제 자신에게 유익이 있는 것 같아 계속 더 하기로 했습니다.

내년,

이제 한해동안 100,000 마일씩 비행기타고 날아다니며,

얼마나 글을 올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하는데까진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다음주부터는 저도 ‘방학’에 들어갑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새해들어 다시 글을 쓰기로 하겠습니다.

쉬는동안 생각도 가다듬고 묵상도 기도도 하면서 시간을 좀 보내려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요즘 제 생각과 마음을 이끄시는 형태가 좀 심상치 않습니다. ^^

이 별볼일 없는 삼류 블로그에 그래도 가끔씩 와주셔서 읽어주시고, 생각을 나누어주시는 분들 모두에게,

소망의 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의 평강이,

이 성탄의 계절에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목수의 졸개 올립니다.

나를 비정치화하기?

어제는, 11월 1일 이후 처음으로 아침 운동과 말씀묵상을 다 빼먹었다. -.-;

도저히 그럴 기운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약간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2003년 ALCS에서 Boston Red Sox가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 홈런을 맞고 Yankees에게 졌을때도 그렇게 멘붕이 왔던 것 같다. ^^

혹시 그저 정치를 운동경기 보듯 그렇게 격렬하게 응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나님에게 걸어야할 소망을 정치에 거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한동안 내가 나 스스로를 비정치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스려오던 차였는데,

요 며칠 그 balance를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다시 비정치적(혹은, 덜 정치적이라고 해야할까)이 되기 전에 다음의 한꼭지 글만 남겨야 겠다.

—

이번 선거에서 또 다시 (극우-비상식-수구) 팀이 (우파-상식-보수) 팀을 꺾고 승리를 거두었다.

(한국의 민주당을 좌파라고 하시는 분들은 정말 공부를 좀 하셔야 한다. 쩝… 그 얘기를 정말 좌파가 들으면 몹시 기분나빠할거다.)

합리적인 건강한 보수는, 비합리적인 수구세력에 역부족이었다.

한국 사회와 정치는 합리성을 누릴 만한 여건이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다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래도 천천히 역사는 건강한 방향으로 이동해가고 있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그렇지.

1992년 대선 : 비상식-수구파가 분열했음에도 비상식-수구파가 승리 (정주영이 나왔었지 그때…)

1997년 대선 : 비상식-수구파가 분열했고 (이인제; thank you), 그나마 독재잔당(JP)과 연합을 해서야 겨우 상식-보수파가 이겼음.

2002년 대선 : 비상식-수구파의 일부 (정몽준)와 손을 잡고 겨우 겨우 승리 (하루 전에 깨지긴했지만서두)

2007년 대선 : 이때는… 뭐 온 나라가 살짝 맛이 갔었음. -.-;

2012년 대선 : 비상식-수구파와 손잡지 않고서도 48% 득표에 성공. (또 다른 상식-보수파인 안철수와 손을 잡고)

자, 이런 추세라면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은가!

생각 같아선 극우-비상식-수구-친일-독재 이쪽 세력을 화악~ 밀어버리고 역사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지만, 사실 그렇게 하면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친다.

당장 우리의 부모, 친구, 선배 등등이 다치고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주 천천히 가는 것이 긴 친일-전쟁-독재의 상처에 힘든 우리 백성이 또 다른 상처 없이 진보해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독재자의 딸이 한번 더 정권을 잡아야만…

그 독재자에 대한 막연한 비현실적 환상이 결국 깨지고 move-on 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

제발 이럴때… 교회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건데…

사실 그게 더 걱정이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15)

내가 하나님을 깊이 경험했을때를 돌이켜보며 list해보면 다음과 같은 때였다.

한국 대학원 시절, 불합리한 대우를 경험하며 힘들었을때,

한국 직장 생활 속에서 직장 상사와 맞지 않아 갈등할때,

첫번째 유학 시도에 실패했을때,

유학중 지도교수를 여러번 바꾸면서 장래가 불투명했을때,

졸업 후 job이 잡히지 않아 어려웠을때,

start-up company라는 환경에서 다음달 월급이 나올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 속력으로 돌진해야 했을때…

그런데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보면,

하루에 15시간씩 실험실에서 보내며 일하면서 일주일에 성경공부 4개씩 했던 때도 있었고,

상황이 어려워 거의 depression의 초기증상을 보이며 힘들때 K 사역을 감당해냈던 때도 있었다.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어 허덕거리며 사람들을 섬겨보겠다고 하기도 했었다.

상황은 좋지 않고, 내 안에 passion은 불타고, 그렇지만 내 부족함은 답답하여 힘들고, 정신없이 열심히 살지만, 반복해서 내 한계와 부족함에 실망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하늘로 눈을 들어 기도하면 하늘이 열리는 경험을 했던 것 같다.

A사에서 일하면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될까.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14)

K 운동을 섬기는 것과 관련해서는…

대충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3년전 소위 실무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긴 했지만,

K를 섬기는 간사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은 여전히 ‘권간사님’ 이다. 

내가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들에게서 그렇게 불리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특히 K 간사들중 어떤 사람들이…

나를 너무 잘봐주고 있다는 부담을 많이 갖게 되었다.

뭐랄까… 음… 좀 심하게 말하면 우상화 비슷하게 되어버렸다고 해야할까.

도대체 K 간사들과 이야기하면서 누가 내게 딴지를 걸거나 반론을 거는 것을 최근에 별로 경험하지 못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내게 해답을 찾으려고 온다.

내가 무슨 insight를 줄 것으로 expect 하면서 나와 대화를 나눈다.

그렇다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 자꾸 왜곡된 방식으로 과장되기도 하고…

뭐 하여간 정말 이상하게 사람들이 나를… 실제 내 모습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아, 이건 아닌데.

A 사의 offer를 앞에두고,

여러가지 여행 때문에 혹시 K 사역을 active하게 섬기는 일이 어려울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제가 A 사의 offer를 accept 해도 되겠습니까. K 사역을 위해서 그것이 괜찮은 선택일 수 있겠습니까…

선배님들께 여쭈어 보았다.

선배님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시면 그걸 accept할수도 있겠다고들… 뭐 대충 그렇게들 approve해주셨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래….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좀 후배들에게 과장되어 있는 그림이 흐릿해지는 것이 필요할지도 몰라.

혹시 내가 여름에 휘튼이나 테일러에 가지 못하게 되고… 간사들 모임에, 주제 discussion meeting에, 사역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일수도 있겠다…

음…

뭐랄까…

웬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A 사의 offer를 accept 했다.

글쎄…

만일…

정말 만일…

내가 이번 여름 휘튼/테일러에 갈 수 없게 된다면…

아마 하루에도 몇번씩 그쪽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로 기도할 것 같다.

그렇지만 내 이 결정이,

K 운동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일부가 되길 기도한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13)

내가 A 사에서 하는 일은,

A사가 실제로 만들어서 2년쯤 뒤에 수백만명의 선 세계 customer가 사용하게되는 product의 한 부분을 책임지는 일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확 얘기할수도 없고… 쩝. 하여간…)

그렇다보니, product cycle에 따라서 일이 바빠지면 정말 정신 없이 바빠지기도 하고,

아시아에 있는 어떤 공장에서 며칠씩 밤샘을 하게될수도 있다.

일년에 100,000 마일 비행기 타는 것은 아주 가볍게 넘긴다고들 한다. -.-;

이런 일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내 일정을 flexible하게 조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A 사로 옮길 것을 고민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있었지만,

이런 lifestyle과 관련해서 내 마음에 걸렸던 것 가운데 하나는, K 운동 이었다.

내 30대는 정말 K에 헌신해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섬겼다.

96년에 처음 참석한 이후로, 98년 지도교수가 안보내줘서 못한거 한번 빼놓고는 정말 열심히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그런데,

A 사에서 이 일을 하다보면, K 에서 이렇게 섬기는 것이 어렵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음… 이걸 어쩌나.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12)

해적선 선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민우맘’의 댓글에, 바로 답을 쓰려다가…

그래도 여기 이렇게 좀더 잘 풀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솔직히 말해서,

A사가 business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다.

벌써 내가 하고 있는 일들 가운데에는, 그걸 ‘죄’라고 여길 일은 아니지만… 그냥 원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도록 요구받는 것도 있다.

그런데,

왜 A사에 들어가서 일하느냐고?

음… 솔직히 말하면,

A사에서만 내게 월급을 주고 쓰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

예전에,

내가 기독교 정복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때엔,

그러니까 나가서 해적선을 거부하고 그것을 바꾸어 개혁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그 관점에 대해서는 몇가지의 어려움이 있다.

첫째로, 해적선을 개혁해 낼만한 힘이나 실력이 내게 없다.

사실 이게 내가 P사에 있으면서 난관에 부딛혀가며 느낀 것이다.

정말 실력이 부족해서 좋은 뜻을 펼치는데 실패했다고 느끼고 있다.

정말… 내가 실력이 출중해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system을 개혁할 힘이 과연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나 회의가 많이 생겼다.

그래서 실력을 기르기위해, market place의 language를 배우고, 그 business 방식을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생겼다.

둘째로,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해적선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체제가 해적선이라고 한다면… 그럼 그 대안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음…

사실 나는 그 대안으로 P사와 같은 것을 시도해 보았는데, 내안에서 충분히 소화되고 정리되지 않은, 설익은 논리와 생각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냥 좋은 의지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 셈이다.

나 같은 사람은 그래도 상황이 좀 더 낫지. 

그저 악덕기업에서 일하는 것 이외에는 생계를 이어갈 방법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세상엔 참 많은데… 그 사람들에게 그 해적선을 거부해라, 해적선을 뒤집어 엎어라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배부른 사람들의 무책임한 언사가 아니겠는가… 뭐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세째로, 좀 더 근본적인 생각인데,

해적선이라는 system을 바꾸는 일을 하는 주체가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 system을 바꾸는 일은 사람에게 주어진 일이 아닌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물론 ‘선지자적 비관론’같은 입장을 가지고 꾸준히 끊임없이 추구하는 가치가 있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네째로, 지금 이 시점에서, 

여러가지 정황등을 살펴 보았을때,

하나님께서는 내게 system을 바꾸는 일 보다는,

그 system을 배우고 그 system 안에서 배우도록 인도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강하다.

market place의 language를 배우기에는…

A사가 참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참 겁도 많이 나지만.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11)

P사를 떠나기 몇주전,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본문이 아침 말씀 묵상 본문이었다.

영광스러운 성전을 봉헌하는 본문…

참 멋지고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그 성전을 짓기까지 준비하는 과정의 본문으…

아… 정말 지루했다!

재료는 뭘쓰고, 길이는 어떻게 하고, 배치는 어떻고… 무슨 재료는 어디에서 수입해오고…

아니, 왜 이리 과정이 길어?

그런데,

그 본문을 가만히 곱씹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생각해보니, 여기 성전을 짓는 이 작업은 engineering work이구나.

civil engineering 이라고 할 수 있을까.

허, 참… 

그 시대나 요즘이나 엔지니어가 하는 일은 아주 tedious한 노가다가 많군 그래.

그런데,

좀 더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의 정말 많은 일들이 그렇다.

무엇의 열매를 보는 일은 아주 짧은 순간이고, 그 과정은 매우 tedious하고 길다.

그 과정 속에서 master architect의 plan을 신뢰하고 따라가는 긴~ 여정 속에서 성실하고 신실함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닌가 반성해본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은 금방 사람들이 변하는 것도 보고 가시적으로 내가 섬기는 그룹이 커가는 성과도 보니까 좋은데… 막상 내 직업에서 벌어지는 engineering work은 하나님나라와 관련해서 가시적인 성과가 보여지지 않네. 에이, 당장 성과가 좀 더 보이는 일을 더 하자. 성과도 안보니까 재미도 없다…

말씀사역이 정말 진짜 ‘하나님의 일’ 인것 같잖다. 뽀대도 나고. 기도제목 내기도 좋고.

tedious한 일 속에서,

결과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과정을,

이 모든 plan의 기획자를 신뢰하고 가는 것을 더 많이 배워보고 싶다.

그게 marketplace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10)

늘 내 후배들에게,

하나님 나라 백성이 살아가는 삶의 길의 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것은 몇가지 난관에 봉착했다.

첫번째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그것이 과연, 하나님 나라의 방식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깊은 회의가 있다.

물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의 삶의 모습이 타산지석이 되기도 하고, 격려나 위로 혹은 insight를 줄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의 모습이 어떤 소망을 주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걸까 하는 것에 대해 정말 깊은 회의가 생겼다.

두번째로,

내 삶의 모습이 내 후배들에게 해석 가능한 방식으로 transferrable할지 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다.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내 삶의 context가 다른이들과는 다르기 떼문에… 특별히 ‘후배’들의 context는 내 context와는 작게는 십년 크게는 몇십년의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소위 ‘옛날’의 경험이 후배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자신이 없다.

삶의 모델이라는 것이 어차피 context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신앙의 선배의 모습을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더 확실한 것이 아니겠는가!

가령 예를 들어서, 

625전쟁 직후 가난 속에서 신앙을 지켜온 신앙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도 있고, 존경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 선배들의 삶의 터전(context)가 지금 내 삶의 터전(context)와는 너무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분들의 삶의 방식을 내 삶의 방식으로 가져오는데에는 많은 해석과 번역작업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게 더 큰 문제는,

내가 워낙 독특해서… 내 case를 일반화하기 많이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생각, 경험 등을 일반화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세번째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삶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 땅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야할 모범이 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꾸짖고 격려하며 함께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사람을 모델로 두는 것에는 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벌써 10여년전의 일이지만.. 내가 신앙의 영웅으로 생각하는 김인수 교수님께서, 보스턴에 오셨을때, 그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그분께 많은 질문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ride를 드리면서… 이런건 어떻게 생각하시냐, 이런 문제는 어떻게 보시냐… 등등.

그런데 그중 아주 인상깊은 그분의 말씀은… 

‘나는 간증하기를 즐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삶 속에서 워낙 힘든 경험을 뚫고 살아온 스토리가 많아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자칫 사람들이 나만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P사에 있으면서,

이렇게 하면서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는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만…

이제 A사에서,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속에 나를 던져넣어… 내 스스로 모델이 되려하지 말고 동지가 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shallow한 사람이 무슨 role model 어쩌고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니었을까.

내가 A사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며 했던/하는 생각들 (9)

내가 20대 초반에,
나는 내 ‘선배’들에게 거의 분노 했었다.
그것은,
내가 보고 따를만한 모델이 되어주는 선배가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고등학교도 3기이고, 대학교도 2기 이므로,
선배가 적었던 것은 당연했지만…
내가 따를 모범이 되는 선배가 없다는 불만은, 단순히 그저 내 고등학교, 대학 선배중에 롤모델이 없다는 불평 이상의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책을 통해서나, 글을 통해서, 혹은 강의/설교/강연을 통해서… 하다못해 소문을 통해서라도…
아, 정말 이 사람이라면 내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존경할만한 분들이 많이 계셨지만…
다소 낡은(?) 신학체계 속에 머물러 계신다거나,
이원론 적인 삶은 사신다거나,
지나치게 교조주의적이거나,
나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길을 가고 계신 분들이었다.
때로, 어떤 선배님을 찾았다 싶어 그분의 생각을 깊이 따라가다보면,
아… 여기까지가 이분의 한계 이구나 싶어 실망하곤 했었다.
그런 분들로부터 파편적으로 어떤 부분을 배우긴 했었지만, (그리고, 세월이 지날수록 그분들로부터 배웠던 그 파편적인 것들이 참 감사하다!) 내가 따라야할 모범으로 생각하기엔 늘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20여년 전에 굳게 결심했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내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내가 걸었던 길을 통해서 후배들이 통찰과 깨달음을 얻게 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그런데, 

최근 1-2년 새에,

내 그런 자세에 깊은 회의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