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마음이 흔들리다

지난주 이틀동안 산호세에서 있는 학회에 다녀왔다.
나는 가서 뭐 논문 발표하는걸 듣거나 그럴 생각은 없었고, 가서 함께 일할 수 있는 회사들을 좀 찾아보기 위해서 갔었다.

그런데 거기 가서 보니, 내 옛 직장동료들이 많이 와 있었다. (hp 시절의 동료들)
대부분 흩어져서 있지만, 아직도 가끔씩 서로 연락도 하고 가끔 만나기도 하는 가까운 친구들이다.

그중,
내 보스였던 사람이 Amazon의 lab 126라는 Amazon의 hardware 연구소에 가 있다. 그리고 그 사람밑에 내 옛 직장동료가 있다.
말하자면 그렇게 둘은 옛날에 함께 일했던 것 처럼 보스와 부하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거기서 그 옛 동료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나보고 자기쪽에 와서 일하자고 꼬신다. -.-;
옛날 처럼 함께 같이 일해보자고.
얘기를 들어보니 하는 일도 꽤 재미있을 것 같이 들리기도 한다.
게다가 함께 죽이 잘 맞았던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는 장점도 있고.

사실 지금 내가 있는 이 직장에서 나는 비교적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 정말 잠깐 마음이 흔들렸었다.

이 직장에 온지 이제 갓 1년이 되었는데 지금 직장을 옮길 가능성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서두…

재미있는 경험

지난달, 갑자기 영어가 잘 안되었다.
그래도 회사에서 이런 저런 일로 토론할때 영어 때문에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못하는 일은 별로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지난달에는 영어가 잘 안되었다.
말 하려고 하면 단어가 생각이 안나기도 하고, 문법이 틀리는 말을 자꾸만 하고… everybody are happy 뭐 이런 식으로.

아니 내가 왜 이러지.
갑자기 왜 영어가 안되지?
이상했다.

그러던중 내가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가 지난 여름부터 몇달동안 KOSTA 집회에서 녹음된 강의와 설교들을 많이 들었고, 운전하거나 운동하면서 듣는 podcast등도 한국어로된 것들을 많이 들었다. (특히 최근에 발견한 어떤 강의와 podcast 몇개가 재미있어서 그걸 진짜 많이 들었다. 종교와 철학에 대한 살짝 깊은 내용의 강의들이 좀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 한국어로 된 것을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많이 들었던 것은 미국에 오기 전이었던 것 같다.
혹시 그래서 내가 갑자기 영어가 이렇게 안되는 건가?

해서,
운전하거나 운동할때, 집에서 시간이 남을때 듣는 강의자료나 podcast 등등을 대폭 영어로 바꾸었다.

그랬더니만…
그렇게한지 두주정도 지나니 영어가 다시 된다!
허걱… 이것 참 신기하네.

철학이나 종교등에 대한 살짝 심도있는 논리전개와 토론등등을 듣다보니,
아무래도 내가 생각을 더 한국어로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주로 많이 보고 들었던 것이 한국의 음악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면 어땠을까?

대신 이렇게 되니,
한국 회사와 conference call을 할때에도 핵심 단어들은 주로 영어로 이야기하게 되고, 한국어 문장을 하는데도 완전 영어문장 번역체로 많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는 내 스스로를 bilingaual이라고 당연히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나를 ‘미국에서 자랐다’고 여기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걸보면 그 사람들이 느끼기에 내 영어가 아주 많이 서툴지는 않은 수준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렇게 약간 환경을 바꾸어서 금방 내 언어의 ‘mode’가 전환되는 것을 보면, 여전히 내게 영어는 많이 노력해야 유지되는 skill인 듯 하다.

재미있는 경험.

자랑스러운 역사

나는 95년에 미국에 왔다.
대학원으로 유학을 왔는데, 첫 학기에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영어수업을 들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약간 수준이 더 높은 ‘고급’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말도 잘 못하고 맨날 버벅대고… 왕 고생했다.

자신이 모국에서 겪었던 ‘역사적 사건’에 대해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내가 대학교 1학년때 한국에서 시민들의 봉기로 인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영어가 잘 안되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표현과 단어를 써가면서 그걸 했다. 정말 떠듬떠듬…

그런데 참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발표했던 내용이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반에는 독재정권이 있는 남미에서 왔거나, 천안문 사태를 몇년전에 치른 중국에서 온 친구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특히 그중 중국에서 온 어떤 친구는 내가 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나는 정말 영어를 잘 못해서 그 친구와 더 깊이있는 토론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 친구나 그 친구가 아는 사람들이 천안문 사태와 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실패한 민주항쟁.

나는 그때야 깨달았다.
시민의 힘으로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일은 세계에서 참 보기 드문 일이라고. 실제로 세계의 많은 지성인들은 그런 일이 자기 나라에서도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그것이 그저 바람으로만 그치고 있다고.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한편 참으로 부끄럽지만… (박근혜-새누리를 찍은 사람들은 회개할진저)
한편으로는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결코 지워지지 않는 민주의식과 자부심을 심어주게되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를 해본다.

참으로 부끄럽고, 화나고, 욕 나오고, 답답한 상황이지만,
이것이 어떤 소중한 열매로 맺히도록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Romans 13 – Stanley Hauerwas

나는,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목소리를 좀 더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지금 이런 정치적 chaos의 상황에서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저 어떤 특정 정치세력이 이야기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참담한 상황이다.

공정한 경쟁?

1.
어제 밤 뉴스를 보니 한국에선 수능 시험이 치루어졌다.

2.
내가 대학을 갈때엔 하실 ‘학력고사’라는 걸 봐서 그 한번 시험이 모든걸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학을 했었다.
(아… 그나마 나는 그 학력고사도 보지를 않았지만서두… 쩝.)
필기시험 320점에 체력장 20점 점수를 가지고… 순전히 그것만 비교해서 학생들이 대학을 갔었다.

3.
아주 편협하고도 비정상적인 방식이었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로 모든 수험생에게 ‘공정하게’ 주어지는 시험의 기회였다.
게다가 우리 때는 학력고사가 꽤 어려워서 만점자가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가… 아니면 한두번 나왔던가… 뭐 그런 수준이었다.
그리고 나때는 사실 과외 금지 시대여서, 돈 많다고 과외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사실 그래서 나는 과외라는걸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다. 참 감사한 일이다. ^^)
그러니 어찌보면 더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실제로 언젠가 인터넷에서,
학력고사 (혹은 수능)이 돌이켜보면 내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공정하게 경쟁했던 단 한번의 기회였다고 회상하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이 공부를 잘 못했던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했었다. 비록 자신은 공부를 못해서 학력고사 점수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경쟁은 공정했었다고.

4.
사실 그렇다. 사실 세상을 살다보면 경쟁이 결코 그렇게 공정하지 않다. 많이 억울하기도 하고 많이 불합리하기도 한 것을 견디어가며 경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학력고사로 경쟁하는 것이 다시 돌아가서 추구해야할 모습일까. 공정한 경쟁… 이것이 해결해야하는 모습일까.
흙수저, 금수저 이런 이야기 나오는 것도 결국 경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비판하는 말이므로… 경쟁이 공정하기라도 하면 좋겠다고… 정말 세상이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외치는 소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5.
그러나 또 한편…
그렇게 ‘공정한 경쟁’을 이야기하는 세상은…. 그 자신의 삶의 무게를 그 ‘개인’이 짊어지도록 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공정한 경쟁에서 낙오하거나 패배하면 그 쓴 열매 혹은 부담을 그 개인이 져야한다고 이야기하는 세상이다.
글쎄… 나는 그런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일까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많다.

공정한 경쟁은 사회정의의 이슈이므로 잘 갖추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겠으나,
공정한 경쟁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보는 것은 약자의 무거움을 그 약자 개인에게 모두 감당하게 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6.
나는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의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복음이 이야기하는 중요한 가치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Obama가 늘 많이 이야기하는 것 처럼, I am my brother’s keeper, I am my sister’s keeper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름답고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공정한 경쟁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7.
공정한 경쟁의 그림자에 생기는 문제를 사랑이 해결해줄 수 있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이 해결해주어야하는 사랑의 그림자는 없다.
그러므로, 더 깊이 추구하고 바래야하는 가치는 공정한 경쟁보다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8.
한국의 고3들..
그리고 지금 미국에서 대입을 치루고 있는 우리 민우를 마음에두고,
문득 이런 공정한 경쟁과 사랑을 생각해본다.

교회 자랑 하나 더

내가 기억하기론 3년만에 처음으로 목사님께서 휴가로 주일을 비우셨다.
당연히 아무일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목사님 잘 다녀오세요~ 하고 보내드렸는데,
가시고나서 바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폭탄이 터졌다. ^^

이걸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완전 멘붕 상황.

이럴때 교회에서 함께 우리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런 걸 좀 얘기라도 해봐야 하는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회의 리더 형제 자매들이 뚝딱뚝딱 하더니만 예배시간에 함께 낭독할 내용을 함께 정리해서 만들고,
기도도 상황에 맞게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침착하게 잘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었다.

사실 목사님께 연락을 드리고 상의를 드릴 수도 있었겠지만,
목사님께서 ‘휴가’이시니까, 확실히 쉬시도록 해드렸던게 잘한 일이었지.

그리고,
뭐 하나의 씨앗교회의 ‘흔한’ 평신도 한 사람이 이번주에 설교했다. ^^
지준형제는 늘 그렇듯, 야구모자 쓰고 약간 면도 안한듯한 수염을 한 얼굴로 앞에 서서 설교를 했다.
참… 참…. 참…. 좋은 설교 였다.
http://www.podbbang.com/ch/6931

목사님 안 계실때 너무 교회가 잘 돌아가면 목사님께서 섭섭해하시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긴 했지만
목사님도 이런 교회를 자랑스러워하시지 않을까 싶다. ^^

미국의 정치 상황에 관해서, 하나의 씨앗교회의 고백과 다짐

지난 주일,
미국의 대통령 선거 충격을 맞이하면서…
우리 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함께 낭독하고 기도하였다.

===

1.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시다. 이 땅에서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우리가 보이는 방식으로, 때로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심을 믿는다.

2.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소중한 하나님의 도구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정치행위는 건강한 신앙행위의 일부이다. 좋은 지도자를 뽑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건강한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우리의 세상을 향한 책임이다.

3. 그러나 정치가 모든 것의 궁극적 해결책이라는 생각은 거부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정치를 포함한 여러 방편을 통해서 펼쳐지게 되고, 정치는 다양한 하나님의 도구 가운데 하나이다. 궁극적 소망을 하나님이 아닌 정치에 두고자하는 유혹을 우리는 뿌리치고자 한다.

4. 우리는 때로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특정한 정치적 세력의 어떤 정책이나 사람들을 기꺼이 반대하거나 찬성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복음적 교회가 어떤 특정한 정치적 세력과 결합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고 믿는다. 우리의 신앙은 정치적 견해보다 더 높은 개념이다.

5.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를 치루면서 드러난 미국내의 사람들, 미국내 한국인들의 분열과 반목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지지하지 않은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기울이고자 한다.
변화에 대한 반감, 경제적 압박에 대한 분노, 여러가지 대내외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사람들에대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포용하고자 노력한다.

6. 선출된 정치지도자들이 하나님 통치의 건강한 수단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되,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나 모습에 대해서는 강하게 저항하고 반대한다. 무조건 반대나 무조건 찬성의 진영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통치가 제대로 펼쳐지는 복음의 논리로 우리 스스로를 무장한다.

7. 혹시나 앞으로 벌어지게될 수 있는 약자에 대한 억압과 불의함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그러진 정치 시스템이나 잘못된 정책으로인해 벌어지게되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 주변인, 이민자, 난민 등등을 예수의 사랑으로 섬기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복음의 정신이라고 믿는다.
아주 작은 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한 말씀을 기억한다.

8. 우리는 결코 냉소적이 되지 않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심을 신뢰하기에, 그분의 그 통치하심의 일꾼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 큰 영광이자 기쁨이 됨을 고백한다.

한국 정치 상황에관하여, 하나의 씨앗교회의 기도

지지난주 주일,
하나의 씨앗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함께 드렸다.
(내가 contibute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우리 교회의 리더 형제 자매들이 목사님과 고민해가면서 만든 기도문이다.)

===

1. 공의와 정의를 구함; 악에 대한 분명한 심판이 있음을 선포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당신은 세상을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저희가 그 안에 공존하며 서로에게 공의를 행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의 마음을 무너지게 합니다.
세월호 안에서 숨 막혀 죽은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는 현실,
그리고 지금 드러나고 있는 한국 정치의 믿을 수 없는 참담한 현실들 앞에서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합니다.

주님, 악함과 모순으로 가득 찬 이 사회에
주님의 공의와 정의가 회복되게 하여 주십시오.
어그러진 세상이 주님의 공의로우심 가운데 밝히 드러나게 하시고,
마지막에 있을 주님의 심판과 정의의 회복이 지금 이땅에 나타나게 해주십시오.

2. 사회 정의에 대해 무관심했던 우리의 개인적 회개, 행함이 있는 신앙으로 살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너무 나의 믿음으로만 제한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교회 생활 잘하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나 회개합니다.
겨우 내 주변, 나의 가족만을 위해 기도한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의 정의을 향하여 다시 눈을 뜨기 원합니다.
주님의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이 전달되는 통로로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로 눈 감고 귀닫지 말게 하시고
세상의 불의를 향하여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며
그 죄악들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타협하고 적당히 넘어가고 싶은 순간에도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사
우리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 앞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필요하다면 범죄를 저지른 다윗앞에 섰던 나단 선지자와 같이
불의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3. 한국 교회의 깨어있지 못함을 우리의 일로 여기고 회개

주님, 정부와 지도자들의 죄를 밝혀주심과 같이,
우리 모두의 어두움 또한 드러내 주시고 밝혀주십시오.

약한 자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교회를 세력화 하여 많은 사람을 소외 시켰으며 ,

자신의 이익을 모든 것의 기준 삼아,
불합리한 사회가 만들어져 가도 조용히 있는,
그런 한국 교회의 모습이 곧 저희의 모습입니다.

교회들이 깨어있지 못할때,
구조적인 악이 더 뿌리내렸습니다.

악의 참담한 결과들 앞에서,
저희 공동체가 함께 아파하며,
이 모든 것을 우리의 일로 여기며 회개합니다.

이러한 악을 고쳐나갈 힘이 저희에게 없습니다.
승리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깨우시고 이끌어 주십시오.

4. 온전한 하나님의 질서가 이루어질 날이 있음, 인내, 소망

하나님,
수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신뢰하던 것들이 무너지고,
수치스러운 기억들이 살아나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분노와 아픔을 주님의 긍휼 안에 품어주십시오.

지금은 희미하여도,
모든 악이 무릎 꿇는 그 날에 나타날
하나님의 온전한 심판을 기다리게 하소서.

주님,
세상의 권력으로 온전한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서있는 이곳에서 인내하며 땀 흘리며,
하나님이 이루실 그 나라를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민우에게 시위를 독려하다

미국 이곳 저곳에서 Trump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것이 선거 결과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고등학생들까지 가세해서 그런 시위에 동조한다니… 한편 기특하기도 하다. 🙂

민우가 어제 오후에는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같이 울었단다. -.-;
Overwhelm되었었다고…

그리고 민우 엄마는 오늘 진료를 했던 office 앞에 있던 고등학생 시위대를 만난 이야기도 해 주었다.

우리는 민우에게,
원하면 그런 시위에 참여하라고 적극(?) 독려를 했다.

그건,
그렇게 하는 것으로 인해 세상을 바꾸는데 어떤 도움이 된다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민우가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크게 한번 내보도록 해주고 싶었다.
필요하면 인터넷 어디에든 글도 쓰고, 가능하면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함께 그런 시위를 한번 주도해보라고 이야기도 해 주었다.

민우 사실 마음이 많이 여리고 외향적이라기 보다는 내성적인 편이기 때문에,
민우가 그렇게 시위를 주도하거나 그런 일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

그렇지만,
세상 속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이야기할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바람을 좀 넣어 보았다. ^^

민우가 어쨌든 자기 facebook에는 자신의 ‘분노’를 나름대로 일부 표출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만일…

만일,
지금 경제 성장률이 연 4%이고,
청년 실업률이 3%이고,
재정 흑자, 무역 흑자가 계속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졌다면….
그래도 사람들이 지금처럼 분노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문득 섬찟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