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화가 난다!

어떤때 약간 낮선 상황에서 낮선 사람들과 성경공부를 한다거나, 내가 무슨 이야기를 나눌때가 있는데…
어뗜 경우엔 그렇게 성경공부나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엄청 화가 날때가 있다.

요즘 KOSTA follow-up의 일환으로 열댓명의 신청자와 함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4주짜리 강의 패키지로 해서 나누고 있다.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냥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 그리고 성경에 아주 명확하게 잘 나와있는 이야기들. 하나님, 창조, 깨어짐, 죄, 십자가, 구속, 하나님 나라, 선교…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눈이 열렸다, 몇년동안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처음으로 복음을 듣는 것 같다…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아, 내가 개떡같이 이야기하는데 그걸 듣고 그렇게 반응해주는 분들을 만나면 눈물 쑥~ 빠지게 감사하다. ㅠㅠ 얼마나 목말랐으면 이런걸 듣고도 그렇게 감사해할까.

그런데 한편으론,
아니 몇년씩, 몇십년씩 교회에 다닌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에게 이런 기본적인 이야기도 안해주고 교회들은 도대체 뭐 한거지? 고작 4주짜리 40분 강의로 그래도 이 정도나 해결할 수 있는 걸 몇년 몇십년 교회 다니면서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니… 그게 말이되나?
정말 아주 심각하게 화가난다.

그러면서 한편 흠찟 놀라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내가 함께 지내며 여러가지로 말씀도 나누고 하는 사람들에는 그런 맹점이 있지는 않을까?
소름….

어쨌든 한번 더 남은 강의, 잘 준비해서 어떻게든 참여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게 해야겠다는 전의가 막 불타오르고 있는 중이다.

쓸데없는 관심, 쓸데없는 욕심

요즘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하루에 15시간은 족히 되는 것 같다. 대충 아침 7~8시부터 저녁 12시 정도까지. 중간에 한 두시간 정도 밥먹고 운동하느라 빠지고.
주말에도 최소한 하루 6~7시간 정도는 되는 것 같고

그러다보니 쓸데없는데 자꾸만 관심이 간다.

가령, 키보드를 조금 더 좋은 것으로 사고 싶은 욕심이 든다던가,
모니터를 조금 더 큰것으로 하고 싶다던가,
최근에는 의자를 조금 더 편한 것으로 바꾸고 싶다던가.. 뭐 그런.

지난 2월 이후 계속 집에 있으면서 그런 upgrade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키보드 try (책상 아래 설치해서 낮은 위치에서 타이핑 할 수 있는 것) 50불
기계식 키보드, 무선, 60불
컨퍼런스콜용 헤드셋 30불

이 정도를 썼으니 그럭저럭 이렇게 저렇게 나름대로 upgrade를 해 왔는데,
문제는 좀 비싼 것들에 눈이 간다는 거다.
모니터가 지금은 공짜로 득템해온 모니터 24인치 두개로 쓰고 있는데, CAD design file을 본다던가, vendor에서 보내온 왕창 큰 excel file을 열어놓고 볼때는 좀 더 컸으면 하는 바람이 살짝 생긴다.
기계식 키보드는 집에 있는 동안 한번 써보려고 ebay에서 싼걸로 하나 샀더니만…. 게다가 blue switch로! (아주 시끄러움) 가끔은 가족들로부터 구박을 당할때가 있다. ^^
그래서 이것도 뭔가 다른걸 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multiple device를 쓸 수 있는 좀 좋은 키보드는 100불이 넘는 것들도 많다.
의자는 비싼걸 사자면 한도 없고, 그래도 좀 review 좋은 편한 의자를 사려면 아마 100불 가까이 해야하지 않을까.

이런 것들, 사실 없다고 일 못하는 것도 아니고,
비싼 돈 들여서 그것들 사면 그 비싼만큼 생산성이 왕창 높아지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집에만 있고 계속 일만하고 다른거 뭐 관심 갖을 시간과 여력도 없으니…
당장 계속 쓰는 눈앞에 보이는 것 가지고 괜한 욕심을 부려보는 것 같다.

지금 생각으로는, 이번 주말에 작정을 하고 책상 주변을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해서 그나마 있는 것들로 더 깨끗하게 만들어보려고 한다.
괜히 돈쓰는 것 보다 주말에 시간 조금 더 써서 환경을 바꾸어 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

어둔밤 마음에 잠겨

예전에는 어둔밤 마음에 잠겨 찬송가가 사실상 KOSTA의 주제가 비슷하게 사용되었었다.

김재준과 문익환이 작사를 한 곡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일꾼을 부른다.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리.

몇가지 생각

1.
김재준, 문익환 목사님들이 작사한 것을 보수신학의 입장을 가신 사람들의 대중집회에서 불렀다는것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여러 상황은 예전으로부터 많이 후퇴했다.

2.
80년대 후반에는, 어쩌면 90년대 중반 정도 까지도 민족에 대한 개념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민족을 살리는 기독교.
나도 그것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했었고.
지금은? 그 민족에 대한 개념 자체가 매우 협소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 민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정의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복음과 같이 갈 수 있는 측면이 있지 않았나 싶다.

3.
암울한 상황에서 일꾼을 이야기함.
어떤 상황을 해결해나갈 헌신된 일꾼이라는 개념은 70년대, 80년대, 이른 90년대정도까지 매우 중요한 시대정신이 아니었나 싶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교육이라는 것이 결국 그런 일꾼을 길러내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었고.

지금은 그런 개념이 거의 해채되어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책임을 요청하는 것이 여전히 합당하지 않을까?
그게 엘리트주의가 되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자신을 던져 헌신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사람과 가치

뭔가 따라야할 가치를 찾는 사람에게 가치를 잘 설명해주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냥 가치를 잘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는 것은 그 가치가 사람에 담겨져서 present될 때이다.
다시 말하면 그 가치를 따르며 사는 사람을 보여줄때, 그냥 가치를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크다.

가치가 2차원적이라면, 그 가치를 담고 사는 사람은 3차원적이어서,
그냥 가치를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한 extra dimension을 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냥 가치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얻고 싶으면 위키피디아나 백과사전을 읽어도 된다.
그것으로 삶이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가치는, 사람에 담겨질때 비로소 강력한 설득력이 생긴다.

어제 점심시간에 운동하다가 잠깐 떠오른 생각.

FA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FA라고 하면 Failure Analysis다.
즉 뭔가를 만들었는데 그게 원하는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FA가 필요하지 않은 build(특정 제품을 만드는 한번의 operation)는 없다.
어떤 경우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build는 없기 때문이다.

FA를 잘 해내는 것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서 비슷한 문제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피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FA를 제대로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대충 넘어가면 반드시 나중에 비슷한 문제가 또 생긴다.

어제 밤에도 밤 늦게까지 중국에서 문제가 생긴 것 때문에 한바탕 우당탕~ 했었다.
다른때 같으면 이럴때 엔지니어들이 중극 현지 공장에 가서 실제로 물건도 보고, 다른 분석 장비를 사용해서 분석해가며 현장에서 바로 바로 go-no go 결정을 내리는데 지금은 누구도 중국에 현지 공장에 갈 수 없으니 한밤중에 애꿎은 엔지니어들이 이메일과 전화기를 붙들고 있게 되었다.

이런식으로 물건을 만드는데 FA를 하는 것은 업계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실리콘 밸리 tech company들은 조직의 operation등에도 문제가 있는 것을 빨리 잡아내어 그것을 고치는 노력을 하는 일에 재빠르다. – 어떤 회사나 조직은 그걸 조금 더 잘 하기도 하고, 어떤 회사나 조직은 그걸 빠릿빠릿하게 못하기도 하지만.

교회 조직이나 기독교 조직에도 이런 문화를 도입하는 것이 가능할까?
실제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에 맞추어서 전략과 실행에 변화를 주는 것.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참 쉽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 조직 구성원의 대부분이 분석적 사고방식으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경우에도 그렇다.
왜 그럴까? 교회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걸까?

하나님 나라 세션 update

KOSTA follow-up 세션의 하나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룹을 하고 있다.
어제로 두번째 시간을 끝냈다.

원래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은 살짝 좀 더 깊은 고민과 생각을 하고 싶은 소수를 모아서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청을 해서 17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하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지금까지 경험한 것은,
(지금 이 follow-up 세션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interact해온 여러 다른 경험들도 포함해서 나름대로 정리해본 것이다.)

  • 아주 기본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을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정말 드물다.
  • 일반적으로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교회의 여러가지 교육은 꽤 열악하다.
  • 그럼에도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생각하는 수준은 결코 만만치않다! 생각없이 신앙생활하지 않는다. 비판적 시각도 살아있다. 그래서 교회가 더 견디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 제대로 알지 못하기때문에 생기는 신앙의 부조리를 종교적 열심으로 메우려는 노력, 혹은 종교적 열심으로 메우라는 교회의 요구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신앙을 아예 버리거나 신앙의 경계에서 회의 하는 사람들도 많다.
  • 실제로 지금 하고 있는 follow-up 그룹에서도 아예 신앙을 떠난 사람, 신앙에 회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 경계선상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 그렇게 신앙을 떠났거나 신앙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을 잘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사람들의 스토리를 듣고 공감하고 기독교라는 개념에 잘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종합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생각과는 좀 다른 모임이 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의미있는 모임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제대로된 도움이 조금이라도 될 수 있다면….

Time pressure

요즘은 매일 저녁 8시에 회사 conference call이 있다.
지금 중국에서 좀 중요한 뭐가 돌아가고 있는게 있어서 그걸 매일 체크해아한다.

중국시간으로 화요일 아침, 그러니까 내 시간으로는 월요일(어제) 저녁부터 좀 중요한 공정 하나가 들어가게 되는데, 그걸 위한 data 하나가 나오지 않아 오늘 오후엔 발을 동동 굴렀다.

산호세에 있는 회사에 이메일을 하고, 전화를 하고, text message를 보내고…
그랬는데 5시 반쯤에 완전 허름한 data와 함께 짧은 이메일이 왔다.

우씨… 완전 열받네… 아니 이 사람들이… 장난하나…

오늘은 하루종일 회사내에서 사용하는 Google chat, 이메일, 전화 text message들이 사방에서 들어오고, 나도 사방으로 뿌리고… 어쨌든 중국시간 화요일 아침 9시까지는 뭔가가 되어야 하니까.

이렇게 time pressure를 많이 받는 하루를 보내고나면 내 자신을 좀 calm down해서 정상상태로 돌리는게 참 어렵다.

진짜 일을 잘 하려면, 이런 흥분상태(?)를 가라앉히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들고, 아침부터 다시 완전 에너지충만해서 막 달려야 하는 걸텐데… (실제로 회사에서 그렇게 일하면서 진짜 일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내 영혼을 위해서는 그렇게 살면 안되는 것 같다.
낮에 열심히 뛰었더라도 밤에는 좀 slow down하고 내가 여전히 하나님과 튜닝이 잘 맞추어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꼭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에 쫓겨서 일하는 시즌에는 정말 그게 참 쉽지 않다.
이렇게 일해온게 그래도 꽤 되는데 아직도 이 상황에서 내 자신을 잘 관리하는 것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듯 하다.

내편 = 옳은 편?

2004년 Boston Red Sox는 86년간 계속되어온 ‘밤비노의 저주(The Curse of the Bambino)’를 깨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했다. 나는 그때 Boston을 떠나기 직전 Boston에 있었다.
그때 Boston의 분위기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온 도시가 거의 광적인 흥분상태였다.

Yankees는 ‘악의제국 (Evil Empire)’라고 불렸다. 그도 그럴 것이 Yankees는 든든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엄청나게 비싼 선수들을 다 쓸어모았고, Red Sox는 늘 그 Yankees에 살짝 못미치는 수준으로 만년 2위 팀같은 느낌이 있었다. Red Sox가 아무리 뭘 해보려해도 Yankees가 돈으로 올스타급 선수들을 다 싹쓸이 해가니… Boston에 있는 사람들은 Yankees를 정말 미워했다. Yankees Suck 이라는 것은 Red Sox 응원 문구중 매우 중요한 문구였다.
Red Sox가 잘하길 기원하는 것과 함께 그 상대팀을 적극적으로 미워하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Boston에 있을때는 Boston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radio station이 sports radio였다!

이거 좀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그냥 자기가 사는 도시의 프로야구팀을 응원하는 것도 좋고, 그것에 열정적으로 하는 것도 좋은데…
굳이 상대방을 그렇게 증오하면서 응원해야만 하는 걸까?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 모습이 딱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무슨 일만 터지면 자신이 전문가인냥 길게 한마디씩 해내는 비전문가들중 그런 사람이 많다.

내가 지지하는 어떤 집단의 반대쪽을 적극적으로 미워하는 것이다.

그런 미움에는 때로 이해할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다. 가령, 광주 항쟁을 겪은 사람들은 웬만해선 핑크당을 지지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보면 파란당이 좋아서라기 보다 핑크당이 싫어서 파란당을 지지하는 것일수도 있겠다. 내가 그 입장이어도 그렇게 할 것 같다.

그런데 어떤 경우엔…
내가 그냥 무슨색 당을 좋아하니까, 그 무슨색 당을 공격하는 모든 사람들과 집단을 다 ‘악’으로 규정해버리고 우리만 정의의 사도이고 나머지는 다 나쁜 악당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많이 본다.

사실 나도 그런 모습으로 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이건 미국이건 내가 지지하는 정치집단에 대한 선호가 매우 뚜렷한 편이고, 그 반대편에대한 일종의 미움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정치에 대하여 여기저기서 읽게되는 여러 사람들의 글들을 접하며,
일부 주목해서 볼만한 글들도 분명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 팀 말고 저쪽이 evil empire라고 이야기하는 유치함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들을 타산지석 삼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좀 하게 되기도 한다.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Red Sox 를 응원하긴 한다…

기도 둘

하나님,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의 백성입니다.

어쩌면 참으로 보잘것없고 연약하고 헛점 많은 백성입니다.

그렇지만 저희의 됨됨이에 따라 저희를 선택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로 저희를 택하시어 그치지 않는 신실하심으로 계속 저희의 하나님이 되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세상이 아픕니다.
그래서 저희도 아픕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Pandemic.도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어쩌지 못함을 저희는 정말 믿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다른 의지할 어떤 것이 하나님 한분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다시 기억합니다.

하나님,
아픈 세상이 해석해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할때,
우리가 그 아픈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을 드러내는 믿음의 백성되도록 해 주시옵소서.

아파하는 세상이, 그래도 어디에선가 소망을 찾고 싶어하는 세상이, 붙들고 의지할 그 무엇을 찾고싶어 할때, 주님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백성됨으로 그들과 함께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번에 이렇게 온라인으로라도 KOSTA 함께 모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너무 마음이 가난했습니다. 이렇게라도 좀 모여서 하나님 말씀 듣고 찬양하고 서로 저희들 이야기 더 하고 싶었습니다.  미치도록 불안하고,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하고, 짓눌리는 우울감이 저희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불안한 상황과 삶의 어려움과 답답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 한번 더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저희는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 저희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온 세상의 하나님이심이 알려지게되길 원합니다.

저희가 이렇게 KOSTA로 함께 모인 것이 저희의 만족에 그치지 않고 온 세상에 복이되는 일로 연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절대로 그 신실하심을 포기하지 않으시며 저희와 함께 해 주시듯,
저희도 하나님 믿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희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러고 싶습니다.

연약한 저희의 부족한 헌신을 받아주시옵소서.
신실한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의 백성이 되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 하나

하나님

저희 아픕니다. 무섭습니다. 뭐 어떻게 해야하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뭔가 더 강한 믿음으로 이 상황을 돌파해내어야 할 것 같은데 제겐 어디서 그런 힘을 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이럴땐 저희가 하나님께서 이미 옆에 와 계신걸 기억하게 하여주시옵소서.
다른 무엇을 구하기 보다, 지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싶습니다.
부모의 손을 놓쳐버린 아이가 엄마 아빠를 부르듯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부릅니다. 저희 이렇게 많이 부족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부를때 저희 어깨를 감싸 주시고, 그래서 저희가 다시 상황보다 그 상황위에 있는 하나님에 저희 관심을 돌릴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부족한 믿음에 저희의 소망이 있지 않고, 저희를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끈질긴 신실하심에 소망이 있다는 것이 저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저희가 혹시 아둔해서 저희의 소망을 저희에게 둘때마다 하나님 저희 눈을 다시 열어주시고 저희 귀를 다시 열어주셔서 저희의 소망의 근거가 저희가 아닌 하나님의 신실하심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예수님의 신실함 이외에 저희에게 다른 foundation이 없습니다. 정말 없습니다.

저희의 유일한 기초가 되어주시는 하나님 저희는 정말 그렇게 더 하나님을 바랍니다.

하나님,

아픈 세상을 저희가 축복합니다.
저희가 뭐 대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저희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지하여 세상을 축복합니다. 저희도 코가 석자인것 같이 느껴지지만, 저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광대하심 앞에.. 저희가 눈을 저희로부터 돌려 세상을 마음에 품습니다. 아픈 세상 속에서 아파하는 모든 사람들의 눈물을 저희가 잊지 않기 원합니다.

저희 가족 안에서, 저희들의 이웃 중에서, 저희 동네 사람들, 친구들, 교회 사람들로부터 연결된 모든 사람들이 이 모든 아픔의 시기에 견디어내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아니, 그냥 아프지 않은 것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약속해준것 같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한…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진정한 사람됨을 회복하는 그 소망으로 저희와 온 세상을 지켜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없어서 이 상황속에 더욱 힘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저희가 나누는 사람들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끝까지 신실하게 우리 포기하지 않으시며 의리 지키시니, 저희도 그렇게 하나님과 의리 지키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보잘것 없고, 세상은 아프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그럼 됐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면 저희에게 계속 소망이 됩니다. 저희가 믿을 것이 있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