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 is Lord, and everything else is bullshit.

지난 주말 쉬면서 비몽사몽간에 들었던 Stanley Hauerwas의 강의중에 나왔던 말.

아… 통쾌하다.
내가 한국말로 이걸 번역하자면,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그리고 나머지것들을 모두 개지랄이다.
쯤 되려나.

나는 욕을 잘하지 못한다.
사실 어려서부터 욕을 해본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욕을 쓰지 않고도 내 감정과 의미를 웬만하면 잘 표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말 어떤땐 욕이아니면 그게 잘 안담기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Jesus is Lord, and everything else is bullshit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를 읽다보면 (벌써 꽤 오랫동안 말씀묵상 본문이 고린도 전서이다.) 바울이 이런 상황이면 화병에 걸려서 순교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기도 한다. ^^

도대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 와중에 그곳의 리더들이…
우아… 어떻게 그렇게 막나갈 수 있었던 걸까.

그런데 이번에 고린도전서를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고린도전서가 쓰여졌던 때의 고린도의 상황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의 실리콘 밸리와 비슷한 점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작년인가 재작년에 John Ortberg의 설교를 들으며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

경제적으로 번성했던 곳이고,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었고, 그래서 뭔가 innovation을 추구할듯한 그런 곳이었다는 것.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찾아서 이곳에 모였다.
당연히 똑똑한 사람들, 잘난 사람들도 많았겠지.
교회 내에 여러가지 은사가 많았다고 했는데, 이건 어쩌면 전반적으로 잘난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가관이다.
대개는 그 잘난사람들끼리 편나누어 싸우고, 완전 막장 드라마 비슷한 일들도 벌어지고…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면 뭐해. 진리에 눈이 뜨여져 있지 않은데.

고린도 교회의 상황과 지금 내가 처해있는 실리콘 밸리의 상황을 조금 더 잘 비교분석해서 고린도전후서로부터 좀 좋은 생각들을 끄집어내보고 싶은데…

외모

23 and me에서 하는 유전자 테스트를 해보면 나는 늘 90% 이상 한국사람으로 나온다.
내 아내보다도, 우리 딸 보다도 내 한국인 DNA 비율이 더 높다.

그런데, 웬만해선 사람들이 나를 한국인으로 보지 않는다. -.-;
중국 사람들은 나를 중국인으로 보고, 일본 사람들은 나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내게 영어로 말을 한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거기 있는 사람이 내게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경험을 한두번 한게 아니다.
예전에 민우와 함께 한국에 갔을때, 영어를 더 잘하는 민우에게는 한국말로 하고, 한국말을 더 잘하는 내게는 영어로 굳이 이야기하는 비행기 승무원도 만나 보았다.

이 동네 한국마켓에 가더라도, 분명히 내 앞사람에게까지 한국말로 하시던 cashier가 나를 보면 hello 라고 영어로 말을 바꾼다.
심지어는 민우와 내가 함께 한국 마켓에 가면 민우에게는 한국말을 하고 내겐 영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수염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요즘처럼 마스크를 써도 마찬가지이고, 예전에 수염 기르기 전에도 그랬다.

어제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 모자를 쓰고 막 밖으로 나가려고하는데, 아내가 나를 가만히 보더니.. “hello”라고 뜬금없이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거다. 그렇게 모자쓰고 운동복 차림으로 있는걸 보니 정말 한국사람 같지 않다는 거다.

최근에 내 사진을 내어야하는 일이 있어 내 google photo에 있는 무슨 사진을 보내야하나 뒤적여보았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은… 어쩌면… 우리동네 한국마켓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그렇게 볼수도 있겠다… -.-;

뭐 이제 이 나이에 이렇게 생겼다고 뭐 어쩌랴. 내가 20대 라면 좀 고민이 되겠지만서두…

침몰해가는 배 안에서

지난 주말, 내가 좋아하는 형이 멀리서 카카오톡을 해왔다.
다른 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몰락해가는 한국교회안에 있다는 것에 대한 공감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몰락해가는 한국교회 안에서 있는 어려움에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특정인이 문제라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형하고는 어쩌다 한번씩 이렇게 얘기를 해도 금방 말이 잘 통한다.^^)

그런데 그 형과 카카오톡 대화를 끝내고 나서 가만 생각을해보면,
정말 그렇게 우리가 집단적으로 침몰해가는 배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교회에서도, 그 밖에 내가 아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망해가는 과정 속에 우리가 있는 거라는 이야기를 해도…
그래… 정말 그렇지… 라고 그냥 맹~한 동의만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 정말 그렇게 desperate한 것이라는 것에 함께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려울때가 많다.

지난 주말 그 형과의 대화를 마치고,
우리의 상황이 정말 desperate하다는 것을 사람들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누어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반성을 조금 더 하게되었다.

지식과 지혜

지식은 대부분 객관적인 information이다.
지혜는 그 지식을 올바로 한꺼번에 엮어내고 해석해내는 능력이다.

지식없이 지혜를 갖는 경우란 참 드물지만,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자신의 지식없음을 잘 안다.

반면, 지혜없이 지식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지혜롭다고 착각한다.

지식없는 지혜는, 그 지혜의 힘을 충분히 펼쳐내지 못하기에 아쉽다.
지혜없는 지식은, 때로 공허하고, 때로 혼란스럽고, 때로 폭력적이고, 때로 위험하다.

하나님의 그늘 아래

내가 생각하기에 내 장점이자 단점 가운데 하나는, 웬만해선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거다.
똑같은걸 몇번이고 반복해도 별로 지루하지 않다.

지난주말, 이 노래를 한 50번쯤 들었다.
여러 다른 사람들이 부른 버전들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나를 새롭게 하시고 나를 자유케하시길…

내가 좋아하는 쉼

내가 쉬고 싶을때 하는 모습은 딱 이렇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을 하면서… 생각을 좀 많이 해야하는 강의나 오디오 북 등을 듣는 것이다.

이게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거 아는데… 나는 그게 진짜 휴식이 된다.^^

뭔가 머리를 많이 써야하는 강의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건 공부이지 쉬는게 아니다.
게다가 인터넷에 있는 강의들이라는게 대개는 내 두뇌를 100% 사용해야할만큼 어렵지 않으니까… 남아도는 자원이 내게 있는 거다.

뭔가 쉰다는 것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약간 남아도는 brain function을 쓰기 위해서 나는 10년,20년이 지난 게임을 하곤 한다. 가령 수호지같은^^

언제부터 이런 이상한 버릇이 생겼는지는 나도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뭔가 스트레스 많이 받으며 일하고 난 스테레스를 나는 보통 이렇게 이상한 방법으로 푼다.

그렇게 하고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오디오북이나 강의를 들으니까 새로운것을 알아서 좋고…

이번 주말엔 그렇게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ㅎㅎ

성경 개관 hangouts group

최근에 회사일이 완전 장난아니게 바쁘고 stressful해서 살짝 고민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할일은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교회에서 또 hangouts group을 하나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구약과 신약 전체를 4~5주만에 후다닥 훑어 내려가는 class인데 생각보다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sign-up을 해서 살짝 놀라고 있다.

내가 최근에 엄청 stress 많이 받으며 일하고 있는데, 이런 중에도 잘 할 수 있을까.

혹시 비슷한 형태의 그룹을 인도해보신 경험이 있으신 분은 제게도 tip을 좀 나누어주십시오.^^

부채의식

바울은 참 독특한 사람이다.
말하자면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인 것 같아 보인다.

낮에는 텐트를 만드는 사람으로 일하고, 밤에는 전도를 하는 삶을 살기도 하고,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격렬하게 토론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갈길을 가는 결정을 하기도 한다.

그것 때문에 매도 맞고, 조난도 당하고, 감옥에도 갇히고… 그야말로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이게 내가 해야할 일이다’라는 것이 정해졌을때 타협함 없이 쭉~ 직진했던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중에서도 참 독특한 것은 바울이 가졌던 부채의식이다.
내가 복음을 받았는데,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그 부채의식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평생을 살면서, 포기하거나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쭉~ 직진하면서 역경을 견뎌내어야하는 것도 있을 텐데…
바울에게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것이 이 부채의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