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흑인들이 싫다!?

흑인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나는 흑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엉덩이 아래쪽에 이상하게 걸치는 헐렁한 바지에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도 싫고, 도대체
알아듣기 힘든 억양으로 하는 영어도 듣기 싫다. 한 무리의 흑인들이 번쩍번쩍 광을 낸 차에 우루루 타서, 쿵쿵 하는 베이스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이상한 손 모양을 하면서 고개를 흔들며 랩(rap)을 따라 하는 모습도 싫고, 자기들 끼리 만났을 때
Yo- 어쩌고 해 가면서 복잡하고 이상한 악수를 하는 모습도 싫다. 차를 타고 가다가 흑인들이 길거리에 주루루 서 있는 길을
지나면, 반사적으로 차 문을 잠그게 되고, 그저 그들과 눈길이 마주치는 것이 싫어진다. 컴컴한 골목길에서 어쩌다 흑인들을 만나면
얼른 그 자리를 피하거나 삥 돌아가기 일수이다.

그런데, 지난 달에 내가 출석하는 미국 교회에 어떤 흑인
목사님이 와서 설교 하셨다. 보스턴 근교의 어떤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이라고 하는데, 바로 내가
싫어하는 바로 그 흑인 억양으로 내내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무지 알아듣기도 힘들게, 설교 내내 이쪽 저쪽을 막 돌아다니면서,
흑인 특유의 큰 몸동작을 섞어서 하는 그런 설교였다. 물론 내게 무척이나 그 모습이 거북하게 보였다. 그 가난한 동네에서
목회하는 목사가 그렇게 번지르르한 정장을 떨쳐입고 설교하는 모습도 위선적으로 보였고, 비교적 논리적이고 정리된 설교에 익숙한
나로서는 좌충우돌 뛰어다니며 감정만을 북돋우는 것 같은 모습도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설교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그 내용에 내가 깊이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교가 끝날 때 즈음엔 눈물까지 글썽거려가며 그 설교에 공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어쨌든, 내가 흑인들을 다짜고짜 싫어하는 것은 아닌 듯 했다.

흑인 차별과 호남 차별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얼마든지 전라도 사람이 아닐 수 있는 전라도 사람이다. 내 아버지께서 전북
출신이시긴 하지만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내가 거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에 잠깐 전주에 산 이후엔 늘 서울에 살았다.
내 말투에 전라도 사투리는 전혀 있지 않고, 오히려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직장생활을 대전에서 한 탓에 약간 충청도 사투리가 한때
내 말 투에서 배어 나왔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 때였던가, 본적도 서울로 아예 옮겼기 때문에 무슨 나의 공식적인 기록에서
전라도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학교 때 이후 억척스럽게 스스로를 전라도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고 다녔다. 국민학교 2년 반을 전주에서 다닌 연고로, 어쩌다 전주 출신 사람을 만나면 좀 오버를 해가면서 반가워 했었다.

그렇게 했던 유일한 이유는, 중학교 1학년때 어른들로부터 들어서 알게된 호남 차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단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기업에서 승진을 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 박정희 정권 이후 계속된 영남 정권이 계속 정치적인 이유로 호남 차별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등은 그래도 이를 악물고 들어줄만 했다. 그런데, ‘누가 돈의 떼먹고 달아났는데 호남사람이더라.’. ‘호남
사람하고는 사돈도 맺으면 안된다.’, ‘호남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종족이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들을 땐 아니 도대체 너무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왔다. 거의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은 모멸감까지 느꼈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호남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반쪽 호남 사람으로서 스스로 호남인임을 거부하는 것은 괜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나름대로 호남인이
되어 성공해 보겠다는 어줍잖은 객기를 부리고 싶어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가장 친하게 지냈던 대구 출신 친구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늘 나는 스스로 마치 호남인의 변호인이라도 된 양 떠들고 다녔다.

그런데, 왜 이렇게 호남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있는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최근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대표가 쓴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호남인들에 대한 차별, 아니 차별을 넘어 혐오의 감정은 기본적으로 호남인들이 가난하다는데 기인한다는 것이다.

전라도 혐오증’ 의 원인은 딱 하나, 전라도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돈 없고 ‘빽’ 없고 배운 것 없이 객지에 가서 그
사회의 맨 밑바닥 일을 하는 사람 들은, 그들이 특정 지역 출신이든 특정한 인종 집단이든 멸시를 받게 되어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우리나라 텔레비전 연속극에서는 목욕탕
때밀이,작부,깡패,도둑놈,식모,사기꾼,노가다,노점상 등은 거의 예외없이 전라도 사투리를 했다. 시나리오 작가와 프로듀서가 전라도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실제 사회가 그랬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직업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주로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했다면
그 드라마는 ‘리얼리티가 없다’는 핀잔을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이며, ‘높으신 분들’께서 호통을 쳐서 당장 ‘바로’ 잡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 셋 가운데 하나가 사는 수도권에서 이런 밑바닥 직업을 거의 다 전라도 사람들이 하는데, 그들이 멸시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서울에 사는 경상도 사람들이 (다른 지역 출신도 마찬가지이지만) 보는 전라도 사람 들은 가난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행색이
초라하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가지고 악착같이 다투고, 대낮에도 술먹고 다니고…, 한마디로 말해서 함께 어울 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향에 가서 ‘그런 전라도 사람’ 들에 대한 험담을 주저없이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에 뿌리박고 사는
전라도 사람들이 어떤지는 전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자기네가 본 전라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가난한지를 따져보지도
않는다.

다시, 내가 흑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으로 돌아가 본다. 과연 내가 흑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은 무엇 때문인가? 100 여년 이상 지속된 끔찍한 노예제도로부터 벗어나서 1900년 대 초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외형적으로나마 ‘시민’으로 대접받게 된 이들. 원래 그들을 무자비하게 ‘포획’해 온 그 땅 아프리카는 아직도 정치적 경제적
낙후성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가장 후진한 모습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반복되는 사회적 차별과 학대로 인해 어쩌면 스스로
당당한 시민으로 설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던 길고 긴 지난 역사. 이런 속에서 이들이 구조적으로 가지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빈곤과 낮은 교육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더 악화시켰고, 나 같이 흑인들에 대해 별 생각 없이 대했던 아시아인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난 아직 단 한명의 흑인 친구도 사귀어 본 일이 없다. 정말 마음과 마음을 터 놓고 흑인과
이야기 해 본적이 없다. 호남 차별에 대해 주먹을 불끈쥐고 분개하던 “자칭 의인”은 어느덧 여기서 이번에는 가해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경상도 여자와 결혼한 전라도 남자

내 아내는 골수 경상도 출신이다. (사실 내 아내도
반쪽짜리 경상도 여자다. 왜냐하면 아주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자랐으니까.) 내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모두 대구지역 출신이시고,
아주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신다. 처음 결혼을 해선, 처가 식구들이 쓰시는 경상도 사투리를 내 머리 속에서 ‘번역’해서
이해하는데 꽤 애를 먹었었다. 이번 대선에도 내 처가 식구들은 대부분 두말 않고 “기호 1번”을 찍었다고 한다. 내 친가쪽
식구들이 두말 않고 “기호 2번”을 찍은 것과 마찬가지로.

나름래도 반쪽짜리 전라도 청년으로서 호남 차별에 대해
분개했던 것, 흑인들에 대해 매우 불합리한 가학적 편견을 가졌던 것, 그리고 이제 반쪽짜리 경상도 아가씨를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하게 된 것. 마음을 열고 편견 없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과, 내 불합리하고도 몰상식한 편견을
비교해 보면서 스스로 얼굴을 붉힐 수 밖에 없게 된다.

새해엔, 함께 복음의 감격을 나눌 수 있는, 멋진 흑인 친구하나 사귀어 봤으면 좋겠다.

@ 이 글은 eKOSTA http://www.ekosta.org 2003년 1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내가 본 한국 교회, 내가 본 코스타 (우종학)

*이 글은 코스타의 웹진인 이코스타(www.ekosta.org)에
2001년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내가 본 한국 교회, 내가 본 코스타

To generalize is to be an idiot. – William Blake

1.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 신병 교육대와 전투지


떤 분께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정신에 반하는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을때, 그것이 윤리의 문제이든,
문화의 문제이든, 가치의 문제이든, 그 문제에 대해 기독교적인 목소리를 낼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기가 너무나
어렵다는(cf. 김연종 ‘흔들리는 한국 교회’). 나는 이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반기독교적 흐름을 상대할
기독교적 파워가 없다는 게임의 논리에서도 그렇지만 ‘아군’이라고 분류하는 한국 교회의 정체성 자체에 대해서 의문이 가기
때문이었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잘 모른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뚜렷한 관측적 사실은 한국 교회의 성장 또는 그 규모와 한국 사회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 사이에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안점식, ‘한국 교회와 기독교 세계관의 문제’). 이러한 현상은 교회 성장주의,
유교적 권위주의, 기복주의(박성호, ‘한국 교회 그렇다면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등과 감성적, 개인적 성향에 맞춘 교회의
목회 전략, 사회에 대한 교회의 침묵(권오승, ‘세상으로 복음의 영광을 주목하도록’) 등, 쉽게 관측되는 요인들에 의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요인들 위에, 혹은 이런 요인들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요인을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보다 근원적인 문제이며, 위에서 지적된 요인들을 극복하는 교회
개혁으로만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현장의 기독교인’의 부재이다.
반문화(counter-culture)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적 경향이 많은 한국 교회 안에
짙게 깔려 있음으로 인해 교회의 안과 밖을 철저히 나누고 교회의 벽을 높이 쌓는 이원론적 경향이 팽배해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현장의 기독교인’들을 사라지게 만든 근원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cf. 정진호, ‘부흥을 가로막는 장벽들, 이원론의 문제를
진단한다-(2)’). 1920년대 미국에서 세속 문화에 대한 대항으로 일어났던 근본주의운동의 경향이 복음주의권 안에도 깊이
들어와 미국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복음주의자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은 90년대의 미국 복음주의권에서도 넓게
논의되었던 이슈 중 하나였다 (Mark Noll, ‘The Scandal of the Evengelical Mind’).


는 ‘신병 교육대와 전투지’의 비유가 ‘왜 현장에 그리스도인이 없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강제 징집이 아닌
사랑과 섬김으로써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돕는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들의 삶에서 치열하게 시작될 영적 (지적·감성적·의지적)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말씀 안에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교회는 그들을 ‘신병 훈련’으로 돕는다.

이제 신병 교육대에서 기초 훈련을
마친 그리스도의 전사들은 가끔씩 (한 주에 한 번이든 세 번이든) 후방으로 돌아와 쉼을 얻기도 하고 사기의 재충전을 받기도
하지만, (시간적으로는 복음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들은 전방, 전투지에서 그들의 대부분의 삶을 보내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기본적인 신병 훈련 외에 실전에서 사용될 전투 훈련을 받은 적이 없이 홀로 전투지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부정과 미움, 하나님의 질서를 반하는 어그러짐으로 물들어 있는 직장, 인간 관계, 사회 구조, 문화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현장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공격은 그들의 삶이, 우리의 일이 예배가 되지 못하게 한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유지해 가는 것만해도 사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이들이 배치될 전선의 부대는
어디에 있는가? 이들보다 먼저 전선에 들어와 실전을 통해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는 각 분야의 그리스도인 전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에게 전선의 상황을 알려 주고 공격 목표를 주지해 주며 전술을 가르치고 함께 작전을 펼치는 소대장, 병장들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제한된 판단으로는 현장에 대한 부르심에 뜨겁게 헌신한 소수의 정예들은 고전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전사들은 혼자서 살아남는
일에 급급하여 숨어 있으며 그나마 뜨거운 열정을 가진 전사들은 도로 신병 교육대로 돌아가 버렸다. 세상 일에는 흥미를 잃은
반면에(김연종 ‘예수 이름으로 가진 병’) 신병을 모으고 교육하는 일이 그래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채워 줄 수
있으니까. 전선의 병력이 정예 부대여야 하고 다수여야 하는데, 내 눈에는 몸집 큰 신병 교육대만 보인다고 하면 과언일까?
신교대는 커진 몸집을 굴리느라 더 많은 교관을 필요로 하고 그러다 보면 전선으로 나오는 전사들은 당연히 적어진다.


는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커지는 만큼 전선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병 교육대만 커진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신교대인가? 교회가 커지는데 사회가 그대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 사회
속의 그 교회가 진정한 교회인가를 되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만일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이고 각양의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주님의 가르침 대로 하나님의 질서 대로 살고 있는데도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아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앞서 가는 우를 범하지 않고 기다려야 하겠지만, 현재의 내 좁은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만은 않는다.

나는 또한 현장의 그리스도인이 없다는 것으로 교회의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의 역할은 목회
전문가로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도들이 자랄 수 있도록 도우며 교회 공동체와 예배를 통해 끊임 없이
그리스도인들을 복음으로 재충전 시켜주는 일이며 이것은 타락된 창조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투는
실전 경험을 통해 전선에서 배우는 것이기에 신교대에서 해 줄 수 있는 훈련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많은 현장의 문제들이 교회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투지의 그리스도인들의 전투 경험이 신병교육 훈련의
내용에 보다 많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문제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다루고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캠퍼스 선교 단체에서 학부 시절 뜨겁게 헌신하던 리더들이 졸업 이후에는 대형 교회의 대예배 좌석에 숨어 버리는
일도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한다. 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영혼의 성장을 돕던 리더십이 부정과 악이 팽배한
직장에서 통전적인(wholistic) 그리스도인의 삶을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 교회는 전사들을 소총으로 무장시켜 개인적으로 전선에 내보내는 무책임함을 넘어서 이들이 현장의
그리스도인들과 연결되도록 구조적으로 도우며 전선의 전력 증가를 위해 신교대에 투자하는 이상의 노력과 자금을 현장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채플과 교목실을 두는 정도로 구색을 맞추는, 이름 뿐인 기독교 대학이 아니라 학생들이 기독교적으로 사고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돕는 커리큘럼을 갖춘 진정한 기독교 대학을 세우는 일, 생명의료 윤리, 개별 대중문화 등, 사회와 문화의
문제들을 사안 별로 연구하고 결과물들을 낳아 교회 교육에 내용을 제공할 수 있는 연구 단체나 프로젝트 등에 지원하는 일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걸지 않더라도, 사회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와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위한 사역들에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다. 교회 내적으로는 교회 봉사의 순번제 같은 제도를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상황에 따라
헌신된 성도들 중에서 20~50%는 2-3년을 주기로 주일 학교나 성가대등 교회 봉사를 쉬게 하고, 대신 직업과 현장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 교회 ‘운영’에 지장이 있을 거라는 우려가 있겠지만 이들이 2-3년 후에 다시 교회
섬김으로 돌아올 때는 교회 자체가 새로운 공급을 맛 볼 것이며 또한 끊임없이 현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보냄으로써 전선은 점진적으로
강화될 것이다. 수요 예배 가지 않는 대신에, 주일 학교 봉사하지 않는 대신에 같은 시간과 노력으로 직장에서의 삶과 신앙이
부딪히는 문제, 청소년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양육할 것인가의 문제에 매달려 기도하고, 배우고, 연구하고, 나누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목회 전문 목회자가 현장의 전문가들과 함께 팀사역으로 목회를 하는 교회들에 관한 소식을 듣는
일은 매우 고무적이다. 예배당 중심의 신앙 생활(?)이 믿음의 잣대가 되는 교회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고는 세상은 그리스도 없음의
축복(?)과 축제를 계속 만끽할 것이다.

그러나 지역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특별한 한계
상황이 아닌 이상, 신교대가 신병 교육을 제쳐두고 전투지에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다. 참으로 중요한 일은 전투 부대가 세워지는
일이다.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이 연합해야 한다. 물론 현장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속단하건대)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많은 경우, 또 다시 신병 교육대의 역할만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배당 중심의
신앙생활을 간과한다는 오해를 받더라도 전투지에 헌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우리가 부끄러워 하지 않는 복으므이
능력이 각 현장에서 면면히 드러나도록 세상속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워져야 한다. 각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이 내게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각 현장의 상황에 맞게 연합하고 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원론 외에는. 그리고 나 자신도 나의
현장의 문제에서 답을 찾는 묵묵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코스타를 이런 시각으로 본다. 지역 교회가 할 수 없는 일, 신병 교육대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을 키우는 일, 이것을 코스타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나님의 창조 명령과 통하는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은 ‘제자를 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데까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다시 이루는 데까지, 그의 나라가 타락된 온 창조계에서 회복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정진호, ‘두 집 내기’).

2. 내가 보는 코스타 (미주 코스타)

최근의
통계를 볼 때, 코스타의 참석자 중 매년 70% 정도가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는 사람들이다. 매년 새로운 사람들이 코스타를 접하고
간다는 면에서 코스타를 매우 효과적인 사역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반면에 한 번 온 사람들 중 70%가 다시 코스타에 오지 않는다는
얘기도 되는 셈이다. 이 통계 자료가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평가 자료나 의견(feedback)들을 참조하여 이것을
해석해 보면 코스타는 ‘한 번으로 만족되는 수양회’, 혹은 ‘매 년 똑 같은 수양회’ 라는 얘기로도 볼 수 있다. 한 번으로
만족되는 수양회라는 평가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대한 결론을 이 자체만으로는 내릴 수 없다. 당연히 코스타 수양회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고 그에 준하여 이 평가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코스타의 목표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인으로 결단케 하는 것이라면 ‘한 번으로 만족되는 수양회’라는 것이 부정적 평가는 아니다. 그리스도를 두
번 영접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코스타의 목표가 복음화된 유학생들에게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을 확립하게 하는 것이라면 약
4박5일의 수양회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이 얼마나 확립될 수 있는가를 평가해 보아야 한다. 코스타의 목표가 유학생들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 연구와 신앙 생활을 격려할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삶의 현장에서 선교적인 활동과 봉사의 삶을
살도록 한다는 것이라면 일주일의 수양회를 통해서 이 목표의 성취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평가해야만 한다. 사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모두는 코스타의 사명이자 핵심 정신(core value)이다 (미주코스타, ‘코스타란?’).

독자들 스스로
평가를 내리겠지만, 복음화의 목표를 제외하고는 한 번의 수양회를 통해서 나머지 목표들을 성취한다는 것은 턱도 없다. 일주일 내내
‘여러분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라고 외쳐대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감성보다는 지성,
설교보다는 강의에 촛점을 두고 교육을 위주로 하는 수양회로 완전 탈바꿈한다고 하더라도 한 번의 수양회로는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이다. 나는 코스타가 복음전도 집회만으로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복음을 전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을
말하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복음 전도의 우선성이라는 복음주의의 기본 입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코스타가 복음전도 집회만을 하는 수양회라면 나는 한 번 이상 가지는 않겠다. 내가 복음을 모르는 영혼들을 섬기겠다는 결정을 하여
섬기는 이로 가지 않는 이상. 나는 수양회에 2번 이상 참석하는 30%의 사람들중에는 이렇게 섬김의 마음으로 와서 헌신하는 많은
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섬김을 통해서 배우는 제자도는 매우 귀중한 배움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한 번 이상 오지 않는
수양회’가 된 것은 한국 교회의 신병 교육대적인 성격이 최근의 코스타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복음 전도하는 것 이외에는 별 내용이 없는, 교회에서도 들을 수 있는 복음의 진수를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강렬하게 다시 듣는 것
이외에는, 어떤 참석자들의 보다 신랄한 표현을 빌리면, ‘화끈한 영적 샤워’로 끝나 버리는, 혹은 어느 정도 현장의 문제를 담긴
하지만 한 번 수양회 참석으로도 다 소화해 낼 수 있는 내용의 수양회… 코스타의 시작부터 세워졌던 목표들은 좋지만 지금
코스타의 모습은 처음의 그 목표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 라는 반성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가?

3.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양회


음화된 대학원생 유학생들을 돕는 가장 중요한 안건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전공 속에서 혹은 전공을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라는 안건이고 둘째는 “캠퍼스와 지역 교회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며 섬길 것일까” 라는
안건이다. 코스타의 모든 프로그램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학생들을 복음화하는 일에 병행하여 이 두 가지 실제적인 안건을 중심으로
짜여져야 한다. 예를 들어 오전은 강의 중심으로 전공과 현장의 문제들을 다루고 저녁은 설교 중심으로 복음과 좁은 의미의 제자도를
다룰 수 있다. 오후의 세미나 트랙의 경우도 ‘구도자의 트랙’, ‘제자도의 트랙’, 그리고 ‘전공과 현장의 트랙’으로 분류 상
세 단계로 나누고 각 트랙에서도 내용의 깊이에 따라 레벨화하는 등 커리큘럼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강사에 따라 내용이 바뀌기
보다는 ‘체계화된 내용에 따라 강사를 선정해야’ 한다.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란 말이 나의 전공영역에서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에
대해서 학생들이 생각하도록 돕고 답을 찾도록 구체적으로 도와야 한다.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생 사역을
이해하고 유학생들의 상황·현실에 따라 코스타 전체 프로그램 구조와 세미나의 커리큘럼을 짜기 위한 연구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한
연구팀을 구성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커리큘럼이 체계화된다고 가정하고 단순화된 예를 들어 보면,
(편의상의 구분에 대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바란다.) 복음을 모른던 학생이 첫 해에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며, 둘째
해에는 제자로서의 삶에 대해 배우고 익히고, 셋째 해 이후부터는 자기의 전공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 것인가를 목표로
코스타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학생이라면 최소 두 번 이상 참석하여, 한 번은 제자로서의 헌신의
문제를, 그리고 두번째 해부터는 전공과 직업의 문제를 고민하고 돌아갈 수 있다. 또한 보다 헌신된 학생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전공과 현장의 문제들을 목표로 하여 동역자들을 만나고 현장의 삶을 함께 준비하는 코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속적으로
복음의 핵심을 들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감격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두번째로, 강사로부터
학생으로 주입되는 일방통행(one-way)의 설교·강의 흐름에서 학생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상호적(interactive)인
흐름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부생들과 달리 대학원생들은 강의도 하고 세미나도 발표하고 그룹 토론에도 참여한다. 대학원생이라는 것은
학생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직업이다. 즉, 대학원생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기보다 이들에 맞는 형식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들을 학부생들처럼 일방적으로 앉혀 놓고 듣게 하는 것은 코스타에서 다뤄지는 내용과 참여자들의 질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
설교를 제외하고 전체 강의를 포함한 모든 강의에서 학생들의 질문과 토의 시간을 10-30분 정도 배정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관중의 열기나 웃음 소리만으로, 혹은 구매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강의 테잎의 판매량으로 강의의 효과를 평가할 수
없다. 학생들이 그 내용을 되새길 수 있는 다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쉴새 없이 쏟아붓는 것은 교육적 효과면에서 결코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더구나 현장의 문제를 다룰 때 각 현장의 문제를 어느 정도 겪고 있는 학생들의
생각과 고민은 매우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이런 고민들이 던져질 때,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원론에서 그치지 않고 현장의 문제들,
각론에 대한 해답을 끌어낼 수 있으며 최소한 학생들로 하여금 보다 현실적인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학생 때부터
생각하고 고민하고, 나누고 함께 찾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막상 현장에 나갔을 때, 그 고민이 지속되고 연합이 지속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넓어져야 한다.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전공에 속한, 혹은 전공을 통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과 결과물들을 발표하고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공과
관련된 한 가지 구체적인 문제를 연구한 논문 혹은 포스터 발표라든가, 전공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팀 프로젝트라든가,
예술 작품이라든가, 문화 현상를 기독교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 보는 보고서라든가, 각 전공에 따라 얼마든지 창조적인
참여가 가능하리라 본다. 기독교적 색깔이 전혀 없더라도, 학문의 논리에 충실한 결과물도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본다.
이런 참여를 격려하는 것이 학생들을 현장의 그리스도인으로 구체적으로 준비 시키는 전투 훈련이 아닐까.

셋째로,
보다 연구하는 코스타가 되어야 한다. “아니 학업에 지친 몸을 좀 쉬러 왔는데 기독교 모임에서까지 왠 골치 아픈 소리요” 라고
한다면 대답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전공마다 다르겠지만, 대학원생의 삶의 가장 기본은 연구하는 자세인데 왜 무엇보다 중요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가” 라고 되묻고 싶다. 조용한 방청객으로 남아있기 보다, 밤을 새우는 토론과
나눔으로 현장의 문제를 건드리는 초기의 코스타 분위기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대학원생 모임은 자기 비판을 통한 자정 능력이 뛰어날
수 있다. 그런데 코스타에 대해서는 건설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뜨거워 할 말을 잊은 것일까? 생각 있는 사람들은 ‘이 운동은 아니다’ 라고 다 떠난 것일까? 나는
각각 자기의 전투지에서 고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스타가 전도 집회만이 아니고 또한 선교동원 운동만이 아니라면, 그러면 어떻게 유학생들의 다양한 필요를 채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다방면의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강사와 참여자, 그리고 내용의 폭을 봤을 때 아직 지엽적이라고 평가될 수 있는 코스타가
미국 유학생이란 커다란 사역 대상을 폭 넓게 품기 위해서는, 캠퍼스선교 운동과 선교동원 운동을 넘어서는 도약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수 년에 걸친 체계적인 연구와 모델링을 거치지 않고서는 기대할수 없는 일이다. 미주 내에 캠퍼스와 지역 교회의
사역을 파악하려고 막 시작되고 있는 코스타의 HOC 프로젝트는 이러한 노력의 아주 좋은 예이다. 뿐만 아니라 코스타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연구 위원 혹은 연구 간사와 같은 장치도 꼭 필요하리라 본다.

수련회를
평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진행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내용에 대한 평가는 필수적이다. 체계적인 평가자료를 개발하여
참석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 자료를 토대로 향후 계획을 세워야 한다. 더불어 이 자료를 공개하여, 코스타라는 이름보다는
코스타에서 담는 내용을 중심으로 수양회 참석을 유도하고 코스타의 현재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4. 맺으며


는 코스타를 잘 모르면서 편파적인 얘기를 썼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다들 아는 얘기를 장황하게 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동료 대학원생들과 함께 고민했던 몇 년의 시간을 통해서 주께서 우리들에게 주셨던, 삶과 신앙과 학문의 통합에 대한 외줄타기와
같은 균형에 대해 그저 스스럼 없이 나누었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를 중요하게 보는 한 사람의 대학원생으로서의 관찰과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나의 관찰과 생각들은 많은 일반화와, 때로는 기도보다 앞서는 운동성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타가 어떤 ‘Monument’가 아니라 하나의 ‘Movement’라면, 나는 이 운동을 현재의 나의 삶에
주요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으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의 날카로운 비판과 가르침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