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어제부터 아내가 동부로 ‘출장’을 갔다.
주일 밤에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다.
최근 많이 바빠서, 저녁 늦게 돌아오면서도 저녁도 제대로 못먹고 올때도 많았는데,
차라리 그렇게 가서는 좀 밤에 잠도 잘 자고 쉼의 기회가 되면 좋겠다.

오늘 밤에는,
한 친구가 한국에서 우리집에 찾아온다.
주말을 나와 함께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떠나게 되는데…
이 친구는 최근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일을 겪었다.
아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되는 추석 휴가를 오히려 피해서… 
미국에 오게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그 힘든 일들이 좀 해결인 된 것인지…
내가 이 친구와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도움을 주게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주말…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예전에 대학원시절에,
이 친구가 힘든 일을 겪었을때,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이 친구는 오랫동안 그일을 기억했었는데…

2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그런 시간을 갖게될 수 있을지… 

Everybody’s normal until you get to know them

내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쓰신 책 이름이다.
책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대충 어떤 내용인지는 다~ 짐작이 간다. 매주 설교를 듣다보니… ^^

그런데,
요즘은… 그 책의 관점과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관점에서…
Everybody’s normal until you get to know them
이라는 내용에 긍정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다 괜찮아 보인다.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 사람의 story를 자세히 들어보면…
정말 그 사람의 삶을 자세히 보면…
나름대로의 아픔과 struggle과 brokenness로 힘들어하고 있음을 본다.
때로는 자신의 아픔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찾지 못한채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고.

많은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삶을 나누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경이롭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 저도 정상인것 처럼…. 잘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이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망가져있고, 뒤틀려져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정상적임을 회복해가고 있는 중일 뿐입니다.

Interior Re-design

지난 주말을 지내면서,
office 이사도 이제 거의 끝났고,
이제 작은 짐들 몇개만 더 정리하면 old office로 다시 settle down하게 된다.

이와 함께,
나도 몇가지 내 마음을 추스리고 정리할 것들이 있는 듯 하다.

코스타 집회 이후 계속 되어온,
일종을 ‘흥분 상태’를 좀 가라앉히고 ‘일상생활’로서의 건강한 복귀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괜히 일도 손에 잘 안 잡히고, 여러가지 생각만 많아서 일의 효율도 많이 떨어졌던 것들을 반성하고,
다시 ‘열심히 일하는’ 모드로의 전환이 필요한 듯 하다.

지난 두 주동안, 다소 의무감에서 힘들게 말씀을 묵상하며 KCF 리더그룹과 함께 해오던 ‘호세아 강해’에도 다시 약간의 힘이 붙는 듯 하다.
말씀과 세상을 보며 다시 새롭게 마음에 불길들이 생기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이제 다음주에 시작할 KCF 리더쉽 훈련에 힘을 많이 쏟아야 할 것 같다.
앞으로의 몇주가, 향후 1-2년 KCF의 장래에 큰 impact를 끼치는 기간이 될수도 있다는 부담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8월 초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young professional 성경공부를 위해서도,
많이 기도하며 마음을 쏟아야 할 것 같다.
아마도 8월 첫주 토요일 우리집에서 시작하면 어떨까 하고 계획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하는 성경공부여서 기대도 되고,
또… 나로서는 새롭게 시작하는 분야의 사역이므로 많이 humble하게 접근하게 된다.
어느 교회와 affiliation을 가질 것인지 하는 것에 대해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reach-out 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제일 건강한 접근이 아닐까 싶다.

7월말까지,
1/8VGA full SAIL 9 demo가 나오도록 계획하고 진행해 왔는데,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진탕 실험 열심히 하면서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 할 것 같다.

full SAIL 9 demo 이외에도,
material 관련된 실험 몇가지를 계속 미루어둔 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시 회사에서의 시간관리를 타이트하게 하면서 이 실험들을 마무리 지어서,
material selection과 관련된 내용들을 확정지어야 할 것 같다.
회사에서는 매 시간 적어도 2개 이상의 일을 동시에 계속 진행해나가는 super-multitasking mode로의 전환이 필요한 듯 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실험들은 도무지 끝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7월 말(hopefully)에 Full SAIL 9 demo가 나오면,
다시 business-related 된 일들이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투자등과 관련된 dialogue들이 여러 사람들과 이루어지게 될것 같은데…
이 문제도 다시 좀 힘을 내어야 할 것 같다.
한밤중에 전화하기, 이메일쓰기등의 일들이 쏟아질 것 같은데…

회사에서,
사람들과 많이 대화하는 것을 지난 몇달동안 너무 등한시 했었다.
꼭 대화를 나누어야하는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할 것 같다.

이제 곧 시작할 KOSTA 간사훈련 관련해서
KOSTA spirit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훈련내용으로 정리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이것도 역시 지난 몇달간 to-do list에만 올라가 있었고 손도 대지 못했던 것이었는데…
어떻게든 좀 시작을 해야 할것 같고…

eKOSTA에서 드디어 다시 독촉이왔다. (아… 장하다 장해… 정우형제, ㅋㅋ)
이제 다시 힘을 내어서 eKOSTA 글쓰기도 시작해야 할듯.
일주일에 한편을 쓰자고 계획하고 달려들어야 아마 두주에 한편정도 쓰게되지 않을까.

KOSTA 관련해서
몇가지 더 생각하고 계획하고 있는 것들을 좀 더 잘 정리해서 필요한 사람들과 communicate하고 진행시키는 일을 이제는 좀 더 해야할 것 같다.

eKOSTA 독토도 하나 하자고 하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그것도.. 좀…

한동안 제대로 못하고 있던,
책읽기도 다시 좀 추스려서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아.. 참 이 책을 의미읽게 읽었다…. 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던 때가 4-5개월은 된 듯 하다.

성경통독을 해보려고 하고 있다.
말씀을 많은 분량을 읽는 것이 특히 내 기도생활에 양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아내가 학회에서 다녀온 후유증(?)에서 벗어나 점차 정상생활로 복귀하고 있는 듯 한데,
함께 많이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 stage인 것 같다.
이제 pre-teen이 우리 딸내미와도 많이 이야기를 하고.

—–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모든 일들을 위해서 하루 30분 무릎꿇는 일을 반.드.시. 해야할 것 같다.
내 interior re-design의 핵심이 결국은 이곳에 있는 듯 하여.

Pray to be spent

어제 설교중에 나온 말.
정말 마음 깊이 공감하는 말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 재능, 경험, 재산, 시간, 열정, 체력, 선호, 기회, 환경 -을 다 집어넣고 사는 삶을 살도록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이었다.

그중 일부는 내가 ‘reserve’에 남겨두고 사는 삶이 아니라…

아아…
정말 내가 살고싶은,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그런 삶

해야하는 일은 많은데… 능력이 정말 안된다.

지난 주말 DC에서의 모임 이후,
머리 속에 해야하는 일들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다.
youth를 섬기는 일, 대외관계와 관련된 일들…

그런가 하면,
최근 한국의 기업과 미국의 Venture Capital 등과 이야기되어온 investment deal에 관한 일들이 내 머리를 맴돈다.

최근 몇가지 실험 결과가 좋아서 working display demo를 만들어 내는 일에 대한 생각들과,
annealing temperature와 관련된 실험들,
ZTO etching에 관한 실험들이 역시 또한 burden으로 남아 있다.

1월부터 Stanford 학생들과 함께 하게될
Leadership Training 성경공부에 대한 생각들…

몇명의 간사님들과 하고 있는 간사 훈련에 대한 생각들…

12월 가족 여행에 대한 일들,

1월 초에 있을 business trip, 그곳에서 나누게될 business 관련된 discussion들…
역시 1월에 있을 KOSTA 간사 모임,
2월 초에 있을 학회, 그 곳에서 있게될 business related 된 이야기들…

어느것 하나 소홀하게 여길 수 없는…
정말 내가 아끼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인데…

내가 조금 더 능력이 되면…
이 소중한 일들을 더 잘해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나를 채운다.

삶의 목표는,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있지 않다.

Life is not about maximum utilization of one’s talent,
Life is about loving God, loving people.

최근,
함께한 어느 성경공부 그룹에서, 학생들과 나눈 말이다.

삶의 목표는, 내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최근 몇년간 참 여러 방법으로 이 말을 곱씹고 있다.

짧은 고백, 깊은 생각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 하는 짧은 고백들 –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 드립니다. 등 -을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믿음이 어릴땐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그냥 그 고백들을 입에서 하는 것으로 내가 그렇게 산다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찬송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드리는 짧은 믿음의 고백들이 진정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나오는 내것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진통이 필요한지…

내 인생의 모든 여정이,
내 믿음의 고백들을 진실되게 하는 것이길 기도한다.

이해하는 삶과 경험하는 삶

‘삶’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20대에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던 삶을… 나는 ‘알고’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을 ‘경험’하지 않고든… 절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지난 10여년 동안 참 깊이 경험한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바로 그런 모델이 아닐까.
그분이야 ‘알기’위해서 반드시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었을테지만,
우리에게 그런 삶의 자세와 모델을 보여주시려고.

나의 가치, 나의 행복

내가 스스로 매우 가치있다고 생각할 수록,
그것만큼 나를 무가치하게 하는 것은 없으리라.

그러나,
내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정말 무가치 함을 가슴깊이 인정할 때야만 비로소 내가 가치있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스스로 행복함을 추구할수록,
그것만큼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없으리라.
그러나 내가 스스로 superficial한 행복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슴에 품으면,
비로소 내가 행복해 지는 것 같다.

나는 흑인들이 싫다!?

흑인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나는 흑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엉덩이 아래쪽에 이상하게 걸치는 헐렁한 바지에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도 싫고, 도대체
알아듣기 힘든 억양으로 하는 영어도 듣기 싫다. 한 무리의 흑인들이 번쩍번쩍 광을 낸 차에 우루루 타서, 쿵쿵 하는 베이스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이상한 손 모양을 하면서 고개를 흔들며 랩(rap)을 따라 하는 모습도 싫고, 자기들 끼리 만났을 때
Yo- 어쩌고 해 가면서 복잡하고 이상한 악수를 하는 모습도 싫다. 차를 타고 가다가 흑인들이 길거리에 주루루 서 있는 길을
지나면, 반사적으로 차 문을 잠그게 되고, 그저 그들과 눈길이 마주치는 것이 싫어진다. 컴컴한 골목길에서 어쩌다 흑인들을 만나면
얼른 그 자리를 피하거나 삥 돌아가기 일수이다.

그런데, 지난 달에 내가 출석하는 미국 교회에 어떤 흑인
목사님이 와서 설교 하셨다. 보스턴 근교의 어떤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이라고 하는데, 바로 내가
싫어하는 바로 그 흑인 억양으로 내내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무지 알아듣기도 힘들게, 설교 내내 이쪽 저쪽을 막 돌아다니면서,
흑인 특유의 큰 몸동작을 섞어서 하는 그런 설교였다. 물론 내게 무척이나 그 모습이 거북하게 보였다. 그 가난한 동네에서
목회하는 목사가 그렇게 번지르르한 정장을 떨쳐입고 설교하는 모습도 위선적으로 보였고, 비교적 논리적이고 정리된 설교에 익숙한
나로서는 좌충우돌 뛰어다니며 감정만을 북돋우는 것 같은 모습도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설교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그 내용에 내가 깊이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교가 끝날 때 즈음엔 눈물까지 글썽거려가며 그 설교에 공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어쨌든, 내가 흑인들을 다짜고짜 싫어하는 것은 아닌 듯 했다.

흑인 차별과 호남 차별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얼마든지 전라도 사람이 아닐 수 있는 전라도 사람이다. 내 아버지께서 전북
출신이시긴 하지만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내가 거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에 잠깐 전주에 산 이후엔 늘 서울에 살았다.
내 말투에 전라도 사투리는 전혀 있지 않고, 오히려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직장생활을 대전에서 한 탓에 약간 충청도 사투리가 한때
내 말 투에서 배어 나왔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 때였던가, 본적도 서울로 아예 옮겼기 때문에 무슨 나의 공식적인 기록에서
전라도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학교 때 이후 억척스럽게 스스로를 전라도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고 다녔다. 국민학교 2년 반을 전주에서 다닌 연고로, 어쩌다 전주 출신 사람을 만나면 좀 오버를 해가면서 반가워 했었다.

그렇게 했던 유일한 이유는, 중학교 1학년때 어른들로부터 들어서 알게된 호남 차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단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기업에서 승진을 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 박정희 정권 이후 계속된 영남 정권이 계속 정치적인 이유로 호남 차별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등은 그래도 이를 악물고 들어줄만 했다. 그런데, ‘누가 돈의 떼먹고 달아났는데 호남사람이더라.’. ‘호남
사람하고는 사돈도 맺으면 안된다.’, ‘호남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종족이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들을 땐 아니 도대체 너무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왔다. 거의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은 모멸감까지 느꼈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호남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반쪽 호남 사람으로서 스스로 호남인임을 거부하는 것은 괜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나름대로 호남인이
되어 성공해 보겠다는 어줍잖은 객기를 부리고 싶어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가장 친하게 지냈던 대구 출신 친구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늘 나는 스스로 마치 호남인의 변호인이라도 된 양 떠들고 다녔다.

그런데, 왜 이렇게 호남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있는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최근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대표가 쓴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호남인들에 대한 차별, 아니 차별을 넘어 혐오의 감정은 기본적으로 호남인들이 가난하다는데 기인한다는 것이다.

전라도 혐오증’ 의 원인은 딱 하나, 전라도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돈 없고 ‘빽’ 없고 배운 것 없이 객지에 가서 그
사회의 맨 밑바닥 일을 하는 사람 들은, 그들이 특정 지역 출신이든 특정한 인종 집단이든 멸시를 받게 되어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우리나라 텔레비전 연속극에서는 목욕탕
때밀이,작부,깡패,도둑놈,식모,사기꾼,노가다,노점상 등은 거의 예외없이 전라도 사투리를 했다. 시나리오 작가와 프로듀서가 전라도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실제 사회가 그랬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직업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주로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했다면
그 드라마는 ‘리얼리티가 없다’는 핀잔을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이며, ‘높으신 분들’께서 호통을 쳐서 당장 ‘바로’ 잡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 셋 가운데 하나가 사는 수도권에서 이런 밑바닥 직업을 거의 다 전라도 사람들이 하는데, 그들이 멸시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서울에 사는 경상도 사람들이 (다른 지역 출신도 마찬가지이지만) 보는 전라도 사람 들은 가난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행색이
초라하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가지고 악착같이 다투고, 대낮에도 술먹고 다니고…, 한마디로 말해서 함께 어울 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향에 가서 ‘그런 전라도 사람’ 들에 대한 험담을 주저없이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에 뿌리박고 사는
전라도 사람들이 어떤지는 전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자기네가 본 전라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가난한지를 따져보지도
않는다.

다시, 내가 흑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으로 돌아가 본다. 과연 내가 흑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은 무엇 때문인가? 100 여년 이상 지속된 끔찍한 노예제도로부터 벗어나서 1900년 대 초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외형적으로나마 ‘시민’으로 대접받게 된 이들. 원래 그들을 무자비하게 ‘포획’해 온 그 땅 아프리카는 아직도 정치적 경제적
낙후성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가장 후진한 모습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반복되는 사회적 차별과 학대로 인해 어쩌면 스스로
당당한 시민으로 설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던 길고 긴 지난 역사. 이런 속에서 이들이 구조적으로 가지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빈곤과 낮은 교육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더 악화시켰고, 나 같이 흑인들에 대해 별 생각 없이 대했던 아시아인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난 아직 단 한명의 흑인 친구도 사귀어 본 일이 없다. 정말 마음과 마음을 터 놓고 흑인과
이야기 해 본적이 없다. 호남 차별에 대해 주먹을 불끈쥐고 분개하던 “자칭 의인”은 어느덧 여기서 이번에는 가해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경상도 여자와 결혼한 전라도 남자

내 아내는 골수 경상도 출신이다. (사실 내 아내도
반쪽짜리 경상도 여자다. 왜냐하면 아주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자랐으니까.) 내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모두 대구지역 출신이시고,
아주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신다. 처음 결혼을 해선, 처가 식구들이 쓰시는 경상도 사투리를 내 머리 속에서 ‘번역’해서
이해하는데 꽤 애를 먹었었다. 이번 대선에도 내 처가 식구들은 대부분 두말 않고 “기호 1번”을 찍었다고 한다. 내 친가쪽
식구들이 두말 않고 “기호 2번”을 찍은 것과 마찬가지로.

나름래도 반쪽짜리 전라도 청년으로서 호남 차별에 대해
분개했던 것, 흑인들에 대해 매우 불합리한 가학적 편견을 가졌던 것, 그리고 이제 반쪽짜리 경상도 아가씨를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하게 된 것. 마음을 열고 편견 없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과, 내 불합리하고도 몰상식한 편견을
비교해 보면서 스스로 얼굴을 붉힐 수 밖에 없게 된다.

새해엔, 함께 복음의 감격을 나눌 수 있는, 멋진 흑인 친구하나 사귀어 봤으면 좋겠다.

@ 이 글은 eKOSTA http://www.ekosta.org 2003년 1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