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중보기도팀에게 소개한 나의 기도생활

기도생활은… 
사실 좀 잡다하게(?) 이것 저것을 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
 
사실 처음 기도에 깊이 몰입하게 된것은 96년-97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요… 주로 새벽기도에서 부르짖는 기도, 방언기도 등등으로 발동이 걸렸었습니다.
 
그렇게 한 10년 하다가… 하나님께서 어느순간… 합심으로 기도하는 장소를 제외하고는 부르짖는 기도를 막으시는 것을 경험했었습니다. 방언도 잘 안되고요. (좀 당황스러웠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침묵하면서 기도하는 기간을 좀 보내다가… centering prayer라고도 하고 contemplative prayer라고도 하는 기도까지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가 조금 더 깊어지는 경험을 했었는데요….

1-2년 전 부터는 예전의 기도 패턴이 돌아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도는 엔진?

사람들은, 따르고 싶은, 본받고 싶은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의 사상, 논리, 지식등을 많이 배우려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어느정도 그 목표를 이루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신앙과 인격의 ‘엔진’과 같은 부분은,
그 사람의 지식이나 사상등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도가 아닐까 싶다.

어떤 사람의 기도를 닮지 않고 그를 닮으려는 시도는,
자동차를 모방해서 만들면서 같은 모양과 색깔의 껍데기를 갖추면서도 엔진에 신경쓰지 않는 것과도 같지 않을까 싶다.

기도를 통해 어떤 이가 하나님 앞에 서는 모습은,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demonstration인것 같다.

위해서 기도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때…

얼마전
유명한 테러리스트 가운데 한 사람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었을때,
미국에서는 큰 환호성이 거리를 뒤덮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때 비행기 안에 있어서, 그 내용을 뉴스로 바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justice(정의)가 구현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정치인들의 모습도 보았다.

그때, 내 마음 속에 있었던 불편한 마음들…

Tony Campolo의 podcast를 듣는데, 거기서 Tony Campolo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오사마 빈 라덴을 위해서 기도해왔다. 매일 했던 것은 아니지만 자주 했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는 성경의 말씀에 따라, 그가 잘못된 길로부터 돌이킬 수 있도록, 그리고 더 나아가서 진리를 알게될수 있도록 기도해왔다.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그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은 한편 안심이 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내가 위해서 기도했던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에 나는 기뻐할수만은 없었다.”

이런 일련의 생각들과 관련해서 블로그에 글을 하나 써야겠다고 하던 중에,
뉴스앤조이에 내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많이 담은 기사가 나왔다.

특별히,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과 관련해서는 최근 내가 많이 깊이 묵상하고 있던 바였는데…

역대하 6:13b-42

역대하 6:13 ……바로 그 대에 올라가서,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바라보며, 두 팔을 들어 펴고,

14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하늘에나 땅에나, 그 어디에도 주님과 같은 하나님은 없습니다. 주님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주님의 종들에게는,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15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내 아버지 다윗 임금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셨으며, 주님께서 친히 그에게 말씀하신 것을 오늘 이렇게 손수 이루어 주셨습니다.

16 이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인 내 아버지 다윗 임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저마다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살아온 것같이 내 율법대로 살기만 하면, 네 자손 가운데서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겠다’ 하고 약속하신 것을,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17 이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의 종인 다윗 임금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주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빕니다.

18 그러나 하나님,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땅 위에 계시기를 우리가 어찌 바라겠습니까? 저 하늘, 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모시기에 부족할 터인데, 내가 지은 이 성전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19 그러나 주 나의 하나님, 주님의 종이 드리는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님의 종이 주님 앞에서 부르짖으며 드리는 이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20 주님께서 낮이나 밤이나 눈을 뜨시고, 이 성전을 살펴 주십시오. 이 곳은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주님의 종이 이 곳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이 종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21 그리고 주님의 종인 나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는 대로 용서해 주십시오.

22 사람이 이웃에게 죄를 짓고, 맹세를 하게 되어, 그가 이 성전 안에 있는 주님의 제단 앞에 나와서 맹세를 하거든,

23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님의 종들을 심판하시되,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죄가 있다고 판결하셔서 벌을 주시고, 옳은 일을 한 사람은 죄가 없다고 판결하셔서 그의 의로움을 밝혀 주십시오.

24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님께 죄를 지어 적에게 패배했다가도, 그들이 뉘우치고 돌아와서, 주님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님께 빌며 간구하거든,

25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26 또 그들이 주님께 죄를 지어서, 그 벌로 주님께서 하늘을 닫고 비를 내려 주시지 않을 때에라도, 그들이 이 곳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거든,

27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님의 종들과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들이 살아갈 올바른 길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며, 주님의 백성에게 유산으로 주신 주님의 땅에 비를 다시 내려 주십시오.

28 이 땅에 기근이 들거나, 역병이 돌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 떼나 누리 떼가 곡식을 갉아먹거나, 또는 적들이 이 땅으로 쳐들어와서 성읍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에워싸거나, 온갖 재앙이 내리거나, 온갖 전염병이 번질 때에,

29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나 혹은 주님의 백성 전체가, 저마다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성전을 바라보며 두 팔을 펴고 간절히 기도하거든,

30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니,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십시오. 주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31 그렇게 하시면, 그들은,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주신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언제나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길을 따라 살 것입니다.

32 그리고 또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이방인이라도, 주님의 크신 이름과 강한 손과 편 팔로 하신 일을 듣고, 먼 곳에서 이리로 와서, 이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하거든,

33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 이방인이 주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는 것을 그대로 다 들어 주셔서, 땅 위의 모든 백성이 주님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주님을 경외하게 하시며, 내가 지은 이 성전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곳임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34 주님의 백성이 적과 싸우려고 전선에 나갈 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어느 곳으로 보내시든지, 그 곳에서,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 도성과, 내가 주님의 이름을 기리려고 지은 이 성전을 바라보며, 그들이 주님께 기도하거든,

35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살펴보아 주십시오.

36 죄를 짓지 아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백성이 주님께 죄를 지어서, 주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원수에게 넘겨 주시게 될 때에, 멀든지 가깝든지, 백성이 남의 나라로 사로잡혀 가더라도,

37 그들이 사로잡혀 간 그 땅에서라도,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사람의 땅에서 주님께 자복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죄를 지었고, 우리가 악행을 저질렀으며, 우리가 반역하였습니다’ 하고 기도하거든,

38 또 그들이 자기들을 사로잡아 간 사람들의 땅에서라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님께 회개하고,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땅과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 도성과 내가 주님의 이름을 기리려고 지은 이 성전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거든,

39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인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살펴보아 주십시오. 주님께 죄를 지은 주님의 백성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40 나의 하나님, 이 곳에서 사람들이 기도를 할 때마다, 주님께서 눈을 떠 살피시고,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41 주 하나님, 이제는 일어나셔서, 주님께서 쉬실 곳으로 들어가십시오. 주님의 능력이 깃든 궤와 함께 가십시오. 주 하나님,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십시오. 주님을 믿는 신도들이 복을 누리며 기뻐하게 해주십시오.

42 주 하나님,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사람을 내쫓지 마시고, 주님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
WJ & ES 간사님…
함께 그렇게 하늘을 우러러 기도합니다.
힘내십시오.

KOSTA/USA-2010 conference를 마치고 (6)

기도

이번 집회기간 중에는,
기도 디렉터라는… 어울리지 않는 job assignment를 받아 섬겼다.
내가 기도의 깊이가 깊은 사람이 아닌데… 어찌 기도를 ‘담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번에 기도를 더 할 수 있었던…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더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blessing 이었다.

기도하면서,
내가 얼마나 기도의 깊이가 얕은 사람인지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또한… 나 같은 사람의 기도도 얼마나 풍성해질 수 있는지 하는 가능성도 보았다.

함께 했던 기도헌신자 그룹이 정말 무척 멋진 형제 자매들이었다.
늘 집회기간 마다 내 마음 속에 있었던 빨간조끼 간사님들의 자리중 많은 부분을 이번에는 이 학생 헌신자 그룹이 차지했다.  괜히 양쪽 다 에게 미안한 느낌… (외도를 한 느낌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ㅋㅋ)

또, 함께 기도할 수 있었던 K모 간사님으로부터,
“매 순간 순종하며 기도하기”의 진수를 보며 배울 수 있었다.
나 같이 교만한 사람이 흉내내기 참 어려운…

기도에의 소망과 열망이 더 커졌다.
집회 시작 두어주 전부터 하나님께서 기도를 엄청 시키시더니만…
기도에 대해 무지한 내게 이런 가르침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애쓰신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의 요청은, 바로 내가 주님께 드리고 싶은 요청이다.

기도의 중독성

기도는 중독성이 있다.

무엇이 기도의 중독성을 만드는가?
건강한 기도는, 내 요구를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hopeless하고 helpless함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런 기도를 지속하다보면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의존성과 친밀성이 길러지고 되고,
하나님과의 친밀성은 내 hopeless하고 helpless한 상태를 더 깊이 드러낸다.

이것이 기도의 중독성의 mechanism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기도의 신비

나처럼 잘난척 하기 좋아하고,
나서기 좋아하고,
말 많이 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기도라는 주제를 만나면 늘 말이 딸린다.
기도의 그 말할 수 없는 신비를 내가 다 담지 못하고 있음이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그 기도의 신비가 더 깊게만 느껴진다.
나만의 공간에서 무릎을 꿇을 때, 하늘과 땅이 만나는 경험을 한다.

Pray to be spent

어제 설교중에 나온 말.
정말 마음 깊이 공감하는 말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 재능, 경험, 재산, 시간, 열정, 체력, 선호, 기회, 환경 -을 다 집어넣고 사는 삶을 살도록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이었다.

그중 일부는 내가 ‘reserve’에 남겨두고 사는 삶이 아니라…

아아…
정말 내가 살고싶은,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그런 삶

기도에 대한 몇가지…

기도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보이지만,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보인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내 열정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낼 수 없다.

기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은,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양말이 잔뜩 들어있는 정리되지 않은 바구니에서 같은 색깔 양말 두짝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
가끔 일이 되기도 하지만,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기도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기도의 중요성을 알수 없다.

기도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들 가운데 하나이다.

—–

기도가… 고프다.

근심하라

지난 주말에는,
내게 기도를 가르쳐준 한 선배와 참 갚진 이메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래는, 그 형이 내게 보내준 이메일의 일부이다.
참 멋진…
(형, 허락없이 공개해서 죄송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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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찬양예배 본문이 고후 7:9-11 말씀이었고, 제목이 ‘근심하라?’였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고 있는 것이길 기도할
뿐이다.
나와 너를 포함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에 godly sorrow로 가득차는 것이
전염병처럼 번지길 소망한다. 우울증 환자로 분류해도 되었을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처럼….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기도했던 그 일의 시작일텐데….특별히 이 시대에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그런 godly sorrow로 간절함과 변증과 분함과 두려움과 사모함과 열심과 벌에 대해 뼛속까지 느끼고 경험하여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네 말대로 함께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는 어찌 보면 무모하고 불가능한 일을 각자의 환경과 배경에서 해
보자. 혼자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함께라면 그리고 성령께서 인정하시고 인도하신다면 능치 못할 일이 없겠지. 우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면서 말이다.
 
 7: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