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와 엘리사

20대에는,
나를 끊임없이 점검해주고, 나를 보살펴주는 선배가 없는 것이 정말 눈물나도록 서럽고 힘든 때가 많았다.
복음에 눈을 떠서 가슴이 뜨겁긴 한데, 이것을 어떻게 handle해야 하는지 내게 일러주는 이가 주변에 별로 없었다.
물론 일반적인 조언과 가르침은 풍성하게 많이 받을 수 있었지만, 내가 ‘멘토’로 생각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정신없이 책을 읽기도 하고, 어쩌다 한번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무엇인가 배워보려고 갖은 노력을 하기도 했었다.
내가 엘리사가되어, 엘리야와 같은 선배를 따르고 싶은 열망이었다.

30대에는,
그런 그림들을 대충 포기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어차피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므로, 기도와 말씀으로부터 공급받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제 40대가 되어서는,
내가 엘리야가 되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커진다.
물론 아직 내가 성숙하고 성장해야하는 부분이 산더미 같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20대와 30대에 경험한, 하나님과의 동행을, 전수해주어야한다는 부담감과… 어찌보면 건강하지 못하게 보이기까지하는 절박함이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아직 내가 엘리야와 같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전수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self-evaluation이 명확함에도,
그것에 대한 간절함이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간다.

예전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토록 하나님 안에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10년 가까이 delay 시켜가면서 나를 준비시켰던 경험을 하게 하셨었다. 내가 아무리 가슴이 터져라 하고 싶은데도… 너는 아직 때가 아니다 하시며 나를 주저앉히셨었다.
40대 초반에 이런 간절함이 커져가는 것을 보아, 아마 50대가 되어서는 정말 후배들에게 무엇인가 해줄 말이 있는 사람으로 (그것이 꼭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가시는 것은 아닐까… 그런 소망을 가져본다.

선수로 뛰어야 할 때와, 선수를 키워야 할 때

리더쉽에서 가장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는,
언제 내가 선수로 뛰어야 하는가 하는 것과, 언제 내가 뒤로 물러나서 후배들이 잘 뛰도록 격려하며 후배를 키워야 하는가 하는 것을 구분해내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내게 참 많이 부족한…

근심하라

지난 주말에는,
내게 기도를 가르쳐준 한 선배와 참 갚진 이메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래는, 그 형이 내게 보내준 이메일의 일부이다.
참 멋진…
(형, 허락없이 공개해서 죄송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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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찬양예배 본문이 고후 7:9-11 말씀이었고, 제목이 ‘근심하라?’였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고 있는 것이길 기도할
뿐이다.
나와 너를 포함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에 godly sorrow로 가득차는 것이
전염병처럼 번지길 소망한다. 우울증 환자로 분류해도 되었을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처럼….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기도했던 그 일의 시작일텐데….특별히 이 시대에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그런 godly sorrow로 간절함과 변증과 분함과 두려움과 사모함과 열심과 벌에 대해 뼛속까지 느끼고 경험하여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네 말대로 함께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는 어찌 보면 무모하고 불가능한 일을 각자의 환경과 배경에서 해
보자. 혼자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함께라면 그리고 성령께서 인정하시고 인도하신다면 능치 못할 일이 없겠지. 우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면서 말이다.
 
 7: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선배가 필요해…

나는 고등학교 3기이다. 당연히 선배가 많지 않다.
대학교는 2기이다. 내 1년 선배가 대학 선배의 전부이다.

그런 영향이 있을까…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참 선배가 많지 않다.

대학교 3학년때, 처음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후,
정말 desperately “선배”를 찾았다.
그러나 나를 이끌어주고 키워줄 그런 선배를 결국 찾지 못했다.
내가 가진 진지한 질문에대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한 수준의 자기 중심적인 대답을 길게 나열하는데 바빴지, 내 질문과 고민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그 사고를 발전시키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단순히 내 대학선배뿐이 아니었다. 교회에서 만나는 어른들, 꽤 이름이 있는 평신도 지도자들, 교수님들로부터도 도움을 얻지 못했다.
그런이들과의 대화는 도움은 커녕 frustration만을 가져왔다.

몇년간 그런 시도를 하다가,
나는 선배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하나님께서, 적어도 내게는, 그런 luxury를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잠정적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그런 선배를 다시 찾아본다.
그런데… 그런 선배가 없다.

역시 내 고민을 이야기하면,
자신의 한계 내에서 내 고민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내 context와는 무관한 대답만을 쏟아놓는 사람은 많이 만나지만…
정말 나의 성숙과 성장에 관여하여 도움을 주려는 그런 사람을 만날수가 없다.

내게, 도움을 요청하며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사람은 많은데…
막상 나는 그런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너무 자주 엉뚱한 실수를 한다.

어쩌면,
선배에 대한 나의 이런 목마름이…
나의 깊은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충분히 유연하지 못해서 다른 이들의 가르침을 잘 듣지 못한다거나,
이미 좋은 스승이 내 주변에 많이 있는데도 내가 그분들을 appreciate하지 못한다거나…

역시 “선배”는 내게 luxury 인가.

존경스러운 선배님들

내가 연관되어 있는 Christian ministry 가운데 하나에서,
요즘 다소 지저분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다소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선배님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듣고, 또 그분들이 나서서 사람들과 사건을 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낀다.

한분의 선배님은, 순수함 그 자체로 가득찬 분이시다. 동기의 순수함에대한 수없이 많은 도전을 나는 이 선배님으로부터 배워왔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거짓없는 헌신.
이분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신이 모든 비난을 다 받아도 좋으니, 자신이 나서서 이 문제의 근본을 눈물로 밝히고, 이 일을 해결한 후에, 혹시 ministry에 있을수도 있을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희생양이 되어 스스로 물러나겠노라고… 그렇게 의분을 참지 못하신다.

다른 한분의 선배님은, 온유함 그 자체로 가득찬 분이시다. 사람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고 절대로 내치지 않고 품으시는 분이시다. 이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어떤 과정에서도 단 한사람이라도 – 비록 그 사람이 ‘악인’이라 하더라도 – 상처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정말 시간을 낭비한다 싶게 느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겸손하게 말을 들으시고, 때로는 그로인해 얼토당토않은 오해도 받으시면서 그렇게 섬기시는 분이시다. 이분을 보면 온유와 섬김이 그저 흘러 넘친다.

얼핏 보면 이 두분의
방향이 매우 다르지만…  그래서 마치 함께 하고 있을때 이 두분 사이에 큰 갈등이 있을 것 같아 보이기 까지 하지만…
동일한 그리스도를 향한 불타는 사랑, 하나님 나라를 향한 지칠줄 모르는 열정, 이 과정에서 나같이 어리버리한 후배까지도 보호하고 지켜주시려는 마음…
나는 정말 말할수 없이 깊은 감동을 받는다.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을 섬기다가,
정말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모습을 몹시도 고통스럽게 바라보게 되다가도…
이런 선배님들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다.
아니… 그저 가볍게 경험하는 수준이 아니라… 내 뼈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를 새기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참된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