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적 세계관 (12)

(1)번 글에서 썼던 것 같이,

나는 기독교 세계관의 한가지 해석 방법이 복음 전체를 설명해 내는 것과 같이 접근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내가 여기서 언급한 초월적 세계관이 복음의 요체이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어떤 이들에게는  개혁주의적/영역주권론적 세계관이 유용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평화주의적 세계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언급한 세계관의 접근이 혹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한채 가슴을 치며 기도하는 어떤 이들에게는…

약간의 가이드를 제공해주는 것이 될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몇번의 글을 써 보았다.

한가지 더 덧붙일 것은,

아마도 현실을 피하지말고 좀더 현실에 부딛혀야 하는 사람들,

이런 초월적 세계관 보다는 개혁주의적 세계관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이런 식의 현실초월적 세계관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치게 진취적이어서 인본주의적이 되어버린 개혁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초월적 세계관에 한번 마음을 담그어보는 것이 더 좋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런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나는 세계관에 대한 논의가,

all-or-nothing 식의 접근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겸손한 방법으로 진행되면…

환원주의(reductionism)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더 많은 이들이 복음의 풍성함을 누리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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