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희망 (12)

삶의 의미, 삶의 희망은 추구해야할 가치, 목표등에 의해 주어지기도 하지만,
자주 그것은 관계로부터 주어지기도 한다.

내가 무엇을 더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끼지만,
내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를 사랑하는 분을 위해서 그분이 기뻐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나는 현대교회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니까 나를 잘 돌보아주신다는 정도로 이야기하는것이 참 답답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결국 내 존재근거와 가치를 높여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선물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를 이야기하는 교회에서, 결국은 이기적이고 속좁고 천박한 자기만족의 종교를 이야기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여전히 나를 기쁘게하는 한가지 요소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기쁘게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기쁘게하는 요소를 깡그리 쓸어버리는 것이될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예전에 나를 기쁘게했던 것이 더 이상 기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랑을 이해하면, 정말 그 사랑을 받아들이면,
나는 어떤 사람이 새로운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다른건 모르겠고… 그 엄청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잖아.
그 사랑이 나를 휘덮어버리고 있잖아.
그럼 됐지 뭐. 그럼 내가 살만한 이유가 되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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