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e Bye 1K

2018년부터인가… 지난 5-6년동안 나는 united에서 거의 제일 높은 레벨인 1K라는 지위를 유지해왔다.

1K가 되면 여러가지 혜택이 있다.
비행기 먼저 타고, 더 좋은 자리 공짜로 앉고, 때로는 upgrade가 되기도 하고…
비행기에서 파는 음식도 공짜로 먹는다.

때로 international flight을 타면, 승무원이 와서 따로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united에서 지난 2년동안 1K가 되는 조건을 급격하게 올려서,
아마 금년에는 1K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아 보인다.

앞으로 남은 5개월동안 united 티켓으로 거의 1만5천불 정도를 더 써야 1K가 될 것 같은데, 여러가지 계산을 해보면 그렇게까지 비행기를 타게될 것 같지는 않다.

COVID 전 2018-2019년에는,
거의 매달 한번씩 유럽이나 아시아쪽에 출장을 가야 했었다.

그렇게 하면,
사실 1년내내 시차적응을 하면서 살게 된다.
우아… 아마 그때 내 몸이 많이 축났던 것 같다.
그때 살도 많이 쪘고.

1K가 되지 못하는게 살짝 아쉽긴 하지만,
1K는 그렇게 훨씬 더 비행기 많이 타는 사람들에게 양보해야한다는게 하나도 억울하지는 않다.

바라기로는,
다시는 1K로 돌아가지 않기를… ^^

눈물나게 감사한 일

이번에 어떤 분이 남긴 짧은 말.

제게 성경공부는 너무 먼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올해 코스타를 시작으로 너무 재밌는 그리고 더 알고싶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눈물이 찔끔 나온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자연재해

내가 경험했던 자연재해중 가장 무서웠던 것은 내가 일본 출장을 갔을때 경험했던 지진이었다. 한 십년쯤 전이었던가.

나는 고베에 있는 한 호텔의 28층에 있었고, 토요일 아침 5시 반쯤 되었었다.
시차때문에 나는 좀 일찍 일어나서 씻고 하루를 준비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전화에서 경고음이 빽빽 심하게 울었다.

그리곤 세상이 흔들렸다!

나중에 뉴스를 보고 알게된건, 진도 6.3의 지진이 고베의 바로 옆에서 난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느끼기에는 엄청 오래 땅이 흔들렸는데,
지진이 어느정도 멈춘것 같이 느껴진 후에도 건물은 계속 왼쪽 오른쪽으로 천천히 흔들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높은 건물이 흔들리고 있는데, 28층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느낌은…
아…진짜 아찔했다.

그리고 진정되고 밖에 나오니 다들 난리였다.
내가 기차를 타고 어디 갔어야 했었는데, 선로가 휘어서 꽤 많은 노선 운행이 되지 않고 있었다.

아… 참 큰 일이었구나.

갑자기 뜬금없이, 내 google photo를 뒤지다가 그때 황당했던 사진이 갑자기 떴다.
그래서 괜히 그때 생각을….

https://photos.app.goo.gl/LDtEfYt8Wvgkiw6z5

십자가

어제 문득 가만히 생각해보다가,
우리집에 십자가가 어디 벽에 걸려있는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김성환 목사님께서 만들어 선물로 예전에 주셨던 화목의 십자가가 하나 있는데,
거실에 그냥 놓여져 있고 벽에 걸려져 있지는 않다.

한때 나는 차에도, 회사 책상에도,
작은 십자가를 하나씩 두고 있었다.

그렇게 가끔 십자가를 보면서 내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자꾸 생각하곤 하였다.

내 눈에 보이는 곳에서 십자가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혹시 내 마음 속에서도 그렇게 십자가가 사라진 것은 아닐까?

Volunteer

미국 교회를 다니면서 계속 불편하게 들리는 단어가 있다.
Volunteer 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게, 교회의 paid staff가 아닌 평신도가 교회의 어떤 사역에 자원해서 참여하는 경우 그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가령 여름성경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평신도는 volunteer이다.

그런데,
이건…
결국 교회 사역이란 교회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가치가 들어간 말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생각하면,
교회에서 월급주고 일하는 교회 staff들이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미국적 사고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기준이 낮은 동료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을 하는데 큰 장애는,
기준이 낮은 동료 그리스도인이다.

그냥 이만큼만 하면 예수님 믿는게 충분한거야…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종교적 광신도가되어서 가산을 탕진하고 그러는게 좋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그건 더 깊은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을 쉬운 열정으로 커버하고자하는 천박함이다.

더 깊게 그리스를 닮아가며 성숙해가고,
자신의 약함과 싸워가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여정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은,
참으로 복되다.

돈이 부족해…

박사과정을 할때, 정말 돈이 부족했다. 정말 정말 많이 부족했다.
그 이후 직장을 잡고 직장생활을 하던 초기에도 돈이 빠듯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정말 바짝 정신을 차리고 절약을 해야 겨우 적자를 면할 수 있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던 초기 거의 점심을 사먹어 본적이 없다. 1불이면 만들 수 있는 샌드위치 하나를 싸가서 그걸로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지금은….
그렇게까지 돈이 부족하지는 않다.
대단히 돈이 많아서 늘 돈걱정 하지 않고 펑펑 쓰는 정도는 아니지만,
점심한끼 사먹는것에 인색할 정도로 부족한 정도는 아니다.

잘 아끼면 저축도 할 수 있고.

그런데,
작년부터 뭐랄까… 뭐를 좀 사서 깔끔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가령, 내 책상위 모니터를 좀 더 좋은 걸로 upgrade 해보고 싶다던가,
내 책상을 바꾸고 싶다던가, 컴퓨터를 새것으로 바꾸고 싶다던가…

이걸 막 질러버리는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지금도 괜찮다.

혼자 했던 생각은…
내가 배가 불렀구나. 내게, 그냥 쓸데 없이 남는 돈이 있는 것이로구나.

지난 1~2달 동안 약간 더 힘을 내서 이곳 저곳 헌금을 했다.

다시 빠듯해졌다.

돈이란, 약간 부족한듯 있어야 엉뚱한 생각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한쪽의 약자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복음주의 좌파에게 있어서 트럼프는 거의 악의 화신과 같은 존재다.
복음주의 좌파의 아젠다에는,
관용적인 이민정책, 유색인종에 대한 동등한 대우, 여성의 권리 확대, 저소득층 지원 등등이 포함된다.

내 생각에는 좋은 기독교적 가치인것 같다.

그런데,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중 어떤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는 왜 관심을 가지지 않는가.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졌고, 그것에 대해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데,
그나마 트럼프가 자신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인다고 생각하니 그쪽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저소득 백인 노동자들.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 속에서 점점 자신의 영역을 잃어버리고,
점점 벼랑끝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한국에서는 소위 이대남들이 그렇다.
자신들은 여자 동료들에 비교해서 군대도 다녀와야하고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그걸 건드려주고 공감해주는 이준석같은 정치인에게 열광하게 된 것.

기독교는 우파의 종교도 아니고, 좌파의 종교도 아니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인것 같기는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양심상 트럼프같은 사람을 지지할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어떤 특정 약자 그룹을 악마화하고 자신의 입맛에 맡는 약자 그룹의 목소리만을 대변하는 어떤 정치세력과 기독교가 자신을 동일시 할 필요는 없다.

기독교는,
트럼프 지지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약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레미야 20:7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여기서 ‘속이다’라고 번역한 단어는 히브리어 Patha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속이다 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유혹하다, 설득하다, (이성을) 꼬셔내다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출애굽기 22:16에서 이 단어는 “seduce/유혹하다”로 번역하면 가장 적절한 문장에 사용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아직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꾀어서 건드리면, 그는 반드시 신부의 몸값을 내고,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꾀어서’라고 번역한 단어가 바로 이 단어이다.

사사기 14:15도 역시 비슷하다.
유혹하다로 번역할 수 있고, NASB에서는 entice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다.

“…신랑을 꾀어서, 그가 우리에게 낸 그 수수께끼의 해답을 알아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오….”
사사기 14:15에는 삼손의 아내에게 남편을 꾀어내어서 라고 할때 이 단어를 쓰고 있다.

만일 예레미야 20:7의 단어를 ‘꾀어내다’라고 번역한다면, 그 구절은 이렇게 번역이 된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꾀어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꾀임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그러니 이건,
주님이 예레미야를 유혹해서 밖으로 꾀어서 불러낸 이후, 예레미야를 힘으로 제압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건 성폭행을 연상시킨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성폭행범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만일 이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예레미야는 정말 엄청 하나님에 대해서 화가 났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한 최대로 험악한 표현을 써서 하나님께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진짜 나쁜 분입니다…..

때로,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왜 그러시는 겁니까. 당신은 왜 그렇게 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기도하게되는 순간이 있다.

그건,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힘든건 힘든거다. 그래도…

한국에서 오신 어떤 분과 이번에 휘튼에서 약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작년부터 오시기 시작해서 금년에 두번째로 오셨다.
미국 KOST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한참 칭찬과 기대를 말씀해주셨다.
참 감사하게 그 이야기를 쭉 듣다가 내가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런데요, 저희 이렇게 하는게 정말 많이 힘이 듭니다.”

사실이다.
간사들 정말 삶의 에너지를 쥐어짜서 하고 있고,
옆에서 이것저것을 돕는 나도 매년 많이 벅차고 힘들다.

몇년전에는
아, 이제는 정말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했었다.
도무지 그냥 너무 힘이 들어서.

나도 힘이 든다.
능력도 딸리고,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도 부족하고, 돈도 많이 들고… ㅠㅠ

그래도 생각해보면,
참 감사하다.

내 젊은 시절을 이런 가치있는 일에 던져서 살 수 있었다는 건, 참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특권이다.
내가 하는 일 이상, 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 이상으로 열매가 맺혀지는 것을 보면서,
아, 정말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일을 오랜시간 할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언젠간,
진짜 내 능력도, 체력도, 여력도 없어서 내가 뭘 하는게 KOSTA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이 오게되겠지만,
그리고 매년… 혹시 금년까지인가… 그런 고민을 계속 하겠지만,
이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도우며 응원하며 그렇게 또 해보겠다고 결심은 해본다.
자신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