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침체와 관련된 짧은 생각

내가 개똥철학을 펴는 것일수도 있으나…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본다.

사회의 체제, 사상의 흐름의 폭력성이 극에 달했을때,
바로 그때 교회가 복음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자주 그 빈자리를 다른 사상들이 채우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 기독교가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 같다.

자유방임주의의 폭력성에 노동자들이 짓눌리던 시절,
서구 교회가 그것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을 주는데 실패한 자리를 공산주의가 차지했고…

좀 더 가까이에는…
한국의 소위 IMF 사태가 터졌던 90년대 후반,
한국 교회가 그 경제적 위기 속에서 외쳐야 했던 선포를 포기하자…
그 자리를 세속화와 물질주의가 차지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만일,
지금 이 경제침체/경제위기의 시기에…
교회가 특히 한국 교회가…
또다시… 기도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잘 풀어주실 것이다,
기도해서 위기를 성공으로 극복해라…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라… 는 식의 천박한 이야기만을 한다면,
한국교회는 좀 더 주변으로 밀려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많이 암울하다.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있을까

누가복음 2:29-30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늘 가슴 속 한곳에 채워지지않는 갈증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
처음 신앙의 세계를 접했을때, 그동안 채우지 못했던 갈증을 채우는 생수와 같은 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아직 채워지지 않는 그 영혼 깊은 곳의 갈증이 있음이…
소망을 갖게 한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무엇을,
다시 되새기게 하신다.

Actor or Director?

예전에는, actor가 되고 싶었다.
실제 대학때 연극에 빠지기도 했었지만…

실제 삶에서도, 내가 무대위에 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director가 되고 싶어졌다.

내가 무엇을 하기 보다,
다른이들이 무엇을 하도록 가이드를 해주고 바운더리를 만들어 주는 사람,
방향을 제시하고 무대 뒤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최근,
다시 actor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나는 KOSTA에 무엇인가

지난주에 있었던 공동대표 모임에서,
내가 총무간사를 마친 후에도 계속 실무간사로 남도록 하는 안을 내가 제출했었는데,
공동대표들에의해 거부당했다.
내년 9월 1일 부터는 실무간사의 역할을 벗고, 공동대표에 합류하게 된다.

사실 내가 KOSTA 실무를 떠난다는 생각을 해보질 않았기 때문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지난 몇달간 자꾸만 던져보았던 질문,
나는 KOSTA에 무엇인가…

답이 보이질 않는다.
하나님의 어떤 인도하심이겠지.

Frank

우리 회사를 만드는 모체가 된, Power Film의 CEO이름이 Frank 이다.
이 사람도 재료과 박사고… 3M에서 태양전지를 연구하다가 3M이 그 연구를 포기해자 하던 연구를 가지고 나와서 회사를 차린 것.

이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한다.
참 어렵게 어렵게 회사를 20여년동안이나 운영해 오다가, 최근에 태양전지 열풍과 함께 이 회사도 갑자기 뜨게 되었고… 유럽 시장에 상장을 하면서 순식간에 상당한 재력가가 되었다.

회사도 계속 크고 있고, 매우 잘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빨리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거의 없는 듯 보인다.
회사를 차리고 얼른 주가를 불려서 팔아버려서 부자가 되는 것을 매우 경멸한다.
엔지니어로서, 자신의 연구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통해서 product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

Frank가 자주 이야기하는 중에,
벤처를 해서… 돈을 왕창 벌고… 자기 집 수도꼭지를 다 금으로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 사람들 같이 하고 싶지 않다고.

아직도 10년정도나 되었을까 싶은 소형차를 운전하고 다니고,
허름한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실험하는 것을 즐긴다.
학회를 가면, 늘 제일 싼 호텔에서 묵고, 제일 작은 렌트카를 빌린다.
집은 아직도 모기지를 매달 내고 있다.

Frank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Phicot

새로운 회사의 이름이 정해졌다.
이름은 phicot (FA-I-COT) 이라고 읽으면 된다.
현재 우리 lab의 manager의 아들이… look what I’ve got (봐라… 나 이런거 있다!) 라는 말을.. ‘ficot’이라고 말을 한데서… 힌트를 얻어 지은 이름이다.

세상에,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을 봐라… 라는 의미로 사용 하려고.


그저께 저녁에는, 오랜만에 한국에서 온 KAIST 선배 한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참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는데…
그 형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한국의 Engineer들이 얼마나 꿈이 없이 사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형도,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면서 그곳에서 희망과 꿈을 찾아보려고 struggle 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렇게 회사를 하면서,
Engineer가 된다는 의미를 더 잘 배울 뿐 아니라,
후배 engineer들에게 그 의미를 show case로 보여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꽤 정신없는 일주일

금요일에 Boston으로 비행기 타고~

토요일, Boston, MA
민우의 생일. 저녁에는 민우 생일 축하를 해주고…
공동대표 모임 준비

주일, Boston, MA -> Chicago, IL
공동대표 모임 준비 계속…
저녁에 Chicago로 비행기 타고
밤 늦게 Chicago 도착, 밤 늦게까지 이런 저런 얘기들…

월요일, Chicago, IL
아침 7시 식사를 시작으로…
저녁식사까지 계속 회의, 발표…
공동대표들께 propose 한 여러가지 안에 대한 설명. presentation, 질문에 대한 대답.
저녁 식사 이후에는, 또 다시 KOSTA와 미국내 한국 학생 사역들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
KOSTA leadership structure에 관한 이야기들…

화요일, Chicago -> Palo Alto, CA
아침 4시에 일어나서 공항으로 향함.
공항에서 여러가지 자료 정리,
비행기 내에서 저녁에 있을 성경공부 준비 마무리
그러다 지쳐서 잠자고…
회사에 나오니 밀려있는 process의 압박!
새로 시작하는 회사관련해서 해야 할 일들도.
화요일 저녁 Stanford 학생들 성경공부 리더모임 인도

수요일, Palo Alto, CA -> Ames, IA
아침에 회의 하나 하고…
바로 공항으로 가서 Iowa로 비행기 타고 날아갈 예정.
밤 10시쯤에 도착, 호텔에서 쓰러지고…

목요일,  Ames, IA
하루종일 미팅, 미팅 미팅…

금요일, Ames, IA -> Palo Alto, CA
아침 일찍… 또 다시 비행기타고,
돌아와서는 오후에 밀린 process 좀 더 하고.
저녁에는 성경공부 참석

꽤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

Called vs. Driven

Gordon McGonald 목사님의 Ordering Your Private World 라는 책을 보면
(한국 번역판 이름은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Called people과 driven people의 대비가 나온다.

책을 읽은지 벌써 거의 20년쯤 되었으므로…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적극성과 능동성, 그리고 잘 정리된 삶에 대비되어,
쫓겨서 사는 삶은 피동적이고 소극적이고 잘 정돈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것과 관련된 또 한가지의 dimension을 최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떤 건강한 가치를 위해 헌신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일을 할때,
called people(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창의적으로, 적극적으로 한다. 희생이 이들에게는 억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일 수 있다.

그러나,
Driven people (쫓겨다니는 사람)은, 피동적으로, 소극적으로,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이끄는 주체 (사람, 조직, 가치)등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임하게 된다. 희생이 이들에게는 불평과 불만과 갈등의 이유가 된다.

함께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은 주의의 사람들을 called people로 만들도록 섬기면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희생하도록 돕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주의의 사람들에게 논리와 경험등을 앞세워 충고와 명령과 당위를 남발하면서 called people로 있던 사람들 조차도 driven people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특히 내가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 내 가족들, 내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을 called people로 만들고 있을까, 혹은 driven people로 만들고 있을까.

대답에 자신이 없다.

성급한 자아비판의 오류

나는 자아비판을 즐긴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매우 성숙한, 자기 성찰을 잘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 내가 자아비판을 즐기는데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음을 본다.

1. 자기 방어이다.
내가 내 스스로를 비판함으로써 다른이가 나를 비판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다소 치사한 자기방어라고 할 수 있다.

2. 게으름이다.
겸손, 혹은 자기성찰 이라는 건강한 가치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나와 내 주위의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내 스스로 건강한 가치를 지킨다는 자긍심도 지키게 되고 스스로의 만족감도 느끼면서 부지런히 나와 내 자신을 살피는 귀찮음도 피할 수 있다.

3.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무지이다.
최근 어떤 형과의 대화를 하면서, 내가 그 형에게 내 사역의 열매가 얼마나 거짓이 많은지, 나의 manipulative한 성향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작하여 만들어낸 사역의 열매가 많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러자 그 형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그렇게 맺으셨는데… 과연 네 능력으로 심지어는 아주 얄팍한 수준의 사역의 열매라도 맺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 지나쳐 하나님의 일하심을 덮어버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지금 이 글도 그릇된 자아비판은 아닐지…

가을이 외롭지 않다.

대학 다닐때나,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때 였던 것 같다.
나는 유난히 가을을 많이 탄다고 느꼈었다.
가을만 되면 외롭고, 괜히 멜랑꼴리 해지고 그랬는데…

언젠가 부터 가을이 외롭지 않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결혼을 하고나서 외로움이 채워져서 일까?
바쁜 생활 속에 외로뭄을 느낄 여력이 없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