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에 맞지 않는 일 (2)

이건 뭐 길게 쓸 생각이 없었는데 하나 더 쓸게 생겨서…

나는 기독교 미니스트리에 있어서도 정말 내가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나는 그냥 내가 해야하는 일, 내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사는 것 같다.

교회에서 성가대가 부족하면 성가대 하고,
성경공부 인도자가 없으면 성경공부 인도자를 하고,
주일학교 선생님이 없으면 주일 학교 선생님을 하고,
설교할 사람이 없으면 설교를 하고…

뭐 그냥 그거 주어지면 나름대로 그거 열심히 하려고 꽤 많이 노력을 하니까,
사람들은 내가 그거 좋아하고 잘하는줄 알고 그냥 그걸 자꾸 시킨다.

20대까지는 그게 좀 불만이었는데,
30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에이… 뭐 내가 꼭 하고 싶은걸 해야 하나. 그냥 내가 뭐가 되었던 도움이 조금이라도 된다면 그럼 되는 거지 싶어서 진짜 아무거나 하게 되었다.

에이, 뭐 그런거지 뭐.
뭐가 되었건 누군가에게 쪼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된거지…

적성에 맞지 않는 일

중학교때 수학을 뭐 꽤 잘 했다는 이유로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때 나는 내게 수학에 재능이 없다는걸 알았다.

대학때 예수님을 믿고나서 철학적 고민들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나는 내게는 이과적 재능보다는 문과적 재능이 더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원때 실험을 하면서, 나는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실험을 하는 것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그래도 어느정도 직장 내의 여러 일 가운데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했으므로 그럭저럭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에 대해 큰 불편이 없었는데…

요즘은 회사에서 hard core engineer라기 보다는 그냥 program을 manage하는 일을 하다보니,
아…이건 또 역시 적성에 안 맞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

그래도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박사까지 마치고, 그걸로 밥벌이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그렇게 하고 살았으니…
이젠 그러려니 하면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아니, 그렇게 적성에도 안 맞는다고 하면서 나름대로 좋은 학교 다니고, 좋은 직장 다녔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그건 내게도 좀 미스테리이기도 하다.
그냥 내가 적성에 맞지 않는 상황에서 적응해내는 방법은, 그저 ‘열심히 하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사정을 별로 봐 주시지 않고 나를 막~ 굴리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이리저리 나를 몰아가셨던 것 같다.

나는 빠릿빠릿하게 내 앞길 챙겨가며 살아가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은 확실히 아니다.
나는 그냥 주어지면 그거 열심히 배워가며 그럭저럭 해나가는 사람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딱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그 일을 그럭저럭 하는 것이 내 적성인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었던 분야의 공부도 결국 못했고,
하고 싶었던 직업도 갖지 못했고,
가고 싶었던 쪽의 직장도 가지 못했고,
50대가 되면 되고 싶었던 모습의 사람으로 내가 되지도 못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거나, 무슨 쪽의 일을 더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게 내 뜻 대로 안될 것이 분명하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내가 그분을 뵈었을때,
너 하고 싶은거 많이 못하고 살았으니, 너 하고 싶은거 좀 하게 해줄께 라고 해주셨으면… 하고 바랐던 때가 예전에 있었으나,
점점 철이들고 나이가 들면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 (my desire)가 많이 정화되어 나중에는 그저 모든 것을 마음에 품고 살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이 더 커지고 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 보다는,
사랑을 배우며 사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Schweinshaxe

이번에 나와 함께 출장을 온 친구는 30대 초반의 인도 친구다.
그런데 이 친구가 고기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
소고기, 돼지고기 할 것 없이 다 잘먹는다.
키는 나보다 조금 더 큰데, 팔뚝 굵기는 내 팔뚝보다 두배쯤 되는 완전 건장한 친구다.

어제 호텔에 돌아오니 저녁 8시쯤 되었는데,
이 친구가 호텔 근처를 좀 구경하고 밥을 먹자고 해서 함께 나갔다.

마리엔 광장 (Marienplatz)라는 곳을 지나서 나름 유명하다는데를 이 친구가 찾아서는 함께 가자고 해서 갔다.

나는 Schweinshaxe 라는 독일식 족발(?)요리를 먹었다.
예전에도 독일에 오면 먹어야 한다고 해서 먹었다가 완전 후회했던 음식이었다.
완전 느끼하고….. 또 느끼해서…

그래도 다른 도시에 왔으니까 재 도전을 해보자 해서 또 먹어 봤는데,
이번엔 좀 느끼하긴 했지만 훨씬 괜찮았다.
내가 느끼한걸 더 잘 먹게 되었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 이 집이 더 잘하는 집인가보다.

나는 호텔에 오면 그냥 home office랑 연락하면서 이메일 주고 받고, conference call 하느라 바쁜데,
이 친구는 완전 에너지가 넘쳐서 빨빨거리고 자꾸 다니자고 나를 재촉한다.

출장 둘째날은 도저히 시간이 안되어서 저녁 먹으러 나가지 않고 호텔에서 일을 하다가 잠들었지만,
나머지는 매일 이 친구 덕분에 끌려 나가서 매일 저녁 구경도 하고, 뭔가 색다른 것도 먹고 그렇게 되었다.
시차도 있고, 스트레스도 받고, 할일도 많은데…
그래서 나 혼자 왔더라면 그냥 호텔방에서 있다가 잠을 잤을 텐데.

이번주나 다음주에 언제 한번, 이 친구에게 맛있는 밥이라도 한번 사야겠다.

뮌헨

나는 독일에 많이 와 보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Dresden 에 뻔질나게 갔었고, 거기서 독일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었다. 그쪽 사람들과 일하면서 독일의 문화도, 독일 음식도, 일하는 방식도 어느정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뮌헨(Munich) 근처에 와 있다.
Dresden은 Saxony 라는 지역에 있고, Munich은 Bavaria 라는 지역에 있다.

여기와서 보는 독일은, 내가 Dresden에서 봤던 독일과는 꽤 다르다.

독일은 여러 작은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다가 20세기 들어와서야 하나의 나라로 형성된 나라이다.
그리고 독일은 유럽에서 일종의 변방국가였다.
듣보잡의 나라가 게다가 나누어져 있었으니 그냥 자기들끼리 자기 문화 안에서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마 그래서 지역별로 그 특징이 더 잘 살아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 독일은 사실상 유럽연합의 중심이다.
EU의 모든 젊은이들은 독일에 와서 일하고 싶어하고,
독일이 EU의 모든 자원을 뽑아먹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Propylaea 라고 부르는 Munich의 유명한 Gate이다. 우리 나라의 남대문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으려나. 호텔에 돌아와서 약간 늦은 저녁 먹으러 가다가 찍었다. 저녁 8시가 넘었는데 살짝 해가 남아 있다.

슈니첼(Schnitzel)이라고 부르는, 독일식 돈까스이다. 어제 저녁엔 이걸 먹었다. 근처의 꽤 큰 식당에서 먹었는데, 알고보니 거기가 Munich에서 꽤 유명한 Beer Garden이었다. 나야 술을 마시지 않으니 그냥 먹기만 했지만.
이럴땐 술을 못마시는게 좀 아쉽다. 독일에 온 김에 맥주라도 좀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ㅋㅋ

Spoiled

내가 가끔 (아니면 자주) 출장 가는것에 부담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녀서,
내가 출장을 가면 무지하게 고생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좀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보통 완전 편한 여행을 하게 된다.
비행기도 편하게 가고, 호텔도 편한데 자고, 맛있는 것도 (너무) 많이 먹고, 어떤땐 현지 회사 사람이 명소에 데리고 가 줄때도 있다.
그러니 투덜거리지 말고, 많이 감사해야 하는 건데…

물론 한편, 이렇게 출장을 오면,
home office와 이곳 현장에서 동시에 message들이 막 들어오고,
밤이고 낮이고 급하게 답을 해줘야하는 일들이 쏟아지기고 하는데다,
무엇보다 이렇게 돈 들여서 오는 출장에서 뭔가 ‘결과’를 내어야 한다는 부담이 커서 스트레스 지수가 많이 높아진다.

이번에 출장을 오면서는 그래서,
적어도 내가 오는 도중의 여정중에 특징적인 것들을 사진으로 담아보겠다고 생각했다.
(얼핏 보더라도 아주 성의없이 찍은 사진임이 확~ 드러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숙제한다 생각하고 찍어 보았다.)

투덜거리지 말고, 감사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중, 혹시 제가 나중에 출장 간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보시거든, 따끔하게 혼내주십시오. 배가 불러서 그러는 거라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내일부터는 블로그 올리는게 살짝 쉽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

Simple life가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면

Apple watch가 처음 나왔을때 나는 그게 뭐 얼마나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가 그 회사에 있을때 내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그쪽 관련된 일을 벌써 하고 있었다.

그 후 내 전화를 android로 바꾸고 나니, 값싼 smart watch를 살 수 있는 option이 생겼다.
지금 내가 차고 있는 smart watch는 ebay에서 79불 주고 산 거다.

한동안 매일 시계를 충전하는게 귀찮아서 그냥 시계를 차고 다녔었다. 내 아내가 몇년전에 선물해준 그래도 살짝 비싼 (?) 시계였다.
뭐 그럭저럭 괜찮게 지냈는데, 자꾸만 여기 저기서 빵꾸가 났다.
회사에서 급하게 나를 찾는데 내가 모르고 지나기도 하고, 여기 저기서 난리가 나서 10분 간격으로 schedule이 바뀌면서 meeting이 정신없이 돌아가는데 나는 그걸 제대로 follow-up을 못하는 일들이 생겼다.
그러면 이게 정말 민폐다.
내가 무슨 말을 좀 해주어야 일이 풀리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그 미팅에 나타나지 않으면 거기 온 사람들이 그냥 소중한 시간을 날리고 허탕을 치는 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난주부터 다시 smart watch를 차기 시작했다.
당연히 손목에선 하루 종일 난리가 나고, 나는 훨씬 민폐를 덜 끼치는 사람이 되었다.

Simple life라는게 참 듣기 좋아보이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기도 한데…
어떤 이들에겐 그게 그냥 그림의 떡이다.

마치 고급 승용차가 보기에도 좋고, 그거 타면 편안하고, 그거 타고 싶은데…
어떤 이들에겐 그게 그냥 그림의 떡인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이라는 자원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그런 의미에서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비슷한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돈이 더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이 미덕으로 여기지듯이,
시간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시간이 더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도 미덕으로 여겨져야하는 것이 아닐까.

돈 없는 사람들 앞에서 돈을 쓰는 것을 자랑하며 뻐대는 것이 폭력적인것 처럼,
시간 없는 사람들 앞에서 시간 많음을 자랑하며 뻐대는 것이 혹시 폭력적인 것은 아닐까.

나는 뭐 그렇게 아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시간을 받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해본 생각이다.

또 다시 출장

지금 하고 있는 어떤 manufacturing process에 완전 비상이 걸렸다.
그래서 지난 3주동안 아침 6시 이전에 이메일을 꼭 봐야 했고, 밤 12시 넘어서 까지 이메일을 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처해 있었다.
내가 지금 이쪽 team의 일을 일부 하기 시작한지 이제 두주 조금 넘었는데, 나는 이 일을 시작하자마자 거의 바로 비행기표부터 알아보아야 했다,

팀 사람들은 심지어 농담삼아서…
너 거기에 네 아파트 하나 잡아야 하는거 아니냐? 고 묻기도 한다.

결국 지금 나는 독일이 와 있다. -.-;
(엄밀하게 말하면 독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암스테르담 공항에 와 있다)

이번에는 주일 오후에 출발해서 토요일에 돌아오니까 그렇게 긴 여행은 아닌데…
이렇게 내가 한번 출장을 가면 내 여행경비 등으로만 보통 적게는 5천불, 많이는 1만5천불 정도는 쓰게 된다.
그리고 내가 ‘현지’에 가기 때문에 그 현지의 사람들이 extra로 부담해야하는 시간과 노력과 돈등을 생각하면 지불하게되는 총 액수는 더 커진다.
한 사람이 하는 일을 위해서 일주일에 1만불을 확~ 쓰는 investment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home office에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공백등을 고려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꽤 많은 돈을 들여서 나를 이렇게 출장을 보내는 거다.

그래서,
이번 출장에서도 아주 열심히 일을 할 예정이다. ㅎㅎ
빡빡하게 일정 짜고, 매일 home office에 있는 사람들에게 Progresso report 해주고,
아마도 밤에는 home office 사람들과 conference call도 좀 하게 되지 않을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서 열심히 일해라. … 뭐 그런 구호가 내게 맞는게 아닐까.

요즘 한국의 이상한 어투 (5)

나는 일본에 출장을 가면 사람들이 당연히 내게 일본말로 이야기한다.
중국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들은 무조건 내게 중국말을 던진다.
그런데, 인천 공항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내게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

그게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한국 수퍼마켓에 가면,
앞 사람 까지는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던 캐쉬어가, 나를 딱 보고는 금방 hello 라고 영어를 한다.

얼마전부터 민우는 나랑 같이 수퍼마켓에 가서 내가 그런꼴(?) 당하는걸 보면서 나를 놀리는걸 재미로 삼고 있다.

내가 수염을 길러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솔직히 말하면 수염 기르기 전에도 늘 그랬다.
사람들이 나를 한국사람으로 안보는 거다. -.-;

25년전에 떠나온 내가 기억하는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정말 다른 나라다.
그게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그렇지만 문화적으로 특히 언어에 있어서도 분명히 큰 변화가 있다.

한국에 늘 사는 사람들은 그걸 감지하지 못할 지 모르지만,
나처럼 한국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확실히 그걸 느낀다.

한국의 문화가 내게 foreign하게 느껴지는게 살짝 슬프다.
한국말이 내게 어색해져가는 것이 또한 살짝 슬프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내가 한국에서 떠나와 살고 있는 걸…

참 신기한 일이다

적어도 미국 코스타에서 주제를 정하기 위해 간사들이 brain storming을 하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도 2001년 “낮아지신 예수, 섬기는 그리스도인” 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후 이래저리 주제를 정하는 작업에 직접, 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왔었다.

그러면서 지난 20년정도의 기간동안, 코스타의 주제들은 내 신앙과 신학을 define하는 역할을 해 주었다.
매해 그 주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공부와 묵상을 꽤 열심히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그냥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깨달음이 올때가 많이 있었다.
이상하게 집회를 준비하면서 7월 초에 가까와지면 그 주제에 대한 여러가지 깨달음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경험을 자주 하곤 했다.
무릎을 탁 치며 감탄을 하기도 하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전율을 느끼기도 했었다.
왜 꼭 이 기간에 그런 깨달음들이 몰려들어오는지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냥 하나님께서 섬기는 사람들에게 부어주시는 특별한 은혜려니… 하는 것 이외에는.

금년에는 마지막까지 이번 집회를 참석할까 말까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직장문제가 좀 걸려 있는 것도 있고. (직장 문제에 대한건 다음주 지나고 이 블로그에 한번 정리해서 써보려고 생각중이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비행기표를 끊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지난주 초가 되어서야 마일리지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건,
비행기표를 끊은 그 날 밤부터 갑자기 ‘믿음’에 대한 여러가지 깨달음이 몰려오는 거다.
때 마침 이어지던 히브리서 말씀 묵상을 통해서, 어떤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우연히(?) 듣게된 어느 선교사님의 선교 보고를 통해서…
정말 마치 소나기가 내리듯 그렇게 깨달음들이 몰려들어왔다.

나야 뭐 특별히 이번 집회 기간에 하는 것도 없고… ^^
(아, last minute에 성경공부 그룹 하나 땜빵을 이틀동안 하게 되긴 하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꼭 집회를 섬기는 사람이라고 볼것도 아닐텐데….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것 보면 참 신기하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내가 지난 10일여동안 등골이 오싹해지도록 깨달아진 그런 경험이…
참석하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다음 한주 블로그 쉽니다.
7월 8일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꾸벅~

‘믿음’이라는 뱃지

N T Wright이 아주 자주 쓰는 말 가운데 하나는,
신약백성들은 ‘믿음’이라는 뱃지를 가진 백성이라는 말이다.

N T Wright은 믿음을,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통로라고 이해하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지는 표지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믿음이라는게 어떻게 표지가 되는 거지?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야 비로소 믿음이라는 것이 뱃지가 될 수 있음이 깨달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지금 한참 진행중인 히브리서를 읽으니 훨씬 이해가 잘 된다!

아… 이렇게까지 이해가 늦어서야…

한편 내가 믿음이라는 것을 너무 좁게 정의하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새롭게 확~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