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뼈들에 생기를

아주 맹숭맹숭 하다가도,

부르면 울컥 해지는 그런 노래가 있다.

벌써 10년도 더 전에 나온 “메마른 뼈들에 생기를” 이라는 이 노래가 그렇다.

이 노래를 부르며 북한을 생각하게 되고,

또 북한이외에도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지난 주말,

집에서 혼자 기타를 치면서 이 노래를 부르다,

울컥 해져서 노래를 잇지 못하고 그냥 기타만 쳤다. 

나를 위한 기도가 되지 않을 때

개인적으로 참 어려운 시기를 지내면서,

아..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 그렇게 고통스럽게 여겼던 시간들이 있었다.

뭐 다른 사람이 나를 보면서는,

네가 어렵긴 뭐 그렇게 어려웠겠느냐고 할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정말 사면초가가 된 것 같이 느껴진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때.. 하나님께서는, 무심(?)하게도 

내가 나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을 막으시곤 하셨다.

너무 답답해서 엎드려 기도를 시작하면,

나를 위한 기도를 몇분 하다가…

금새, 그 기도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곤 했다.

때로 그 기도가 고통받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이기도 했고,

북한을 위한 기도,

섬기던 교회를 위한 기도,

한국 교회를 위한 기도,

선교를 위한 기도,

내가 그토록 마음을 쓰고 섬겼던 K 운동을 위한 기도 등등…

그렇게 땀과 눈물을 빼고 기도를 하고 나면,

어떤 때는 아주 허탈해졌다.

아니, 하나님…

저 이렇게 힘든데…

왜 제가 제 기도하는 걸 가만 놔두질 않으시는 겁니까.

제가 뭐 스케일이 그렇게 큰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스케일 큰 기도만 자꾸 하게 하시면, 

저는 어쩝니까. 저도 힘들어 죽겠습니다.

그렇게 항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특기를 발휘하신다. : 완전히 생까신다!

아무 말씀도 않으신다. 정말 아무 말씀도.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런 시기에 나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친밀감을 깊게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생까시는 하나님을 만나면서, 아이로니컬하게도, 하나님과 대단히 가까워 졌었다.

또 다시 출장을…

또 다시 출장을 갑니다. -.-;

10월 20일에 떠나서… 아시아 출장을 갔다가,

미국 동부쪽에 갔다가, 10월 29일에 돌아옵니다.

30일부터 블로깅을 다시 하겠습니다.

이번 출장은, 약간 일정이 가벼운 편이어서, 몇번 글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솔직히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노래이다.

지나치게 가사가 shallow 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게다가 이게… 잘못된 곳으로 mislieading할 가능성도 많다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오늘 그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가사를 가만히 음미해 보면서…

그리고 두해 전에 태어난 내 하나밖에 없는 조카를 생각하면서… (내일이 고놈 생일이다 ^^)

아… 이 노래는 고놈에게는 불러줄 만 하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무엇보다도,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제대로 알며 크면 참 좋겠다.

narcissistic하게, 혹은 shallow하게 그렇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하나님에 대한 깊은 통찰과 깨달음을 통해,

뼈속 깊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지 않(던) 이 노래의 가사를,

내 조카의 생일에 마음을 담아 보내고 싶다.

시편 1편

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아니하며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그에게 안 될 일이 무엇이랴! 

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아서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고

제 철 따라 열매 맺으리.

사악한 자는 그렇지 아니하니 바람에 까불리는 겨와도 같아

야훼께서 심판하실 때에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죄인이라 의인들 모임에 끼지도 못하리라.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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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번성함을 보고, 하도 복창이 터지고 속이 쓰려서…

시편 1편을 보다가, 문득 공동번역이 어떻게 번역했는지 궁금해서 찾아 보았다.

아.. 이거 참 맛깔나게 번역했네.

나름대로 그래도 시 같은 맛을 살리려고 노력하며 번역한 흔적이 보인다.

악인의 번성함을 보며,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한 마당에…

시편 1편의 내용과 더불어, 그 번역의 신선함에 잠시 refresh 되다.

기도가 깊어질때

말씀을 연구하는 일은,

좀 부지런히 힘을 내면 그럭저럭 되는 것 같은데…

기도가 깊어지는 것은 참 다르다.

지금껏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과 함께 살아오면서,

기도의 깊이가 깊어졌던 과정은,

gradually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몇번의 quantum jump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처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한지 대략 1년 반 남짓 지났을 때, 

열정적 종교생활에 약간 burn-out이 되고, 그와 함께 학교 생활 속에서의 어려움이 겹쳐졌을때.

내 탄식이 깊이 있는 기도가 되는 경험을 했다.

처음 코스타 집회를 갔다 온 후, 

교회 청년부 아이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했을때…

가슴에 불이 붙은 것 같은 뜨거움으로,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반복해서 기도하는 경험을 했다.

이때 방언도 하게 되었고, (그런데 사실… 나는 방언의 유익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

일종의 신비체험도 좀 했다.

그러다가 한동안,

소리쳐 기도하는 일이 딱~ 막혀버리는 기간을 겪었다.

아무리 소리내서 기도하려 해도 그게 되질 않는 것이었다.

그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깊이 주님과 머무는 기도를 하는 경험을 했다.

최근,

주변 여러 사람들의 고난을 간접으로 경험하면서,

일종의 영적 침체를 겪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심, 나와 내 주변의 죄를 보며 느끼는 중압감 등 때문에,

고통스러운 기도를 하는 기간을 좀 지냈다.

(사실 아직도 좀 그런 기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간을 거치며 기도가 조금씩 깊어진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아직도 내 기도의 깊이가 영… 마음에 차질 않는다.

분명히 이것보다 더 깊은 무엇이 있을 텐데…

기도가 겨우 이런 수준이 아닐텐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죄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죄의 무게가 정말 말도 다 할수 없이 무겁기 때문이다.


삶의 궤적 속에서,

잘못된 결정, 죄에 이끌린 선택 등등을 사람들은 반복해서 하기 마련이다.

그때 그들에게 필요한 첫번째 말은,

그 잘못에 대한 지적이나 충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 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세상을 사랑하신다.

그러실 필요가 없는데, 

그 망가진 세상을, 자신을 저버린 세상을 향해 가슴을 찢어가며 아들을 내어 주셨다.

마음이 무너져, 몸이 아픈 이에게,

몸이 아파 마음이 무너진 이에게,

하나님을 너무나도 피상적으로만 만나기에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를 기피하는 이에게,

깊은 침체 속에서 어떻게든 발버둥치며 구원을 바라고 있는 이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이야기를,

제발 누군가가 좀 해주길…

정말 그러길 기도한다.

그리고,

그들이 제발 좀 귀를 열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심을, 온 가슴으로 받아들이길 기도한다.

아빠, you are very predictable

민우가 내게 잘 하는 말이다.

아빠는 매일 청바지에 셔츠 입고 회사가고,

민우를 학교 데려다줄 때 똑같은 말로 인사하고,

민우와 엄마에게 똑 같은 농담하고, 똑 같은 장난 치고,

똑같은 음식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아 하고,

똑같은 헤어 스타일에,

똑같은 표정…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하는 것이 매우 predictable하단다.

뭐 내가 그렇다는거 fully 인정하고, 그게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이렇게 대단히 predictable한 아빠가 되는 것이 민우에게 과연 좋은 것일까, 그렇지 않을까 하는 것은 좀 고민이 된다.

내 연극 동아리 실패담

1.

대학때, 나는 연극을 꽤 열심히 했었다.

시간만 나면, 대학로를 다니면서 연극 대본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고,

극단에 찾아가서 한수 가르쳐 달라고 해서, 연극 배우가 직접 학교에 와서 연기 지도를 해주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기본기에 충실하게 연극을 배웠다.

발성법, 무대 동작, 소품 만드는 법 등등…

2.

나는 학교가 신생 학교여서, 전통이라는게 없었다.

동아리도 뭐 그냥 몇사람이 모여서, 우리 동아리 만들자 하면 만들게 되는 거였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같은 활동을 하는 여러개의 동아리가 생기기도 하였다.

연극도 두개의 동아리가 생겼다.

우리가 속한 A 동아리는, a 과학고 출신이 주동이 되어 만들어졌고,

우리 라이벌 B 동아리는, b 과학고 출신이 주동이 되어 만들어졌다.

이 두 동아리는 분위기가 꽤 달랐다.

우리 A 동아리는, 연극 자체에 집중했다. 소위 본질에 집중한 거다. ^^

연극에 대해 토론도 하고, 연극을 차근차근 열심히 배웠다.

옆 B 동아리는, 함께 몰려다니며 엄청 술을 마셨다. ^^

그러다보니 솔직히 그쪽에서 올리는 연극은… 살짝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가졌다.

우리는 그게 늘 자랑스러웠다. 우리는 본질에 충실한, 연극을 더 잘하는 그룹이라고.

3.

우리 A 동아리는 그런데, 계속 a 과학고 출신들이 들어왔다.

거의 a 과학고 동문회 분위기의…

그러다보니, a 과학고에서만 통하던 농담 그런것도 많이 하고… 

점점 a 과학고 출신 아닌 사람들은 들어오기가 좀 힘든 모임이 되어갔다.

B 동아리는,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뭐 술마시고 노는게 큰 일이었으니.. 당연히 오디션 같은거 보더라도 문턱도 낮았고, (우리는 오디션 진짜 깐깐하게 했었는데… ㅎㅎ)

2년 정도가 지나자 b 과학고 색깔은 거의 없어졌다.

4.

내가 학교에서 졸업한지 벌써 20년이 훨씬 더 지났는데…

지금 찾아봤더니, A 동아리는 아마 버얼써 없어진 듯 하고, B 동아리는 아직도 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본질에 충실했고, 나름대로 그것이 자랑스러웠으나…

쪼그라들어 소멸했고,

저쪽은 기초도 부족했고, 우리는 그것을 우습게 여겼는데…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

(기독)운동, 교회, 회사, 가치, 사람 등등을 생각하며…

나는 내 실패담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필요한 것 보다 더 망가진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소위 ‘갑’ 이다.

이게 보통 갑이 아니고, 완전히 울트라 짱 수퍼 갑이다.

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cash가, US government가 소유하고 있는 cash보다도 많단다.

이 엄청난 돈의 힘으로, 정말 무지막지한 권세를 휘두른다.

그러다보니, 나 같은 엔지니어에게도 꽤 큰 파워가 있다.

가령, 내가… vendor들에게 이야기하는 말투는 이런거다.

“내일 아침 몇시까지 무슨 데이터를 준비해서 보내라. 이번 데이터는 매우 중요한거다. 지난번 처럼 빼먹는 것 없이 꼼꼼하게 해라.”


vendor들이 나에게 하는 말투는 이렇다.

“우리가 논의해보니 이런것들이 위험요소인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언을 부탁한다.”

“원하는 데이터를 바로 보내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여기 요청한 데이터를 보낸다. 검토해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더 요청을 해주길 부탁한다. 이렇게 함께 일할 수 있어 기쁘다.”


…


관계가 이렇게 되어있다 보니,

vendor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아주 가관이다.


vendor들은 잘 대해주면 안돼. 걔네들은 하루에 한번씩 혹독한 이메일로 독촉을 하고, 이틀에 한번씩 전화를 걸어서 따져야 일을 제대로 한단 말이야. 

뭐 이런 식의 태도를 아주 흔히 접한다.

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힘이니까..

그 돈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지시를 하는 구조가 되기 마련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그 어그러진 구조 속에서 살아 가면서,

적절한 수준으로 망가지는 법이 거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서 일을 하는데 필요한 수준보다 훨씬 더…

많이…

망가진다.

이렇게 소망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