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긍정하는 기독교 (2)

교회에서 흔히 ‘기도제목을 나눈다’는 표현을 한다.
난 이 표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

기도를 요청한다, 내가 기도하는 내용을 나눈다 등등으로 표현을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표현일텐데 말이다.

하여간, 각설하고…

그렇게 교회에서 ‘기도제목을 나눈’ 리스트를 쭉 보면…
결국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에 적절하지 않을 경우, 그 상황이 바뀌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이룰 수 있기를 바라는 것들이다.

병이 낫기를 바란다거나,
좋은 학교에 진학을 하거나,
좋은 직장을 잡거나,
결혼을 하거나,
아이가 잘 크거나….

아, 물론,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은 이걸 그냥 내가 이걸 하고 싶다… 이렇게 저렴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주님을 뜻을 알기 원한다거나,
비전을 세우고 싶다거나,
인도하심을 구한다거나…

이런 대단히 종교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포장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독교의 본질이 그런 것일까?
내 욕망을 추구하여 이루는 것일까?
그걸 좀 적나라하게 추구하는 신앙을 오히려 기복신앙이다, 번영신학이다 해서 비난하고 비웃지 않는가.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욕망은 대단한 것이고,
그 욕망 자체를 종교적 언어로 정당화해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설교를 통해서나 기도를 통해서, 곡조로 부르는 찬양을 통해서 모두 욕망의 추구, 욕망의 성취는 반복해서 강조되고, 조장되고, 설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