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위한 것이 진보가 아닐때

소위 ‘진보적인 정치’라고 하면 경제적 사회적 약자를 더 배려하는 정책을 취하는 쪽이라고 생각했다.
경제적인 분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이념(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사람들의 머리 속에 그 ‘왼쪽’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진보'(progressive)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진보란 기존의 상황으로부터 더 나아져서 앞으로 나가자는 것인데….

사실 현대 시대의 진보는,
기술의 진보가 제일 중요한 것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그 기술이 바꾸어내는 새로운 세상이 역사의 진보를 이룬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정치체제나 이념이 진보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소위 ‘좌파’의 정치이념을 진보라고 생각했던 큰 이유는,
그 이념이 기존의 가치체계나 사회체계를 넘어서 더 ‘진보된’ 사회를 그려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좌파의 사상들조차 사람들에게는 식상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좌파가 페미니즘, LGBTQ, Political correctness 등의 가지들과 엮이면서…
그냥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혹은 일반 대중 가운데 어떤 특정사람들만을 위한 가치인 것으로 여겨지면서…
그쪽 정치 집단 역시 ‘진보적’이라기 보다는 ‘진영적’이라는 생각이 더 굳어져가고 있는 듯.

그러니,
뭔가 새로운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트럼프 같은 사람을 지지하는 것이고.
유럽은 사실 그게 훨씬 더 심한 것 같다.

어떤 정치가나 정치 집단이나 정치 사상이,
정말 이루어야 할 ‘진보’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새롭게 제시해주는 곳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 싸워오던 이슈들로 계속 싸우면서 내가 더 잘싸운다…는 식이 아니라,
좀 새로운 ‘진보’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일들이 좀 나타났으면…

야고보서 성경공부

이제 지난 주말로 이번 가을학기 성경공부가 절반이 지나갔다.
나름대로는 지금까지 해오던것과는 꽤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참 많다.

3 그룹에서 나누어지는 내용들이 모두 꽤 많이 다르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성경의 객관적인 해석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성경 본문의 주관적 적용에 더 중점을 두다보니 그런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나는..
그래도 그 본문이 가지는 객관적 해석을 아주 놓쳐버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ㅎㅎ

다들 바쁘기도 할텐데,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게 참 감사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성경공부야말로…
정말 지역교회 등에서 되어야 하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성경공부 인것 같은데…
음….

멋진 로보트 장난감

아마 국민학교 4학년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서울로 전학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데…

반에 꽤 잘생긴 친구가 있었다.
지금도 그 얼굴이 기억난다.
머리결도 약간 노란 색이 돌았고, 전반적으로 서양아이 같은 느낌이 있었다.

한번은 그 친구가 초대를 해서 그 집에 놀러가서 논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내가 예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장난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20~30cm 정도의 키를 가진 로보트 장난감이었는데,
이게 배터리를 넣으니, 걸어가면서 불이 막 켜지고, 그러다가 가슴이 열려서 그곳에 있는 총 같은데 나오더니 거기서 막 소리가 나면서 불이 켜지는 것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이었으면, 79년이었을때니…
그 당시 기술로는 그런 장난감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 친구는 그 장난감을 나와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막 자랑을 했고,
우리는 모두 한편 신기하게, 한편 부러움에 싸여 그 장난감을 한참이나 보면서 놀았다.

이번주중에 갑자기 그 친구의 장난감이 생각났다.
그래서 혹시 지금 기술로 어떤 수준의 로보트 장난감이 나오는지를 찾아보니…
허걱… 이건 완전 차원이 달랐다.

혹시… 하나 사볼까 하는 생각에 가격을 찾아보았더니, 750불!
말도 안된다… 싶어 그만 두었다.

음….
이 나이에…. 로보트 장난감을 사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라도 했다는 것이 한편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 놀랍기도 했다.

대신 주말에는…
예전에 그렇게 좋아했던 조립식 플라스틱 모델을 하나쯤 사볼까 생각중이다.
그런데 그걸 영어로 뭐라고 하나… ㅠㅠ

Ambition

Ambition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겸손함은 아니다.
그렇다고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위한 ambition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괜찮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자신과 세상을 심하게 망가뜨린다.

가슴 한곳으로부터 불타는 소망,
그것을 향한 야망,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큰 분과 세상을 위한…

ambition없는 비겁함을 겸손함으로 치장할 일은 아니다.

Rush E

Rush E 라는 피아노 곡이 있다.
이건 사람이 치라고 만든 곡이 아니고, 컴퓨터로 연주하도록 만든 곡이다.
다음과 같다.

보면 알겠지만 정말 사람이 칠수는 없는 곡이다.

그런데 인터넷에보면 이걸 실제로 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하는 건 아니고, 사람이 치는 것이 불가능한 부분을 제외하고 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피아노 잘 모르지만 뭐 참 대단하다.

사람이 하라고 만든게 아닌데 그걸 결국 해낸다.

이런걸 보면 나는 피아노는 젓가락 행진곡도 칠 줄 모르는 사람이지만,
뭔가 좀 시원하다.
나와 같은 종인 인간이 이걸 해낸다는게 그렇다고나 할까.

나는 현대에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그렇게 좀 사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결국 그걸 해낸다고?
아니, 진짜 그렇게 나누면서 산다고?
아니, 그렇게 회사다니고 아이 키우고 그러면서도 그걸 그렇게 한다고?
아니, 그 몸으로 그걸 해내고 만다고?

기독교적 영웅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게 그렇게 맥아리없이 사는 것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사람들이 좀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힘드니까 좀 주저 앉아 있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서, 힘들어도 제대로 한번 믿어보자…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좀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우리 교회 역사 속에서는 Rush E를 실제 피아노로 쳐내는 것 같이 신앙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다.
나는 그런 기독교를 믿고 있다.

Being a father

민우 생일이다.

민우는 내가 만 29살에 태어났다.
내가 어릴때, 조선시대 사람들이 10대에 결혼했다고 하면 완전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결혼은 늦게하는 요즘 20대가 보기엔 내가 29살에 아빠가 되었다는 것이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을지.

나름대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고, 좋은 아빠가 되기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29살에 아빠가 된 나는 좋은 아빠가 되기에 충분히 잘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더 성숙해갔지만,
민우가 자라고 성숙해가는 속도를 잘 따라갔던 것 같지는 않다.

완벽한 부모는 세상이 없지만,
그러니 당연히 그 부모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자녀에게 어떤 형태로든 자국이 남을 수 밖에 없지만,
나의 미성숙함과 불완전함이 민우가 평생 가지고 가야하는 무게로 남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도 내가 부족한 아빠였던 것에 비하면 민우는 참 잘 자라주었다.

아이가 어릴때는 내가 가진 것을 더 많이 부어주어야 했었다면,
점점 민우가 자라고 어른이 되어가면서는
민우가 가지고 있는 그 자신만의 아름다운 꽃을 잘 피우도록 돕는 역할을 해주어야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내 꽃을 대신 피우는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만의 꽃을 피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성인이 된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예전보다 더 깊은 내적 성숙을 요구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