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정리하며

아마도 오늘의 글이 올해의 마지막 포스팅이 아닐까 싶다.
내일부터는 새해 1월 초까지 잠시 휴가를 가지려 한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한해동안 좀 성숙해지는데 집중해보겠다고 결심을 했었고,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기능’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그냥 계속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내 인격 자체에서 맺혀야하는 열매를 맺고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러기위해서 규칙성으로부터 때로는 벗어날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한해를 돌이켜보며 내가 조금 더 그렇게 살았을까를 생각해본다.
아닌 것 같다.

그런데 희망적인 것은,
한동안 급격하게 내가 기능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었는데, 그 가속화 흐름은 확실히 꺾였다. 추세가 달라졌다고나 할까.

연말에 조금 잘 쉬어볼 생각이다.
쉬면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나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one day walk on water?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save our sons and daughters?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Has come to make you new?
This child that you delivered, will soon deliver you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ill give sight to a blind man?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ill calm the storm with his hand?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Has walked where angels trod?
When you kiss your little baby
You kiss the face of God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The blind will see, the deaf will hear
The dead will live again
The lame will leap, the dumb will speak
The praises of the Lamb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Is Lord of all creation?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one day rule the nations?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Is heaven’s perfect Lamb?
That sleeping child you’re holding is the great, I Am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Mary, did you know? Oh

마리아 당신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그 아기
언젠가 그가 물 위를 걷고 우리를 우권할 것을
마리아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삶이 바뀔 것을
당신이 낳은 아기 당신을 살릴것을

마리아 당신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그 아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폭풍을 잠잠케 할 것
마리아 알고 있었나요 그는 하늘에서 온 이
당신이 입맞춘 얼굴, 하나님의 얼굴

눈먼 자를 보게 하고 죽은 자 살리고
저는 자를 뛰게하고 벙어리를 찬양케
오 마리아 당신 알고 있었나요
당신의 그 아기가 만유의 주
마침내 그가 온 세상 통치할 것을
마리아 알고 있었나요
당신 품의 그 아기가 하나님의 어린양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Bell labs, IBM research, HP labs

내가 대학생일때, 그 후에 박사과정 전반부까지만 하더라도
Bell labs이나 IBM TJ Watson 연구소 등에 가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사실 내가 박사과정을 했던 분야에서 거의 절대 강자는 Bell labs의 어떤 그룹이었다.
거의 넘사벽에 가까울 정도로 훌륭한 논문들이 그곳에서 나왔다.

그리고 IBM research도 역시 그랬다.

그런데…
내가 박사과정을 마칠때 쯤 해서 Bell labs의 위상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Bell labs라는 연구소가 여기 저기 소속을 바꾸더니만, 거기서 하던 기초 연구들은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IBM research는 Bell labs가 없어지는 것보다는 그래도 조금 더 늦게 이루어졌지만 역시 거기도 마찬가지 였다.

내가 박사를 졸업하고 취직한 첫 직장은 HP labs였다.
특히 내가 들어간 그룹은 DVD-RW를 처음 개발한 그룹이었다!
또 HP labs에는 여전히 ink jet printer를 처음 개발했던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교과서에서 이름을 보았던 사람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름대로 그곳에서 참 재미있게 일했고,
거기서 한 일들이 그 분야에서는 아주 크게 주목을 받는 일이 되었다.

내가 HP labs를 떠날때 즈음에는
HP labs도 매우 급격히 쇠퇴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떠났고, 연구소의 크기를 급격하게 줄였다.
그곳에서 20년 넘게 일했던 나이 많은 연구원들이 layoff를 당하는 것들을 보았다.

실리콘 밸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
그리고 그 에코 시스템에서 일하고 있는 회사들…
그 속에서 젊은 나이에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마치 이 시절이 영원할 것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
또 그 속에서 한 몫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정말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그거 영원하지 않다. 그 속에 취해 있으면 안된다. 하나님을 두려워 해라.

이것이… 내 삶속에 경험한 버전의 전도서다.

하나님을 믿는 우울함?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라는 책은 거의 30년쯤 전부터 한번쯤 읽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으면서 막상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책이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사실상 우울증이 있던 사람이었던 으로 보인다.

나는…
심각한 우울증과 싸우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때로 내 신앙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 물론 내 삶의 여정 속에서 약간의 우울증과 싸워야 했던 기간도 있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연말 휴가기간에 읽을 책으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를 뽑았다.
마침 ebook으로 나온 것이 있어 바로 샀다.

도대체 하나님을 믿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깊은 영적 목마름,
그로 인한 깊은 우울감,
때로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거리를 두게되기 까지 하는 이 증상들이 도대체 어떤 것들인지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한다.

정치의 위험성

James Davison Hunter가 지은 “To Change the World”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사회가 건강할때는 사회의 여러 분야가 함께 종합적으로 작동한다.
경제, 교육, 문화, 예술 등등.

그러나,
사회가 건강함을 잃어버리면,
그 사회는 그 해결책을 정치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 이유는,
정치는 자신의 의지를 강압적으로 성취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승리하면, 그것을 이용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따라야만하는 법/체제/행정등을 운영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은 자신의 의지를 강압적으로 모두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음…
이거 정말 완전 맞는 말인 듯.

나는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이 책에의 이 부분만 언급하는 것을 보고, 우아…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의미에서,
정치가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인것 같아 보이는 사회는,
심하게 병든 사회이다.

지금의 한국이나 미국은… 불행하게도 그렇다.

Francis Schaeffer

나의 20대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마도 Francis Schaeffer였을 거다.
대학생일때 처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서는 한참동안 그 충격과 감동을 가졌던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후 Francis Schaeffer의 여러 글들을 읽으며, 또 그분을 추종하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불행하게도 그 후에 Francis Schaeffer의 어떤 입장들이 지나치게 치우쳐져 있다는 것과 그 계열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후에 미국의 우파 정치세력과 결합하여 변질되는 것을 보게 되었고, 나는 조금씩 Francis Schaeffer로 부터 멀어졌다.

어제 문득, Francis Schaeffer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서는… 과연 Francis Schaffer의 어떤 영향이 내게 남아있는가를 생각해보았다.

무엇보다도 제일 내게 깊게 영향을 준 것은,
모든 생각과 삶과 행동 그 모든 것을 온전히 그리스도의 주권아래 두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 전제 아래 그분이 생각했던 것들중 어떤 부분에는 내가 더 이상 동의하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주되심 앞에 삶의 전 영역을, 세상의 모든 것을 드린다는 것은 여전히 내게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그리고 또한,
그분이 이야기했던 어떤 형태의 변증(apologetics) 역시 내게 지금까지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결국 Francis Schaeffer는 세상이 ‘객관적’이라고 이야기하며 펼쳐놓은 대화의 장 자치게 객관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했었고, 한편 그것에 지금도 동의하고 있는 듯 하다.

Francis Schaeffer에 대해 실망하고 멀어지면서,
한동안은 그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
어제는 문득… 내가 20대에 Francis Schaeffer를 만났다는 것이 blessing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Nuclear Fusion!?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뽑아내는데 성공했단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
MIT에는 Plasma Science and Fusion Center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박사과정을 하고 있기도 했고.
나중에 박사를 마치고 그곳에서 포스트닥을 하게될뻔 하기도 했었다.

그때 그곳에 있던 친구에게 가끔 묻곤 했었다.
핵융합이 결국 될 것 같니?

그 친구는 그러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잘 모르지. 내 생각엔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가끔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건 거의 하나님으로부터 에너지를 뽑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거든.

그 친구는 토카막을 이용해서 핵융합을 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었고,
이번에 LLNL에서 성공한 방법은 레이저를 이용한 것인 것 같다.

그 친구가 농담삼아 한마디 했던 것이 내겐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다.
핵융합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인간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기술의 영역이라는 생각.

여러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볼 수 있듯,
그런식의 생각은 사실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다.

나는 핵융합에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혹시 조금 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LLNL에서 개발한 기술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를 분별해낼만한 지식이 없지만,
어쨌든 이건 참 대단한 기술의 발전인 듯 하다!

PC and TC

지난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나눈 이야기.

PC (political correctness)는 그 자체로 나쁜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일수도 있고, 존중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PC가 그 속에 어떤 특정한 정치적 아젠다를 가지고 있을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변질될 수 있다. 그리고 PC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때로는 현실 자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TC(theological correctness)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신학적으로 올바른 것은 매우 좋은 것이다. 추구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TC가 어떤 특정한 신학적 아젠다를 가지고 있을때, 그것은 진리를 가릴 수 있다.
그리고 TC가 설명해내거나 담아내지 못하는 현실 자체를 제대로 포괄하지 못할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의 어려움, 불행 등이 있을때,
그것을 그 사람의 죄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TC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옳다!
어떤 어려움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너의 어려움이 너의 죄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폭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어떤 경우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그분의 은혜로운 섭리 안에서,
그 어려움을 통해서 그 사람의 죄를 드러나게 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내게는 그런 경험들이 분명히 있었다.
내가 어려움에 빠졌을때, 그것을 통해 내 죄가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험들.

TC를 강조하다가 잘못하면 매우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국 30-40세대의 신앙생활 탐구

어제 한국교회탐구센터에서 한국의 30대, 40대의 신앙생활에 대한 연구를 한 결과를 발표했다.

아… 진짜…
이런 것들을 들어보면…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것,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그런데 목사님들만 모르고 있는 것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조사와 연구를 하는 작업들이 참 유용하고 좋다!

참 어리석다…

어제 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괜히 Boston 의 대표적 신문인 Boston Globe website에 들어가 보았다.
그렇게 한 20분 web surfing을 하다보니 youtube에서 어떤 사람이 Boston 관광을 하는 영상을 보게되었다.

나는 Boston에 참 오래 살았다.
정말 지겹도록 ㅎㅎ

그런데…
막상 그렇게 Boston 관광을 하는 영상을 보니,
내가 Boston의 관광 명소(?)들의 대부분은 가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냥 그 앞에 차를 타고 휙~ 지나간 일들은 많았는데, 막상 그런 곳에 가서 자세히 본일은 한번도 없었다.

아…참 어리석다.

이거 완전 전도서 이야기다.

그냥 내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고, 그 속에서 누리면서 즐기는 것이 인생의 지혜라는 것.

음….
아마도 나는 지금도 그렇게 어리석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지금 이 시간에, 누리며 감사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지나쳐 버린 채,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미래를 향해 죽어라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 이번 전도서 묵상은 여러가지로 내게 많은 생각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