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과 부활과 소망

나는 facebook이나 instagram을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 중고로 무슨 물건을 살 일이 있어서 facebook에 들어가서 뭘 좀 보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어떤분의 부인께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시는 facebook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몇주동안, 부인의 상태를 자주 facebook에 포스팅해가며 결국 사랑하는 아내는 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의 매일 facebook에 써 주셨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아내를 지켜가며 그분의 육체의 소망이 점점 사그러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과 기도를 나누어주셨다.

그 간사님과 가족에게 이것이 어떤 과정이었을지 내가 감히 다 상상해볼 수 없지만,
그분이 그렇게 써주시는 모든 글들에 나도 함께 긴장하고, 기도하고, 안타까워했다.

그 사모님은 너무 일찍 건강이 좋지 않아서 세상을 떠나게 되시긴 했지만,
(대충 나와 비슷한 나이또래이시다.)
아마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동안 나도 이렇게 많은 이별을 하게될 것 이다.
내가 사랑하는 분들중 어떤 분들은 나보다 먼저 떠나실 것이고,
또 내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먼저 떠나게되기도 할 것이다.

힘드시지만 그렇게 거의 매일 써주시는 글들과 기도요청들을 써주신 그 간사님께, 그리고 그 가족들께 참 감사하다. (이게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과 소망을 가지고 계신 분이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내시는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고,
고통과 죽음, 그리고 삶과 부활에 대해 새롭게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깊이있고 지혜롭고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대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그 사모님께도 나중에 뵈면 그땐 참 감사했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그 간사님과 그 가족에게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를 기도한다.

Efficiency

아무래도 내가 회사에서 하는 많은 일들은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게 된다.
사실 어떤 일이 하루 delay가 되면 그건 그냥 시간이 조금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회비용을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하고, 현실적으로는 하루만큼의 팀 전체 임금을 그냥 날려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관리하려는 입장에서는 늘 시간과 싸우게 된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사람들중 어떤 사람이 (우리 회사 사람일수도 있고, 우리와 함께 일하는 다른 회사 사람일수도 있고)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것에 잘 따라와주지 않는다면, 그건 프로젝트 전체에 부담이 된다.
특히,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하는 일 전체에 중요한 사람일 경우에 큰 문제가 되곤 한다.

최근 몇주동안 하고 있는 일에 비상이 떨어졌는데,
가장 큰 이유는, 함께 일하고 있는 회사가 그렇게 빠릿빠릿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 회사까지 날라가서 거의 micromanage해가면서 일이 되게 하기도 했는데,
여전히 그쪽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충분이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아주 빠릿빠릿하지 못한 그쪽의 ‘문화’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실리콘밸리 밖의 회사와 일을 하다보면 많이 느낀다.
실리콘 밸리 회사에서는 저녁 7시에 이메일을 보내서 뭘 해달라고 부탁하면 다음날 아침까지는 일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회사들을 그게 몇주씩 걸리기도 한다.

또, 아무래도 우리 회사에는 소위 ‘the best and the brightest’ 가장 똑똑하고 최고인 사람들을 뽑아서 일을 하는 경향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 하는데 반해, 그렇지 않은 회사 사람들과 일을 하다보면 그쪽 사람들은 그렇게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렇게 높은 효율성을 추구하게되는 일에서는,
능력이 안되는 것이 전체에 큰 문제와 부담을 가져오게된다.
그리고 실제로 회사에서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나 회사들을 비난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똑똑하지 못하다는 것,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 일을 잘 못한다는 것은 죄일까?
그 사람들이 그렇게 비난받아야 하는 일일까?
적어도 일하는 상황에서는 ‘죄’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거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난하게 되기는 하는 것 같다.

가령,
우리 회사 사람들은 밤 늦게까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데,
정작 문제를 일으킨 저쪽 회사 사람들은 오후 5시에 다 퇴근을 해버리는 거다.
음… 진짜 열받는거지. 자기들이 문제를 일으켜놓고 문제 해결은 우리가 해야하니.

이런 것은,
회사 일을 하면서도 겪기도 하지만,
기독교 미니스트리를 하면서 겪는 일이기도 하다.

그냥 순전히 능력이 부족해서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순전히 능력이 부족해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정말 도덕적 문제인것 처럼 이야기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있다.

효율성이 강조되는 문화나 상황에서는,
이렇게 판단이 애매해지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이럴때….
그냥 죽어라고 일을 할 뿐이다. 어떻게든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니까.

판단

나는 87학번이다.
나는 대학교 전반부에는 예수님을 열심히 믿지 않았지만,
후에 예수님을 제대로 믿기 시작하면서 전두환 정권 하에서 기독교인 학생들이 했던 고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권력에 복종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영원구원을 위해서 전도하는 것이 정말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시위에 참여하는 것 보다는 기도를 하는 것이 더 기독교적인 행동이다…

등등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게 불의한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했던 부류의 사람들, 영원구원을 위해서 쓸 시간에 사회의 이슈에 뛰어드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고 했던 부류의 사람들, 행동보다는 기도가 더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했던 부류의 사람들…
이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이 명확하게 정리되는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로인해,
소위 ‘영원구원’과 ‘사회참여’가 함께 가는 것이라는 입장들도 90년대 이후 한국의 소위 ‘신복음주의’계통에서 많이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80년대 불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던 모습에 대한 반성도 (일부) 이루어지기도 했다.

나는,
지금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것에 대한 판단이 확실하게 정리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게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불의에 협조한 어떤 그룹은 타격을 입게될 가능성이 높고,
불의에 저항하거나 목소리를 내 어떤 그룹이 더 새로운 힘을 얻게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한가지 걱정스러운것은,
90년대 한국의 ‘신복음주의’계열에는 80년대를 비판적으로 반성할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90년대 신복음주의가 만들어낸
학복협, 복음과 상황, 선교한국, KOSTA, 기윤실 등등은 그래도 그 당시 건강한 그룹이었다.
(이중 어떤 그룹은 건강함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어떤 그룹은 건강함은 어느정도 지키지만 그만큼의 역량을 더 이상 갖고 있지 못하기도 하다.)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고민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운 시대에 살고 있다.

400개

2020년 여름, COVID-19이 한참이던 시절,
방에만 박혀서 있을 수 없어서 시작한 온라인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처음엔 KOSTA 온라인 컨퍼런스 후에 온라인으로 follow-up 프로그램을 했던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follow-up 프로그램 4주짜리를 하고 나니,
그냥 이렇게 끝내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었고,
그냥 그 몇 사람을 위해서 온라인으로 성경공부를 더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시작했다.

이렇게 저렇게… 그로부터 4년반 정도가 지났다.

나는 보통 온라인에서 성경공부를 하면,
그날 한 내용을 녹화를 해서 참석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용도로 나누곤 한다.
온라인에서 밤에 하는 것이니만큼 모든 사람이 매주 참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을 감안해서, 빠진 사람들이 나중에 혹시 영상을 보면서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처음 의도였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 성경공부 영상은 성경공부를 한 사람들끼리만 나누고 있다.
그러니 한편에 많아야 10번정도 view 숫자가 나오곤 한다.

그래도 참석한 사람들을 위해서 녹화를 하고 올리는 것은 그렇게 큰 노력이 드는 일이 아니므로,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

어제밤,
문득 그렇게 올라간 영상의 숫자를 세어보니 400개정도가 되었다.
지난 4년 반동안 400개 정도의 영상이 올라갔으니, 1년에 90개 정도씩은 올린 셈이다.

영상 500개가 쌓이는 날에는,
나 혼자서 그래도 수고했다고 내게 맛있는거 한번 대접할 생각이다.
아마 올해말 즈음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Going Crazy

지난 주는 거의 돌아버리는줄 알았다. ㅠㅠ

1월 마지막날, 우리가 하는 어떤 일에 ‘비상’이 걸렸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몇사람과 함께 급하게 Portland, ME으로 가야했다.
주일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탔다.

가서는 일 잘 못하는 그쪽 사람들에게 일을 설명해가면서 아침 일찍부터 밤 10시~11시까지 매일 쉬는 시간도 없이 달라붙어야 했다.

  1. 어떤 사람은 하나를 이야기하면 둘셋을 척척 알아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열을 이야기하면 겨우 네다섯개를 해내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빠릿빠릿하게 잘 해내지 못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이 되게 하려면 어쨌든 엄청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야만 한다.
    지난주는 그런 주였다.
    완전 계속 진이 빠지는…
  2. 미국의 실리콘 밸리는 늘 빠릿빠릿하게 일을 해내는 문화가 분명히 있다. 언제까지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고 하면 어떻게든 그걸 해낸다. 그걸 제때 해내지 못하면 그것 때문에 생기는 여러 문제들이 있으니.
    그런데 미국의 다른 지역에 있는 회사들중 많은 회사들은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하는 식인데, 그런 사람들과 일을 하려면,
    오늘 못하면 안된다는 걸 설득해가며, 밤 늦게까지 그 사람들 옆에 붙어 앉아서 하나 하나 이야기해가며 한편 격려도하고 한편 다그치기도 하면서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러니 대단히 효율이 떨어지고 정말 힘이 든다.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문화와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나도 힘들지만 그 사람들도 나와 일하는 것이 힘들겠지.
  3. Portland ME에서 한 30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에 그 회사의 office가 있다.
    오랜만에 쌈빡하게 추운 날씨 잘 경험하고 왔다.
    게다가 오는 날에는 눈이 많이 와서 엄청 미끄러운 눈길 3시간반 정도를 운전했어야 했다.
    오는날 저녁 9시쯤 도착했어야 하는 비행기가 눈 때문에 계속 지연되어서 결국 밤 2시가 조금 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4. 수요일 저녁에 하는 성경공부도 어쩔수 없이 last minute에 취소해야 했고,
    KOSTA 때문에 챙겨야하는 것도 제때 잘 챙기지 못했다.
  5. 그래도 꾸역꾸역 어떻게든 한주를 보냈다.
    한주를 다 보내고 묻게되는 질문.
    나는 지난 한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나?

학교

내가 예전에 소위 ‘좋은 학교’라고 알려진 곳의 대학원생들과 성경공부를 할때,
나는 이렇게 많이 이야기했었다.
여러분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은 평생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장애가 될것입니다.
더 좋고 건강한 믿음을 갖는데 있어, 여러분의 졸업장은 최대의 장애물이 됩니다.

같이 일하는 R 이라는 사람이 있다.
말하자면 그렇게 널리 알려진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람과 일하는 것이 제일 즐겁다.

일을… 정말 정말… 엄청나게 잘한다.
아주 전략적으로 생각할줄 알고, 체계적으로 생각할줄 안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단계 더 넘어서 보는 일이 많다.
게다가 사람들을 참 진실되게 대한다. 그냥 오버해가면서 친절하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때로는 그냥 딱 뿌러지게 차갑게 이야기할때도 있고, 그렇게 친절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사람을 쉽게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일이 없다.
유머감각도 있고, 참을성도 있고, 전반적으로 성품도 좋다.

그러니 사실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정받는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서는 자기 어떤 학교 나왔다고 거들먹거리는게 없다.
그러니 사람들이 꼴불견으로 보는 것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소위 ‘좋은 학교’를 졸업하게되는 것은,
정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큰 장애물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는 소위 ‘좋은 직장’을 다닌 경험을 갖게되는 것 역시 그런 것 같다.

우리 회사의 R을 보면서,
참 많이 배운다.

Stressful

요즘 대단히 정신없는 기간을 보내고 있다.
회사에서 하는 일에 좀 사고가 터져서,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쏟아지는 여러 메시지, 이메일들에 대답해가며,
문제 해결을 위한 미팅들을 빡빡하게 해가며,
사람들과 사람들을 연결시켜가며,
작전을 짜고 실행을 해가며…

원래 지난주에는 San Francisco에 있는 어떤 학회에 하루쯤만이라도 다녀오려고 했는데, 도저히 짬이 나지 않아서 내내 일했고,
원래 이번주에는 Anaheim에 있는 trade show에 가려고 했는데, 그것도 못가게 되었다.

그 와중에,
마음속에 계속 무겁게 하고 있는 기도들이 있고,
더 무겁게 할 기도들이 밀려오고 있다.

이럴때 제 정신으로 기도하는 리듬을 놓친다는 것은,
내가 삶에서 중요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두고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명확히 드러낸다.

위해서 해야하는 기도들을 놓치는 것이…
무엇보다 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 짐을 함께 지는 것도 하지 못하면서 기도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노래부르기

새해에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약간 뜬금없지만 노래부르기다.

나는 사실 어릴때부터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때 기타를 배우고나서는 (혼자서 책보고 팅가팅가 치면서 배우게 되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게 참 좋았다.

그후 예수님을 만나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친구들과 함께 여러가지 기독교 노래들을 많이 불렀다.

고등학교때는 중창도 했었고,
대학교때는 성가대도 했었다.

노래방가서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런데,
미국에와서 결혼하고 아이낳고…
점점 노래를 덜 부르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생각해도 내가 노래를 잘 못 부른다.
음도 잘 안맞기도 하고, 음역의 폭도 매우 좁다.

그래도,
새해엔 교회가면 찬양 큰 소리로 따라부르고,
출퇴근할때 차 안에서 혼자 노래를 꽤 많이 부르는 편이다.

왜 노래를 부르냐하면…
말로도 못하겠고, 기도도 잘 되지 않을때 그렇게 여러 노래로 나 자신과, 하나님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읽기

금년엔 새해 결심 그런거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거 할 정서적 여유가 없었다.
그냥 여러가지 생각에 마음이 눌려서 새로운 결심 그런것도 못하고 새해를 맞았다.

딱 하나 결심한게 있는데, 책 열심히 읽기였다.
무슨 책이든 책을 잘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소설, 학술서적, 신학서적, 역사책 무엇이 되었건 간에.

대충 1년동안 15~20권 정도 읽을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그렇게 한 것은,
보통 1년에 12권정도 읽는 것을 목표로 많이 잡았었는데,
금년에는 조금더 힘을 내어서 책을 읽겠다는 생각이었다.

비행기를 탈때도 웬만하면 영화를 보지않고 책을 읽었고,
하루에 몇십페이지라도 밤에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제 1월이 거의 끝나간다.
1월 한달동안 세권읽었으니 아직까지는 새해 결심을 어느정도 지키고 있는 중.

아, 그리고 새해엔 멕체인식 성경읽기 순서로 성경을 읽어보려하는데,
그건 살짝 나하고는 잘 안 맞는 것 같다.
뭔가 성경을 읽는 흐름이 딱딱 끊기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냥 이번주부터는 그냥 쭈욱~ 읽기로 바꾸었다.

설빔

설빔은 설날 입게되는 예쁜 새옷을 말한다.
60년대 말에 태어난 나도, 설빔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설빔을 실제 입어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릴때만 하더라도, 새해라고 특별히 옷을 하나 더 사입는 것이 특별한 시절은 아니었던 거다.

나는 비싼 옷을 입는 사람은 아니고 (그런 옷이 어울리지도 않고)
옷 입는 것에 크게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도 아닌데다,
옷이 그렇게 많지도 않다.

오히려 무슨 옷을 입을까 신경쓰는게 귀찮아서,
가능하면 단순하게 똑같은 옷을 많이 입는 편이다.

그렇지만,
설을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오늘 같은 날,
미국에 살고 있긴 하지만,
그냥 어떤 사람들에게는 예쁜 옷 한벌 사주고 싶어진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비싸지 않더라도 그냥 싸구려 티셔츠라도 하나 사주고 싶다.

이런 설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설빔을 입혀보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좀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러나, 내가 사주면 안된다. 나는 옷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잘못 사주면 욕만 먹게 되어버려서…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