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들…

현재 박근혜 게이트 상황에서

김교신 선생이 이 시대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Marin Luther King Jr가 한국민이고 지금 이 시대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Dietrich Bonhoeffer가 이 상황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Bonhoeffer가 했을 기도를 하고,
Martin Luther King Jr가 꾸었을 꿈을 꾸고,
김교신이 가졌을 passion을 가지고 싶다.

이익이 아닌 정의

나는 87학번이다. 내가 대학교 1학년일때 6월 민주항쟁이 터졌다. 나는 독재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대학교 1학년때 보았다. 독재자가 시민의 힘에 굴복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내 세대에게 대단히 크고 중요한 기억이 되었다.
사실 내 세대에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어떻게든 그때의 기억이 그들의 정치적 신념과 소신을 형성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사람들의 정치적 소신은, ‘이익’보다는 ‘정의’에 근거한 경우가 많았다.

나는 한국사회가 경험한 ‘이익’에 근거한 정치적 소신이 아니라 ‘정의’에 근거한 정치적 소신이라는 패러다임이,
어떤 의미에서 지금 한국 정치의 ‘정체’를 가지고왔다고 생각한다.

다른 정파들이,
무엇이 더 이익을 가져다 주느냐, 무엇이 더 효율적이냐는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의이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력을 하다보니,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것이 모두 ‘부정’ 조금더 나아가서는 ‘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의 정파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게 되었고 그것은 극심한 polarization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로 인해,
나는 이익에 근거한 정치가 아니라 정의에 근거한 정치로 다시 휙~ 한국 사회가 휩쓸려 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비 상식, 부정, 부패, 악, 거짓 등등과 분명히 싸워야할때다.
그렇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시기다 좀 지나가고나면…
좀 정직하고 정의롭고 상식적인 보수가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는 쪽으로 좀 정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냥 좀 정상적인 상식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인데도…
정의를 저버릴수 없어 보수 집단을 지지하지 못하는 일은 좀 없으면 좋겠다.

좋은 친구들

두주쯤 전,
민우의 친구들중 몇명이 민우 엄마에게 연락을 해왔다.
민우 surprise 생일 파티를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언제가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지난 주말에 시간을 잡았다.
민우가 아침에 늦잠을 자고 있는데, 민우 친구들 3명이 찾아와서 민우를 깨우고는 케잌에 촛불을 켜고 깜짝 생일축하를 해주었다.

그 후에 아침을 함께 먹고,
민우는 최근에 대단히 바쁘고 stressful한 일정으로부터 몇시간 탈출해서 그 친구들과 자지러지도록 웃으며 놀았다. ^^

그렇게 민우의 생일을 축하해주러온 친구들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민우가 그런 친구를 가질수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민우가 이제 성인이 되어가면서,
그렇게 깊이 서로를 위해주는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되길,
그리고 민우가 그런 친구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민우는 참 사랑이 많은 아이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늘 민감하고, 참 사려깊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존중하고 아낀다.

민우 생일 아침,
하나님께 감사한다.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관용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꽤 내 나름대로 선호하는 정치집단이 뚜렷한 편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싫어하는 정치집단이 뚜렷하다고 해야하겠다.)

사실 지난주 내내 다음의 비디오에 나오는 욕들을 실제로 써가며 이 ㅆㅂㅅㄲ들을 몽땅 까부숴주시도록 기도했었다.

이렇게 내 ‘진영’을 밝히는 이유는,
내 ‘진영’쪽에서 나오는 어떤 이야기를 비판하기 위해서이다.

최근 한국의 어느 대형교회 목사님이 ‘영성일기’에 대해서 글을 올렸다가 엄청나게 비판을 받았다.
나도 그 글을 읽었었고, 읽을 당시 그리 마음이 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내 생각과 다른 부분도 있었고, 이 시점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을 비판하는 글들을 읽으면서는 그것보다 더 많이 불편했다.
마치 그 목사님이 무슨 최순실의 꼬붕이라도 되는 것 처럼 정말 엄청나게 달려들어서 물어뜯었다.
결국 대형교회 목사의 한계라느니, 그런 사고방식이 독재를 부른다느니…

그러나,
비록 내가 fully 동의하는 신학적 관점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는 것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정치적으로 바로 행동하기 전에, 혼란스럽고 무서우니 오히려 주님과 더 가까이 하겠다고 생각할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이 정말 그렇게 비난받아야할 일인가?
뭐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비난받아야할 기독교계의 목소리는,
박근혜를 앉혀두고 사탕발림으로 어거지를 쓴 일부 한기총 계열의 목사들이다.
권력 친화형, 거짓선지자들.
나는 이 목소리는 분명히 잘못된 현실인식과 왜곡된 성경해석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이명박, 박근혜를 지지했던 더러운 경험과 함께 역사 속에서 ‘쓰레기’로 기록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려는 어떤 시도나 생각을 그렇게 ‘악’으로 규정해서 몰아붙여야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 많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기독교계에서 그런 신비주의적 영성과 같은 접근이 기독교를 post-modern generation에서 더 accessaible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말 Bernie Sanders를 지지하고, 썰전의 유시민에 열광하고, 이재명의 광화문 연설을 반복해서 들으며 좋아하고, 그렇게 정치로 세상을 바꾸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만 기독교에 남는 것은 결코 바람직 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불의에 대해서는 분명히 맞서서 싸워야하고,
불의와 타협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해야 하지만,
신앙에 있어서 어떤 것에 더 우선순위가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관용을 가져야하는건 아닐까?

정말 글쓰기가 안된다.

어제도 인터넷을 보면서 완전 쌍욕을 해 대었다.
사실 무당에 의해 조종당한 공주년 얘기 말고는 여기 다른 얘기를 쓸 수가 없는데…
그 얘기는 이미 인터넷이나 여러곳에 좋은 얘기들이 많이 있어서 (물론 나쁜 얘기들도 있지만…)
따로 여기에 내 짧은 생각을 더하는건 큰 의미가 없지않나 싶다.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께서 이 쌍놈의 새끼들을 개패듯 패주시도록 기도하는 것 말고는 따로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세월호 아이들 불쌍해서 어쩌냐.
대한민국 국민들 불쌍해서 어쩌냐.

글로 담기엔 너무나 거친 아주 심한 욕이 가득담긴 기도를 계속 하고 있다.

정말 화가나서 견딜수가 없다

진짜 뉴스를 보면서, 화가나서 견딜수가 없다.

이런 정도라면 탄핵을 하고, 그 후에 사법조치라도 해야하는거 아닌가. (한국)
이런 정도라면 조사를 해서 사법조치를 하고 실형을 살게해야하는거 아닌가. (미국)

이명박, 박근혜 같은 인간들 대통령이라고 지지한 한국 교회가 말로 다 할수 없이 부끄럽다.
Trump를 지지한다고 달려드는 미국 교회가 미치도록 부끄럽다.

정말 미치도록 화가나고,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부끄럽고,
시름이 깊도록 걱정스럽다.

이명박, 박근혜, Trump 이런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최소한 한 10년간은 투표권을 제한해야하는거 아닌가.
말도 안된다는거 잘 안다. 그렇지만 하도 화가나니, 이렇게라도 좀 venting을 해야….

87년 대선때,
양김의 분열로 노태우가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을 보고, 가슴을 치며 애통해서 기도했다는 어떤 선배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금 이런 상황을 보면서,
그렇게 가슴을 치며 기도하는 어떤 사람들이 정말 있을까.
그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만이라도 좀 들리면 내 이렇게까지 답답하지는 않을텐데…

(나라도 그렇게 기도해야할 모양)

어제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
박근혜가 연설하면서 이렇게 했단다.
“고심 끝에 헌법을 해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주일 오후 루틴

민우는 런닝맨을 좋아한다. ^^
나도 덕분에 런닝맨을 좋아하게 되었다.

주일 오후에는 민우와 함께 (가끔은 엄마도 다 함께) 런닝맨을 보는 것이 루틴이었다.
민우는 그걸 보면서 까르르 웃고, 나는 그렇게 웃는 민우를 보는게 참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민우가 아무래도 수험생이다보니… 시간이 잘 나질 않는다.
주일 오후에도 할일들이 꽉 차 있어서 한시간씩이나 그렇게 한가롭게 앉아있을 여유가 매주 나질 않는다.

그렇게 매주 함께 보는 일을 멈추고서, 한동안은 나 혼자서 런닝맨을 보기도 했는데…
그렇게 재미가 없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민우와 이렇게 런닝맨을 보는 일이 앞으론 정말 없겠구나 싶어…
괜히 더 서운해졌다.

빨리 바쁜 일들이 좀 끝나고,
민우와 함께 런닝맨을 볼 여유가 좀 생겼으면…

사람의 잘못과 시스템의 잘못

어떤 사람을 잘못을 저질렀을때,
그것을 그 개인의 일탈로 보는 것은 꽤 단순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제공해준다.

가령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나찌 독일의 아이히만을 생각해보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이 사람은 독일의 ‘공무원’이었다.
이 사람이 담당했던 것은 유태인 학살의 logistics였다. 많은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수송하고, 죽이는 과정을 아주 꼼꼼하고 완벽하게 잘 해내었다.

나중에 이 사람을 전후에 찾아서 보니, 이 사람은 악마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고, 매우 그저 성실한 사람이었다.
대단히 성실했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아주 성실하게 수행한 것이었다.

물론 아이히만이 한 일을 정당화할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그저 system이 요구하는 일을 성실하게 했을 뿐이라면?
그 사람은 정말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했을 뿐이라면?

사실 아이히만을 비판하고자할때에는 반드시 나찌독일의 광기를 먼저 잘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 context가 아니면 아이히만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말하자면 시스템이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그 안의 성실한 사람이 악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가 개인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그러나, 기독교는 개인을 죄로부터 구원할 뿐 아니라 system을 죄로부터 구원시킨다.
아니 온 피조세계를 죄의 굴레로부터 해방시기는 것이 기독교이다.

어떤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개인의 죄는,
사실 상당부분 그 사람이 살고있는 그 세상의 죄가 투영되어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럴 경우 모든 개인의 죄만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가지고 온 피조세계의 구조적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
죄는 그렇게 훨씬 더 조직적이고 구조적이고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어그러짐으로 개인의 죄를 무마해버리려는 시도는 적절하지 못하다. 개인의 죄가 분명히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죄를 넘어서는 시스템의 어그러짐을 제대로 다루어야 비로소 죄와 악을 좀 더 제대로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