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 않기 (2)

내가 열심히 일하기로 결심했던 또 다른 큰 이유는, 내가 창출해내는 가치에 비해 내가 너무 많이 월급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이곳 bay area에서 받았던 돈은 사실 아주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학원생 월급에 비하면 6배정도 되는 돈이었고,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그 정도의 가치를 이 사회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걸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사실 두번째 직장때부터 나는 월급이 많이 뛰었다.
내가 예전에 나중에 박사를 받고 나면 이 정도 받으며 살겠거니… 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받게 되었고,
나는 정말 그런 고민을 더 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이렇게 돈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내가 하는 일이, 열심히 일하는 소방관이나 학교 선생님이나 경찰관들보다 2배이상 그렇게 가치있는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내가 받는 돈의 가치만큼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엄청 일을 열심히 했다.

회사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많이 했고, 더 잘 하려고 노력했고, 더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하루에 12~15시간씩 일을 하는 날도 꽤 있었다.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지 않기 (1)

작년 중반 이후,
나는 정말 가능하면 하루에 8시간 정도 일하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렇게 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나는 늘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말하자면 ‘꾀돌이’여서 학생때도 노력형의 학생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보다 적은 노력으로 더 빨리 하는 재주가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후다닥 빨리 숙제를 하고 나름대로 내가 하고 싶은 공상등을 하는 것을 재미있어 했었다.

그런데 직장을 잡고 일을 하면서 나는 무지막지하게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게 되었다.

그랬던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가장 커다란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정직하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것을 계속 훈련했다.
그리고 정말 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겐 꽤 꾸준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했다.)

그때 나는 아침 말씀 묵상을 할때도 계속 하나님 앞에서의 성실함이라는 주제로 많이 씨름 했었고, 그것이 내게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Aurora

Boston에서도 지난주에 Aurora가 보였다고한다.

허어 참.
이렇게 낮은 위도에서 Aurora를 보게되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라고 하던데.

왜 오로라가 생기게 되느냐 하는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아주 합당하고 정당하고 매우 명쾌한 설명이다.

그런데,
그 오로라의 아름다움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Technical difficulty

지난 한주정도, 전화에 문제가 있어서 전화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며칠 동안은 아예 전화가 전혀 안되기도 했다.

게다가 또 며칠 동안은 이 블로그의 database 쪽에 문제가 생겨서 블로그도 잘 되지 않았다.

그것도 모라자, 또 지난주 며칠은 동부에 다녀와야 했다.

전화에 문제가 있는데 비행기를 타고 렌트카를 빌리고 하는건 좀 어려운 일이긴 했다. ㅠㅠ

그래도 이제는 almost back to normal.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잠깐씩 있는 이런 technical difficulty에 오바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살아가는 것도 일종의 지혜에서 나오는 선물이 아닐까 한데,
아직 내겐 그런 지혜가 충분하지 않은 듯 하다.

자크 엘룰의 잊혀진 소망

내 책상 옆에 몇년째 읽히지 않은 채 그냥 놓여있던 책이 있다.
자크 엘룰의 ‘잊혀진 소망’이라는 책이다.
몇년 전 KOSTA에서 ‘소망’이라는 주제로 한해를 보냈을때, 나름 조금 더 고민해보겠다고 사 놓고는 읽지 않았다.

지난 주말, 그 책을 펴서 어떤 내용인지 살펴 보았다.

‘현대사회'(자크엘룰이 이 책을 썼을 때는 1970년대였다)에는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침묵하실때 가지는 소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 이거 완전 지금 큰 도움이 될 만한 책이겠다!
어쩌면 지금 뭔가 딱 막혀있는 것 같은 내 생각이 이 책으로 인해 좀 뻥 뚤릴 수 있을 것 같은 ‘소망’이 생겼다.


내가 자크엘룰을 처음 접한건, 대학생때였던가… ‘뒤틀려진 기독교’라는 책을 통해서 였다.
그게 아마도 불어원어를 영어로 번역한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 같았다.
여러가지로 번역이 좀 부자연스러워서 읽는데 매우 애를 먹기도 했지만, 워낙 깊으면서도 혁명적인 내용들이 매우 고밀도로 담겨 있어서 소화해내는데도 꽤 애를 먹었다.

그렇게 만난 자크엘룰의 사상은 사실상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신앙에 매우 중요한 한 기둥을 만들어내었다. 자크엘룰의 책이라고 해야 겨우 그책 한 권 읽었고, 그 후에 조금씩 여기저기서 책과 짧은 아티글들을 읽는 수준이었으니 내가 자크엘룰의 사상을 다 이해했다고 이야기할만한 수준은 당연히 아니다.

그렇지만 매번 조금씩 자크엘룰의 생각들을 더 접해가면서, 나는 무릎을 치며 공감했었고, 그분의 생각이 내 생각을 만드는데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발견해나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자크엘룰을 다시 좀 파보고 싶다.


Bryan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시리즈

나는 보스턴에서 Grace Chapel이라는 교회에 꽤 오래 다녔다.
내가 Grace Chapel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에는 Gordon MacDonald라는 매우 유명한 설교가가 은퇴하고 Bryan Wilkerson이라는 젊은 목사님이 새 senior pastor로 왔을 때였다.

그 후 여러가지로 나는 Grace Chapel과 Grace Chapel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그후 나는 그 동네에서 새로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involve 되게 되었고, 그렇게 Grace Chapel을 떠났지만 내 생각엔 그럼에도 그 후에 Grace Chapel의 설교를, 특히 Bryan 목사님의 설교를 거의 매주 들었다. 내 생각엔 Bryan 목사님이 Grace Chapel에서 한 설교를 아마 내가 한주도 빼지 않고, 여태껏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이제 은퇴를 하신다고.
마지막 설교시리즈로 “Why I still believe” 라는 시리즈를 하고 있다.

아, 참 좋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처음 내가 Grace Chapel에 나갔을때는 Grace Chapel과 Bryan목사님의 신학적 입장이 지금과는 살짝 다른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목사님과 교회가 더 많은 고민을 하면서 신학도 evolve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Grace Chapel에 처음 다녔을때 내가 가지고 있던 신학적 입장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입장 사이에는 꽤 차이가 있다.

그런데,
Bryan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시리즈를 들으면서…
아, 그래… 정말 내가 정말 동의한다… 나도 바로 그렇게 생각해…
라고 격하게 공감했다.

Grace Chapel에 다녔던 시간보다 그 교회를 떠나있던 시간이 훨씬 더 길다.
Bryan 목사님이 ‘우리교회 목사님’이었던 시간보다, 멀리서 그분의 설교를 한주씩 들었던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그럼에도,
아마 나는 그렇게 Bryan 목사님의 Grace Chapel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Bryan목사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알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정말 언제 만나면 격하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한번 드리고 싶다.

이번 설교 시리즈 소개 짧은 clip

취미

내가 요즘 계속 follow하고 있는 John Mark Comer가 한 말.

시간에 매어 사는 현대인들에게,
그 바쁜 삶으로부터 break-away하는 일은,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계속 시간에 쫓겨서 살수는 없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에 쫓겨사는 것으로부터 나를 끊어내는데 아주 효과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취미이다.

제대로된 취미는,
그것을 하는 도중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를 잘 모르게 한다.
그러면서 시간에 매어있는 나를 조금 끊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취미가 없다. 이건 문제라고 본다.

The Glove Illustration

예전에 들었던 설교에서 나왔던 것인데, 이것만 따로 떼어서 youtube clip으로 올라와 있었다.

나는 정말 자주,
내 안에 정말 예수님이 계신걸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요즘도 그렇다. 나는 정말 예수님께서 안에 계시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정말 그리스도인일까.

Gassed

영어로 gassed 라는 일종의 속어가 있다.
I’m gassed 라고 이야기하면 나는 지쳤다. 나는 힘이 빠졌다는 뜻이다.

지난주 며칠동안 LA에 다녀와야했고, 요즘 회사일을 비롯해서 여러가지로 좀 에너지를 많이 써야하는 일들이 연달아 밀려 있어서, 마음이 쫓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회사일 하는데 쓰는 회사 전화를 바꾸었다. 그런데 이게.. 회사 사람들끼리 쓰는 어떤 텍스트가 제대로 오지 않는거다.
아… 이런… 바빠죽겠는데…
그래서 회사에서 이쪽을 담당하는 사람들과 연락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자기들도 잘 모르겠단다. ㅠㅠ

아마 마음이 덜 바빴더라면 훨씬 덜 열받아 했을 것 같은데, 몸과 마음이 쫓기다보니 왕창 이게 열이 받는거다.

다행히 이걸 다루는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그냥 혼자 열받아하는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리고나서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Gassed 되었을때 내게 잘 나타나는 현상은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친절함과 배려가 심하게 줄어드는 것이다.
지치면 바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혹시 나를 아는 분들중, 내가 짜증을 내거나 괜히 까칠하게 굴면,
‘아… 얘기 많이 지쳐있구나’ 생각하고 조금 불쌍히 여겨주시길.
나도 이런 나를 조금씩 더 바꾸어 나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

Wonderfully Made Series (8)

동성애 같은 내용들은 지나치게 정치화 되어버려서, 이걸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을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심지어는 그것에 대해 어떤 특정 교회가 꽤 강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LGBTQ+에 대한 강력한 입장을 가진 분들은, 그것이 교회가 이야기하는 복음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는데 있다. 그러니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복음’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나름대로 LGBTQ+에 대해 이제는 어느정도 정리된 생각이 있긴 하지만,
(이 생각을 정리하게된 것이 아주 최근이다. 물론 조금 더 바뀔 수도 있지만)
나는 나와 LGBTQ+에 대해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믿음을 잘못된 것이라고 정죄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교회에서 LGBTQ+에 대한 질문을 해오는 사람들중 어떤 사람들은,
이 교회가, 이 사람이 과연 나와 같은 편인가 다른 편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 묻는 것이다.
그러니 진심으로 그 대답이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후다닥 편가르기를 해서 내가 이 사람과 대화를 더 지속할 것인지를 결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질문에 대해서 오히려 대답을 유보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설교 시리즈에서 이 이슈들을 다루어내고 있는 것이 살짝 좀 전략적으로 지혜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좀 하고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