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 블로그에 쓰기도 했지만,
나는 한때…
내 나름대로는 ‘주님을 위한 열정’을 주체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복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혼자 아무도 없는곳 까지 차를 타고 가서, 차 안에서 소리치며 기도하고 복음을 외쳤을 때도 있었다.
세월이 지나고, 주님과의 동행이 길어지면서…
그때 그 열정이 정말 주님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하는 것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주님을 위한 열정이었다고 백보 양보해서 인정을 한다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전에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깨달은 것들을 시시콜콜 구체적으로 누군가에게 ‘외쳐야’했던 ‘불’이 마음 속에 있었다면…
요즘은,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깨닫게 된 것이 그리 쉽게 밖으로 뿜어져 나오질 않는다.
우선,
내 한계에 갖혀 경험한 주님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때문이고,
또한….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것을 다시 시시콜콜 풀어내는 것이 너무 천박하다고 느껴진다고나 할까.
신앙의 영역에서 경험한 초월과 신비가, 언어로 표현되면서 마치 식어버린 군만두 같은 느낌을 주게되는 것 같다.
한편…
내가 shallow한 passion이 전부라고 생각한 것으로부터 grow 했다는 것은 기쁘고 감사하지만,
또 한편…
주님의 복음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뼈가 녹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던 예레미야의 passion이 네게 어떤 모습으로 자리해야 하는 걸까 하는 해답이 없는 것은 혼란스럽다.
참…내…
이만큼 주님을 믿고 따랐으면 그래도 좀 어느정도는 통달(?)할 수 있는거 아닌가.
아니 주님께서는 가끔 한번씩… 내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붙들었던 것을 확~ 흔드시면서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하시는데…
이거 참…
주님이 도무지 내 장단을 맞춰 주시지 않으니,
내가 주님 장단에 맞추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식어버린 군만두’ 아 느낌이 빡 오는 표현입니다.머릿 속에 그림까지 딱 그려지는…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이렇게 정말 적재적소에 딱! 맞는 표현하나를 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집니다.)
요런 (논술적이 아닌) 문학적 표현의 구사를 보면서, ‘아 졸개님께서 촉촉해 지고 계신가보다’ 느낌이 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쑥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