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얘기를 또 듣는 이유는?

지난 토요일 아침,

나는 인터넷에서, NT Wright에 대한 강의 하나를 들었다.

내가 그걸 듣고 있는 것을 보고 내 아내는,

그거 다 아는 거 아니냐고, 저 정도는 당신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음…

뭐 내가 그분만큼 강의를 잘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 내용은 거의 대부분 아는 것이긴 했다.

그런데 나는 왜 그걸 그렇게 듣고 있었을까?

그걸 들으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음… 다음의 몇가지 관점에서 그 강의를 들었던 것 같다.

–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강사가 얼마나 잘 정리하는지 (강사의 강의 능력 평가랄까..)

–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내 지식에 대한 재 확인/검증

–  혹시 내가 그런 비슷한 류의 강의를 한다면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하는 것에 대한 idea 수집

…결국 나는,

그 강의를 통해 어떤 새로운 것을 더 배우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가끔은,

내가 설교를 듣는 자세도 그런 것이 아닐까 반성을 해본다.

내가 설교를 그런 자세로 듣지 않으려면 다음 몇가지 가운데 한가지 부류여야 한다.

– 설교자가 늘 내게 새로운, 내가 잘 알지 못했던 것을 가르쳐 준다.

– 설교자의 통찰이 늘 많이 앞서 나가 있어서, 같은 내용을 반복한다 하더라도, 그 깊이에 반복해서 감동한다.

– 그렇지 않으면… 설교가 communal 한 것이어서, 함께 공동체가 마음에 담을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소위 설교 잘하는 목사님들의 설교가 쉽게 질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설교가 communal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5 thoughts on “아는 얘기를 또 듣는 이유는?

  1. 진정으로 설교자가 공동체와 communal하다라는 것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동네 유명 목사님의 설교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그렇게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었나요? ^^

    • 설교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거나,
      지나치게 원론적인 이야기만 한다거나,
      특정 아젠다로 무리하게 이끌어 간다거나 하는 등등은 공동체적이지 않은 설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회중의 영적 상태를 세심하게 파악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들의 영혼에 들려지는 설교를 하는 것이 결국 공동체적 설교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 설교가 이루어 지고 있느냐 하는 증거는,
      무엇보다도 그 설교자가 그 회중과 함께 성숙해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언젠가 이런 말씀 나눈적이 있었습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회중과 설교가의 인격적 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뭐 회중의 입맛을 맞추는 설교를 하라는 뜻이 물론 아니고요, 그 상황을 깊이 들어가서 이해하는 “고통스러운 기도”를 그 회중과 함께, 또 각 개인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저야 뭐,
      설교가도 아니고,
      공동체에 대한 이해도, 설교에 대한 이해도 모두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 이렇게 얘기하는게 그야말로 어불성설이겠죠….

      제 부족한 생각이옵니다.
      바로잡아 주실 것 있으면 한수 가르쳐 주옵소서.

  2. 틀린 말씀 하나도 없구요, 오히려 설교자들이 들어야 하는 말씀이세요. 도리어 나는 과연 그런 인격적 교감위에서 설교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3. 너무 communal(?) 해서 설교자가 교회 회중을 manipulate 하려는 그런 느낌을 주는 설교는 더 싫은 거 같아요. 예를 들면 목회자가 추진하는 사역에 반대한다고 해서, 가나안 첩자로 간 이들 예를 들면서 반대자들은 믿음없는 첩자와 같다라고 하는 둥 그런거죠. 작은 교회이거나 미성숙한 설교자일수록 그런 일들이 많을 수 있는거 같아요.

    조금은 느슨하게 성령님께서 일하실 틈이 있는게 더 좋은 거 같아요.

    MPPC 를 보면서 어쩌면 legalism 의 상처를 경험했기에 지금은 자유롭게 두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 미국의 백인 교회도 많이 그랬듯. 또 한국교회도 그랬죠. 한국의 S 목사님도 그 흔적을 많이 가지고 계신듯 하구요.

    • Manipulative한 설교는, 오히려 대단히 비공동체적인 설교이지.
      공동체의 상황에 대한 마음을 담는 깊은 이해 없이 내어 뱉는 이야기이니까.

      나는,
      물론 성령님께서 개인 안에서 일하는 것을 fully 인정하고 appreciate하지만,
      자꾸만… 21세기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의 입맛에 맛도록 타협하지 않은 공동체성이란 무엇일까…
      개인의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때문에, 부담스럽고, 고통스럽고, 거북하지만…
      그렇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됨을 깊이 경험하고 살아내는 과정은 어떻게 가능할까..
      뭐 그런 고민이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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