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많이 오해하곤 한다.
가령, 사실 나는 정말 겁이 많다.
어릴때부터 정말 겁이 많았다. 어려서는 세발자전거가 무서워서 타지 못하고, 내 여동생보고 앞에서 타라고 하고 나는 뒤에 쪼글고 앉았었다.
그 겁많던 아이는 그러부터 40+년이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겁이 많다.
이번에 lay-off 되고서도 나는, 어떤 순간엔 정말 죽을만큼 두려웠었다.
객관적으로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나는 정말 그렇게 많이 두려웠다. (실제 두려워해야하는 것보다 더 두려워하는게 겁장이 아닌가.)
이를 악물고, 그냥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어떤땐 그럭저럭 견디어 내었지만, 어떤 순간에는 무너지듯 마음이 힘들때도 있었다.
나는 직설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한다.
정말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꺼내서 이야기를 하려면, 몇번이고 머리 속에서 rehearsal을 하곤 한다.
심지어는 며칠, 혹은 몇주동안 고민할때도 많다.
어릴때부터 나는 그랬다. 가게에 가서 물건값을 물어보고 물건을 사는 것을 하지 못했다.
가게 어른에게 가서 물건 값을 물어보는 것이 두려웠었다.
그 소심한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소심하다.
나는 너그럽지 못하다.
아주 쉽게 삐지고 뒤끝도 길다.
속도 좁고, 사람들을 용납하는 것도 잘 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이를 악물고 해야한다. 많이 생각을 곱씹고, 많이 기도해야한다.
어떤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데, 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할때도 많다.
몇가지 예를 들었지만, 사실 리스트는 무지하게 길다.
나는 게으르고, 화를 잘 참지 못하고, 대단히 악한 생각을 자주 하고,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다른이들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이 정말 싫고, 오해받는 것을 정말 잘 견디지 못하고, 여러가지에 많이 예민하고, 까다롭고, 의지가 약하다.
그런데,
내가 이렇다는 것을 아는 정말 잘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느낀다.
그냥 내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이를 악물고 하고 있는 모습이 내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 같이 생각될때가 참 많이 있다.
가끔은,
겁많고, 소심하고, 속 좁은 나를 잘 알아, 있는 그대로 좀 받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그런 사람이 없어 많이 외롭게 느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주님께서 그런 나를 그렇게 받아주셨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아시는데도 나를 받아주셨다.
그리고 겁이 많은 내가 용기를 갖게도 해 주시고, 소심한 내가 용기를 갖게도 하시고, 속 좁은 내가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게도 도와 주신다.
내가 처음, ‘은혜’라는 개념을 접했을때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이유이다.
내가, 우리 주님께 붙어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