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정치

  1. 나는 정의라는 가치에 대해 잘 정리해서 이야기할만큼 아는 것이 많지도 않고,
    정치는 더더군다나 잘 모른다.
  2. 어제 Trump 할아버지의 재판에서 배심원전원이 Trump의 34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라고 판단했다. 이곳 미국에서는 뉴스가 난리였다.
  3. Trump의 정책을 지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떠나서, 적어도 내가 미디어등을 통해서 듣는 것으로는, Trump가 이 시건에서 잘못을 했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그런의미에서 이번 재판은 공정하게, 정의롭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4. 한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도 만만치 않다.
    현 대통령과 그 가족이 법을 어겼을 가능성에대한 여러 기사들이 막 쏟아져나오는 것이, 박근혜 탄핵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한다.
    누구를 지지하느냐와 관계 없이, 한국에서 혹시 앞으로 벌어지게될 일련의 과정이 공정하고 정의로울까 하는 것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이겠다.
  5. 그런데,
    적어도 최근 내가 많이 하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정치 지도자들의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걸까 하는 것이다.
    내가 20-30대에는 당연히 정치 지도자의 도덕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뭐 사실 지금도 엄밀히 말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내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그 도덕적 기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6. 나는 Trump를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만일 Trump를 지지한다면,
    이 사람의 이런 도덕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지지할 것인가?
    예전 같으면 당연히 그럴 수 없지 라고 대답했겠지만, 요즘은 조금 더 고민하게 될 것 같다.
  7. 그것은, 결국 정치 지도자들을 내가 따르는 리더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소비하는 도구라고 여기게 된 것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이 사회 속에서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를 누가 더 잘 해결할 것인가 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8. 나는 미국에서 Trump나 한국에서 윤석열 같은 사람들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하는 막되먹은 말과 행동,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문제들이… 예전과 같이 그렇게 심하게 bother되지 않는다.
    Trump가 소수인종이나 약자를 조롱하는 언어를 쓰는것, 한국의 현 대통령 윤석열이 쌍욕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 사람들을 판단하는 일차 잣대가 되지는 않게 된 것 같다.
    그냥 결국 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힘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좀 더 세상에서 힘을 내어서 살 수 있게 되느냐 하는 것이 훨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9. 그것은 그 정치 지도자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 어떤 정치적 구호를 하느냐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말로는 약자를 보호해야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막상 그 사람과 그 정치세력의 어떤 정책 때문에 약자가 훨씬 더 어려워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 적어도 요즘 같은 세상 속에서는,
    정치 지도자에게 도덕성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저 그 사람들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만….
    그나마 좀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예레미야 9:23-24

“나 주가 말한다. 지혜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 용사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라. 부자는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지 말아라.
오직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이것을 자랑하여라. 나를 아는 것과, 나 주가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하나님인 것과, 내가 이런 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 만한 지혜를 가지게 되었음을, 자랑하여라. 나 주의 말이다.”

그런데 내가 살면서 요구받는 것은,
내 능력과 지식과 경험을 자랑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인 것 같아 보인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분의 성품을 자랑하는 삶을 살기란 참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지 않으면 정말 숨이 막혀버릴것만 같다.

아직 내가 하나님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깨달아 알았다고 이야기할 수준은 못되는것 같다. 그러니 나는 그것을 자랑할 수준은 안되는 것.

그러니 나는 정말…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인거다.
그렇게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내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은 정말 내게 꼭 반복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Professional’ Christian

보통 사람들에게 야구공을 던지라고 하면 빠른 공을 던지기는 커녕 마운드에서 포수까지 한번에 던지는 것을 못하는 사람도 많다.

투수 마운드에서 포수까지의 거리는 20m 가량 되니, 야구공 20m 던지지 못하는 사람은 꽤 많다.

그런데…
야구선수들은 그 거리에서 야구공을 던지는데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던진다.
심지어 더 잘하는 선수들은 시속 140-150km가 넘는 속도의 공을 뿌려댈 수 있다.

그게 ‘프로’와 ‘일반인’의 차이다.

계속된 관심, 훈련, 노력, 경험을 통해서 그렇게 전혀 급이 다른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에 ‘프로’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적절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평생을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더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런 것에 관심도 두지 않고 사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겨우 자기 욕심 다 챙기고 쬐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데 자신을 내어줄때,
비교도 안되는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해가며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게 자주 답답하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는데, 아직도 겨우 마운드에서 포수까지 겨우 공을 던져내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Long Weekend

지난주는 동부에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이라는건… 가면…
일하는 시간에는 그 현지의 일 때문에 정신없고,
밤에 호텔에 와서는 또 밀린 일들 후다닥 하느라 또 정신없고…
그래서 출장을 가면 정말 하루 15시간 이상 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목요일 밤 늦게 집에 돌아와서는 뻗었다. ㅠㅠ

금요일에는 출장 다녀온 것 정리하느라 우다다.. 일하고, 금요일 저녁 6시에 드디어 shut down

다행히 어제 월요일이 휴일이어서, 토-일-월 참 잘 쉬었다.
정말 잘 쉬었다.

그런데,
도대체 잘 쉰다고 느끼게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그냥 잠을 잘자고, 육체적으로 쉬는것?
아니면 바쁜 일 없이 보내는것?

어떤땐 긴 시간 그냥 육체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쉬더라도 잘 쉬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도 하지만,
지난 주말에는 나름 해야할 일들 다 하면서, 조금 시간내서 운동도 하면서 보냈는데… 잘 쉬었다는 느낌이 확~ 드는 주말이었다.

덕분에 이번주는 하루 짧은 4일이니,
그것도 보너스!

Aurora

Boston에서도 지난주에 Aurora가 보였다고한다.

허어 참.
이렇게 낮은 위도에서 Aurora를 보게되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라고 하던데.

왜 오로라가 생기게 되느냐 하는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아주 합당하고 정당하고 매우 명쾌한 설명이다.

그런데,
그 오로라의 아름다움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Technical difficulty

지난 한주정도, 전화에 문제가 있어서 전화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며칠 동안은 아예 전화가 전혀 안되기도 했다.

게다가 또 며칠 동안은 이 블로그의 database 쪽에 문제가 생겨서 블로그도 잘 되지 않았다.

그것도 모라자, 또 지난주 며칠은 동부에 다녀와야 했다.

전화에 문제가 있는데 비행기를 타고 렌트카를 빌리고 하는건 좀 어려운 일이긴 했다. ㅠㅠ

그래도 이제는 almost back to normal.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잠깐씩 있는 이런 technical difficulty에 오바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살아가는 것도 일종의 지혜에서 나오는 선물이 아닐까 한데,
아직 내겐 그런 지혜가 충분하지 않은 듯 하다.

자크 엘룰의 잊혀진 소망

내 책상 옆에 몇년째 읽히지 않은 채 그냥 놓여있던 책이 있다.
자크 엘룰의 ‘잊혀진 소망’이라는 책이다.
몇년 전 KOSTA에서 ‘소망’이라는 주제로 한해를 보냈을때, 나름 조금 더 고민해보겠다고 사 놓고는 읽지 않았다.

지난 주말, 그 책을 펴서 어떤 내용인지 살펴 보았다.

‘현대사회'(자크엘룰이 이 책을 썼을 때는 1970년대였다)에는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침묵하실때 가지는 소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 이거 완전 지금 큰 도움이 될 만한 책이겠다!
어쩌면 지금 뭔가 딱 막혀있는 것 같은 내 생각이 이 책으로 인해 좀 뻥 뚤릴 수 있을 것 같은 ‘소망’이 생겼다.


내가 자크엘룰을 처음 접한건, 대학생때였던가… ‘뒤틀려진 기독교’라는 책을 통해서 였다.
그게 아마도 불어원어를 영어로 번역한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 같았다.
여러가지로 번역이 좀 부자연스러워서 읽는데 매우 애를 먹기도 했지만, 워낙 깊으면서도 혁명적인 내용들이 매우 고밀도로 담겨 있어서 소화해내는데도 꽤 애를 먹었다.

그렇게 만난 자크엘룰의 사상은 사실상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신앙에 매우 중요한 한 기둥을 만들어내었다. 자크엘룰의 책이라고 해야 겨우 그책 한 권 읽었고, 그 후에 조금씩 여기저기서 책과 짧은 아티글들을 읽는 수준이었으니 내가 자크엘룰의 사상을 다 이해했다고 이야기할만한 수준은 당연히 아니다.

그렇지만 매번 조금씩 자크엘룰의 생각들을 더 접해가면서, 나는 무릎을 치며 공감했었고, 그분의 생각이 내 생각을 만드는데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발견해나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자크엘룰을 다시 좀 파보고 싶다.


Bryan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시리즈

나는 보스턴에서 Grace Chapel이라는 교회에 꽤 오래 다녔다.
내가 Grace Chapel에 나가기 시작했을 때에는 Gordon MacDonald라는 매우 유명한 설교가가 은퇴하고 Bryan Wilkerson이라는 젊은 목사님이 새 senior pastor로 왔을 때였다.

그 후 여러가지로 나는 Grace Chapel과 Grace Chapel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그후 나는 그 동네에서 새로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involve 되게 되었고, 그렇게 Grace Chapel을 떠났지만 내 생각엔 그럼에도 그 후에 Grace Chapel의 설교를, 특히 Bryan 목사님의 설교를 거의 매주 들었다. 내 생각엔 Bryan 목사님이 Grace Chapel에서 한 설교를 아마 내가 한주도 빼지 않고, 여태껏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이제 은퇴를 하신다고.
마지막 설교시리즈로 “Why I still believe” 라는 시리즈를 하고 있다.

아, 참 좋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처음 내가 Grace Chapel에 나갔을때는 Grace Chapel과 Bryan목사님의 신학적 입장이 지금과는 살짝 다른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목사님과 교회가 더 많은 고민을 하면서 신학도 evolve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Grace Chapel에 처음 다녔을때 내가 가지고 있던 신학적 입장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입장 사이에는 꽤 차이가 있다.

그런데,
Bryan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시리즈를 들으면서…
아, 그래… 정말 내가 정말 동의한다… 나도 바로 그렇게 생각해…
라고 격하게 공감했다.

Grace Chapel에 다녔던 시간보다 그 교회를 떠나있던 시간이 훨씬 더 길다.
Bryan 목사님이 ‘우리교회 목사님’이었던 시간보다, 멀리서 그분의 설교를 한주씩 들었던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그럼에도,
아마 나는 그렇게 Bryan 목사님의 Grace Chapel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Bryan목사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알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정말 언제 만나면 격하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한번 드리고 싶다.

이번 설교 시리즈 소개 짧은 clip

취미

내가 요즘 계속 follow하고 있는 John Mark Comer가 한 말.

시간에 매어 사는 현대인들에게,
그 바쁜 삶으로부터 break-away하는 일은,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계속 시간에 쫓겨서 살수는 없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에 쫓겨사는 것으로부터 나를 끊어내는데 아주 효과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취미이다.

제대로된 취미는,
그것을 하는 도중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를 잘 모르게 한다.
그러면서 시간에 매어있는 나를 조금 끊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취미가 없다. 이건 문제라고 본다.

The Glove Illustration

예전에 들었던 설교에서 나왔던 것인데, 이것만 따로 떼어서 youtube clip으로 올라와 있었다.

나는 정말 자주,
내 안에 정말 예수님이 계신걸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요즘도 그렇다. 나는 정말 예수님께서 안에 계시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정말 그리스도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