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의 충격

갈라디아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소위 old perspective입장에서 보면 이신칭의의 핵심이 담긴 책인데,
이번에는 더 critical하게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뭐랄까… 살짝 충격에 가까울 정도로 갈라디아서의 임팩트가 크다!

갈라디아서를 공부하면서 발견하고 있는 것은,
내가 어쩌면.. 내가 과거에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경력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막상 지금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ㅠㅠ

나는 나름대로 꽤 열심히 예수님을 믿으려고 노력해왔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발견은 충분히 충격적인 것이다.

금요일 반 하나, 토요일 반 하나,
두 그룹을 하고 있는데…
이 갈라디아서 말씀이 계속 내게 그런 충격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요한과 같은?

예전에 대학생때,
선배중 약간 ‘도사’삘이 좀 나는 형이 있었다.

그 형은 말하는 투도 정말 도사 같았고,
하고 다니는 모습도 좀 그랬다.

같은 교회에 다녔는데, 기도를 할때도 뭐랄까.. 하여간 좀 뭔가 좀 초월적이랄까 그런 분위기였다.
이게 막 큰소리로 기도하고 방언하고 그런 부류라기 보다는 조용히 낮은 소리로 기도하고나서는 와서, ‘오승아, 오늘은 북한 교회에 대해 한번 얘기해보자’ 완전 맥락없이 뜬금없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형이었다.

그 형이 내게 했던 말 가운데 하나가 나는 ‘요한’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음… 형 그게 무슨말이예요?
그랬더니 그냥 내가 성경의 요한과 같은 방식으로 신앙을 이해하고, 성경의 요한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거다.

나는 뭐 그때 성경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나름대로 성경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는..
그때 그 형이 틀렸지. 나는 아무래도 요한복음 보다는 공관복음쪽이 훨씬 더 좋은데…
싶었다.

그런데 요즘 요한복음 말씀 묵상을 하면서 문득 느끼는 것.
아… 공관복음이 근육을 키우기위한 닭가슴살 같은 그런거라면,
요한복음은 뭐랄까 잘 끓인 죽같은 느낌이 드는거다.

공관복음에는 영양분도 가득하고 그래서 그거 잘 요리해서 먹으면 건강해지는데,
요한복음은 그냥 당장 먹으면 속도 편하고 먹기도 더 좋다.

기능하기보다 존재하겠다고 생각했던 내 새해 결심에 따르면,
말씀을 잘 숙지하기 보다는 말씀을 양식으로 섭취하자는 것이 들어가 있는데…
요한복음은,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하기 참 좋은 말씀인 것 같다.

그때 그 형이 맞았던 걸까.
그나저나 이제는 연락도 끊긴 그 형이 보고싶다.

포기하기 vs 인정하기

내가 닥친 상황이나 상태를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내가 닥친 상황이나 상태 속에서 그냥 포기하고 주저앉아버리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그 차이를 분간해 내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정말 fine line이어서 애매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때로는 그 차이가 매우 분명한데도 잘못된 상황판단,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내가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어릴때부터 생각을 했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나는 절대로 그런 재주가 없다. ㅠㅠ
그러니 그건 내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운동을 해서 10 파운드를 빼겠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건 당연히 해볼 수 있는 거다.
며칠 해보고 나서…에이 안되는 거구나… 이건 포기하는 거다.

나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물론 나를 포함해서, 아니, 누구보다도 나에게서)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을 본다.

신앙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때로는 그것이 단기간에 심지어는 내 생에에 완성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포기하지않고 주저앉지 않는 정말 많은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리라…
이건 안되는 거라고?
아니, 되는 거다. 내가 그걸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죽기전에 그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건 되는거다.
그러니 그런 기준을 포기한채 주저앉아 버리는 것은 현명한 인정이 아니라 치사하고 비겁한 도피이자 포기인거다.

그분의 부르심에 따라서 날로 그분 안에서 성숙해가며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사는 것.
그거 잘 안되는 거라고?
당연히 잘 안된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거다.
내가 타고난 기질이 어떠하던지 간에, 내 배경이 어떠하던지 간에, 잘 안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거다.
내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분명 필요하지만, 내 한계를 인정한다는 핑게로 주저앉아버리는 포기를 선택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다니엘서

다니엘서 성경공부를 9월 초부터 시작했다.
금요일 저녁 한 그룹, 토요일 저녁 한 그룹을 했는데,
토요일 저녁 그룹이 조금 더 진도가 빨라서 지난주 토요일에 다니엘서를 마쳤다.

다니엘서 만큼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성경본문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압도적 제국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기.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기.
세속 사회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기.

다니엘서 1~6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영웅적 이야기들을 하게 만들었던 근원 가운데 하나는,
다니엘서 7~12장에 나오는 그 환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니엘은 자신이 box 안에 가둘 수 없는 거대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았고,
그래서 다니엘은 제국이 box안에 가둘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거의 지난 10년동안 다니엘서를 많이 사랑하면서 살아왔다.
읽고 읽고 또 읽어도 감탄이 나올만한 책이다.

이번에도 다니엘서를 공부하면서 진한 깨달음과 감동이 있다.

당분간 대림절(Advent) 묵상

당분간 블로그를 덜 열심히 update 할 예정입니다.

이번주부터 대림절 (Advent)가 시작되었습니다.
Advent는 성탄 4주 전부터 성탄을 기대하며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교회에서 대림절 묵상을 매일 짧은 성경구절을 가지고 하기로 했는데,
저도 적극적으로 참여해보려고 합니다.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서,
매일 3~5분정도의 짧은 clip을 녹화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대림절 기간동안 그 묵상에 조금 더 시간을 들여보려고 합니다.

(아, 물론 지금 하고 있는 다니엘서 성경공부도 한 class는 9장, 다른 class를 11장을 나가고 있으니 그것도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잘 마무리 해야 하겠고요.

하나님의 신실하심

소위 New Perspective가 가지는 큰 장점 중 하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특히 언약적 신실하심에 대한 강조가 잘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신실하심으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고,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것은 그 신실하심이 제대로 드러난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은 신뢰할만한 분이다.
그분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다.

결국 예수님을 보았던 시므온의 기도가 그런 것이었겠다.

아, 그래…
하나님은 이렇게 신실하게 그분의 약속을 지키고야 마시는 거구나.

성탄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God with Us

내 생각에,
크리스마스 스피릿의 핵심은 God with Us (임마누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신실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성탄이 희망이 되는 것이다.

대강절(Advent) 기간이 시작되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다 함께 하는 묵상 챌린지랄까 그런걸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 구절들을 나도 조금 더 의미있게 묵상하고 그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된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
그래서 희망이 된다는 것.

그것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
너무 내 생각이 가벼워서 견딜수 없다. ㅠㅠ

Omicron variant – 바람

Omicron variant가 떴다고… ㅠㅠ
아직은 이 variant가 더 잘 퍼지는지, 그렇다면 delta variant에 비해서 얼마나 더 잘 퍼지는지,
증상은 어떤지, 등등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
바람은 이렇다.

  1. Delta나 기타 다른 어떤 variant보다 훨씬 더 전파력이 빠르면 좋겠다.
  2. 그리고, 증상이 엄청 약하면 좋겠다. 사망률 0.1% 이하

만일 이렇게 되면,
결국 COVID-19이 endemic(풍토병)으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대부분 백신을 통해서, 그리고 covid-19에 감염이 되어서 면역을 갖게될 것이고,

…

결국 바이러스가 살아남으려면,
– 적절한 치명률 (너무 숙주가 빨리 많이 죽어버리면 자신이 살아남지 못하므로)
– 빠른 전파율
이 전제되어야 한다.

원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은,
백신을 빨리 맞고 전파율을 낮춰서 COVID-19이 사그러지게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사이 변이가 일어나서 전파율은 높아졌고, 그 와중에 과학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백신을 거부하기도 했고..
또 가난한 나라에는 백신이 공급되는 일이 늦어졌고…
그래서 전파율을 낮춤으로써 COVID-19을 잡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대략적인 계산

COVID-19의 Delta variant는 R0이 6~7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R0은 한 사람이 감염시키는 사람의 평균 숫자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보통 독감의 R0이 1~2 정도이고,
Delta variant가 아닌 COVID-19의 R0은 1.4~2.4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delta variant는 전파력이 어마어마한거다.

그러면,
1사람이 6사람을 감염시킨다고 보고, (R0=6)
6사람중 5사람 이상이 COVID-19에 완전 면역이 되어 있으면 COVID-19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소멸하게 된다.
그러니, 83%의 사람에게 면역이 있으면 소위 ‘집단면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COVID-19 백신들의 효과가 100%가 아니므로…
대략 COVID-19 백신의 효과를 80% 정도라고 보았을때,
사실상 거의 100%의 사람들이 백신을 맞아야 집단면역이 이루어진다.

이는 물론 어린아이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지금 미국같이 접종률 60%도 안되는 수준에서는 집단면역은 택도 없는 이야기다.
심지어는 한국같이 세계 최고의 접종률을 자랑하는 곳이라 하더라도 집단면역이 이루어질수는 없다. ㅠㅠ

참고로,
홍역의 R0은 자그마치 12~18 수준이다.
그럼에도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다 백신을 맞는 것으로 인류는 홍역을 잡았다.
분명히 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당분간…
과학을 신뢰하고, 백신을 맞은 부류의 사람들은 백신에 의해 대부분 방어가 되고,
과학을 신뢰하지 않고 백신을 맞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은 그냥 COVID-19에 걸려서 면역이 형성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COVID-19때문에 앞으로도 사람들은 정말 많이 목숨을 더 잃을 것 같다.
어쨌든 과학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계속 백신 부지런히 맞고 (booster도 맞고),
마스크 쓰면서 자신을 잘 보호하는 수 밖에는 별 방법이 없는 것 같다.

Do Not Say “I told you so”

지금 만들고 있는 것중 하나에 꽤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어느 한 공급업체로부터 제때 부품을 받고 있지 못한 것이다.
원래 이달 초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지금 말로는… 내일 (thanksgiving 전날) 공급을 해줄 수 있다는 거다.

몇 달전 그 부품을 그 회사에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내가 강력하게 주장을 했었다.
최소한 그 회사와 다른 회사를 병행해서 사용하자고 제안도 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미적미적 하다가 결정을 잘 못해서 지금 이 회사와 일하게 되었고,
다들 이 고생을 하고 있다.

이럴때, 그러게, 내가 그랬잖아. I told you so 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ㅠㅠ

….

내 생각이 물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 생각이 틀렸던 경험도 당연히 대단히 많이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떤 특정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은 고민을 해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통찰을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이 내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 듣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게 하면 그건 정말 위험한데…
그렇게 하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는데…
그렇게 하면 그건 결국 무너지는데…

결국 그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나,
그 ownership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나는 그냥 결국 옆에서 그 consequence를 다 보아야만 한다.

몇달전 나는,
조금 더 강력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던 걸까?

….

내 어떤 상황은,
몇달전 그 회사일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더 강력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