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고민 (7)

성경공부에 참석하는 분들중에는,
신학생, 목회자도 있고, KOSTA 간사들도 있는 반면,
성경공부 자체를 깊이한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그저 가능한 시간대별로 신청을 받아서 성경공부를 하다보면 적절한 수준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난이도 레벨별로 몇개의 다른 그룹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아… 나도 생업이 있고, 시간이 많이 않으니…
다른 내용의 여러 성경공부를 준비하는 것은 참 쉽지 않다.

작년 봄이었던가…
세 그룹을 했는데, 각각 다른 내용으로 한적이 있었다.

완전 뻗는줄 알았다.
계속 세가지 다른 내용을 매주 준비하면서 그 세가지 다른 내용의 discussion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하느라 어엄처엉~ 힘들었다. ㅠㅠ

한번은 조금 쉽게 했다가 한번은 조금 어렵게 했다가…
이렇게 난이도를 계속 바꾸어가면서 할까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는데….
이것도 역시 고민이다.

성경공부 고민 (6)

또 하나의 고민은, 성경공부가 너무 어렵다는 거다.

이게 뭐 잘난척하려고 하는게 아니고,
그냥 좀 깊은 신학적 이슈들을 본문과 함께 다루게 되기도 하고,
어쩌면 성경공부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접하기 쉽지 않은 방식으로 성경공부를 하게되다보니,
성경공부의 진입장벽이 좀 있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 어려움을 극복했거나,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성경공부에서 살아남는 경향이 있다.

내 나름대로는 그래도 성경공부 시간에 나누는 수준은 입문용 주석에 서 다룰 수 있는 수준으로 제한하려고 많이 노력하곤 하는데… 참석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어렵다는 이야기들이 꽤 많다.

나는 어떻게든 사람들이 성경읽고 공부하는 재미를 좀 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하는 성경공부 스타일을 좋아할수는 없겠지만 이런 스타일의 성경공부가 click되는 어떤 사람들이 나와 성경공부를 하면서 재미를 들여서 평생 성경공부를 즐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너무 극소수의 덕후들을 위한 성경공부가 되지 않도록 잘 조정해가며 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성경공부 고민 (5)

성경공부가,
온라인에서 본문 연구를 하는 dry한 모임이 아니라,
정서적 교감을 더 깊게 하는 모임이 되면…
그걸 준비하는 내 입장에서는 일종의 그 사람들을 ‘목양’해야한다는 부담이 생기게 된다.

실제 삶의 영역 속에서의 문제들에 더 들어가게 되고,
그것을 가지고 정서적 감성적 involvement를 더 하게 된다.
이건 본문을 열심히 준비해서 나누는 것과는 급이 다른 노력이 된다.

과연 깊게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그룹을 지금 내가 한주에 두세그룹 하는것이 가능할까?
그 각자의 상황을 살피고, 일일히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렇게 내가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한 주에 한 그룹 정도로 줄이고 대신 그 그룹에 그렇게 더 신경을 쓰면서 (유사) ‘공동체’의 모습을 가지는 것을 조금 더 허용하는 방향으로 성경공부를 바꾸는 것이 좋을까?

글쎄…

사실 지난 몇년간 계속 성경공부를 더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서, 한주에도 세 그룹씩 열어서 성경공부를 해 왔는데, 그 사람들의 요구를 그냥 무시한채 적은 수의 사람들만 조금 더 깊게 fellowship을 가지는 쪽으로 선회를 하는 것이 좋은 결정일까?

잘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쪽의 생각이다.

성경공부 고민 (4)

이번 봄학기에 했던 성경공부에서는, 내가 조금 ‘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경험, 내가 묵상한 내용, 내 삶의 여정 속에서의 하나님 이야기를 조금 더 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각자의 삶 속에서 모두 그렇게 말씀을 가지고 좀 씨름하라고 격려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 몇분들은 자기 이야기를 조금 열어서 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학기에는 특별히 참석한 사람들이 일종의 ‘친밀감’같은 것을 더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말하자면 성경공부가 조금 더 ‘감성적’이 되었다.

이건 정말 내게 많이 고민이 된다.

어떻게든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고 그것을 삶 속에서 가지고 들어가서 씨름하는 경험을 많이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런 시도를 하다보니 이게 의도하지 않는 끈적끈적한 친밀감, 정서적 교감 등이 더 이루어지는 모임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성경공부를 마치면서 어떤 분들은 그런 것을 더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말하자면 내가 의도하고 계획한것과 매우 다른 것인데…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내가 조금 다른 자세로 접근해서 준비해야 할텐데….

성경공부 고민 (3)

내가 성경공부를 하면서 꼭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다.
이것이 무슨 ‘온라인 공동체’같이 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서로 끈끈하게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 삶을 열어서 나누고… 그런거 하지 않으려했다.
그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경공부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꽤 반복해서,
이것이 교회를 대신한다거나, 실제로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하는 소그룹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실제로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사는 곳에서는 교회를 아예 나가지 않거나, offline에서의 다른 fellowship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이 성경공부가 그렇게 뭔가 ‘공동체’가 되길 원하기도 한다.
혹시라도 성경공부에서 살짝 자기 이야기를 나누면서 뭔가 살짝 끈끈함(?) 같은 것이 만들어지면, 그것 때문에 참 감사하고 좋아한다.

성경공부에서 유익을 얻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 성경공부를 일종의 ‘공동체’로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참 여러가지고 고민이 많다.

그렇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이 성경공부는 그냥 ‘dry’한 본문 연구 모임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성경공부 고민 (2)

우선 제일 큰 고민은 내가 벅차다는 거다. ㅠㅠ

사실 회사일이 너무 많아서 힘이 들기도 하고,
금년부터는 주중에는 아예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주말에 하게 되는데,
주중에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토요일 오전에 본문 연구하고, 주말 저녁에 성경공부로 시간을 쓰는게 그렇게 쉽지많은 한다.

이번학기에는 그래도 하루저녁은 좀 쉬어야 겠다 싶어서 토요일 저녁은 성경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금요일 저녁과 주일 저녁 이틀 두 그룹 성경공부를 해야 했고,
그 시간에는 대개는 꽤 몸이 많이 피곤한 상태여서 빠릿빠릿하게 잘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성경공부를 위해서 준비하고, 나름 본문 연구하는 시간 + 실제 성경공부 하는 시간을 모두 합하면 한주에 7-8시간 정도 성경공부를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셈인데,
이게 내 몸을 갈아넣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살짝 들때도 있었다.

시간은 부족하고, 체력은 딸리고…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많다.

성경공부 고민 (1)

COVID-19기간을 지나면서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온라인에서 성경공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당시 다니던 교회 사람들 그룹 하나, KOSTA를 통해서 알게된 사람들 그룹 하나, 이렇게 두 그룹 성경공부를 2020년 가을부터 하기 시작했다.

나는 Covid가 금방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냥 몇달 이렇게 성경공부를 온라인에서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도 그걸 계속 하고 있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계획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도 그냥 되는대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어태껏 해 왔는데…
오래 하다보니 여러가지 한계과 문제들도 있고, 여러가지 고민도 하게되었다.

매 학기 이메일로 안내를 보내고, 신청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그 이메일 안내를 받아보는 사람들이 104명이고,
지난 6년간 한번이라도 성경공부에 참석 한 사람들이 92명이다.
그중 한번만 참석하고는 다시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의 매학기 신청해서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학기에는 함께 한 사람들이 조금 적은 편이어서 15명 수준이었지만,
많이 할때는 한번에 40명 넘게 신청을 해서 3 그룹으로 해야했던 때도 있었다.

고난주간 묵상 – 은혜

Tim Keller 설교중 매우 깊게 내게 남은 이야기.
(detail은 조금 틀릴 수도 있겠다)

비기독교인인 어떤 사람이 Tim Keller에게 기독교가 불편한 이유 한가지를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기독교가 ‘은혜’의 종교라는 것이었다.

신과 일종의 ‘거래’가 가능한 것이라면,
내가 헌신한 만큼 신에게서 복이 오는 관계라면,
내가 그 신에게 어디까지 헌신해야하는가 하는 기준이 그려지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는 신이 일방적으로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는 종교이다보니,
일단 그 신과의 관계를 맺고나면 그 신 역시, 자신에게 무한정 요구할 수 있게될 것 같다는 말.

다시 말하면, 신으로부터의 은혜가 무한정이니,
자신의 헌신도 무한정이어야 한다고.
그래서 기독교가 불편하다고.

John Barclay의 Paul and the Gift의 내용을 이렇게 현실에서 잘 설명한 예가 있을까싶다.

나는 내가 복음에 조금 눈을 뜨게 되었을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은혜’라는 개념이었다.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고, 부모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였던 내게,
그런 패러다임과는 다른 패러다임이 있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그 은혜는 여전히 내게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 충격적인 은혜는 내 삶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고, 지금도 흔들고 있다.

은혜는 정말 비가역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고난주간 묵상 – 시험

예수님께서 40일 금식하신 이후에 시험 받으신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이겨야겠다고 결심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 더 공부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시험을 이기신 것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시는 선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예수님때문에 이제 나 같은 사람도,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는 것.

십자가의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다.

고난주간 묵상 – 구속 (Redemption)

Penal substitution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한동안은 penal substitution 없이 십자가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고,
penal substitution 없는 믿음을 나름 거의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의 죄를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나를 사셨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20대에 생각하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penal substitution을 이해하고 있긴 하지만,
예수님의 희생이 내게 새 생명을 주셨고, 죄로부터의 자유를 주셨다는 것은 어떻게 해도 내가 피할 수 없는 어쩌면 내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살면서 내 죄에 대해 조금 더 민감하게 사는 시기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시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도 궁극적으로 이걸 해결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명백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이외에 내 망할놈의 삶을 회생시킬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피를 흘리셨다.
그렇게 나를 사셨다. 핏값을 주고.

이것이 얼마나 불편하든 간에,
이것을 피할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