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탈근본주의 여정 (3)

위에서 언급한,
(1) 구약의 폭력성을 포기하고 고백주의를 지키는 것과,
(2) 고백주의를 포기하고 구약의 폭력성을 받아들이는 선택 가운데…

나는 (1)의 선택이 더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고백주의의 관점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아 성경이 지지하고 있는 관점이라는 내 확신이 있었고,
구약의 폭력성을 해석해내는 방법은 소위 ‘역사비평’이라는 관점으로 풀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사비평 그러니까 뭔가 좀 대단한 것 같지만,
골자는, 그 본문이 쓰여진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감안하여 그 본문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안경을 쓰고 몇천년전의 기록을 읽으려하면 해석에 무리가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령, 이스라엘 백성의 정복 전쟁 때,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을 다 죽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1) 그 당시 전쟁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culturally acceptable 한 것이었고,

(2)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그분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 보다는 믿음의 순수성이라는 내용을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셨다고 이해했다.

(3) 아직 인권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develop 되지 않은 상황 이라는 그 당시의 상황을 지금의 세계관으로 직접 해석해내려하면 무리가 따른다는 것도 추가할 수 있겠다.

(4) 그리고, 그 본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인종청소가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구별됨이다. (조금 오해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면…) 그 본문을 기록한 기자(들)이, 하나님 백성의 구별됨을 명확하게 쓰기 위해 어떤 강조법을 사용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째… 좀 제대로 깔끔하게 설명을 못 한 것 같은 찜찜함이…)

이렇게 역사비평적으로 성경을 읽으며… 그리고 귀납법적 성경연구라는 tool를 그 역사비평과 함께 사용하면서 나는 성경이 그야말로 2차원 평면에서 3차원 입체로 드러나게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구약의 text 뿐 아니라, 신약의 많은 내용도, 그 당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두고 읽어내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