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내게 붙어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잘라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 (요한복음 15:1)

하나님께서 어떤 시대에 가지치기를 하시는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럴때 정말 사정없이 나무가 앙상해지고 이러다 나무가 죽겠구나 싶을만큼 보잘것 없어진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 그 나무가 과실수로서 살아남게 되는 거다.
가지치기가 없으면 그 나무 전체가 쓸모없게 되는 거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도 가지치기를 하시는 때가 있다.
그 가지치기의 시기에는 그 사람이 참 볼품없어진다.
앞길이 불확실해보이기도 하고, 다루기 힘든 무게가 그 사람을 짓누르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기독교에서는 문제가 닥쳤을때 그것이 해결해야하는 문제인 것으로만 인식하는 모습이 편만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 삶 속에서 닥치는 ‘문제’들은, 급히 그 문제에 집중해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 속에 일단 머물러 가지치기를 해야하는 과정이자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살아오면서 하나님께서는 내게도 가지치기를 하시는 시즌을 겪어왔다.
어떤땐 다소 넉넉하게 그 시즌을 이겨내기도 했지만,
어떤땐 그 시즌을 넘기는 것이 죽기만큼 어려울때도 있었다.

어떤땐 그 시즌을 견디어내며 내 안에서 충분히 가지치기가 잘 되어, 그로부터 10여년이상 건강하게 내가 살도록 만들어준 경우도 있었고,
어떤땐 그 시즌 속에서 당장 닥친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버둥대다가 충분히 가지치기가 되지 않아 그 가지치기 시즌을 헛되이 걱정만하며 망가져서 보낸 경우도 있었다.

자신이 가지치기의 시즌에 있는지, 아니면 그냥 억울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런 이유조차도 알수 없는 시즌을 보내고 있는지 하는 것을 제3자가 그 사람에게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하줄수는 없다.
그렇지만 꽤 많은 경우 그 시즌에 하나님을 향해 귀를 열었을때 하나님께서 그것이 어떤 시즌인지 보여주시는 것 같다. 100% 그런것 같지는 않은데, 꽤 높은 확률로 그런것 같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래서 어떤땐 내게서 마지막으로 잘려나가야할 그 가지가 잘려졌을때, 당장 닥친 문제 해결과 무관하게 내게 큰 자유함이 찾아오는 경험을 한적도 있었다.

어둠의 시기를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힘든 터널을 지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침체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떠나지 않기를…